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12.18 02:21
공자,맹자 발자취를 따라서,곡부,추성 곡부는 산동반도의 서남쪽에 위치하며 그옛날 상,은,한나라 도읍지 였으며 무었보다도 세계 4대성인의 하나인공자(552BC-479BC)가 태어나서 자랐고 유교의 이념을 펼쳤었고 죽어서 묻힌곳이며 세계 문화자산에 등재되기도 한곳이다. 공자가 죽고나서 많은 제자들과 특히 제자의 제자인 맹자가 공자의 유교이념을 집대성하여 오늘의 공자를 만들었으며 특히 송,명,청을 이은 역대황제들이 그당시 봉건시대의 정치이념으로 유교를 삼았으며 공자를 존경하는 마음으로 공자를 위하여 제사지내는곳(孔廟)을 서로 다투는듯 지었으며 특히 공묘의 주건물인 大成殿은 중국 3대 궁전건축물의 하나이며 지금 건물은 송나라 휘종이 그전 5 room에서 7 room으로 중축 했으며 맹자가 공자를 일컬어'자기 앞에있는 모든일을 크게 이루었다'는 말을 인용 大成殿으로 명명했고 현재 건물은 청나라 Emperor Yongzheng이1724년 다시 지어 '大成殿' 친필도 남겼다한다. 공묘를 둘러보면 모든것을 '聖' 아니면 '至'를 썼는데 그만큼 공자를 으뜸 아니면 성인으로 숭앙했다는 증표이며 맹자를 칭할때는 버금 '亞'자를 쓰는것을 볼수있어 흥미롭다. 孔府는 공묘의 동쪽에 위치해 있고 '천하 제일가'라는 칭송으로 공자의 76대손까지 저택및 관공서로 쓰던 건물로서 송나라때 증축하고 명,청을 지나며 더욱 크게 지었으며 지금 있는 건물은 명나라때 55대손 연성공때 지은 건물로서 76대 공덕송이 문화혁명때 '排孔사상'으로 대만으로 쫓기어 갈때까지 이어졌다한다. 孔林은 곡부의 북서쪽에 위치하며 공자와 그자손 그리고 제자들의 묘들이 있는곳이며 20km에 달하는 광대한 산림지대에 묘들이 점재하고 있다. 길가에 떡갈나무들이 숲이 되어 장관을 이루고 있고 중국학 석학인 Kuo Muoruo가 말했듯이 이곳은 'perfect museum of the nature'인것이다. 세게 4대성인으로 유일?하게 현존하는 이 공자의 묘앞에서 설레는 가슴으로 고개숙여 참배하였다. 같이 갔던 친구들은 향을 피우고 큰절까지 했다. 곡부를 보고나서 맹자의 맹부,맹묘를 보기위해 이곳에서 40여분걸려 추성에 도착했다. 孟子(377-289BC?)는 아시다 싶히 공자 몰후 100여년후에 태어나서 공자의 유교이념을 집대성한 학자로 맹자가없었으면 오늘의 공자가 없을 정도로 맹자의 공이 크다고한다. 어머니 장씨가 맹자를 훌륭하게 키우기 위해 3번 이사했다는 '맹모 삼천지교'로 유명하다. 孟廟는 1073년 송 인종때 만들어진 사당으로 금,원,송,명,청을 지나는 동안 몇차례 증개축했다한다.亞聖殿을 위시하여 64개의 건물로 구성되어 있고 들어가는 입구부터 수백년 넘은 아람드리 향나무군들이 들어서 있다. 이건물들은 송에서청에이르는 건축예술의 대표작으로 손꼽히고 있다한다.원나라에서 청나라까지 맹자를 칭송하는 비석들이 280여점이 보존되어 있다. 孟府는 맹묘의 서쪽에 위치 '아성부'라하며 맹자의 후손들이 생활했던곳이다.금,원대에 세워진것으로 추정된다 한다. 맹자와 맹모가 뭍혀있는 孟林에는 시간상 갈수가 없어서 유감이었지만 사실 이곳 추성에 온것도 원래 스케줄에는 없었던것을 이사람이 우겨서 온터라 더이상 어쩔수가 없었다. 그래도 공,맹의 발자취를 밟아본것은 다음에 예정된 태산 방문과함께 이사람에게는 이번여행의 highlight이 되고도 남음이있었다. 