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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neral 진주 냉면 2

2010.08.22 21:09

계기식*72 Views:7862

조선일보 2010.8.18일

진주냉면과 황덕이 할머니"쇠고기육전 고명으로 얹고 해물 육수 써서 느끼한 게 없제"여든두 살 황덕이 할머니는 이날도 새벽 2시에 일어났다. 경남 진주시 봉곡동 28-7 진주냉면(055-741-0525). 1·2층은 식당이고 3층은 가정집 구조다.

할머니의 '한밤중 기상'은 65년째. 일본강점기 때 종군 위안부 피하려고 열일곱 살에 시집가, 먹고살기 위해 냉면을 팔기 시작한 그 시절부터다. 이제는 "진주냉면을 맛볼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곳"(진주시청 문화관광과·사회위생과)으로 인정받았지만, 기상시간만큼은 예나 지금이나 그대로다. "사람이 놀면 안된다카이.

오늘도 다마네기 까 놓고, 국물 끓여놓고, 콩나물대가리 따 놓고, 글고 냉면에 들어갈 배 깎아놨다 아이가. 서울서 왔다꼬? 이거 국물 한 번 먹어보라. 뭐가 다른지."서울에선 맛볼 수 없는 별미 진주냉면과 황덕이 할머니의 65년 냉면 인생.

▲ 언제나 새벽 2시에 일어나는 황덕이 할머니. 자식들과 먹고살기 위해 65년간 냉면을 말다 보니, 어느덧 진주냉면 장인이 됐다. / 진주=영상미디어 이경호 기자 ho@chosun.com

"냉면은 첫째도 육수, 둘째도 육수인기라"3층 옥상에 있는 은빛 들통에서 육수가 펄펄 끓고 있다.

주름 자글자글한 할머니 표정이 사뭇 심각하다. "사흘은 달여야 한데이. 그 시간을 넘어삐면 쫄아버려 맛이 짜고, 일찍 끝내면 비린내가 나제. 냄새가 나면 파이라. 문어, 홍합, 황태, 새우, 디포리(멸치), 좋은 건 다 들어간데이. 그카 해물을 쓰니 느끼한 게 없는기라.

냉면은 첫째가 육수인기라."우선 진주냉면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 냉면 마니아들도 진주냉면을 먹어 본 사람들은 많지 않다. 우선 진주냉면 파는 곳이 본고장 진주에서도 거의 자취를 감췄기 때문.

'한국음식의 뿌리를 찾아서'(백산출판사)를 쓴 김영복 전통식생활문화연구원장은 "1966년 냉면집들이 몰려 있던 진주 중앙시장 대화재 이후 진주냉면의 맥이 점차 끊겼다"고 적었다.

북한에서 출간된 조선민속전통(평양과학백과사전종합출판사·1994)에는 "냉면 중에 제일로 여기는 것은 평양냉면과 진주냉면"이라는 구절이 나온다. 우래옥, 필동면옥, 을지면옥 등 서울의 이름난 냉면집들은 모두 평양냉면 스타일. 고기육수가 특징이다.

진주냉면은 해물육수라는 점이 가장 큰 차이다. 또 돼지고기 편육을 넣은 평양냉면과 달리, 진주냉면은 살코기에 밀가루를 묻히고 계란물을 입혀 부쳐낸 쇠고기육전을 고명으로 얹어내는 게 특징이다.

고소한 계란지단 냄새에 끌려 다시 1층 식당으로 내려왔다. 고명을 탑처럼 쌓은 진주냉면 한 그릇(6500원)이 마침내 상 위에 오른다. 육수 한 숟가락을 입으로 가져간다. 평양냉면 육수가 약간 심심하면서 담백한 맛이라면, 진주냉면 육수는 진하고 강한 맛. 조금 짠 맛과 뒤이은 감칠맛이 묵직하게 목젖을 타고 흐른다.

혹시나 걱정했던 비린내는 전혀 없다. 면 위로 쇠고기육전, 편육, 잘게 채 썬 배와 오이, 실고추, 삶은 계란 반개, 무 초절임이 층층이 솟았다. 초콜릿빛 육수와 오색 고명이 시각적으로도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답다.

옆에 앉은 할머니가"한 그릇 더 무그라"고 강하게 채근한다.◆"할배가 냉면 귀신이었제"경남 통영 출신인 할머니와 진주냉면과의 인연은 세상을 떠난 남편 덕분이었다. 종군 위안부 징용을 피해 아버지가 등 떼밀어 열일곱 나이에 진주 사내와 결혼을 했고, 먹고 살기 위해 남의 집 한 귀퉁이를 빌려 냉면과 국밥을 팔았다는 것.

