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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s 법정 스님의 유언

2010.03.16 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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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스님 유언 
 

죽게 되면 말없이 죽을 것이지 무슨 구구한 이유가 따를 것인가?

스스로 목숨을 끊어 지레 죽는 사람이라면 의견서(유서)라도 첨부 되어야겠지만, 제 명대로 살만치 살다가 가는 사람에겐 그 변명이 소용될 것 같지 않다.

그리고 말이란 늘 오해를 동반하게 마련이므로 유서에도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가 있다.

그런데 죽음은 어느 때 나를 찾아 올련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그 많은 교통사고와 가스 중독과 그리고 원한의 눈길이 전생의 갚음으로 나를 쏠련지 알 수 없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죽음 쪽에서 보면 한걸음 한걸음 죽어오고 있다는 것임을 상기할 때 사는 일은 곧 죽는 일이며 생과 사는 결코 결연된 것이 아니다.

죽음이 언제 어디서 나를 부를 지라도, 네 하고 선뜻 털고 일어설 준비만은 되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나의 유서는 남기는 글이기보다  지금 살고 있는 생의 백서白書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 육신으로서는 일회적일 수밖에 없는 죽음을 당해서도 실제로는 유서 같은걸 남길만한 처지가 못 되기 때문에 편집자의 청탁에 산책하는 기분으로 따라 나선 것이다.

누구를 부를까 유서에는 흔히 누구를 부르던데 아무도 없다.

철저하게 혼자였으니까 설사 지금껏 귀의해 섬겨온 부처님이라 할지라도 그는 결국 타인이다.
이 세상에 올 때도 혼자서 왔고 갈 때도 나 혼자서 갈수밖에 없다.
그것은 보랏빛 노을 같은 감상이 아니라 인간의 당당하고 본질적인 실존이다.
고뇌를 뚫고 환희의 세계로 지향한 베토벤의 음성을 빌리지 않더라도 나는 인간의 선의지 이것 밖에는 인간의 우월성을 인정하고 싶지 않다.
온갖 모순과 갈등과 증오와 살육으로 뒤범벅이된 이어두운 인간의 촌락에 오늘도 해가 떠오른 것은 오로지 그 선의지 때문이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세상을 하직하기 전에 내가할일은 먼저 인간의 선의지를 저버린 일에 대한 참회다.
이웃의 선의지에 대해서 내가 어리석은 탓으로 저지른 허물을 참회하지 않고는 눈을 감을 수 없는 것이다.

때로는 큰 허물보다 작은 허물이 우리를 괴롭힐 때가있다.

허물이란 너무 크면 그 무게에 짓눌려 참괴의 눈이 멀고 작을 때에만 기억이 남는 것인가?
어쩌면 그것은 지독한 위선 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평생을 두고 그 한 가지일로해서 돌이킬 수 없는 후회와 자책을 느끼고 있다. 그것은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면서 문덕 문덕 나를 부끄럽고 괴롭게 채찍질했다. 중학교 1학년 때 같은 반 동무들과 어울려 집으로 돌아오던 길에서였다.

엿장수가 엿판을 내려놓고 땀을 들이고 있었다.
그 엿장수는 교문 밖에서도 가끔 볼 수 있으리만큼 낯익은 사람인데 그는 팔 하나가 없고 말을 더듬는 불구자였다.
대여섯 된 우리는 그 엿장수를 둘러싸고 엿 가락을 고르는 체하면서 적지 않은 엿을 슬쩍슬쩍 빼돌렸다. 돈은 서너 가락치밖에 내지 않았다.
불구인 그는 그런 영문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이일이 돌이킬 수 없는 이일이 나를 괴롭히고 있었다. 그가 만약 넉살좋고 건장한 엿장수 이었더라면 나는 벌써 그런 일을 잊어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가 장애자라는 점에서 지워지지 않은 채 자책은 더욱 생생하다.

내가 이 세상에 살면서 지은 허물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중에는 용서받기 어려운 허물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무슨 까닭 인지 그때 저지른 허물이 줄곧 그림자처럼 나를 쫓고 있다.
이다음 세상에서는 다시는 더 이런 후회스런 일이 되풀이 되지 않기를 진심으로 빌며 참회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살아생전에 받았던 배신이나 모함도 그때 한 인간의 순박한 신의를 저버린 과보라 생각하면 능히 견딜 만한 것이다. 날카로 면도날은 밟고가기 어렵나니 현자가 이르기를 구원을 얻는 길 또한 이같이 어려우니라.

(우파니샤드)의 이 말씀을 충분히 이해할 것 같다.

내가 죽을 때는 가진 것이 없으므로 무엇을 누구에게 전한다는 번거로운 일도 없을 것이다.
본래무일물은 우리들 사문의 소유 관념이다.

그래도 혹시 평생에 즐겨읽던 책이 내 머리맡에 몇 권 남는다면 아침 저녁으로 신문이오하고 나를 찾아주는 그 꼬마에게 주고 싶다.

장례식이나 제사 같은 것은 아예 소용없는 일 요즘은 중들이 세상 사람들 보다 한술 더 떠 거창한 장례식을 치르고 있는데 그토록 번거롭게 부질없는 검은 의식이 만약 내 이름으로 행해진다면 나를 위로하기는커녕 몹시 화나게 할 것이다.
평소의 식탁처럼 나는 간단 명료한 것을 따르고자 한다. 내게 무덤이라도 있게 된다면 그 차가운 빗돌대신 어느 여름날 좋아 하게 된 양귀비꽃이나 모란을 심어 달라고 하겠지만 무덤도 없을 테니 그런 수고는 끼치지 않을 것이다.

생명의 기능이 나가버린 육신은 보기 흉하고 이웃에게 짐이 될 것이므로 조금도 지체할 것 없이 없애 주었으면 고맙겠다.

그것은 내가 벗어버린 헌옷이니까 물론 옮기기 편리하고 이웃에게 방해되지 않을 곳이라면 아무데서나 다비(화장)해도 무방하다.

사리 같은걸 남겨 이웃을 구하는 일을 나는 절대로 하고싶지않다.

육신을 버린 후에는 훨훨 날아서 가고 싶은 곳이 있다.
어린 왕자가 사는 별 나라 같은 곳이다. 의자의 위치만 옮겨 놓으면 하루에도 해지는 광경을 몇 번이고 볼 수 있다는 아주 조그만 그런 별나라.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으로 봐야 한다는 것을 안 왕자는 지금쯤 장미와 사이좋게 지내고 있을까.

그런 나라에는 귀찮은 입국사증 같은 것도 필요 없을 것이므로 한번 가보고 싶다.

그리고 내생에도 다시 한반도에 태어나고 싶다.
누가 뭐라 한대도 모국어에 대한 애착 때문에 나는 이 나라를 버릴 수 없다.

다시 출가 수행자 가되어 금생에 못 다한 일들을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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