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8.16 06:08
단성사 주변의 추억-1 단성사에서 비원 쪽으로 가까운 종로구 와룡동 38-1 번지, 70여년 전의 꼬마 소녀. 소 달구지가 큰 길과 골목길을 누비고 다녔다. 나의 집에서 쭉 내려가면 단성사 근처 골목길, 달구지는 잠깐의 휴식, 소는 여물을 먹으며 거침없이 분변도 흙 땅에 해결하며. 이곳에서 더 종로4가 종묘 쪽으로 뚫린 '술레꼴'은 어찌 된 셈인지 한 때 문둥이(당시에 제가 들은 대로의 용어를 그대로 기록했습니다.)가 어린이 간을 내어 먹는다고 소문 난 으쓱한 골목이었다. '삼광유치원'도 이 근처에 있었다. 가세가 기울어져가는 아버지는 유치원 가고 싶다고 졸랐더니 "유치원 개학 안 했다."고 계속 되풀이 하신다. 드디어 나는 유치원에 가 보았다 "개학하여 삼광유치원 마당 가득 아이들이 놀고 있어요." 어린이 말에 웃으시며 나를 유치원에 입학시키신 아버지. 언니, 오빠들 여러 손을 거친 옆구리에 메는 '벤또우바꼬'(도시락 그릇)가 칠이 희끗희끗 벗겨져 좀 창피했지만 어쩔 수 없던 우리 집 형편이다. 그래도 학예회 때 말 없고 수줍어하는 나를 선생님께서 뽑아주셔서 독창한 것은 "---시집가는 색시처럼 해만 지면 수그려요." 하는 해바라기 노래였다. 9남매를 기르시는 집안의 나는 8번째의 소녀, 어느날 무엇을 잘못 했는지 어머니에게 쫒겨났다 골목길을 왔다 갔다 했는데 소가 먹고 있는 구수한 여물냄새, 소가 질질 흘리며 씹고 있는 온통 입 주위의 침 냄새까지 함께 구수하다. 콩도 섞여 있었는지. 나는 허기가 져서 집에 들어갔다. 어머니가 다시 또 나가라고 안 하셨나 보다. 구미 땅기던 소여물 냄새와 비슷한 콩나물에 밥을 비벼 먹으니 이제 여물 먹는 소가 더 이상 부럽지 않았다 한국 깡퉁 치마 앞의 아궁이에, 안 가는 탁상시계를 숨겨 가지고 가서 단성사 정문 위에 높이 걸려 있는 커다란 시계에 맞추고 오곤 하였다. 뛰어 돌아와서 시계를 맞추면 몇 분은 차이가 나서 정확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근대에는 어느 누가 손에 무엇을 들고 다닌들 떳떳한데 그때에는 조그마한 물건도 일일이 보자기에 싸서 가지고 다녔기에 치마 아궁이에 손을 넣어 시계를 가리고 갔을 것이다. 단성사의 뒷골목에는 설렁탕 집이 있어 들통 뚜껑을 앉히어, 소금, 파, 고추가루와 함께 받아 오는 설렁탕으로 점심을 가끔 맛있게 밥 말아서 먹었다. 냉면 배달은 커다란 널 판지 같은 엉성한 쟁반에 어릴 때는 대야라고 생각될만한 큰 그릇의 냉면을 7-8개도 거뜬히 놓고 곳갈 모자 형의 생철 뚜껑을 씨워서 한 손으로 높이 바쳐 들고 자전거를 한 손으로 운전하는 모습은 가관이다. 한 그릇에 20전 이었던가, '永勝館'이란 중국집에서 자장면 배달이 오면 먹는 것보다는 수타한 탄력 있는 긴 국수를 하늘높이 치올리며 자장과 섞던 즐거움, 지금도 군침이 돈다. 고물상 지나다가 그때 그 중국집 자장면 그릇 두 개를 20여년전에 이가 빠져 있지만 비싸게 주고 집에 두고 보면서 옛 일을 되새긴다. 인사동길 지나다가 "옛날 자장면." 간판에 반가워 들어가니 달기만 하고 전혀 그것이 아니었다. 그럴 수밖에, 현대인의 솜씨에서 어찌 그 옛 맛을 바라겠는가. 소고기 10전어치 사러 심부름 가면 선풍기가 이리 저리 왔다 갔다, 너무 신기하여 선풍기 도는 방향 쫓아 얼굴을 들이대고 땀을 식혔다. 고깃간의 소의 피 비린내 가득한 시원한 바람이다. 