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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스카이의 고종 폐위 음모와 대원군의 귀국

러시아와 영국, 거문도 점령

by온기철 James Ohn2시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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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문도 주민과 영국 해군(월간조선)

 

갑신정변은 청나라에게 조선을 더욱 강력하게 지배할 수 있는 빌미를 주었다. 민비와 고종 그리고 집권층은 청나라 보호 없이는 일본과 개화당으로 부터 권력을 방어 할 힘이 없었다. 청은 민비의 최대의 정적인 대원군을 구금 했고 일본군과 개화당 쿠테타군을 격파 해 주었다. 

 

그러나 청이 단순이 민미와 고종을 돕고 일본 세력을 배제하기 위해서 흥선 대원군을 구금 해 놓은 것은 아니었다. 약관 26세의 위안스카이는 청이 임명한 조선 총독에 해당하는 인물이었다. 고종이 그의 말을 안들을 때마다 대원군을 불러 들여 재 집권 시키겠다고 협박 했다. 그의 방자한 행동과 권력 남용에 못견딘 고종은 러시아을 끌어 들여 청의 굴레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고종은 1884년12월에 권동수와 김용원을 블라디보스토크에 보내어 러시아 관리들과 접촉하게 했다. 다음해 1월에는 청이 조선 외교 경제 담당으로 파견한 묄렌드로프로 하여금 주일러시아 공사관 서기관 스페에르와 조선보호 문제에 대해서 협의 했다. 1885년 2월16일 묄렌드로프와 일본주제 러시아 공사 다비도프는 조선이 러시아에게 영흥만 조차권을 주고 러시아는 군사교관을 파견하여 조선군대를 훈련시키고 외침으로 부터 조선을 보호 한다는 내용의 밀약을 했다. 독일 사람인 묄렌드로프는 고국 독일과 조선에 유리하고 청에 불리한 외교 활동을 했다. 1885년10월 러시아 외교관 베베르가 조선에 들어 왔다. 

 

일찍이 일본주제 청나라 공사 서기관 황준헌이 김홍집에 준 조선 외교 지침서 조선책략이 러시아의 조선진출을 막으려는 의도 였든 것 처럼 청은 러시아가 조선에 진출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기본 외교 방침이었다. 청은

러시아와 국경분쟁으로 서로 신경을 곤두 세우고 있었다. 러시아를 끌어 들이려는 조선의 움직임은 청을 크게 자극하는 행위 였다. 

 

거문도 사건(Port Hamilton Incident)

한편 영국은 러시아와 세계 주도권을 놓고 경쟁하고 있었다. 러시아는 부동항을 찾아 남진 하려 했고 남쪽에 인도등 많은 식민지를 가지고 있는 영국은 이를 저지 하려고 했다. 조선과 러시아의 밀약은 영국에게 달갑지 않은 소식이었다. 영국은 러시아의 조선 개입을 방지하기 위해서 거문도를 1885년4월15일 부터 1887년2월27일 까지 약 2년동안 점령 했다. 

 

1861년, 러시아는 원산을 Port of Lazaref 라 하고 조차 하려고 했다. 대원군이 프랑스 신부를 이용해서 러시아의 조선 진출을 저지 하려고 하던 시절이다. 러시아는 대마도 항구 사용을 시도 했으나 영국의 개입으로 무산되었다. 1845년 영국은 에드워드 벌처 제독으로 하여금 거문도 인근을 조사 했다. 그리고 거문도를 해군성 장관 조지 해밀턴의 이름을 따서 Port of  Hamilton이라고 명명 했다.  거문도는 여수와 제주도 사이에 있는 섬이다. 여수에서 많은 섬이 있는 잔잔한 물결을 빠져 나오자 마자 파도 높은 망망 대해로 나가는 문턱에 자리 잡은 3개의 섬이다. 영국은 거문도를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여 점령 후에 거문도와 홍콩을 연결하는 캐이블을 깔 았다. 

 

1884년 12 월, 영국 해군 레지날드 캐리-브랜튼 대위는 거문도를 다시 조사하고 주민동향을 파악 했다. 수백명이 살고 있었고 그들은 정치에는 별로 관심이 없고 그저 고기 잡고 쌀 농사 지어 먹고 살면 만족하는 사람들이라고 보고 했다. 실제인구는 약 2000명 가량이었다. 1885년 1월28일 러시아는 조선남부 해안의 섬을 점령할 계획을 세웠다. 아미 제주도 였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제주도를 Qualpart 라고 했다. 이때가 조선과 러시아가 밀약을 했던 시기이다. 

 

1885년3월30일 영국이 공들여 훈련 시켰던 아프카니스탄 군대가 러시아 군에게 괴멸 당했다. 이에 놀란 영국은 전쟁을 각오하고 1885년4월15일 거문도를 점령하고 조선에 눈독을 들이고 있는 러시아에게 으름장을 놓았다. 

