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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나의 신발장수 아버지

                                                                                       박한재

아버지는 대충 세 가지 일을 하셨다. 농사일에다 정미소를 경영하였고, 신발 가게를 열었다. 아버지는 언제나 바쁘셨다. 아버지의 주업은 신발 장수가 아니었나 여기고 있다.

지금은 시골 인구가 줄어들었지만 내가 초·중등학교를 다닐 때만 해도 고향인 진주 대곡의 북창 장은 정말 인산인해라 해도 결코 과장이 아닐 만큼 시장 안은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였다. 그 시장에서 아버지는 신발가게 외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약주도 즐기지 않았다. 우동 한 그릇 사 먹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집에서 도시락을 싸가서 당신 점포 안에서 요기를 하셨다. 내가 학교 공부를 끝내고 귀갓길에 신발가게에 들러도 그 흔한 장국밥집에 한번 데려간 적이 없었다. 신장개업한 중국집에서 자장면 한번 얻어먹기 위해 조르기도 하였지만 아버지는 미동도 하지 않으셨다. 아버지의 그 지독한 절약은 자식들의 학자금 걱정 때문이었다. 8남매 가운데 미취학의 여동생을 제외하고 아들 일곱이 줄줄이 학교를 다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신발장수의 아들이니 신발만은 마음대로 신고 다녔을 것으로 생각할지 모르겠다. 신발과 관련해 식은땀을 흘렸던 두 사건을 겪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당시 전국적으로 유명했던 진주의 영남예술제(지금의 개천예술제)를 구경하기 위해 11월 어느 날 진주에 가게 되었다. 외지로의 첫 나들이여선지 아버지가 '베신'(운동화) 한 켤레를 주었다. 난생처음이었다. 그때까지 폐타이어로 재생한 검정 신발을 신고 다녔다. 공 차기를 좋아했던 나는 운동화 한번 신어보는 것이 평소의 간절한 소망이었다. 검정 고무신을 신고 운동장에서 공을 찰 때는 끈으로 단단히 묶었지만 쉽게 풀어져 공보다 고무신이 더 멀리 날아가곤 했다.

운동화를 신고 내 세상 만난 듯 진주 시내를 활보했다. 진주여고에 다니던 친척 누나가 나를 여고 교정으로 데려갔다. 금방 여러 누나들이 나를 둘러쌌다. 어떤 누나 한 사람이 나의 신발을 한참 동안 주시하는 것이었다. 새 신발을 제대로 알아주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그 누나는 갑자기 "이 애 신발 짝짝이 아냐!" 하는 것이었다. 운동화를 처음 신었던 나는 그때까지 두 쪽 모두 왼쪽 신발이라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누나들은 나를 둘러싸고 한바탕 배꼽을 잡고 웃었다. 나는 울고만 싶었다. 바로 그날 저녁 초등학교 3학년이던 남동생이 병을 앓다 죽었다. 나는 고향 마을로 급히 돌아와야 해 그 짝짝이 신발을 더 신을 일은 없었지만, 동생을 잃은 슬픔으로 집안 분위기는 말이 아니었다. 짝짝이 운동화는 그런 기억으로 내게 평생 남아 있다.

중학교 2학년이 끝날 즈음인 12월 어느 날에 몇십년 만의 폭설이 내렸다. 아버지는 평소답지 않게 장화 한 켤레를 내놓으셨다. 값이 비싸 오랫동안 팔리지 않던 것이라고 했다. 뒷굽이 약간 높았지만 내 발에 딱 맞았다. 눈비 올 때 장화를 신고 다니는 학생은 거의 없었다. 오전 수업은 전폐되고 제설작업에 동원되었다. 교실로 들어오는 친구들의 신발은 모두 온통 물 범벅이 되어버렸다. 내 장화에는 물 한 방울 스며들지 않았다. 장화를 신은 것이 그렇게 자랑스러울 수가 없었다.

그런데 어느 여학생이 대뜸 "저 애 장화 여자 거 아냐?"라고 하였다. 그 애는 다른 여자 친구들에게 확인을 요청하며 계속 귓속말로 수군거리더니 곧 우리 반 스물두명 여학생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 난관을 어떻게 벗어날까 골몰하였으나 뾰족한 방법을 찾을 수가 없었다. 눈앞이 점점 캄캄해져 왔다. 장화를 책상 밑 안쪽으로 계속 밀어넣어 감추는 방법 외에는 딴 도리가 없었다. 못 들은 척하며 하교 때까지 뭉개고 지냈다. 쉬는 시간에 화장실에 가지도 못했다. 그날처럼 길었던 오후가 없었던 것 같다.

하교 후 급히 집에 돌아와서 아버지에게 투정을 부렸다. 아버지는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나를 바라보는 아버지의 눈길이 무척이나 외로워 보이셨다. 며칠 후 우리 집 대청마루 밑 신장에 놓인 그 장화를 다시 보니 뒷굽이 지난번보다 훨씬 낮게 잘려져 있었다. 아버지는 나에게 그 장화를 굳이 신으라고 권하지도 않았지만 남자 것으로 변형시킨 그 장화를 나는 끝내 외면하였다. 그 장화는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도 신장 안에 그대로 있었다. 아버지가 간혹 신고 다니는 것 같았다.

지금 우리 집 신발장에는 여자 신발로 가득 차 있다. 내 신발은 구두 한 켤레가 고작이다. 직장에 다니는 큰딸은 평소 바닥에 두고 있는 것만 해도 족히 네다섯 켤레나 된다. 나의 신발 수가 적은 것은 구두 하나 사면 밑창을 한두 번은 갈고 옆에 구멍이 뚫려야 비로소 새 신발을 사기 때문이다. 요즈음 같은 세상에 별로 자랑스러울 것이 없는 이 고약한 버릇은 신발 장사를 하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닌가 여기고 있다. 그때 그렇게 원망스럽던 아버지의 절약이 지금은 가슴앓이가 되어 가끔은 나를 눈물짓게 한다. 철없는 아들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그때 그 외로운 눈길이 불현듯 떠오르곤 하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남자 것으로 변형시킨 그 장화를 계속 신고 다닐 걸 하는 때늦은 후회를 할 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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