나지막한 흙담 집에 아무렇게나 낙서와도 같이 색색으로 쓰인 "목로 집" 들. 지게꾼 등 드나들며 막걸리와 함께 요기하고 즐겼을 '선 술집'이었겠지. 지나다가 드려다 보면 그런데는 창문도 잘 없었는지 어둠컴컴 하였다. "워이쌰 둥둥" 구경, 이것은 왜정시대, "간나메사이", "니이나메사이" 등의 축제 때에 "오미꼬시"(신령이 나들이 할 때 타는 가마)를 모시고 하는 호화스런 행렬이 비원 앞을 지난다. 머리에는 '하찌마끼' 여전하다. 학생들의 '하다교-레쓰'(히노마루노하다 들고 행렬), '죠-찡교-레쓰'(고학년은 등을 들고 행렬하고)도 구경거리이다. 오후 한-두시에나 지나가는 행렬에 새벽부터 비원 앞에 자리잡고 앉아 턱을 받치고 기다렸다. "오미꼬시" 지나갈 때는 캬라멜도 곽으로 뿌리며 간다. 어리숙한 소녀는 그것 주슬려는 엄두도 못 낸다. 아흔 아홉칸 나의 집 앞대문에서 골목을 한참 빙- 돌아가면 뒷골목에 조그만 뒷 대문이 된다. 그 근처에는 하수구가 있었는지 시궁창 냄새도 진동하고 그쪽 안 골목은 작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비스듬이 맞은 편 큰 대문에는 '鄭用國'이라 쓰여진 문패가 지금도 생생하고, 당시 서울대 치대교수 이셨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나하고 삼광유치원, 경기여고의 동기동창인 '정능구'와 서울대 동문이신 두 분, 정형외과의사 '정우구', 산부인과의사 '정좌구' 선생님의 춘부장이시다. 뒷 골목에 살고 있는 기생들은 가끔 얼굴에 ‘박가분’을 뽀얗게 바르고 인력거를 탄다. 여름이나 겨울이나 인력거꾼은 발에 앞이 갈라진 일본 '지까다비'(활동적인, 창도 얇은 신인데 검은 천으로 된 것이 발목 위까지 올라옴)를 신고 앞의 손잡이를 안에 서서 잡고 자못 뛴다. 국일관 등 요리 집에 초대 받아 노래 몇 가락씩 뽑고 오는가 보다. 우리집 안방에 앉아 있노라면 이들 기생들의 "석탄~ 백탄~ 타는데---"등 husky한 걸걸한 노랫가락 소리가 곧 잘 들려온다. 내가 노년에 국악원에 시조 등 노래 배우러 쫓아다닌 것도 이런 옛 추억에서의 그리움 때문일까. 밤에는 "딱-. 딱-" 하고 치며 가는 딱따기, 말하자면 야간의 방범 내지 방화순찰. 나는 이 소리 들으면 식구가 많은 데도 이불을 뒤집어 썼다. 딱~ 딱, 치고 다니는 존재가 사람과 귀신의 중간으로 나에게 상상되어 무서웠지만 한번 보고도 싶었는데, 끝내 어른과 함께라도 나가서 그 정체를 확인 못하였는데 근래 Chicago에 살고 있는 작은 오빠 왈, 와룡동집 행낭아범이던 일서아범도 밤에 딱따기를 하였다고 들어 궁금증이 좀 풀렸다. 마당에서 언니들이 널 뛰면 나는 그 가운데 장작을 안에 가득 넣고 둘 둘 말은 돋음 가마니 붙잡고 웅크리고 앉아 이쪽 저쪽 높이 올라가는 언니들을 부럽게 쳐다 보았다. 이 꽃 저 꽃 순서 없이 마당 화단에 가득 핀 시골 꽃밭 연상되는 꽃들, 그 중 분꽃과 백일홍이 지금도 내 머리 가득하다. 봉숭아 백반 섞어 쪄서 손가락 마다 언니들이 피마자 잎 잘라 동여 주면 초저녁, 일러도 무조건 이부자리 속에 들어갔다. 내일 아침 빨리 깨서 물든 것을 보려고 빨리 자야만 더 짙게 봉숭아 물이 잘 들여진다고 착각 했나보다. 틀림없이 2-3개는 자다가 동여맨 것이 빠져 달아나 흐리게 물들어 있기가 일수이고 물들은 손가락의 피부는 얼마동안 조글조글하게 되어있다. 그 마당은 겨울에는 아버지가 수도 물을 호-스로 가득 뿌려 얼리시어 mini-skate장이 되어 여러 남패의 겨울방학 놀이터이다. 