막내딸 하연옥(46)씨는 "아버지는 냉면 귀신이었다"며 "하루 한 끼는 반드시 냉면을 드셨고, 남의 집 냉면도 한 번 드시면 그대로 만들어내는 재주가 있었던 분"이라고 말했다. 막냇사위 정운서(51)씨는 "생전에 아버님이 드시고 남긴 냉면 국물을 서로 먹겠다고 형님, 처형들이랑 다툰 적이 많다"면서 "겨자·식초 비율이 기막혔으니, 요즘 말로 하면 절대미각이 있었던 분"이라고 했다.

지금은 웃으며 이야기하지만, 할머니의 팔십 평생은 조선여인 잔혹사로 불러도 큰 과장이 아닐 듯하다. 음식에 대한 평가도, 음식을 만드는 사람에 대한 대접도 달라졌지만, 할머니 젊었던 시절에는 언감생심. "진주에서 나만큼 고생한 사람도 없을끼라"며 띄엄띄엄 풀어놓는 할머니의 인생을 조심스레 요약하면 이렇다.

배곯던 시절 애를 가져 자식 아홉 중 넷을 자연유산으로 잃었고, 출산 당일에도 미역국은커녕 아래로 핏덩어리를 쏟은 채 남의 집 일을 했으며, 개고기 집에서 개털까지 뽑는 등 먹고살기 위해 안 해 본 일이 없다는 것.

게다가 어느 정도 입에 풀칠하던 냉면·국밥 장사도 6·25 전쟁으로 끝장났고, 가까스로 복구했던 식당은 66년 중앙시장 화재 때 다시 불탔다. 그때 수정냉면, 은하냉면, 평화냉면 등 전통의 중앙시장 진주냉면집들이 모두 풍비박산났다는 것.

"어떻게든 애들하고 묵고 살라꼬, 아무도 없는 데서 장사를 한 기라. 가루를 내 손으로 반죽을 해가 눌러가, 할배랑 내랑 다 한기라. 그란기라…" 할머니 기억에 남은 그 시절이다.

향토음식과 전통음식에 대한 세간의 인식이 달라진 최근 10년, 황덕이 진주냉면은 일취월장했다. 진주 유일의 진주냉면집으로 명성을 단단히 얻었고, 이제는 시내에만 3개 직영점을 운영할 만큼 외형도 커졌다.

봉곡동 본점에서만 하루 1000그릇, 한여름에는 손님의 80%가 외지 사람이란다.오전 10시 20분. 점심을 먹기엔 까마득히 이른 시간인데, 서울 말씨를 쓰는 청년 두 사람이 식당으로 들어섰다. 순식간에 냉면 두 그릇을 비웠다. 할머니가 부리나케 다가간다. "아야, 그것 갖고 양이 차긋나. 한 그릇 더 주꾸마. 그냥 무그라."어쩌면 지금의 황덕이 진주냉면을 키운 8할은 배곯던 시절을 잊지 않는 인심과 정이 아니었을까.

나오면서 식당 후미진 곳에 붙어 있던 쪽지 한 장을 우연히 발견했다. 이번 달 후원해야 할 결식아동과 독거노인 명단 20여명의 명단이었다. "진양호 물안개가 얼마나 좋은데"황덕이 할머니에게 '진주에서 가볼 만한 곳'을 묻자 서슴없이 진양호(湖)와 촉석루를 댔다.

너무 알려진 곳이 아니냐고 되묻자, "그게 무슨 소용이고, 그래 좋으니 널리 알려진 게 아니겠나"고 타박이다. "내가 노래를 좋아하거던. 할배 살았을 때 촉석루 함께 올라가 노래 세 곡은 기본이었제. 진양호도 물안개가 얼마나 좋은지 아나?

"촉석루는 우리나라 3대 누각 중 하나로 꼽히는 곳. 진주성을 휘감아 도는 남강과 어우러져 절경을 이룬다. 1593년 7월 제2차 진주성 전투에서 승리한 왜군이 촉석루에서 승전연을 벌일 때 논개가 촉석루 앞의 의암에서 왜장을 끌어안고 강으로 뛰어들었다.

진양호는 댐 길이만 1㎞가 넘는 초대형 호수다. 1970년 낙동강 최초의 다목적댐인 남강댐 건설과 함께 형성됐다. 지리산이 한눈에 바라보이는 전망이 일품이다. 할머니와 함께 사는 막내딸 하연옥씨는 "가족들과 가기에는 최고"라며 이반성면 대성리에 있는 경상남도수목원(055-750-6345)을소개했다. 국내 최대 규모의 산림박물관이 있고, 1700여종의 꽃과 식물들로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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