過零丁洋 文天祥
과영정양 문천상
辛苦遭逢起一經,干戈寥落四周星。
신고조봉기일경, 간과요락사주성.
山河破碎風飄絮,身世浮沉雨打萍。
산하파쇄풍표서, 신세부침우타평.
惶恐灘頭説惶恐,零丁洋裏嘆零丁。
황공탄두설황공, 여정양리탄영정.
人生自古誰無死?留取丹心照汗青。
인생자고수무사? 유취단심조한청. |
영정양을 지나며
송대 문천상
힘든 생활에서 독서하여 관리로 시작하였고,
박약한 병력으로 원군과 고전하기 4년이라..
강산은 조각조각 파쇄되어 버들솜 같고,
나의 일생은 오르다내려 부평초 같도다.
지난해 황공탄 머리에서 황공함 호소하였고,
금번에 영정양 속에서 영정함 탄식하였네.
자고이래 그 누가 죽지 않을 수 있으리!
한가닥 붉은 마음은 청사에 비추리! |
註釋(주석)
遭逢(조봉):遭遇到朝廷選拔。조정에서 선발함을 만나다.
起一經(기일경):因精通某一經籍而通過科舉考試得官。文天祥在宋理宗寶佑四年(1256)以進士第一名狀元。어떤 일경적을 정통하여 과거고시를 통과하고 장원급제로 진사를 받았다.
干戈寥落(간과요락):寥落意爲冷清,稀稀落落。在此指宋元間的戰事已經接近尾聲。干戈,兩種兵器,這裏代指戰爭。寥落,荒涼冷落。南宋亡於1279年,此時已無力反抗。전쟁에 패하여 1279년 남송은 망하고, 반항할 힘도 없었다.
四周星(사주성): 四年。從德祐元年(1275)正月起兵抗元至被俘恰是四年。4년
風飄絮(풍표서):運用比喻的修辭手法,形容國勢如柳絮。형용컨대 국세는 버들솜 같았다
雨打萍(우타평):比喻自己身世坎坷,如同雨中浮萍,漂泊無根,時起時沉。자신의 신세 불우하니, 마치 빗속의 부평조같이 뿌리없이 떠다녀 오르락내리락하다.
惶恐灘(황공탄):在今江西萬安贛江,水流湍急,極爲險惡,爲贛江十八灘之一。宋瑞宗景炎二年(1277),文天祥在江西空阬兵敗,經惶恐灘退往福建。현재 강서만안공강으로 물살의 폭이 좁아 급류를 만들어 극히 험악하며 공강 18탄(여울)중 하나이며 1977년 병패하여 황공탄을 경유하여 복건성으로 후퇴하였다.
零丁洋(영정양):即“伶仃洋”,現在廣東省中山市南的珠江口。文天祥於宋末帝趙昺祥興元年(1278)十二月被元軍所俘,囚於洋的戰船中,次年正月,元軍都元帥張弘範攻打崖山,逼迫文天祥招降堅守崖山的宋軍統帥張世傑。於是,文天祥寫了這首詩。현재 광동성 중산시 남 주강입구이며, 송 마지막 황제 원년 1278년 12월에 원군의 포로가 되고 영정양 전선속에 갇혀 있는데, 다음해 정월 원군 도원수가 문천상을 핍박하여 송군통수 장세걸을 초항시키려 하여 핍박할 때 이 시를 썼다.
零丁(영정):孤苦無依的樣子。외롭고 괴롭고 의탁할 데 없는 모습
留取丹心照汗青:留取赤膽忠心,永遠在歷史中放光。붉은 담의 충심을 지켜, 영원히 역사속에 방광을 하리!
丹心(단심):紅心,比喻忠心。붉은 마음으로 충심을 비유한다.
汗青(한청):古代在竹簡上寫字,先以火炙烤竹片,以防蟲蛀。因竹片水分蒸發如汗,故稱書簡爲汗青,也做殺青。這裏特指史冊。고대 중국에서는 대쪽에 글을 썼는데, 그 대쪽을 불로 굽고 말려서 대쪽에서 수분이 증발하여 땀같아서 이 서간 즉 문서를 한청 혹은 살청이라고 불렀던 역사책을 가리킨다.