규정 우리가 머물렀던 호텔,김일성도 이곳에서 머물렀엇다함 호텔입구에 써있는 공자의 유명한말씀,'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공묘에 들어가는 문마다써있는 문구들 청 건륭황제의 친필 앞에서 한컷 공자에 대해서 '至'자와'聖'자를 많이쓴다 수백년은 족히 되었을 노목 공자를 기리는 수없는 비석들의 하나 공자가 제자 72인 앞에서 강의 했다는곳 공묘의 본전인 大成殿,중국의 3대 궁전건물중의 하나 Emperor Yongzheng의 친필 대성전의 공자상을 모신곳 공자를 칭송하는 문구들 진시황이 모든책을 불살렀을즈음 공자의 9대손 Kong Fu가 공자가 쓴 귀중한 책들을 벽에 감추어 save한것을 기리기 위해 명황제가 세웠던벽 孔府에 들어가는 문 Tan 이라는 상상동물로 해까지 삼키려는 동물로 이그림을 주민들에게 보여 공부관리는 뇌물을 받지않고 법을 어기지 않는다는 경계를 주었다함 Rear garden 공림으로 들어가는 문,1594년에 지었으며 곡부에서 제일큰 stone archway 공림으로 들어가는 문 The Archway of Zhushin Bridge 공자의 제자 자공이 심었다는 나무 공자묘 공자 아들묘 공자 묘앞에서 한컷 공자 손자묘 공림 입구에서 한컷 맹묘,맹부 입구 맹묘의 본전 亞聖殿 맹자 상 맹자상 세상의 어머님들께 감사드립니다. 맹자의 말씀중,'한번 웃으면 10년이 젊어진다'는 말씀 |
2009.12.18 02:23
2009.12.18 02:51
2009.12.18 05:26
승자님!
잠깐 찾아보았는데 공맹의 기념비등은 모르겠고요 공자사당을 살펴보면
공자 사당을 '文廟'라고 하는데 통일신라때 성덕왕 13년(714)에 김수충이
당나라에서 공자와 제자 72인의 화상을 가지고와 왕명에 의해 국학(국립
대학)에 모신것으로 시작 고려때는 중국의 향사제도를 따라 운영되었으며
주자 성리학이 정립됨에 따라 大成殿 건립이 이루어 졌다합니다.
물론 조선시대에는 정치에 유학이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하여 중앙에는
성균관 지방에는 각 군현의 향교에 문묘가 세워졌다합니다. 규정
2009.12.18 08:27
"공자 맹자는 유교의 창시,확립하여 중국을 빛나게 해주었으며..."
과연 그랬을가 (??) 생각해봅니다.
세계 4대 성인중에 공자를 뺀 나머지 성인들은 모두 "for the people" (평민)이 그들의 주 목적이였던
반면에 공자의 가르침은 "for the king" (봉건주를 위한, not for the people) 이
주 목적이였다고 본인은 생각하죠.
다시 말해서 공자의 가르침은 "봉건주로 하여금 백성들을 착취하기 쉽도록" 하는 도구였지요.
그러니 역대 중국의 통치자들이 공자를 좋아했고 그의 가르침을 강조하지 않었나 합니다.
그 결과 공자의 원측을 신봉했던 중국과 이씨조선의 말로는 비참하게 끝난것입니다.
즉 유교사상에서 유래된 사회계급, 부정, 부패로 끝장을 보게된거죠.
대한민국도 아직 이 잔해를 떨어뜨리지 못하고 신음하고 있다고 봅니다.
반면에 백성위주의 Jesus, Socrates, Buddha (or Mohammed)를 신봉한 나라들은
대개 승승장구하면서 오늘날의 democracy의 기반이 되었읍니다.
공자 맹자의 忠孝 원측밑에서는 언제나 주인과 노예가있어야하며,
현대 democratic system은 영원히 불가능한것입니다.
그냥 본인의 2cents 짜리 생각입니다.
2009.12.18 10:35
저는 철학자도 종교학자도 아니라서 유교에 대한 부정적인 말씀에
반박할 능력이 없읍니다.
다만 유교의 근본사상은 '仁'이라 생각하며 仁은 곧 사랑이라고 생각
합니다. 그리고 윤리 도덕을 기초로한 철학이요 종교라고 생각합니다.
미국이나 한국이나 지금 민주정치를 하는 정치인들의 윤리,도덕성을
생각해 보셨는지요. 저는 국가 지도자의 제일 큰 자질은 智도 勇도 아닌
德이라고 생각합니다.
