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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화보] 광복 65년, 대한민국이 걸어온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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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45개월 복원 완성 - 84년 만에 제자리로 돌아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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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년 美국무부 지도 '독도는 한국영토' 명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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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상렬의 추가 행적 (유교수의 글을 옮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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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시인의 작품세계에 대한 글이 있기에 옮겨봅니다.
1934년 이화여전 졸업. 재학중(1932) 신동아에 "밤의 찬미"를 발표하며 등단.
모윤숙과 함께 당시로서는 몇 안되는 여류 시인의 한 사람이었고 점차 명시인으로 부각받게 된다.
그의 시에는 세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 자기 중심적인 정서 특히 고독에 대한 심도있는 표현.
둘째, 시인 자신의 농촌 생활로부터 그려낸 향토적인 정경의 객관적 묘사.
셋째, 역사적 국가적 인식의 반영이 바로 그것이다.
"사슴", "자화상"같은 그의 대다수 걸작에서 자유분방한 정서의 면모를 첫번 째 특징의 본보기로 종종 접하게 된다.
그러나 그의 창조성은 고독이나 슬픔의 단순한 표현에 머무르지 않고 그러한 감정 표현을 통하여
더욱 더 심오한 자신을 극복하려고 노력하였다. 우수적인 시인은 실존론적 뿐만 아니라 본체론적 의미도 묘사하였다.
농촌생활에서 나온 그의 시는 주목할만 하다.
전통 문화와 민속에서 알권낸 이러한 작품은 대개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어린 시절의 향수를 결합하고 있다.
오랫동안 중학교 교과서에 게재된 "장날"은 가장 잘 알려진 작품 중 하나이다.
시인은 시를 통하여 어려웠던 농촌 시절을 노래하고 있다.
그의 나이 또래 한국인들은 대부분 전원 생활을 겪었기에 그가 그려내는 세계는 친숙할 뿐만 아니라 공감하기에도 쉽다.
지금도 어린 시절 고향에 대한 향수는 널리 호감을 사고 있다.
세번째 특징은 위에서 언급한 것과는 판이하지만 일제 말 그의 활동 상황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면이다.
그는 친일 신문인 매일신보 기자로 일하였다.
또 공식적인 일본 대표단 자격으로 일본군 점령하에 있던 중국 동북지방을 여행하였다.
더우기 일본의 점령을 찬양하고 적극적인 지지를 표방하는 수많은 친일 시를 출간하였다.
해방 이후 매국노로 낙인찍혔고,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서울에 머무르던 그는 조선문학예술동맹에 참여하였다.
후에 체포되어 이적죄로 20년 형을 선고 받았으나 여러 시인들의 노력으로 6개월 후 풀려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경험은 그의 생애와 작품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그의 후기 작품에서 발견되는 역사적, 국가적 인식은 이러한 경험과 밀접히 관련된 것이고 다소 인위적인 경향이 보인다.
이러한 시는 그가 생존해 있을 때 발표되었고 이전의 작품과는 상당한 거리를 보여주고 있다.
그는 일본에 협조하게 된 경위와 감옥 생활을 시로 썼다.
또 공산주의자와 함께 이적죄로 체포되었고 옥중 생활을 하였으므로 반공, 애국시를 쓰기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