《過零丁洋》是宋代大臣文天祥的詩作。此詩首聯二句自敍生平遭際,思今憶昔,感慨萬端;頷聯二句從國家和個人兩方面展開和深入加以鋪敍國破家亡的現實;頸聯二句追述今昔不同的處境和心情,昔日惶恐灘邊憂國憂民,如今零丁洋上自嘆伶仃;尾聯二句以死明志,是作者對自身命運毫不猶豫的選擇。全詩表現了慷慨激昂的愛國熱情和視死如歸的高風亮節,以及捨生取義的人生觀,是中華民族傳統美德的崇高表現。格調大氣磅礴,情感真摯自然,語言工整精妙,生動形象,語意豐富。
《과영정양》이는 송대 대신 문천상의 시였다. 이시 수련 2구는 인생의 경험을 스스로 서술하였고, 지금을 생각하면 옛날을 회고하였고, 감개가 끝없었다. 제2련 2구에서 국가와 개인 양편이 국가가 파망하는 현실에 깊이 들어갔다; 제3련 2구에서 오늘과 옛날의 같지 않은 처지와 심경을 추억하며 서술하였고, 옛날 황공탄변에서 우국우민하였는데, 지금 영정항위에서 외로움을 스스로 탄식하고; 미련 2구 즉 제4련 2구에서 죽음으로 뜻을 밝히니, 이는 작자가 자신의 운명을 조금도 주저없이 선택하였다. 전체의 시는 강개 격앙한 애국의 열정과 죽음을 돌아감과 같이 보는 고풍양절 즉 높은 풍도와 뚜렸한 절개를 표현하여서, 삶을 버리고 의를 취한 인생관을 끼치게 함으로써 민족의 전통적 미덕의 숭고한 표현이었다. 큰 기세의 격조가 높이 울리고, 진지한 정감은 자연으로 나오며, 형상은 생동하고, 어의는 풍부하였다.
作者文天祥(작자문천상)
문천상(1236-1283)은 보우4년(1256)에 전시때 장원급제를 하였고, 길주여릉부천인이다. 남송말기에 정치가, 시인, 원나라에 항거했던 민족의 영웅이다. 벼슬은 우승상에 이르렀고, 최후에 신국공으로 봉함을 받았다. 송이 망한 후 오파령 전투에 패하여 포로가 되었고, 대도 즉 현재 북경으로 왔을 때 원나라 황제 홀필렬이 친히 가서 향복을 권했으나 죽기를 각오하고 굴하지 않아 1284년 1월에 사형을 당하였다. 장하다! 문천상이여!
그는 육수부, 장세걸과 더불어 송말삼걸로 병칭되며, 사방득, 원계함과 더불어 강우삼산으로 병칭한다. 명 경태 7년에 충렬로 시호를 받았다. 저서로는 문산시집, 지남록, 지남후록, 정기가등이 있다.
文天祥(1236年6月6日—1283年1月9日),初名雲孫,字天祥,號浮休道人。選中貢士後,換以天祥為名,改字履善。寶祐四年(1256年)在殿試中由宋理宗欽點為狀元,御賜表字宋瑞,後因住過文山,而號文山,吉州廬陵富川(今江西吉安縣)人,南宋末期政治家、詩人、抗元人物和民族英雄。官至右丞相,最後被封為信國公,故稱文信公或文信國,官拜少保,故稱文少保。
宋亡後,於五坡嶺兵敗被俘,寧願死也不願降,被元軍俘至大都(今北京),忽必烈親往勸降,文天祥寧死不屈,至元十九年十二月初九(1283年1月),在柴市從容就義。與陸秀夫和張世傑等人並稱“宋末三傑”。又與謝枋得、袁繼鹹等人並稱“江右三山”。明景泰七年,謚忠烈。著有《文山詩集》、《指南錄》、《指南後錄》、《正氣歌》等。
鑑賞一作者:佚名[감상 작자 실명]
여기서 실명인의 감상 일부를 싣는다. 첫 두 구에서 “신고를 맞아 급히 일으키니 군이 흩어지기 4년이나 되었도다. 병사를 뽑아 임금을 보좌하다가 포로가 되었도다. 과거에 급제하고 근왕을 함은 두 가지 대사이다.
그는 난리를 당하여 옷 속에 글을 써서 갖고 다녔다.
“ 성현의 글을 읽어 무엇을 배우는가? 오늘이후에 바라건대 부끄럼이 아무것도 없도록!”.
이리하여 결국 문천상은 송나라와 운명을 함께하였다고 본다. 비유컨대 힘없는 송군으로 전 세계 정복자 원군에 대항함은 오로지 계란으로 바위를 때리는 격이었다. 마지막으로 원나라 지도를 실어서 세계 최대제국을 보인다.
