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프로스트 II
피천득
미국 현대의 최대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Robert Frost. 1874 - 1963) 는 1874년 생이다. 그러니까 금년이 1백 년이 되는 해다.
그를 처음 만난 것은 1954년 크리스마스 이브였다. 하버드 대학 하워드 존스 교수가 프로스트와 나를 자기 집에 초대하였다. 그날 밤 늦도록 우리 세 사람은 문학 이야기를 하였다.
프러스트의 거친 손은 그가 농부였다는 것을 말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오래 띠어서 헐어졌으나 아직도 튼튼하게 보이는 그의 혁대는 그가 소박하고 허식이 없다는 것을 나타내었다.
그는 이상스러운 철학을 갖지 않고 지성을 뽐내지도 않았다. 그는 자신에 대해 말하기를 자기의 농장을 좋아하고 젊은이들에게 이야기 하기를 좋아하는 그저 평범한 사람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시인은 누구보다도 정직한 사람이라야 한다고 하였다. 프로스트는 자연시인이다. 그러나 그는 다만 자연을 감상하는 시인은 아니다.
시인이 되기 전에 그는 농부였다. 그는 촌 사람과 같이 살아왔다. 그의 시골은 미국 동북방 뉴잉글랜드다. 그의 자연은 아름답고 온화한 것이 아니고 땅이 기름지지도않고 돌이 많은 차고 황량한 자연이다.
이 자연을 읊은 그의 목소리는 언제나 고요한 목소리다. 그의 자연은 묵화로 그린 겨울 퐁경과도 같다.
그는 자연의 시인인 동시에 그 자연 속에서 사는 인간의 시인이다. 인생의 슬픈 일을 많이 본 눈으로 그는 애정을 가지고 세상을 대한다.
프로스트는 땅에다 뿌리를 박고 가지에다 꽃을 피우게 하였다. 때로는 리얼한 낭만이 숨박꼭질하며 때로는 갈등도 있으나 그는 이두 갈래를 원만히 융화시킨다.
프로스트는 순진하고 소박한 시인이다. 그의 말은 쉬운 동사를 쓰며 형용사를 많이 쓰지 않는다. 그리고 자기가 믿는 바를 독자에게 강요하지 않으며 자기와 같이 진리의 기쁨을 나누자고 친절한 초대를 한다. 그의 시를 읽을 때면 마음이 놓이는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 같다.
나도 한 때는 백화나무를 타던 소년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시절을 꿈꿀 때가 있습니다.
내가 심려(心慮)에 지쳤을 때
그리고 인생이 길 없는 숲속과 너무나 같을 때 얼굴이
달고 얼굴이 거미줄에 걸려 간지러울 때 내 눈 하나가
작은 나뭇가지에 스쳐 눈물이 흐를 때
나는 잠시 세상을 떠났다가 다시 돌아와 새 시작을
하고 싶습니다.
운명이 나를 잘못 이해하고
반만 내 원(願)을 들어주어
나를 데려갔다가 다시 돌아오지 못하게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아 세상은 사랑하기에 좋은 곳입니다.
더 좋은 세상이 있을 것 같지 않습니다.
<자작나무> 에서 ㅡ
그를 마지막, 지금 생각하면 영영 마지막 만난 것은 내가 보스턴을 떠나던 날 오후였다. 전화를 걸었더니 곧 오라고 하였다.
그는 자기 집 문 앞에 나와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우리들의 우정에 대한 몇 마디 말과 서명을 한 시집을 나에게 주고 나를
잊지 않을 것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헤어질 때 나를 껴안고 오래 놓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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