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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em [시해설] 변영로 : 봄비

2010.03.16 18:27

김원호#63 Views:9106


       

             봄비

                          변영로


    나직하고, 그윽하게 부르는 소리 있어,
    나아가 보니, 아, 나아가 보니 ㅡ
    졸음 잔뜩 실은 듯한 젖빛 구름만이
    무척이나 가쁜 듯이, 한없이 게으르게
    푸른 하늘 위를 거닌다.
    아, 잃은 것 없이 서운한 나의 마음!


    나직하고, 그윽하게 부르는 소리 있어,
    나아가 보니, 아, 나아가 보니 ㅡ
    아려-ㅁ풋이 나는, 지난날의 회상(回想)같이
    떨리는, 뵈지 않는 꽃의 입김만이
    그의 향기로운 자랑 안에 자지러지노나!
    아, 찔림 없이 아픈 나의 가슴!


    나직하고, 그윽하게 부르는 소리 있어,
    나아가 보니, 아, 나아가 보니 ㅡ
    이제는 젖빛 구름도 꽃의 입김도 자취 없고
    다만 비둘기 발목만 붉히는 은(銀)실 같은 봄비만이
    노래도 없이 근심같이 내리노니!
    아, 안 올 사람 기다리는 나의 마음!

 

집필 의도 및 감상

김소월, 한용운과 함께 변영로(卞榮魯)를 ‘님의 시인’이라 한다. 우리 문학사에서 ‘님’은 우리 민족이 고난과 시련의 상황에 놓일 때 찾고자 했던 동경과 이상의 상징이었다. 일제 치하에서 우리 시인들이 노래한 ‘님’은 ‘부재(不在)의 님’이고 대체로 상실된 주권을 상징한다. 이 시의 시적 화자도 ‘부재(不在)의 님’을 간절히 기다리고 찾고 있다. 임을 그리워하는 심정이 환청(幻聽)을 듣게 만들어, 그 소리를 밖에 임이 찾아와 자기를 은근히 부르는 소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시적 화자는 반가운 마음으로 밖으로 뛰쳐 나와 보니, 그것은 기다리는 임이 아니라 임의 부재(不在)만을 확인한다. 그리하여 시적화자는 ‘서운함’, ‘아픔’, ‘기다림’의 심정만 남게 된다. 이 시의 핵심은 마지막 구절인 ‘아, 안 올 사람 기다리는 나의 마음’에 나타나 있다. 1920년대 초에 발표된 이 시에도 당시의 시의 특징이 반영되어 있다. 영탄법의 남발, 정형적인 구성, 직유적인 표현 등이 그것이다. 새 생명을 돋게 하는 봄비를 희망이 아닌 ‘근심같이’ 내린다고 표현함으로써 3·1 독립운동이 실패한 직후의 우리 민족이 느낀 좌절감과 암담한 심정이 이 시에 반영되어 있음을 찾아볼 수 있다.

기본 이해 항목

주제 : 임을 애타게 기다리는 마음.
제재 : 봄비.
성격 : 상징적, 낭만적, 감각적.
운율 : 동일한 구절의 반복과 동일한 통사적 구조가 운율을 조성한다.
어조 : 그리움과 기다림의 여성적 어조.
심상의 종류 : 시각적, 청각적 심상.
표현 기법 : 영탄법, 반복법, 의인법.
이 시의 구조 : 각 연이 동일하게 반복되는 정형적 구조.

단락 구성 :

    제1연 ㅡ 누군가 부르는 환청의 소리를 임으로 착각한 서운한 심정.
    제2연 ㅡ 임을 추억하며 아픈 심정.
    제3연 ㅡ 봄비를 맞으며 안 올 임을 기다리는 애타는 심정.

출전 : <신생활> 2호 (1922. 3.)


시어 및 구절 풀이

나직하고, 그윽하게 부르는 소리 있어 ㅡ 시적 화자는 임을 그리워하는 나머지 누군가 부르는 소리를 환청(幻聽)으로 듣고, 기다리는 임이 찾아와 자기를 은근하게 부르는 소리라고 생각한다,

나아가 보니, 아, 나아가 보니 ㅡ 반가운 심정으로 밖으로 나가보니 아무도 없다는 실망감을 내포하고 있다. ‘나아가 보니’의 반복적 표현으로 시적 화자의 동작의 진행을 나타낸다.

가쁜 듯이 ㅡ 매우 숨차고 힘겨운 듯이.

졸음 잔뜩 실은 ~ 하늘 위를 거닌다 ㅡ 느리게 천천히 움직이는 젖빛 구름의 모습을 의인화하여 시각적으로 그리고 있다. 황급한 시적 자아와는 대조적인 구름의 모습과 움직임은 실망감과 우울한 분위기에 젖게 만든다.

아, 잃은 것 없이 서운한 나의 마음 ㅡ 임을 찾고 기다리는 것은 시적 화자의 심정이지 무관심한 자연이 그렇게 만든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자기가 착각에 빠져 임을 만나지 못한 심정을 무엇을 잃은 것 같은 서운한 감정으로 느끼고 있다.

아려-ㅁ풋이 나는 ~ 자랑 안에 자지러지노나 ㅡ 이 구절은 연결 관계가 뒤엉켜 문맥의 이해를 어렵게 만들고 있다. 시적 화자는 임에 대한 회상에 아렴풋이 잠긴다. 꽃의 향기가 제 향기에 취해 자지러지듯이 시적 화자는 임에 대한 추억에 몰입해 빠져드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아, 찔림 없이 아픈 나의 가슴 ㅡ 시적 화자가 임에 대한 회상에 빠짐으로 현실의 임의 부재(不在)가 더욱 절실하게 느껴진다. 그러므로 임을 상실한 슬픔이 증폭되어 물리적인 피해를 받지 않은 채 육체적인 통증으로까지 느껴지게 되는 것이다.

이제는 젖빛 구름도 꽃의 입김도 자취 없고 ㅡ 하늘에 떠돌던 젖빛 구름도 사라지고, 임에 대한 회상의 심정에서도 시적 화자가 깨어나 현실로 돌아왔음을 나타낸다.

다만 비둘기 발목만 ~ 근심같이 내리노나 ㅡ 봄비에 대한 묘사가 섬세하고 감각적으로 표현되었다. 만물을 일깨우는 봄비를 근심같이 내린다고 한 것은 3·1 독립운동이 실패로 돌아간 직후의 당시의 희망을 상실한 좌절과 암담한 심정을 반영한 표현이라고 하겠다. ‘노래도 없이’는 소리도 없이, 혹은 ‘기쁨과 희망도 없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아, 안 올 사람 기다리는 나의 마음 ㅡ ‘안 올 사람’은 주권의 회복이나 독립은 무망(無望)하다는 이성적 판단이다. 이 시를 단순한 감상적 낭만시로만 볼 수 없는 근거가 여기에 있다. 그러면서도 심정적으로는 임을 그리워하고 기다리고 있다는 것은 감성적으로 주권의 회복을 몹시 기다린다는 상징적 표현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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