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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카메라로 바라본 세상 17.


뉴욕의 노숙자


[중앙일보]
입력 2006.09.25

큰누이 집이나 대학서 늘 외톨이- 워싱턴광장서 밤새워 놀고 자고


맨해튼 남쪽 그리니치 빌리지의 워싱턴광장. 예나 지금이나 예술가들이 모여드 명소다.
오랫동안 꿈꾸었던 미국 유학이지만 막상 비행기를 타는 순간에는 가슴이 떨렸다. 전 재산은 외환 보유 한도액인 200달러였고, 짐도 조그만 가방 두 개가 전부였다. 가방에는 옷가지와 영어사전, 고교 시절 찍은 사진들과 카메라 한 대가 들어있었다.

뉴욕까지 2박3일이 걸렸다. 하와이에서 1박하고, 샌프란시스코에서 다시 1박하며 비행기를 갈아타야 했다. 하와이에서는 항공사가 제공해 준 고급호텔에서 묵었다. 하지만 밤에 도착한 샌프란시스코에서는 혼자서 호텔을 찾아야 했다. 생소함과 막막함에 외계인 같다는 느낌이었다.

택시를 타고 "가장 가까운 호텔로 가자(Nearest hotel, Please)"고 했다. 기사는 몇 번을 말해도 내 영어를 잘 알아듣지 못했다. 힘들게 찾은 호텔은 3류 여관 수준이었다. 침대는 낡았고, 방에서는 불쾌한 냄새가 났다. 미국은 모든 게 멋있고, 편리하고, 세련됐을 것이라는 환상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뉴욕에 도착해 브루클린의 큰누이 집으로 갔다.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유학 중이던 누이는 미국에서 결혼해 대학병원 인턴으로 있었다. 자형은 레지던트였다. 난 항상 혼자였다. 누이 부부가 대부분의 시간을 병원에서 보냈기 때문이다.

1960년 9월 대학에 등록해 심리학 과목과 어학 과정을 수강했다. 환상 속에 동경했던 미국은 그리 친절하지 않았다. 말도 잘 통하지 않았고, 거구의 백인들은 날 친구로 받아들이지도 않았다. 동양인 유학생은 거의 없었다. 정서적으로 불안하다보니 공부에 집중할 수 없었다. 집에 가서는 TV 채널만 이리저리 돌려댔다.

맨해튼 남쪽 그리니치 빌리지에 워싱턴광장이 있다. 저녁이 되면 화가.시인 등 예술가들이 이곳에 몰려들었다. 그들은 반(反)문화 인간들이었다. 사회 부적응자, 유랑자, 신비주의자, 전위예술가, 무정부주의자들이었다. 그들은 비트닉(beatnik)이라 불렸다. 몇 년 후 등장하는 히피(hippie)의 원조격이었다.

그들과 가까워졌다. 미국 사회에서 비트닉만이 인종차별을 하지 않고 나를 편견 없이 대해 주었기 때문이다. 그들을 따라 집도 절도 없이 떠돌았다. 밤샘 파티 후 잠은 아무데서나 잤다. 세수는 공원 수도시설에서 해결했다. 자유로웠지만 비참했고, 심신은 황폐해져 갔다. 큰 뜻을 품고 간 미국 유학이 지독한 방황으로 이어졌다.

그해 11월 23일, 첫눈이 내렸다. 이례적으로 이른 첫눈이라 아직도 날짜를 기억한다. 수업을 마치고 나오니 하얀 눈이 천지를 덮고 있었다. 워싱턴광장으로 갔다. 아무도 없었다. 브루클린의 누이 집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눈을 맞으며 브루클린 브리지를 건넜다. 다리 가운데쯤에 있는 난간 전망대에서 맨해튼을 돌아봤다. 그때 본 뉴욕의 야경을 난 아직도 잊지 못한다. 안개 낀 이스트강 위에 떠 있던 마천루. 몇 달째 살았지만 그때 뉴욕의 진면목을 처음 봤다.

바람이 차가웠다. 온 몸이 떨렸지만 마음은 더 추웠다. 저 거대한 도시에서 과연 내가 성공할 수 있을까. 아니 생존이나 할 수 있을까. 나의 무기력과 무능을 새삼 사무치게 느꼈다.

김희중 (상명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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