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3.24 08:19
https://m.youtube.com/watch?v=avqPWV6Gal4
(2014 제주 MBC 4.3 특별 기획; 음악 다큐멘터리: 산, 들, 바다 노래)
제주도는 지방자치 단체 권한으로 4월3일을 공휴일로 하기로 결정 했다.
국가의 공휴일로 해도 제주도민의 한을 풀어 주기에는 부족 할 텐데, 이와같은
결정을 정부는 다른 지방과의 형평 성 때문에 반대 한다고 한다.
1948년4월3일 부터 휴전 후 1954년 까지 계속 된 공산주의자 토벌 이라는
명목으로 제주인구의 적어도 10%(?)에 달 하는 사람들이 학살 되었고, 산 중턱에
있는 집들은 전부 불 태워 없어 졌으 며, 이를 견디 다 못한 사람들은 보트 피플이
되어 일본으로 피신 했다. 이중에 많은 사람들이 조총련에 협조 하게 되었다.
해방후 인민 위원회 중심으로 제주도가 운영 되어서 행정 기구나 경찰력이 잘 먹혀
들어 가지 않자 미 군정과 이승만은 서북 청년단 등 우 편향 테러 단을 동원 하여
폭력으로 사태를 수습 하려는 졸속 한 정책으로 아무 것도 모르는 양민 들이 부지기수로
희생 되었다.
1954년 후에도 제주도민은 함구 해야 했다. 이 사건에 관련된 사람 들은 모두 보안법 위반
이기 때문에 사람 행사를 할 수 없었다. 4.19 후에 이 진상 조사를 요구 하는 학생 데모대의
등살에 장면 정권이 진상조사를 약속 했었으나, 5.16후에 묵살 되었다.
노무현 정부 때 정부 차원에서 제주도민에게 정식으로 사과 했다. 미국이 얼마나 깊숙히
관련 돼 있는 지는 잘 모른 다. 그러나 진상을 밝혀서 잘못이 확인 되면 적어도 사과는 받아내야
한다고 생각 한다.
위 비디오는 사건 당시에 불렀 던 노래와 그 사건을 겪었던 생존자들을 방문 하여 들은 이야기를
엮어 놓았다. 슬픈 역사이다.
2018.03.24 16:16
2018.03.25 04:03
I had visited 제주도 a few times and I liked it very much. But it is mindbugling that
I did not know about 4.3사건 at all. It was just one of the best tourist attraction in Korea
to me. No one told me or taught me about it. Perhaps the whole country was silenced.
If a nation does not love its own people, the people will abandon the country. Unfortunately,
Korean people in Japan could choose one of two and they did.
2018.03.26 01:11
4.3 사태에 대하여는 한국 정부, 여야가 합의 compromise 한 공식 report, 또 제주도민
에 대한 노무현 대통령의 사과가 있었고, 유적 발굴, 보상등이 진행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국내외 역사학자들의 논문도 여러가지 있는 듯, 시간 날 때 마다 읽어 볼 예정이다.
역사를 들여다 볼 때 힘들고 골치 아픈 것은 과거를 어떻게 청산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인 듯 하다. 특히 제국주의의 제물로서 일제강점기를 겪은 후
해방후 혼란기, 격동기에 좌우 대립으로 수많은 무고한 사람이 희생된 사건,
제주도 4.3 사태, 여수순천 사건 들을 지금 돌이켜보고 또 깊이 파고 들면, 어느 개인
또는 집단의 잘 잘못을 구분 꼭 집어 따지기 더 쉽지 않다.
민족적으로 불행한 일이였지만, 역사적으로 이러한 사건이 일어날 여건이 당시 한국의
해방정국에 형성되어 있었지 않았나 생각이 들때가 많다.