 

영국은 4월20일 청나라 정부에 거문도 점령을 알렸다. 청나라에게는 반가운 소식이었다. 일본은 조선정부에 알렸냐고 영국을 추궁 했다. 일본은 러시아가 조선에 영향력을 미치는 것과 영국이 조선 영토를 점령하는 것모두 별로 탐탁치 않게 생각했다. 한성에 조선주제 영국 공사가 있었는 데도 불구 하고, 영국은 한달 후인 5월20일 북경주제 영국 대사관을 통해서 조선정부에 통고 했다. 조선 정부는 자기나라 영토가 외국군대에게 점령 당한 것을 한달 후에야 알게 되었다. 

 

청의 이홍장은 일본의 이토 히로부미를 텐진으로 오라고 해서 갑신정변 됫 처리를 위한 회담을 했다. 대원군은 같은 도시 텐진에 구금되어 있었다. 1885년 4월18일, 양국은 텐진조약을 맺었다. 청나라 군대와 일본군대는 조선에서 모두 철수 하고 만약 파병이 필요 하면 미리 상대국에 알리기로 약속 했다. 양국이 영국의 거문도 점령을 아직 몰랐을 것으로 추측 한다. 왜냐면 영국이 4월15일에 점령했지만 청나라 정부에 알린 것은 4월20일이 었기 때문이다. 

 

위안스카이 대원군 귀국 주선

1882년 7월12일, 임오군란을 진압하려 조선에 온 청나라 장수 오장경에게 납치된 대원군은 경기도 남양만에서 배를 타고 텐진으로 압송 되었다. 그는 텐진 변두리에 위치한 관청 건물인 보정부에 연금 되었다. 

대원군은 이홍장과 국제정세에 관해서 논 하고, 난을 처서 팔면서 무료한 세월을 보냈다. 그러면서도 몰래 인편으로 구해 달라는 서한을 보냈다. 황달을 앓기도 했으며 청나라 병사들의 무례 함도 달래야 했다. 연금 동안에 보낸 몇통의 편지가 1973년에 발견 되었다. "다시 뵙지도 못하고 이승에서 제 목숨이 오래 남지 않으니 종이와 붓을 마주 대하기 한심하옵니다. 내내 태평히 지내시기를 바라옵니다" 보정부 안치죄이상서. 와 같은 편지를 본 장남 이재면은 가끔 보정부에 가서 아버지 대원군을 돌 보았다. (위키 백과)

 

위안 스카이는 고종과 민비의 친러 반청 정책에 제빨리 대응 하기 시작 했다. 대원군을 불러 들여 고종을 밀어내고 이재면이나 그의 아들 이준용을 왕으로 하고 대원군이 섭정을 하게끔 하려는 속셈이었다. 청나라에 영선사로 파견되었고 임오군란 때 청나라 군대의 개입과 대원군 납치에 청과 협력 했던 김윤식이 위안스카이에게 대원군 귀국을 건의 했다는 설도 있다. 아무튼 김윤식은 위안스카이와 각별한 관계를 가지고 있었다. 그가 조선 조정의 사정을 위안스카이에게 속속들이 알려 주지 않았나 의심해 본다. 

 

1885년10월5일, 갑신정변을 진압하고 북경으로 잠시돌아 갔던 위안스카이는 대원군을 호송하고 제물포 항에 도착 했다. 대원군을 환영하러 나온 백성들은 무려 7000-8000명이었다. 그가 운현궁에 돌아오자 그 주위에는 10여일 동안이나 인파가 모여 들어 법석을 떨 었다. 고종은 남대문 까지 나와 대원군을 맞이 했으나 한마디 말도 하지 않았다. 

 

다음날 민씨 척족은 대원군과 같이 난병으로 임오군란에 참여 했던 죄수 김춘영 등을 능지처참 했다. 그리고 정부관리와 일반인의 운현궁 출입을 금지 했다.  이듬해(1886년) 3-4월에는 갑신정변 잔당을 숙청 했다. 김윤식은 1886년4월 대역죄를 지은 개화파 박영효의 부친을 장사지내준 죄로 탄핵 당 했다. 그러나 막강한 위안스카이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복직 되었다(강준만의 조선근대사 산책에서).  고종과 민비는 대원군이 책동할 수 있는 소지를 미리 없애려고 했다. 

 

러시아 외교관 베베르(Werber)와 손탁(Sontag)의 입국

청이 대원군을 귀국 시키자 마자 러시아는 그 대항마로 조선에 베베르와 손탁을 파견 했다. 이들은 민비의 마음을 완전히 사로 잡았다. 고종과 민비는 원래 청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미국에 도움을 요청했으나 미국은 조선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러시아 밖에는 다른 도리가 없었다.  러시아는 청과 대립하는 위치였고 부동항을 찾아 남하하려는 국책을 가지고 있었다.  한반도에 부동항을 마련하여 태평양에 진출 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조선의 정치판은 청과 대원군이 한편이 되고 러시아와 민비가 한편이 되는 구조를 만들어 가고 있었다. 청나라를 대표하는 인물은 위안스카이 였고 러시아가 내세운 인물은 베베르 였다. 

