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o

English
                 

General [re] 이해인 수녀의 추모글

2010.03.11 01:40

황규정*65 Views:9820



이해인 수녀의 추모글




"법정 스님께언제 한번 스님을 꼭 뵈어야겠다고 벼르는 사이 저도 많이 아프게 되었고 스님도 많이 편찮으시다더니 기어이 이렇게 먼저 먼 길을 떠나셨네요.

2월 중순, 스님의 조카스님으로부터 스님께서 많이 야위셨다는 말씀을 듣고 제 슬픔은 한층 더 깊고 무거워졌더랬습니다. 평소에 스님을 직접 뵙진 못해도 스님의 청정한 글들을 통해 우리는 얼마나 큰 기쁨을 누렸는지요!

우리나라 온 국민이 다 스님의 글로 위로 받고 평화를 누리며 행복해했습니다. 웬만한 집에는 다 스님의 책이 꽂혀 있고 개인적 친분이 있는 분들은 스님의 글씨를 표구하여 걸어놓곤 했습니다.이제 다시는 스님의 그 모습을 뵐 수 없음을, 새로운 글을 만날 수 없음을 슬퍼합니다.

'야단맞고 싶으면 언제라도 나에게 오라'고 하시던 스님. 스님의 표현대 로 '현품대조'한 지 꽤나 오래되었다고 하시던 스님. 때로는 다정한 삼촌처럼, 때로는 엄격한 오라버님처럼 늘 제 곁에 가까이 계셨던 스님. 감정을 절제해야 하는 수행자라지만 이별의 인간적인 슬픔은 감당이 잘 안 되네요.

어떤 말로도 마음의 빛깔을 표현하기 힘드네요. 사실 그동안 여러 가지로 조심스러워 편지도 안 하고 뵐 수 있는 기회도 일부러 피하면서 살았던 저입니다. 아주 오래전 고 정채봉 님과의 TV 대담에서 스님은 '어느 산길에서 만난 한 수녀님'이 잠시 마음을 흔들던 젊은 시절이 있었다는 고백을 하신 일이 있었지요. 전 그 시절 스님을 알지도 못했는데 그 사람이 바로 수녀님 아니냐며 항의 아닌 항의를 하는 불자들도 있었고 암튼 저로서는 억울한 오해를 더러 받았답니다.

1977년 여름 스님께서 제게 보내주신 구름모음 그림책도 다시 들여다봅니다. 오래전 스님과 함께 광안리 바닷가에서 조가비를 줍던 기억도, 단감 20개를 사 들고 저의 언니 수녀님이 계신 가르멜수녀원을 방문했던 기억도 새롭습니다.
 
어린왕자의 촌수로 따지면 우리는 친구입니다. '민들레의 영토'를 읽으신 스님의 편지를 받은 그 이후 우리는 나이 차를 뛰어넘어 그저 물처럼 구름처럼 바람처럼 담백하고도 아름답고 정겨운 도반이었습니다. 주로 자연과 음악과 좋은 책에 대한 의견을 많이 나누는 벗이었습니다.

'…구름 수녀님 올해는 스님들이 많이 떠나는데 언젠가 내 차례도 올 것입니다. 죽음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생명현상이기 때문에 겸허히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날그날 헛되이 살지 않으면 좋은 삶이 될 것입니다…한밤중에 일어나(기침이 아니면 누가 이런 시각에 나를 깨워주겠어요) 벽에 기대어 얼음 풀린 개울물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으면 이 자리가 곧 정토요 별천지임을 그때마다 고맙게 누립니다…

' 2003년에 제게 주신 글을 다시 읽어봅니다. 어쩌다 산으로 새 우표를 보내 드리면 마음이 푸른 하늘처럼 부풀어 오른다며 즐거워하셨지요. 바다가 그립다고 하셨지요. 수녀의 조촐한 정성을 늘 받기만 하는 것 같아 미안하다고도 하셨습니다.

누군가 중간 역할을 잘못한 일로 제게 편지로 크게 역정을 내시어 저도 항의편지를 보냈더니 미안하다 하시며 그런 일을 통해 우리의 우정이 더 튼튼해지길 바란다고, 가까이 있으면 가볍게 안아주며 상처 받은 맘을 토닥이고 싶다고, 언제 같이 달맞이꽃 피는 모습을 보게 불일암에서 꼭 만나자고 하셨습니다.

이젠 어디로 갈까요, 스님. 스님을 못 잊고 그리워하는 이들의 가슴속에 자비의 하얀 연꽃으로 피어나십시오. 부처님의 미소를 닮은 둥근달로 떠오르십시오.



No. Subject Date Author Last Update Views
Notice How to write your comments onto a webpage [2] 2016.07.06 운영자 2016.11.20 18193
Notice How to Upload Pictures in webpages 2016.07.06 운영자 2018.10.19 32347
Notice How to use Rich Text Editor [3] 2016.06.28 운영자 2018.10.19 5924
Notice How to Write a Webpage 2016.06.28 운영자 2020.12.23 43840
743 국가정상화추진위원회 親北인사 100명 발표 [4] 2010.03.12 Rover 2010.03.12 9108
742 [re] 법정스님 송광사로 운구,인근 야산서 다비식 [5] 2010.03.12 황규정*65 2010.03.12 7659
741 해방직후 대한민국 - 보도사진 모음 [1] 2010.03.11 계기식*72 2010.03.11 9020
740 "무소유" - 법정 스님 [1] 2010.03.11 운영자 2010.03.11 7534
739 "어머니" - 법정 스님 [2] 2010.03.11 운영자 2010.03.11 7262
» [re] 이해인 수녀의 추모글 [1] 2010.03.11 황규정*65 2010.03.11 9820
737 "무소유"의 법정 스님 입적 [2] 2010.03.11 황규정*65 2010.03.11 7924
736 ♥ 심방세동 2010.03.10 이종구*57 2010.03.10 7440
735 [시해설] 정지용 : 春雪 [2] 2010.03.10 김원호#63 2010.03.10 10127
734 [re] 김연아에게 / 시인 이해인 [4] 2010.03.10 황규정*65 2010.03.10 8866
733 ♥ 새 약물방출스텐트는 금속스텐트에 비해 심근경색증/사망률을 증가 가능 2010.03.08 이종구*57 2010.03.08 6725
732 함춘 시계탑 e-동문 마당 제 5호, 2009 하반기 소식 [1] 2010.03.08 운영자 2010.03.08 9431
731 Mozart: Clarinet Concerto in A major, K.622 [5] 2010.03.08 운영자 2010.03.08 7682
730 Muss I Denn [2] 2010.03.07 계기식*72 2010.03.07 8280
729 [re] [동영상] Queen Yuna [1] 2010.03.07 황규정*65 2010.03.07 9906
728 남가주 19회 동문 모임 [6] 2010.03.06 운영자 2010.03.06 7637
727 [시해설] 김영랑 :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같이 [5] 2010.03.05 김원호#63 2010.03.05 8253
726 [re] 김연아 기념주화 [1] 2010.03.05 황규정*65 2010.03.05 9415
725 ♥ 조기수축, Premature Contraction 2010.03.03 이종구*57 2010.03.03 7828
724 한국축구, 코트디부아르에 2:0 완승 [3] 2010.03.03 황규정*65 2010.03.03 78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