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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시사평론] 타이거 맘과 대전 아줌마

2011.03.03 06:45

임춘훈*63문리대 Views:26300


임춘훈 컬럼


타이거 맘과 대전 아줌마"

임 춘 훈,  언론인, 전 한국방송공사 미주지사 사장


며칠 전 한국에서 사업을 하는 후배 K사장이 LA를 다녀갔습니다. 이곳에 살다 90년대에 한국으로 역이민해 간 그는 1년에 한 두 차례 오렌지카운티에 사는 아들 딸을 만나러 옵니다.

K회장의 딸 부부와 막내아들은 변호사입니다. 외동딸의 남편인 사위는 잘 나가는 변호사로, 미국 유수 금융회사인 직장에서 받는 연봉만 백만불입니다. K회장의 부인이 지난해 말 크리스마스 선물을 딸 부부한테서 받았는데, 한국서 2억원을 호가한다는 메세데스 벤츠 500시리즈였다네요.

자식한테 벤츠는커녕 싸구려 도요타 한 대 얻어 탄 적이 없는 나의 박복(薄福)을 한탄하며 부럽다는 시늉을 하자, K회장은 이런 말을 들려줬습니다.

“…… 형, 근데 그게 아니더라구요. 사위가 돈 많이 주는 회사에서 시달리는 꼴이 장난이 아닙디다. 크리스마스 이브는 물론 12월31일 밤까지 집으로 잔업을 가져와 날밤 새며 일을 하더라구요. 연봉 백만불이 딸아이 부부의 행복을 과연 담보해주고 있는지… 2억원짜리 벤츠는 우리 부부가 팔자 좋게 타고 다녀도 되는 건지, 혼란스럽더라구요…”

지난 1월 중순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이 워싱턴을 국빈 방문하던 무렵 미국에서는 이른바 ‘타이거 맘’을 둘러싼 논쟁적 담론이 오프라인과 온라인 매체를 뜨겁게 달궜습니다.

‘타이거 맘(호랑이 엄마)’은 호랑이처럼 무섭게 자녀를 닦달하는 중국계 미국인 엄마들의 스파르타식 교육방법을 이르는 말이지요. 예일대 로스쿨 교수인 중국계 미국인 에이미 추아가 펴낸 책 <호랑이 엄마의 전승가>와 월스트릿 저널에 발췌 소개된 <왜 중국 엄마들은 우월한가?>에 타이거 맘의 마르치알레 승전가(勝戰歌)가 소개되고 있습니다.

장모한테 2억원짜리 통큰 크리스마스 선물을 준 내 후배 K의 사위가 바로 타이거 맘의 닦달에 시달리며 공부를 해 연봉 백만불짜리 변호사가 된 중국계입니다.

추아 교수의 ‘타이거 맘’이 <월스트릿 저널>에 소개되자 온라인은 들썩댔습니다. 열흘 남짓 동안 100여만명이 이 글을 읽었고, 만여 건의 댓글이 올랐지요. 댓글 중 다수는 타이거 맘의 아동학대 수준의 교육방법을 따를 수도, 따라서도 안 된다는 부정적 반응으로 채워졌습니다. 고양이를 발로 걷어차기만 해도 ‘동물 학대죄’로 징역살이까지 해야 하는 미국에서, 타이거 맘들의 ‘만행’ 수준의 교육 방식이 폭넓게 정서적 공감을 얻기는 어렵습니다.

헌데, 이어지는 자문(自問)에 미국 부모들은 그만 혼란스러워졌지요. 아이도 어쨌든 성공은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아이를 응석받이로 키우는 미국의 교육 방식이 과연 옳은 건가? 호랑이 엄마 밑에서 자란 아이들과 경쟁해 내 아이가 과연 이길 수 있을까?

추아 교수는 타이거 맘을 중국 엄마뿐 아니라 한국, 일본, 인도 엄마들까지 포함해 ‘아시아식 교육’이라는 일종의 글로벌 개념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하자는 대로, 좋아하는 대로 키우는 미국 엄마들의 양육법보다 호되게 교육시켜 성공하는 1등 인재로 키우는 아시아 엄마들의 양육법이 훨씬 낫다는 주장이지요. 추아 교수가 쓴 타이거 맘 교육법 사례 중엔 미국 엄마들을 기절시키고도 남을 이런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친구 집에서 하룻밤 자는 ‘슬립 오버’ 절대로 안 됨. TV 시청과 컴퓨터 게임도 금지. 성적은 올A여야 하고, 연극 같은 학교 내 활동 절대 불가.

-큰 딸이 일곱 살에 잘 연주한 피아노곡을 둘째 딸이 같은 나이에 자꾸 틀리자 1주일 내내 닦달. 매일 저녁 식사 후 물도 안 주고 밤늦게까지 연습시켜 마침내 피아노 독주회서 성공.

-한 사교 만찬에서 큰 딸이 나이스하지 못했다며 “이 쓰레기(garbage) 같은…”하고 야단을 치자 주위의 미국 엄마들은 기겁을 하고 줄행랑.

ABC방송의 간판 앵커 주주 장(장현주)은 미국에서 가장 성공한 한국계 방송인입니다. 그가 맡은 <굿모닝 아메리카>는 매일 500만 가구가 시청하는 아침방송 최고 인기 프로그램이지요. ‘타이거 맘’ 논쟁이 한창 뜨겁던 무렵 주주 장은 에이미 추아 교수와 인터뷰를 가졌습니다. 인터뷰에서 주주는 작심한 듯 이런 말을 했다지요.