 

1885년11월17일 대원군을 대동하고 조선에 돌아온 위안스카이는 조선의 감국이 되었다. 이토 히로부미가 초대 조선총독이 된 것과 별로 다를 바가 없는 사건 이었다. 이토가 조선의 왕 위에 있었 듯이 위안스카이도 고종보다 더 큰 권력을 행사 했다. 이토보다 노골적이지는 않았지만 사실상 조선은 을사보호조약 이후의 일본과의 관계와 별로 다를 바가 없었다. 

 

조러밀약사건이 터지자 위안 스카이는 고종에게 다음과 같은 서한을 보냈다. "러시아가 조선의 나약함을 이용하여 속이고 있으나 조선을 보호할 수 있는 나라란 오직 상국 뿐이다. 조선은 못 쓰게 된 배와 같고 병이 골수에 들었으니 위안스카이는 배만드는 상인의 임무로 조선을 위해 탄식하며 훌륭한 의사로서 반드시 좋은 약품을 보내 줄 것이다" (강준만의 조선근대사 산책에서)

 

위안스카이는 고종을 대할 때 왕에게 지켜야 할 예의를 전혀 지키지를 않았다. 이렇게 무례하고 방자한 위안스카이에 비해서 베베르는 고종을 예의 바르고 친절하게 대해 주었다. 그리고 러시아를 위한 이권을 전혀 요구 하지 않았다. 한편 손탁은 민비를 깍듯이 대해 주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친구가 되었다. 손탁은 민비를 본국에서 가저온 화장품을 사용하여 단장 해 주었다. 그리고 민비에게 화장품을 계속 대 주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손탁은 궁내에서 외국인 접대 엄무를 맏게 되었다. 그는 5개국어를 구사 했다. 

 

고종과 민비는 베베르와 손탁을 중간에 넣어 미국, 유롭 각국의 공사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여 위안스카이를 앞세운 청의 간섭에서 벗어나 보려고 애를 섰다. 갑신정변 때 크게 부상당한 민영익을 치료하여 고종과 민비의 주치의가 되고 나중에는 주한 미국공사로 임명된 알랜도 위안스카이를 견제하기 위한 노력을 했다. 

 

위안스카이, 대원군과 고종 폐위 음모

1886년8월9일 총리내무부사 심순택은 러시아에게 보호를 요청하는 국서를 작성하여 민영익에게 주어서 베베르에게 전달 하도록 했다. 민영익은 이것을 위안 스카이에게 보고 했다(강준만의 조선 근대사 산책에서). 고종의 의도를 알게된 그는 즉각 대원군과 고종 폐위 문제를 논의 했다. 고종의 형 이재면의 아들 이준용을 옹립하고 대원군이 섭정 하기로 합의 하고 이를 이홍장에게 보고 했다. 그러나 이홍장은 이를 말렸다. 위안스카이는 결국 이 음모를 실천에 옮기지 않았다. 

 

이준용은 아버지 이재면과 달리 아주 총명하고 과단성이 있는 야망에 찬 인물이었다고 한다. 어렸을 때부터 대원군이 총애 했다. 어린나이에 총명한 그가 만약 왕위에 오르면 대원군이 섭정을 할 수 있는 대의명분이 충분이 있었다. 반 고종 민비파가 움직일 때마다 왕위에 오를 후보자로 회자 되었기 때문에 자신도 왕위에 오를 야심을 가지고 있었다.

 

대원군이 위안스카이와 내통하여 다시 권력을 잡아 보려는 노력을 하는 동안 동학란을 주도 했던 전봉준이 대원군을 찾아 왔다. 그는 동학군의 힘을 빌려서 재집권하려는 꿈을 꾸기 시작 했다. 물론 이준용을 옹립하고 자신이 섭정하는 시나리오 였다.

 

1887년2월27일,  청과 영국은 러시아로 부터 조선 영토를 점령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은 후, 영국 해군은 거문도에서 철수 했다. 거문도에는 영국 해군의 묘지, 그들이 만들었던 테니스 코트의 흔적, 사진등이 남아 있다. 2년전에 그곳을 방문하고 백령도 관광도 했다. 조선말의 중요한 역사적인 유적인데도 불구하고 관리가 소홀하고 너무나 잘 알려지지 않아서 섭섭한 마음 금할 수가 없었다. 백령도는 한국에서 보기드문 이국적인 절경이었다. 거문도의 아름다운 경치와 역사적인 유적 그리고 백령도를 묶은 관장지를 개발하여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게 했으면 좋겠다. 

 

온철 James Ohn은퇴  의사

온기철의 브런치입니다. 역사를 주제로 한 수필을 쓰고 있습니다. 본직은 의사이고 취미는 골프와 역사 공부입니다. 지루한 역사를 재미있게 이해시키기위한 글을 쓰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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