봉건시대 군주들이나 조선왕조에서 유교 이념을 악용한것이지 유교의
근본사상은 아무 하자가 없다는 저의 세푼어치 의견입니다.
2009.12.18 12:34
황선배님.
위의 사진 중 이 용국선배님 부부와 같이 찍은 사진에서
두분의 복부가 극명하게 대조를 이룹니다.
2009.12.18 13:28
공자 맹자에 대하여, 운영자 선배님의 관점이 있음을 알게 되어, 한번 생각해 보아야겠습니다.
일견, 그런 것도 같습니다.
산동반도 구경 잘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2009.12.18 13:50
유선생!
우리는 생일이 하루다른 정동갑인데 아마 우리 모친께서
저를 뱃을때 피죽도 못잡수신것 같습니다,ㅉ,ㅉ.
오늘 이박사와 통화했는데 그때 유선생과 저녁식사 같이
하던때부터 지금까지 술 한모금도 하지 않했답니다.
그래서 아들 장가 보낼려니 늦게 철나는가 보라고 농담
했읍니다만. 연말연시 온가족 건강하시고 복많이 받으십시요. 규정
2009.12.18 14:25
선배님.
이 선배님 아들 결혼식에는 제가 무슨 자격으로 가야할 지 망서리고 있습니다.
이선배님의 후배자격?, 아드님의 스승자격?.
가기는 꼭 갑니다.
2009.12.18 19:11
2009.12.19 01:34
모든이치가 양면이 있는것이 아니겠어요.
유교에 대한 모택동과 등소평의 생각이 달랐던것 같이.
조선왕조(저는 일본인들이 degrade 해서 불렀던 '이씨조선'
이란 칭호는 이제 않씀)때도 인과 덕을 쌓은 세종대왕이
있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연산군도 있었지요. 각 군왕의
자질이 문제지 유교의 탓은 아니지 않을까요.
어느 왕대도 끝이 있는법 로마가 그랬고 알렉산더 대왕의
그리스가 그랬듯이.조선왕조는 그렇게 자랑만을 할 왕조는
못되어도 결코 부끄럽지만은 아니라 생각하며 500년 이란
우리 역사는 물론 중국역사중에도 가장 오랜 왕대 이었읍니다.
폐론하고 저의 생각은 중국이나 한국이나 유교의 근본정신이
나쁘다기 보다는 그것을 어떻게 활용했냐가 관건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건 그저 제생각뿐임을 알립니다. Thanks, 규정
2009.12.19 13:27
Doc, We can argue forever but this is a good thing to argue about.
일본인들은 정확하게 한반도의 역사 전체를 하나의 "조선"으로 본것으로 생각됩니다.
즉 "고"조선 (단군 조선+기자조선+위만조선) 에서 시작해서 한반도에있던 나라들는,
신화이건 아니건 (단군조선의 경우), 우리가 인정하건 않하건 (기자, 위만조선의 경우),
다음에 삼국시대, 신라, 고려, 이조가 차례로 온것이죠.
따라서 이성계의 조선이 한반도의 조선만이 아니기때문에 "이씨왕조"라고, 정확하게
또 혼동되지않게, 쓴것 아닐가요?
누가 무조건 "조선" 이라하면 What does it mean??
즉 "조선"은 한반도의 한국인들이 세워서 대대로 살아온 나라들을 의미하며,
꼭 이성계와 그 후손의 나라가 아니지요.
일본놈들이 한국인과 그들의 나라를 격화시키는데 지대한 공헌을 했음은
본인도 절대 동의 인정하지만, 한국의 마지막 왕조 (또는 국가 ?? - that happened to be the
the slave country of Chung dynasty of China, to be exact !!) 를 "조선"이라고 불르는것보다는
"이씨왕조 or 이씨조선"으로 불러야합니다. 이씨왕조를 "조선"이라고 부른다면
그것은 한국 역사적 전통에대한 모독이 되며 한국인을 격화시키는것입니다.
청나라의 속국인 이씨조선을 청나라부터 독립시킨것은 누구이죠?
바로 일본놈들입니다. (청일전쟁의 결과)
물론 일본놈들은 한일합방을 꿈꾸고 한것이고 황박사가 그렇게도 존경하는 이씨왕조는
뭐가뭔지도 모른채 먹혀들어갔지요.
왜 ?? 이들은 공자, 맹자 책뒤지고 따지느라고 밖았에서 어떻게 세계가 돌아가는지도
모르고있었던것 아닙니까?