사촌들도 와서 함께 skate 타고 놀기도 하였다. 내 키보다 큰 장독이 즐비한 장독대 옆 묶어놓은 염소 두 마리, 오후 3시면 행낭 어멈, 아범이 염소 젖을 짜서 끓여 식구 수대로 컵에 부어 오면 그 윗면에 뜨는 curd를 숟가락으로 걷어 먹는 것이 나의 즐거움이었다. 한 사람은 염소 다리를 붙잡아야 하고 한 사람은 손으로 젖을 짜면 슉- 슉 나오는 젖은 양동이에 담겨진다. 나는 쭈그리고 옆에 앉아 이 광경도 가끔 지켜보았다. 뒤꼍, 염소들 있던 장독대와 옆에 나란히 있는 세 개의 방 사이에는 목욕탕(불은 밖에서 장작을 지피고), 오로지 커다란 쇠가마솥만 들어 있는데 그 옆 조그마한 마루에 옷을 벗어놓고 뜨거운 가마솥에 둥둥 떠있는 커다란 둥그런 널 판지(당시의 일본식일 것이다)를 균형 잡히게 한 중간을 잘 밟으면서 들어가야 한다. 잘못하면 널판지가 물위에서 훼까닥 뒤집힌다. 아이들부터가 아니고 어른부터 차례로 목욕하고 나온다. 대중탕, 기억나는 그 이름 '수은탕'도 길 건너 있었는데 그래도 집에서 하는 가족탕이 때가 둥둥 떠도 더 낫다고 생각 되었는지. 마루 큰 기둥 두 끝에 고무줄 묶어 놓고 혼자 놀자니 심심하여 그것도 잠깐이다. 그 마루에 내가 심술이 나면 아침부터 저녁 몇 시까지라도 진종일 가만히 그 자리에 서있었다는 이모의 얘기. 안방, 건넌방, 뜰아랫방이 있는 텅 빈 사랑채의 마당에서는 소꿉 놀이를 하였다. 사람이 거의 드나들지 않고 비워두어서 그런지 마당에 이끼가 많이 끼어 있었다. 이 이끼 냄새가 옛 향수로 젖어 그 언제까지 덕수궁안의 궁 건물 뒷마당을 거닐며 이끼 냄새를 맡으며 옛 집 사랑방을 생각하였다. 대문에서 문지방 서너 개 건너서의 사랑채 앞에서 안을 향하여 "일어나라!" 하며 수염 쓰다듬는 손님, 그러면서 옛 양반들은 헛기침도 잘 하신다. 그런 손님들이 아버지 친구이셨는지, 그 분들 앞에서 아버지에게 배운 천자문도 외우게 하시며 아버지는 가르쳐 주시는 대로 내가 잘 받아들여 기분이 좋으셨나보다. 하루는 자고 깨니 어느 장농 위 높은 데서 'J-O-D-K-' 하더니 사람의 소리가 어느 box속에서 막 들려온다. 아무리 보아도 그 속에 사람 들어앉아 있을 법은 안 하는데, 그것이 '라지오'(Radio의 일본발음) 란다. 신기하기 짝이 없었다. 방은 넓고도 넓었는데 귀한 것이라고 그렇게도 장농위 높은 곳에 모셔 놓았을까. 얼마 있다가 종로통 전차에서 내려 종로3가에서 비원 앞까지 가는 Bus가 생겼다. 전차에서 갈아타는 표, "노리까에껭"을 받아 버스에 오르면 되는 것이다. 전차에서 차장이 뭇 정거장이 표시되어 있는 구형의 얇은 종이에, 목적지에 구멍을 punch해 준다. -조금 더 계속됩니다. ->단성사 주변의 추억 -2 |
2011.08.16 06:16
2011.08.16 11:39
2011.08.16 12:23
김창현 선생님,
저와 차이가 많으신 연배이신데 단성사 주변의 옛 기억이 떠오르시는군요.
지금에 비하면 문화 문명의 혜택이 그리 크지 않았던, 소박하였던 그 때가 좋았습니다.
2011.08.16 14:39
깜짝 놀랐어요. 선배님, 그리고 반갑습니다.
70여년전의 종로 3가 근처의 정겨운 풍경, 잘 읽었읍니다. 나는 종로3가와 4가 사이 바로 북쪽에있는 연지동에서 낳아, 자랐기에 모든 것이 기억에 새롭군요. 10년전에 그곳을 가보았더니 전혀 알아볼수 업게 변해 버렸더군요.
문선배님 그리고 신옥하선배님도 안녕하시겠지요.
여기 와서 산지도 40년이 넘고. 오는 10월엔 우리 대학졸업 50주년 기념행사를 한다기에 서울을 방문하렵니다.