“… 나도 타이거 부모 밑에서 호랑이 새끼로 교육 받았지요. 허지만 내 아이들은 그렇게 키우고 싶지 않네요. 명문 아이비리그 대신 중위권 대학에 들어가 그들이 더 많은 기회를 갖고 뛰어난 능력을 발휘했으면 해요.…”

주주는 엄마 대신 아빠한테서 호된 교육을 받았습니다. 단 한 과목이라도 A를 못 받으면 혼쭐이 나는 ‘타이거 댓(dad)’의 극렬 교육을 받으며 고교 시절 발군의 학업성적과 리더십으로 학생회장까지 했습니다. 이어 스탠포드와 하버드대 동시 합격, 졸업 후에는 유명 방송인으로 에이미상 수상 등 승승장구하며 성공한 캐리어 우먼이 됐습니다. ABC방송 프로듀서 때 WNET의 닐 샤피로 회장과 결혼해 상류 명문가정까지 이뤘지요.

헌데, 주주는 요즘도 늘 정서적으로 불안정하다네요. 어릴 때 부모로부터 받은 정신적 외상이 아직도 아물지 않고 그녀를 괴롭히고 있는 것 같습니다. “호랑이 아버지의 교육을 받으며 나는 항상 자신을 혐오했고 불안하며 우울했다”면서 “아버지는 늘 내가 이기고 정복하고 남을 물리치길 바랐지만, 나는 내 아이들 만큼은 좋은 삶을 살도록 편안하게 교육시킬 것”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2 월16일 조선일보 박종세 뉴욕 특파원과의 대담 일부>

* * * 미국 이민사회에 타이거 맘이 있다면 한국엔 요즘 ‘대전 아줌마’들이 뜨고 있습니다. 대전 아줌마는 ‘대치동에 전세 사는 아줌마’의 줄임말로, 자녀 교육을 위해 강남 대치동 등 학군 좋은 부자동네에 위장 전입해 들어가 사는 현대판 맹모(孟母)를 일컫는 말입니다.

얼마 전에 타계한 소설가 박완서 선생의 어머니는 대전 아줌마들의 대모(代母) 쯤 되는 분입니다. 박완서가 세살 때 남편을 잃은 어머니는 무작정 서울로 올라와 삯바느질 등 막일로 딸을 교육시켜 서울대까지 진학시켰습니다.

딸을 좋은 학교에 보내기 위해 무학(無學)의 이 어머니가 짜낸 꾀가 바로 위장 전입 수법이었지요. 현저동 산동네에 전세를 살면서 딸은 부자동네인 사직동에 사는 것처럼 친척집 주소로 위장 전입시켰습니다. 박완서라는 이 시대 위대한 작가의 탄생은 맹모 어머니의 위장 전입이라는 이 위대한 불법(不法)에 뿌리가 닿아 있는 셈입니다.

강남 대치동은 방 한 칸의 전세값이 1억원이나 된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위장 전입용 가수요 때문에 3-4백 스퀘어피트 정도밖에 안 되는 공간을 단지 잠시 빌리는 값이 10여만불이나 된다는 얘기지요.

이곳 남가주에도 가령 학군이 최고로 좋다는 풀러톤의 집값은 길 하나 차이를 두고 옆 동네보다 몇 만불, 몇 십만불이나 더 비싸답니다. 한국서 이민 온 LA판 ‘대전 아줌마’들이 몰려들면서, 베버리힐스 급의 높은 주택 가격이 형성된 것이지요.

요즘도 LA 국제공항에 나가보면 자녀교육 때문에 왔다는 신참 이민자 가족을 심심찮게 만나게 됩니다. 단기비자를 얻어들고 자녀의 조기유학을 도우러 입국하는 기러기 엄마들의 행렬로 줄지 않고 있습니다. 추아 교수 같은 타이거 맘은 물론 오바마 대통령까지 기회 있을 때마다 개탄해 마지않는 게 미국의 후진적 교육 시스템입니다. 제도뿐 아니라 학업 성취도, 교사의 질, 학부모의 교육열 등 어느 것 하나 제 자리에 놓여 있는 게 없습니다.

그런데도 오바마가 입만 열면 칭찬하고 부러워하는 코리아에서, 해마다 수만명의 ‘교육 난민’이 미국으로 몰려들고 있습니다. 대치동에 전세 살 능력이 없는 사람들이 꿩 대신 닭처럼 찾는 곳이 미국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요즘 1주일에 한두번 손녀딸 레베카의 라이드를 주고 있습니다. 벌써 초등학교 1년생이 된 레베카를 학교 앞에 내려놓으며 “have fun-재미있게 놀아라”하고 bye를 합니다. “공부 잘 해라. 선생님 말씀 잘 듣고…”의 ‘미국 버전’이 바로 have fun이지요.

주주 장의 소망처럼 나도 내 손녀딸이 즐겁게 놀고, 적당히 공부하며, 편안하고 행복한 삶을 이어갔으면 좋겠습니다. 세상에서 만나는 모든 것들과 싸워 이기고, 정복하고, 물리치고, 그래서 마침내는 이기는 치열한 삶의 공식이 그 애만은 피해갔으면 좋겠네요.

손자만 보면 공부 잘 하라고 달달 볶던 할아버지가 있었지요. 100점짜리 시험지를 받아오지 못하면 무섭게 야단을 쳤습니다. 아들 부부가 불만스러워했지만 ‘타이거 그랜드파’의 이 끔찍한 손자 사랑은 굽힐 줄 몰랐습니다.

어느 날 할아버지는 법원으로부터 영장 한 장을 받았습니다. 손자 ‘접근 금지명령’이었다네요. 미국인 며느리가 법원에 고발을 한 겁니다.

LA카운티 쉐리프국에 근무하는 한 요원으로부터 직접 들은 어느 코리언 호랑이 할아버지의 슬픈 이야기입니다. 미국은 때로는 이렇게 ‘고약한’ 나라가 되기도 합니다.

<2011 년 3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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