한반도에 그전에 존재했던 "조선"은 이씨왕조보다 훨씬 더 독립적이였고 찬란했었지요.
한국의 어느 교수가 "이씨조선"이라는 칭호를 쓰지말고 "조선"이라고 쓰자 라고했는데
한국 역사가들의 대부분이 (우리가 배운 역사를 포함해서) 일본製였다는것을
우리는 알고있지 않은가요?? 그 사람들 별거없는 사람들이지요.
요새 역사가들은 어떤지 몰라도...
Someone says, "Everyone has his own view of the history".
Right or wrong, this happened to be my view.
2009.12.19 14:46
우리선인들이 세웠던 국가들은 면면히 그 이름이 있었읍니다.
고조선,고구려,백제,신라,발해,고려,조선등등.
거기에 일본이 우리를 점령해서 조선왕조를 격하 시키기위해
'李氏조선'(이조)이라불르기 시작한것입니다.(이조라는 말은 일본 점령
후에부터 부르기 시작한것입니다.)
그래서 제말은 이제 일본으로부터 독립한 우리이니 옛날이름을
다시 찾아 '조선'(왕조)으로 부르자는것입니다.
마치 창씨개명했던 우리 이름을 오늘의 우리이름으로 바꾼것 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고려'라는 엄연한 나라 이름이 있는데 그것을
왕씨조선으로 불르지 않는것 같은 맥락으로 말입니다.
그리고 조선왕조때 청나라에 조공을 바친것만 말씀하시는데
그렇게 따지면 신라와 당나라 고려와 원나라(병자호란)등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저는 조선왕조를 존경하는것 보다는 조선왕조 역사를 다
싸잡아 나뿌다고 하는것보다는 당파싸움이라든지 쇄국정치라든지
비판할것은 하되 찬란했던 조선의 문화도 인정해야 할것은인정
하자는 것이지요. 제말이 과격한점이 있엇다면 용서하시지요.
이것은 다만 토론일뿐이니까요. 규정
2009.12.19 18:05
물론이죠.
통일신라는 당나라의 속국 (좋게 말해서.... 정확히 말해서는 중국의 자치령 정도)
고려는 원나라의 자치령이였죠. 이씨왕조도 물론이었고...
우리민족이 독립체재로 살았던것은 고구려, 백재때가 마지막이였고,
815 해방후에 처음으로 이승만과 자유당의 Banana Republic으로 출발해서 오늘에 이른것입니다.
조선의 찬란한 문화라는것은 중국문화의 secondary poor copy에 지나지 않습니다.
중국을 관광해보면 만사가 한국에서 본것이죠. 그렇지만 중국것이 먼저 생긴것 아닙니까?
그러니 한국것은 중국의 모조품인데, 예를들어 지붕의 선, 처마의 곡선같은것은 중국것들이
훨씬 아름답지요. 한국것들은 기교의 부족으로 꾸부러지다가 만 모양이죠. - Poor copy!!
박정희 이후부터 Non-copied independent 한 우리 자신의 문명이 시작되었지만,
아직도 우리의 늙은 세대들은 공자의 무덤에 절을 올릴만큼 공자맹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헤매지요.
왜 공자 앞에서 머리를 조아립니까? 차라리 放尿를 했어야 되지 않었을가요?
즉 아직도 우리는 정신적으로 중국을 우러러보고 있는것입니다. 빨리 벗어나면 좋겠군요.
We have to get out of this obcession in the worship of China and Japan.
We can always learn from them but blind worship should end.
Otherwise, we will never be truly independent.
2009.12.19 19:35
2009.12.20 0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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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유! 분량이 많아서 컴이 어느때는 자기 마음에 않들면 마구 훼방을?
놀아서 고치는데 애좀 먹었읍니다,ㅎ,ㅎ.
공자 맹자는 유교의 창시,확립하여 중국을 빛나게 해주었으며 지금은
관광사업의 일원으로 중국을 짭잘하게 도와주는것 같습니다.
춘추시대부터 봉건주의 군주들이 유교를 중시 국가 통치이념에 사용
했으며 각代에 서로 다투듯 공묘등을 신축,증축등을 한것만 보아도
알수 있읍니다. 한때 모택동 정권에 의해서 강등된적도 있지만 등소평때
다시 복권되어 오늘에 이르렀다합니다.
무었보다도 공자의 묘를 직접 참배한것은 지난날 일본의 '이에야스묘'
참배와 더불어 이사람에게는 큰뜻이 있는 여행중의 하나라 생각합니다.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