2011.08.16 15:05
김영철 선생님,
저도 지금 선생님 답글 뵙고 매우 기쁩니다.
Ob. & Gyn. training 받을 때의 선생님 모습이 생생한데
이제 50년세월이 흘렀지요.
제가 지금 Bethesda, MD에 잠깐 딸 집에 약 한 달째 와서 머물고 있는데
그 사이에 한태호선생님은 세상을 뜨셨다고 하고
신옥하 선생은 별안간 뇌경색으로 집에서 가까운 모대학병원 ICU에 119로 실려가서
13일째 투병중입니다. 좀 호전 되는듯 하지만요.
이곳에 오신지 40년이 되시면 서울에 가끔 가시더라도 많이 변했음을 느끼시게 되겠지요.
연지동이면 바로 서울대병원도 가까운 곳에서 오래도록 계셨군요.
Dr. 문도 그런대로 잘 있고 대학에서는 물론 15년전 retire했고
지방의 모 종합병원에서 자신에게 알맞는 일로 소일하고 있습니다. 오래는 계속 안할 것이지만요.
선생님, 내내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기를 바랍니다.
2011.08.16 16:00
지금 Bethesda 따님댁에 와 계시는 군요. 건강하시다는 것으로 알아 듣겠읍니다.
신옥하선생님의 쾌유를 빕니다.
따님댁에서 좋은 시간 가지시고, 내내 건강하십시오.
2011.08.16 16:31
2011.08.17 05:53
2011.08.17 08:30
Sukjoo 후배님,
반갑습니다.
일일이 인사를 못 들여 그렇지만 서울대 의대 동문 사모님들께서
저희들 모교 출신들이 많다고 알고 있는 중,
사모님께서도 그러하시군요.
여기 글에 있는 와룡동에는 제가 네 살때 이사를 왔다고 하는데 저도 그 전의 집, 사직동 330번지에서 태어났다고 합니다.
사직동 생각도 좀 납니다. 뚜렷한 것은 제가 없어졌다고 난리가 났다가 저를 집안에서 찾았는데
어느 방에서 한 살 위 외사촌언니와 컴컴한 방에서 벌거벗고 소꿉놀이를 하고 있었다고 하여 두고 두고 그때부터 잊혀지지 않습니다.
종종 뵈옵게 되면 저도 기쁠 것입니다.
즐거운 날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011.08.18 01:39
2011.08.18 02:37
이기우 후배님,
꼬마 때 기억이 저는 더 생생합니다.
결혼하고, 짝을 만나면 생활이 꼭 혼자보다는 쉽지만은 않은 환경에서,
아이 다섯을 생기는대로 7-8년간 주르르 낳아 직장 다니며 생활하여,
결혼 후의 일이 더 가깝게 생각나야 하는데 이 생활은 거의 다 잊고 꿈결만 같습니다.
자라던 옛날 추억, 국민교, 경기 6년간 그리고 대학에 다니던 일들만은 아직도 너무도 뚜렷하군요.
경가회 카페에서 변혜경47 후배님이 몇년전 '단성사의 ----------' 라고 올렸길래 답글로 썼던 것인데
이곳에 들어와 맨숭맨숭 인사드리기가 죄송하여 옮겨다 올렸습니다.
운영자님께서 저의 올린 글의 배경을 잘 정돈해주신 것 같습니다.
꼬마 사진은 당시 미국에의 수출용^^(?)으로의 한국 여자 아이의 사진입니다.
[당시 아버지가 교편 잡고 계시던 배화여고의 여자분 선교사께서 미국에 다니러 가실 때
한국아이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고 하여 어머니, 아버지가 저를 데리고 가서 찍혔는데 사진관에 갔던 생각이
여렵풋이 납니다. 물론 당시 흑백사진 밖에 안 나올 때인데 그래도 사진관에서 색동저고리의 이메지를 그럴듯하게 했군요. 치마의 무늬도 제가 생각이 납니다. 우단구두가 당시 아동의 외출용으로~. ]
후배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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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전에 고등학교 동문 홈에서 어떤 후배가 단성사 얘기를 올려 답글로서 올렸던 글로,
동문홈과 관련사이트에 올렸던 것입니다.
그곳의 것을 복사하여 그대로 올리니 행간등 잘 정리가 안 되어 있어 죄송합니다.
운영자님, 그리고 선후배님,
이곳에 고등학교 동문 이기우후배님 소개로 들어오자 곧 운영자님께서 정회원으로 등업하여주신지 며칠 밖에 안 되었습니다.
인사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