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o

English
                 

General 순수한 모순

2005.06.10 16:19

석주 Views:7618




6월을 장미의 계절이라고 했던가. 그래 그런지, 얼마 전 가까히 있는 보육원에 들렀더니 꽃가지마다  6월로 향해 발돋음 하고 있었다. 아침 저녁으로 물을 주노라면 모차르트의 청렬 같은 것이 옷깃에 스며들었다. 산그늘이  내릴때처럼 아늑한 즐거움이었다.

오늘 아침 개화!
마침내 우주의 질서가 열린 것이다. 생명의 신비 앞에 서니 가슴이 뛰었다. 혼자서 보기가 아까웠다. 언젠가 접어 두었던 기억이 펼쳐졌다.

출판일로 서울에 올라와 안국동 선학원에 잠시 머무르고 있을 때였다. 어느 날 아침 전화가 걸려 왔다. 삼청동에 있는 한 스님한테서 속히 와 달라는 것이다. 무슨일이냐고 하니 와서 보면 알 테니 어서 오라는 것이었다. 그 길로 허둥 지둥 직행, 거기 화단 가득히 양귀비가 피어 있었다.

그것은 경이였다. 그것은 하나의 발견이었다. 꽃이 그토록 아름다운 것인 줄은 그때까지 정말 알지 못했다. 가까히 서기 조차 조심스러운, 애처럽도록 연약한 꽃잎이며 안개가 서린 듯 몽롱한 잎새, 그리고 환상적인 그 줄기가 나를 온통 사로 잡았다. 아름다움이란 떨림이요 기쁨이라는 사실을 실감했다.

이떄부터 누가 무슨 꽃이 가장 아름답더냐고 간혹 소녀적인 물음을 해오면 언하에 양귀비꽃이라고 대답을 한다. 이 대답처럼 자신만만한 확답은 없을 것이다. 그것은 절절한 체험이었기 때문이다. 하필 마약의 꽃이냐고 핀잔을 받으면, 아름다움에는 마력이 따르는 법이라고 응수를 한다.

이런 이야기를 우리 장미꽃이 들으면 좀 섭섭해 할지 모르지만, 그것은 그해 여름 아침 비로서 찾아낸 아름다움이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내게는 오늘 아침에 문을 연 장미꽃이 그 많은 꽃 가운데 하나일 수 없다. 꽃가게 같은 데 피어 있을 그런 장미꽃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이 꽃에는 내 손길과 마음이 배어 있기 때문이다. 생 텍쥐페리의 표현을 빌린다면, 내가 내 장미꽃을 위해 보낸 시간 때문에 내 장미꽃이 그토록 소중하게 된 것이다. 그건 내가 물을 주어 기른 꽃이니까, 내가 벌레를 잡아 준 것이 그 장미꽃이니까.

 흙속에 묻힌 한 줄기 나무에서 빛갈과 향기를 지닌 꽃이 피어난다는 것은 일대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사건이야말로, 이 '순수한 모순' 이야말로 나의 왕국에서는 호외감이 되고도 남을 만한 일이다.  

                                <  법정스님의 "무소유" 에서 >







No. Subject Date Author Last Update Views
Notice How to write your comments onto a webpage [2] 2016.07.06 운영자 2016.11.20 18194
Notice How to Upload Pictures in webpages 2016.07.06 운영자 2018.10.19 32349
Notice How to use Rich Text Editor [3] 2016.06.28 운영자 2018.10.19 5928
Notice How to Write a Webpage 2016.06.28 운영자 2020.12.23 43842
644 Favipirvir(Avigan) for COVID-19 [3] 2020.03.18 이한중*65 2020.03.18 55
643 [LPGA] 서른 셋 박희영, 빅오픈서 6년7개월 만에 우승 [4] 2020.02.08 황규정*65 2020.02.09 55
642 John Bolton vs Trump [6] 2020.01.29 온기철*71 2020.02.01 55
641 한양-경성-서울 [3] 2019.09.21 온기철*71 2019.09.28 55
640 Eightysomethings [2] 2019.09.15 이한중*65 2019.09.15 55
639 Honkong vs Beijing [1] 2019.10.01 온기철*71 2019.10.01 55
638 일본 보수의 정체 [3] 2018.09.26 온기철*71 2018.09.29 55
637 [AG] 이승우 멀티골·황의조 9호골,한국, 베트남 꺾고 결승행 [4] 2018.08.28 황규정*65 2018.08.30 55
636 [Medical]Two Pertinent Articles on Kidney Stones [2] 2018.07.20 이한중*65 2018.07.20 55
635 Donald Trump’s Nuclear Poker [2] 2018.02.14 온기철*71 2018.02.15 55
634 How did 신라 survive? 김춘추의 외교 전략 [3] 2018.02.07 온기철*71 2018.02.08 55
633 [EPL] 손흥민, 만화같은 환상골…평점도 ‘최고’ [3] 2018.01.04 황규정*65 2018.01.06 55
632 [LPGA] 박성현, LPGA투어 신인 최초로 세계랭킹 1위 등극 [9] 2017.11.06 황규정*65 2017.11.11 55
631 [Medical]What To Do with Statin Related Muscle Complaints [1] 2017.09.15 이한중*65 2017.09.15 55
630 What's new in Russian Gate? Sater's E-mail to Cohen [2] 2017.09.08 온기철*71 2017.09.08 55
629 독도 그려진 '대동여지도' 필사본 일본서 또 발견 [2] 2017.08.01 황규정*65 2017.08.02 55
628 신태용 감독, 올림픽 -U20 월드컵 이어 러시아 월드컵 대표팀 소방수로 낙점 [1] 2017.07.05 황규정*65 2017.07.05 55
627 국내 복귀 장하나 "세계 최고도 중요하지만, 가족이 더 소중해요" [2] 2017.05.23 황규정*65 2017.05.23 55
626 [Medical] Systolic BP and All Cause Mortality by Frailty [1] 2017.05.09 이한중*65 2017.05.13 55
625 The U.S.-ROK Alliance: Abandonment Fears [1] 2017.04.30 온기철*71 2017.04.30 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