제주도 사건만 해도 이차대전 말기 본토 방어작전 준비로 많은 일본 군대, 무기등이
제주도, 한라산에 흩어져 있었고, 본토에 소개(疏開)되어 나가 있던(제주도는 전라남도의 일부),
또 일본에 이주해 있던 6-7만 명의 제주도민들이(Many of them intellectuals) 해방직후 귀국
식량난, 사회적 혼란속에 민란은 쉽게 일어날 여건이었고, 여기에 남로당세력이
합류/준동했을 것이며, 해방직후 입지가 취약했던 친일 경찰, 청년단들의 과잉진압으로 수많은
양민이 희생되었을 것이다. 군경측에도 계엄사령관등이 잔인하게 살해되는 등 비극을
겪었다고 알려져 있다.
그리고 기록들을 좀더 자세히 드려다 볼수록, 더 슬픈 것은 좌익 우익 모두 천박하고
잔인한 범죄적 행위들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고, 이에 우리는 더 우울해질 수 밖에 없다.
역사에서 과거 청산 문제를 논의할 때(위안부 문제이던, 4.3 사태이던, 군부 독재시절의
수많은 희생자 문제----), 가끔 인용되는 것이 “남아프리카의 자전거 화해 이야기”이다.
얼마전 읽은 책에 나오는 이야기로 사람이름은 잊었다.
소년 A에게 아끼는 자전거가 있었다. 어느날 힘센 친구 B 가 자전거를 훔쳐가서
학교며 여기저기 몇 년 타고 다녔다. 힘없는 A는 아무 말 못하고 있었다.
어느날 B 가 A 를 찾아와 과거를 잊고 화해하자고 손을 내밀었다. A 는 내
자전거는 어떻게 되는거냐고 물었으나, 자전거 얘기는 모르겠다. 잊어버리고-- 그저
화해하고 앞으로 잘 지내고 싶다는 이야기만 하고 있었다. 역사적 사실들을 개인 level 에서
humanize 하면 판단은 더욱 힘들어 진다.
.
2018.03.26 08:01
I agree with you wholeheartedly. Dr. Cho!
2018.03.26 12:15
http://www.jeju43peace.or.kr/report_eng.pdf
(Jeju 4.3. Incident investigative report, 2012)
한국 정부 4.3 사건 조사단 영문 보고서 입니다. 무려 750 page 가 넘 습니다.
This is not Rebuttal to your opinion, nor Argument,
but I want to say What is Jeju Island to me.
1. Jeju Island came to my life when I was a Sophomore, Jinju HS.
After we climbed Jirisan (1915 m), we wanted to conquer Hanllasan (1950 m)
following year, but failed due to Typhoon and we had to go back home after campiong
at the Haewundae Beach.
2. Jejudo was forgotten since then until I came to USA.
One Summer, my brother-in-law arranged our family trip to Jejudo when my parents were alive.
That was the first time I visited Jejudo in my life and I loved it, loved more than Hawaii and I wrote
as my essay on the Korean newspaper in NY. I went back to Jejudo a few more times since my first visit
and again, I wrote on the Korean newspaper as I saw, as I felt about Jejudo.
3. Because of those essays, I received Honorary Citizenship from Governor of Jejudo in 2006 as the
first Korean living overseas. Since then and my impression about the Island, I wanted to Retire to Jejudo,
if I Retire and I wrote several times about what I shall do, if I retire to Jejudo - a kind of escape from reality.
4. Recently, I received a letter from a SNU College of Engineering graduate, 10 years older than me.
In his letter he wrote his experience while he was Drafted to North Korean Army and his training to
dispatch to Jeju Uprising (1948 - 1949). He wrote North Korean Military Songs/ Lyrics while he was
serving. Unfortunately, I can't transcribe here on our webpage. I can send you as A Proof by mail, if you
want.
5. As my conclusion, it is Sad, very sad that we have to go through these Dark Days of Our Korean History
over and over again instead of talking about Bright and Hopeful Our Future at least for our young generations
to come.
Someday, I wish all these sickening elements of our past history Wiped Out to the Ocean of Jejudo
And Washed Away for No More!!
FYI;
Jeju Uprising
http://en.wikipedia.org/wiki/Jeju_upris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