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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23 02:42
2016.12.24 02:43
우리가 서울대학병원에서 수련을 받을때 (1968-1973)는 촌지(寸志)가 일종의 관행이었다. 촌지란 환자나
보호자가 병원에 내는 입원비 외에 의사들에게 사례를 하는것인데, 돈일수도 있고 선물일수도 있었다.
쥐꼬리 만한 월급을 받던 인턴 레지던트 들에게는 짭짤한 부수입이기도 했다. 담배, 와이샤쓰, 넥타이,
구두등은 내돈주고 산 기억이 없는데도 남아 돌아갔다. 흔히 있던 과 단위 외식도 촌지에 의존하였다.
시골사람들은 추수한 농산물이나 과일을 가져 오기도 했다. 의례히 촌지를 받곤하여 촌지를 않가지고
오는 환자는 좀 괘씸하게 느껴지기까지 하였다.
미국에 와서 인턴부터 다시 했는데 이곳에서는 촌지란 찾아볼수도 없었다. 너무나 인심이 각박하고
메말른것 같고 의사에 대한 고마운 마음이 없어 보였다. 의사도 하나의 직업인으로 밖에 대해주지
않는것 같았다.
요즘 한국에서 온 동창들 이야기를 들으면 한국에서도 촌지가 없어진지 오래 됐다고 한다. 사회가
합리화 되어가는것인지 인심이 각박해져 가는것인지 알수 없으나 그당시 사회 전반에 걸쳐 횡행하던
좋지 않은 관행이었음은 틀림이없다.
2016.12.24 16:59
옛날 보다는 많이 줄었지만, 최근 까지도 촌지 관행은 있었지요....특히 외과 계통에서.
그러나 최근 시행되고 있는(몇달 전) 김영란 법(한국 최초의 여자 대법관 발안 한 부정 청탁 금지 법안)으로 인하여 이제는
거의 없어진 상태입니다.(당사자 처벌--신고자 금전적 포상)
얼마전 교수회의 에서 한교수가 억지로 주려고할 경우에 대해 질문 하였는데
공식적 인 병원 또는 해당 과의 연구비로 기부하도록 하면 OK 란 답변이 있었읍니다.
회식도 일인당 2,9000원 이하---
한국 사회는 이렇게 조금씩 한단계 씩 발전 하는 듯 합니다.
친지로 부터의 환자 부탁을 안들어 줄 수 있는 구실도 생겼고, 한국 의학계도
한걸음 모든 국민에게 "Equitable, Medical care"를 제공하는 목적에 접근하고 있는 좋은 현상입니다.
2016.12.25 02:57
좋은 치료이야기에 곁들여서 귀거래사를 읊어주던 젊은 아빠의 감동적인 이야기였습니다.
아마 환자 아기가 아빠의 읊음을 들으면 자장가같이 마음이 편안해 져서 Relaxation에 들어가
Bronchospasm & Cyanosis가 호전이 될 수도 있다고 믿습니다.
참, 아직 못 보셨으면 MB와 본인의 귀거래사가 SNU-CM-AA 마지막 페이지에 있으니 한번 보세요.
2016.12.25 22:19
선배님 의 한시 소개를 늘 눈여겨 읽어보고 있읍니다,
가끔 중국 출장을 가거나, 중국 방문객 들이 오면, 병원소개 슬라이드의 끝에
병원 근처 풍광에 맞는. 한시 한두 줄을 넣은 슬라이드 를 보여주면 중국 사람들이이좋아하기도 하고,놀래기도
합니다.
감동되는 글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과거를 잊어라"라고 하지만, 좋건 나쁘건, 슬프건 기쁘건,
본인은 과거에 돌아가는 시간을 무척 즐깁니다.
Obviously, so you must be.
Those are true richness of the color and wealth of a life that no money can buy.
본인의 Birth place도 강원도 산골이였기에 강원도 아빠와 한 마음입니다.
Probably, he was about the same age as mine.
그 옛날에 도연명의 귀거래사는 꿈도 못꿨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