首聯“辛苦遭逢起一經,干戈寥落四周星。” “起一經” 當指天祥二十歲中進士說的,四周星即四年。天祥於德祐元年(1275),起兵勤王,至祥興元年(1278)被俘,恰爲四個年頭。此自敘生平,思今憶昔。從時間說,拈出“入世”和“勤王”,一關個人出處,一關國家危亡,兩件大事,一片忠心。唐宋時期,一個人要想替國家做出一番事業,必須入仕,要入仕,作爲知識分子必須通過科舉考選,考選就得讀經,文天祥遇難時,衣帶中留有個自贊文說:“讀聖賢書,所學何事,而今而後,庶幾無愧”,就是把這兩件事拴在一起的。聖人著作就叫經,經是治國安邦的。這兩句詩,講兩件事,似可分開獨立,而實質上是連結在一起的。干戈寥落一作干戈落落,意思相近。《後漢書·耿弁傳》“落落難合”注云:“落落猶疏闊也。”疏闊即稀疏、疏散,與寥落義同。《宋史》說當時謝後下勤王詔,響應的人很少,這裏所講情況正合史實。
頷聯接着說“山河破碎風飄絮,身世浮沉雨打萍。”還是從國家和個人兩方面展開和深入加以鋪敘。宋朝自臨安棄守,恭帝趙昰被俘,事實上已經滅亡。剩下的只是各地方軍民自動組織起來抵抗。文天祥、張世傑等人擁立的端宗趙昱逃難中驚悸而死,陸秀夫復立八歲的趙昺建行宮於崖山,各處流亡,用山河破碎形容這種局面,加上說“風飄絮”,形象生動,而心情沉鬱。這時文天祥自己老母被俘,妻妾被囚,大兒喪亡,真像水上浮萍,無依無附,景象淒涼。
頸聯繼續追述今昔不同的處境和心情,昔日惶恐灘邊,憂國憂民,誠惶誠恐;今天零丁洋上孤獨一人,自嘆伶仃。皇恐灘是贛江十八灘之一,水流湍急,令人驚恐,也叫惶恐灘。原名黃公灘,因讀音相近,訛爲皇恐灘。灘在今江西省萬安縣境內贛江中,文天祥起兵勤王時曾路過這裏。零丁洋在今廣東省珠江15裏外的崖山外面,現名伶丁洋,文天祥兵敗被俘,押送過此。前者爲追憶,後者乃當前實況,兩者均親身經歷。一身爲戰將,一爲階下囚。故作戰將,面對強大敵人,恐不能完成守土復國的使命,惶恐不安。而作爲階下囚,孤苦伶仃,只有一人。這裏“風飄絮”、“雨打萍”、“惶恐灘”、“零丁洋”都是眼前景物,信手拈來,對仗工整,出語自然,而形象生動,流露出一腔悲憤和盈握血淚。
尾聯筆勢一轉,忽然宕進,由現在渡到將來,撥開現實,露出理想,如此結語,有如撞鐘,清音繞樑。全詩格調,頓然一變,由沉鬱轉爲開拓、豪放、灑脫。“人生自古誰無死,留取丹心照汗青。”讓赤誠的心如一團火,照耀史冊,照亮世界,照暖人生。用一照字,顯示光芒四射,英氣逼人。據說張弘範看到文天祥這首詩,尤其是尾聯這兩句,連稱:“好人,好詩!”誠然文天祥把做詩與做人,詩格與人格,渾然一體。千秋絕唱,情調高昂,激勵和感召古往今來無數志士仁人爲正義事業英勇獻
大元國: 대원국
1358年度 元朝: AD 1358년도 가장 넗은 지역을 점령하였다.
그러나 1368년 10년 후에 멸망하였다. 땅만 넓으면 뭣하나!
惶恐灘
零丁洋
Kwan Ho Chung – Aug 17,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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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는 남송의 충신 문천상이 감옥에서 죽음을 기다리며 쓴 시이다.
자신의 고난의 일생을 돌아보며, 끝까지 항복하지 않는 굳은 결의를 보였다.
전 세계의 정복자 원나라와 싸워서 패하고 포로가 되었다.
원나라 황제 홀필렬이 친히 찾아와서 항복을 권유하였지만, 거절하고 죽음의 길을 택하였다.
이 시를 보면 우리나라 안중근의사를 연상한다.
멸망한 나라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기꺼이 버린 의인을 우리는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