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6.21 01:51
歸去來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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歸去來兮 田園將蕪胡不歸 旣自以心爲形役 奚惆悵而獨悲 悟已往之不諫 知來者之可追 實迷塗其未遠 覺今是而昨非 舟遙遙以輕颺 風飄飄而吹衣 問征夫以前路 恨晨光之熹微 乃瞻衡宇 載欣載奔 僮僕歡迎 稚子候門 三徑就荒 松菊猶存 携幼入室 有酒盈樽 引壺觴以自酌 眄庭柯以怡顔 倚南窓以寄傲 審容膝之易安 園日涉以成趣 門雖設而常關 策扶老以流憩 時矯首而遐觀 雲無心以出岫 鳥倦飛而知還 景翳翳以將入 撫孤松而盤桓 歸去來兮 請息交以絶遊 世與我而相違 復駕言兮焉求 悅親戚之情話 樂琴書以消憂 農人告余以春及 將有事於西疇 或命巾車 或棹孤舟 旣窈窕以尋壑 亦崎嶇而經邱 木欣欣以向榮 泉涓涓而始流 善萬物之得時 感吾生之行休 已矣乎 寓形宇內復幾時 曷不委心任去留 胡爲乎遑遑欲何之 富貴非吾願 帝鄕不可期 懷良辰以孤往 或植杖而耘耔 登東皐以舒嘯 臨淸流而賦詩 聊乘化以歸盡 樂夫天命復奚疑 |
돌아가자! 배는 흔들흔들 가벼이 출렁이고 오솔길엔 풀이 우거졌으나 뜰은 날마다 돌아다니다 보니 바깥마당 이루어지고 |
Source: Naver.com, Webpage by S. Steven Kim - December 20, 2006 |
2016.06.21 01:53
2016.06.21 02:00
WM:
잘 보았습니다. 배경 그림과 문장의 format등은 내가 따라 갈 수 없는 수준이지요.
그런데 나는 내 식대로 한번 올려보려고 합니다. 그 이유를 그때 설명하지요.
지난 번에 여기에 소식을 올렸는데, 현재 17일째 CA에 위치한 아들 집에 묵고 있습니다.
손자 졸업식에 6월 3일에 참가하였는데, 손녀 졸업식이 바로 오늘이었지요.
내일은 두 졸업을 기념하는 House party를 한다고 부산하고,
모레는 하루 쉬고, 글피 20일에 귀가하자면 하루종일 걸리지요.
3주간 밀린 일을 끝내고 정신을 가다듬어 한번 올려 볼 생각이니 아마 1주후일 듯합니다.
2016.06.21 02:02
Doc,
What I meant to say is that, since you are dealing with poems,
you may make webpages to be more poetic, rather than business-like.
This one above is much tougher to make.
This is same as the "white rose in black background" you did before.
You do not have to install "ColorCop". It does not go to Windows registry.
You simply keep the file on desktop and click the file to get it ready to work for you.
I will send the file (colorcop.exe) attached in an e-mail to you as soon as I find your e-mail address.
2016.06.21 02:03
고등학교 때 배운 것 같은 데, 지금 다시 접하니 정말 실감나네요.
구구절절이 은퇴할 나이에 있는 분들의 심금을 울리는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2016.06.21 02:06
Dr. Ohn 말씀처럼 은퇴의 문앞에서 가슴을 울리는 얘기지요.
허나 요새는 우리의 현실에서, 누구나 웬만큼 먹고 살 준비가 된후에야 은퇴를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낭만과 평화에 가득찬 詩와 시인들의 세계에 본인이 비천한 현실적인 얘기를 하기가 쑥스럽지만,
陶淵明은 좋은 관직을 버리고, 불과 42세의 젊은 나이에 훌쩍 시골로 하야한후에 참으로 어렵게 살았다합니다.
그가 그렇게 좋아했던 술값대기조차 힘들었섰겠지만, 그의 인생무상, 자연에 대한 사랑은 무엇보다 중요했겠지요.
아마 그는 관직을 떠나면서, 자기에게 다가오는 운명을 분명히 알고 있었겠지하고 바래봅니다.
아래의 그의 인생에대한 webpage를 보탭니다. 이것도 윗 webpage 쓸때 같이 올렸던 것입니다. 마지막 그의 한마디...
