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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한국 술 문화 by Prof. John Linton

2012.11.17 15:21

임현재*65 Views:3942

한국 술 문화

by Prof. John Linton

15년 전 일이다. 미군 의무사령관의 방한을 앞두고 한국 군 의무사령관이 통역을 부탁해 왔다. 나와는 잘 모르는 사이였지만 한미 우호 증진에 기여할 수 있다는 의무감에서 수락했다.

한국 사령관은 경상도 출신 소장이었고 미국 사령관은 대장이었다. 한국 사령관은 멀리서 온 손님을 남산의 한정식집으로 데리고 갔다. 양측 참모를 포함해 20명 정도가 모였다. 식사가 나오기 시작하고 별다른 대화 없이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한국 사령관이 말했다. “폭탄 합시다.” 그는 앉은 순서대로 폭탄주를 세 차례 연속으로 돌렸다. 통역인 나 역시 금세 정신이 오락가락해졌다.

미국 사령관이 말했다. “저희 일행 중 여자 참모가 여럿 있는데 제가 미국에서 이렇게 했다가는 일주일도 안 돼 실직할 겁니다. 그만하시지요.” 한국 사령관이 답했다. “여긴 미국이 아니라 한국이니 괜찮습니다.”

폭탄은 계속 이어졌고, 우리는 모 호텔 노래방으로 자리를 옮겼다. 술잔은 계속 돌았고 분위기는 뜨거워졌다. 어느 순간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미국 사령관이 대단히 행복한 표정으로 비틀스의 노래를 신명 나게 부르고 있는 것이었다.

이 장면을 본 한국 사령관이 말했다. “오늘 술의 위력을 봤습니까? 영어 할 필요 없습니다. 이렇게 친해지는 겁니다.”

몇 년 뒤 당시 동석했던 참모와 만나 그날 일에 대해 물었더니 “그렇게 재미있게 놀고 즐겼던 추억은 처음이었다. 한국에 대해 너무나 좋은 인상을 받았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기독교 선교사 집안에서 태어난 나는 술을 엄히 금하는 분위기 속에서 자랐다. 의대에 입학해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때 처음으로 술에 취해 봤다. 한국의 술 문화는 처음에는 대단히 생소했지만 이후 30년 동안 각종 술자리에 마지못해 끌려다니면서 한국에서의 술자리란 독특한 방식으로 서로 소통하는 방식임을 깨닫게 됐다.

한국 남자들은 기본적으로 초중고교 동창 외에는 아무도 믿지 않는다. 어린 시절을 같이 보낸 죽마고우라고 하면 서로 목숨까지 걸 정도의 정을 나눈다. 그 외에는 거의 ‘남’이다. 이런 ‘남’을 죽마고우에 가깝게 만드는 과정이 한국의 술자리다.

한국 남자들은 취하기 위해 술을 마신다. 값비싼 발렌타인 30년산 위스키를 맥주에 타서 빨리 마셔버리는 민족은 내 경험으로는 지구상에서 한국 사람뿐이다. 내 조상이자 발렌타인 위스키를 만들어내는 스코틀랜드 사람들은 한 모금 한 모금 술맛을 음미하면서 마신다.

한국 남자들이 취하려는 이유는 어린아이처럼 되기 위해서다. 술뿐 아니라 밴드를 불러서 노래까지 부르는데, 술자리에서 한국 남자들은 누가 더 유치하게 노는지 쟁탈전을 벌인다. 의학적으로는 이 과정을 퇴행(regression)이라고 부른다. 이 과정을 통해 사람들은 다시 어린아이가 된다. 그리고 자리에 함께 모인 ‘남’들과 어린 시절의 축소판을 경험하면서 친해지는 과정이다.

새롭게 구축된 관계의 확인은 다음 날 아침에 이뤄진다. 거의 필름이 끊긴 상태에서 잠들었다가 고통스럽게 일어난 뒤 서로 “나, 많이 먹었지?” 하면서 “그런데 우리 같이 하는 일, 그것 좀 잘 부탁해” 하는 순간 ‘남’으로서의 허물은 완전히 벗겨진다.

한국 여성들에게는 이런 문화가 없다. 술을 못 먹는 사람들에게도 이런 문화가 없다. 술을 먹지 않는 사람들은 사소한 다툼을 벌인 뒤 포장마차에서 30분이면 해결할 일을 1년 동안 끌기도 한다.

한국의 술 문화는 좋은 점도 있지만 의사로서 봤을 땐 몸이 망가지고, 술에 중독될 수 있는 위험천만한 문화다. 술자리 말고 다른 방법으로 친해지는 방법을 시급히 찾아야 한다. 나를 포함한 모든 이들에게 딜레마겠지만 함께 해답을 찾았으면 한다.

인요한(존 린튼)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가정의학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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