"<人生實難, 死此之何> 한 평생 살기가 참으로 힘들었거늘, 죽은 후 저승의 세계는 어떠할는지 ? "
陶淵明과 그의 인생에 대해서
집필자 : rose6209 (2002-11-01 18:05) Source: http://kim.naver.com 도연명<365-427>은 서기 365년에 태어 났는데, 이름은 潛 자가 淵明이다. 그의 증조부는 晋의 名將 陶侃 이였고, 외조부는 당시에 풍류인으로서 이름이 높았던 孟嘉였다. 固窮節을 지키면서 몸소 농사를 지었던 억척 같은 성격과 한편 도연히 술에 취해 속세를 해탈하고「동쪽 울타리 아래 국화를 따며 유연히 남산을 바라보던 농부」<採菊東籬下, 悠然見南山>隱逸의 풍류가 바로 무인인 증조부와 墨客이였던 외조부로 부터 이어받은 것이라 할 수가 있다. 그러나 도연명이 태어 났을 때의 그의 집안은 완전 몰락하여 오늘날 까지 도연명의 부친 이름도 밝혀지지 않고 있다. 도연명은 현 江西省 九江市 일대에 있던 심陽 채桑이라는 마을에서 출생했다. 채상은 揚子江의 중류에 있으며 북으로는 명산이 廬山을 등에 업고 남으로는 파양호를 바라보고 있는 명승지 이다. 항상 전원생활에 대한 사모의 정을 달래지 못한 도연명은 42세 때에 누이의 죽음을 구실삼아 펑쩌현[彭澤縣]의 현령(縣令)을 사임한 후 재차 관계에 나가지 않았는데, 이때의 퇴관성명서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 유명한 《귀거래사(歸去來辭)》이다. 宋대의 유명한 성리학자 朱子가 그 곳을 찾아 전에 도연명이가 술 마시던 큰 바위 醉石 에서 시를 읊었다고 한다. 연명이 살던 때는 東晋의 왕실이나 士族들의 세력이 약화되고 차츰 무력적 신흥 군벌들이 대두하여 서로 각축을 벌이던 때였으며 , 그가 42세에 歸去來辭를 쓰고 농촌으로 돌아온 전후기에는 군벌들의 손에 동진의 왕이 幽閉되거나 또는 弑殺 되기까지 하였다. 당시 도연명의 문벌이 대단치는 않았으나 그의 집안은 역시 진 나라의 사족에 속했고, 또 그의 학식은 보수적 문인 계층에 속했다. 그르므로 그는 신흥의 힝폭한 군벌들과는 어울릴 수 가 없었다. 不義에 가담하여 잘 사느냐 ? 가난을 각오하고 은퇴하느냐 ? 도연명은 의연하게 후자의 길을 택했다. 이런 그의 사상적 바탕은 「달통하면 나가서 천하를 구제하고, 막히면 할 수 없이 물러나 자신을 착하게 산다」<達則兼善天下, 窮則獨善其身>는 儒家였다. 즉 修己治人은 선비의 의무이기도 했다. 써 주면 나가서 일하고, 물러나면 은퇴하는 것이 用行舍藏이다. 이렇게 물러난 도연명 에게는 老莊哲學이 기다리고 있었다. 우주만물의 근원은 道 도는 無爲自然이다. 인간은 영원한 實在인 無에서 와서 잠시 現象界인 이승에 나그네로 寄寓하고 다시 본집인 無로 돌아가는 것이다. 또 만물은 도를 따라 物化하게 마련이다. 그르므로 인간은 현실적 속세 利欲과 醜惡에 엉킨 타락 세계에서 발버둥 칠것이 아니라 無爲自然 이라고 하는 참 세상에 몸을 맏기고 유유자적했던 것이다. 그러나 도연명도 육신을 가진 인간이 였다. 정신 만으로 살 수는 없었다. 육신은 음식과 옷을 필요로 했다. 엄동설한에도 시들지 않는 송백 같은 절개를 지킨 도연명이였으나 물질생활의 궁핍을 견디어 내는 대는 심한 어려움을 격어야 했다. 비록 아사 일보 직전에서 자기를 이해해 줄 만한 사람에게 구걸까지 한 일은 있었으나 그는 끝까지 固窮節을 지키고 또 힘껏 스스로 농사를 지어 견디어 냈다. 도연명은 스스로 守折 한다고 했다. 인간적 巧智나 奸狡, 또는 권모 술수를 쓰지 않고 소박한 대자연의 순수한 德性을 지켰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그는 정신과 육신을 가진 이원적 존재로서의 자신의 葛藤과 矛盾을 숨김없이 내어 놓고 시를 적었다. 이렇게 참 세상을 逍遙했던 도연명은 427년 63세에 自祭文을 지어놓고 이승을 떠났다. 그도 한 가엷은 인간 이였다. 자제문 맨 뒷 구절에서 이렇게 읊었다. <人生實難, 死此之何> 한 평생 살기가 참으로 힘들었거늘, 죽은 후 저승의 세계는 어떠할는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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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관호 선배님;
요새 우리 website을 새 version으로 바꾸는 작업 중인데 지나간 webpage들을 정리하다가
본인이 옛날 (11-20-2006)에 올렸던 유명한 중국시 하나를 정관호 선배님을 위해서 올림니다.
그때만해도 꽤 젊었을 때여서, 이정도는 쉽게 처리했었는데 본인이 노년에 (ㅎ, ㅎ, ㅎ.) 들어서면서부터
느려지고 게을러져서 이렇게 심혈을 기우려 webpage 만든지 오래이군요.
詩야 잘아시겠지만 webpage style을 보시기 바랍니다.
Background picture, 배경 color, 글자 color의 조화를 보십시요.
그당시 이 webpage 구성을 좋아한 사람들이 많었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