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8.20 20:39
그 때 -6, 의대 1,2학년 . 광복동 골목에서 가까운 미 문화원 근처 어느 나즈막한 건물, 1층의 강의실에서 수업을 하였다. 1학년에는 해부학이 머리를 가득 메운 과목이었고, 생리학 생화학 의사학 등이 수업 과목이었다. 생화학은 엄격한 표정이셨지만 다정한 분이신 것 같다. 벤졸의 구조 그림으로 거북이 달린 여러 구조물들, 드려다 보면 머리가 혼잡해진다. 의예과 끝날 봄 무렵부터 생화학이 어려운 것으로 생각되어 구하기 어려운 책(저자 赤松,あかまつ)을 언니가 해방 후 군정시대 농림부의 미국고문관, Mr. Tom 이란 분 밑에서 일할 때 일본에서 주문하여 구해주어 연필로 공부한 흔적을 남겨가며 남보다 조금 앞서 공부해둔 덕에 꾀 여러 명이 걸리는 재시험을 면할 수가 있었다. 공부란 언제나 친구들보다 조금만 앞서면 더욱 재미있어지고 조금씩 뒤떨어지기 시작하면 늘 질질 끌려가는 기분으로 짜증난다. 해부학은 암기해야 하는 것이 너무 많아 힘들었다. 더구나 두개골에 대해서는 그 명칭들이 너무 많다. 특히 신경에 관해서 그러하고 이름만 외울 것이 아니고 어디서 시작하고(Origo) 어디에서 끝나는 것인가(Insertio)까지 외우려니 머리가 뻐개지는 것 같다. 두개골 실물 가진 친구가 어쩌다가 하나씩 있으면 그것을 하루밤 빌려다가 여러 친구가 합숙하며 밤 새우고 공부하고 돌려주곤 한다. 차츰 세월이 가니 후에는 두개골 모형이 제조되어 판매되고 있어 의대생에게 편리해진 것을 알았다. 예습해서 시험을 매일 아침 치루는데 틀리는 답은 -3점 감점 점수로 되어 어느날에는 -12점 점수를 받기도 하였다. 서울의대 이명복교수의 유창하신 강의를 생각하게 된다, 나복영교수께서 여의대(고려의대의 당시의 호칭)에 재직하시면서 달필로 흑판 앞에 스셔서 강의하셨다. 이화의대, 여의대와 서울의대가 합동으로 대신동에서 더 멀리 가는 ‘괴정’이란 장소, 나무로 된 가건물이 세워져 있는 데서 해부학실습을 하면서 강의도 함께 들었다. Cadaver는 전시이어서 行旅患者들도 많았을 것이고 하여 현재보다도 오히려 혜택을 받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엄숙히 몸을 제공해 주신 그분들께 감사 드린다. 약 12 구의 시신이 table 마다 회색 – 국방색 담요가 덮어져 엎드려 있었다. 한 table에 12 – 13 명이 한 실습조로 구성된 것으로 기억된다. 우리 table에서 담요를 걷는 순간 나는 숙연히 바라보았다. 열 두-세 살 정도의 나이로 보이는 소년이었다. 한참 씩씩하게 자라다가 어찌하여 이렇게 우리들 앞에 엎디어 있는지. 자연사인지 피난통에 부모와 헤어져 우여곡절 끝에 이런 몸으로 되었는지. 어머니가 생존해 계시다면 이 일을 알고 계시는지. 일찍이 하늘나라로 가셔서 이 장면을 내려다 보실까. 아마도 천국에 온 아드님을 반갑다고 껴 안고 계시는지. 후자라면 가장 좋은 일이다. 노출되어 있는 순서에 따라 근육부터 공부가 시작되었다. 사람의 몸의 살덩어리인줄만 느끼던 ‘살, 근육’이라는 개념이 너무도 무색하게 해부학은 그것들이 그곳에 붙은 이유, 기능 등 한량없는 뜻을 품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내면으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그리고 두개골 안에 담긴, 뇌는 물론 그를 지배하는 신경, 거기에 분포된 靜,動脈 등 하느님께서 일일이 이룩하시는 신비체임을 아니 느낄 수 없었다. 어느 무엇 하나라도 털끝만치라도 잘못되면 일생이 불편하게 되는 장애자들에 대하여 생각하게 된다. 생리학은 醫史學은 김두종 교수께서 재미있게 강의 해 주셨다. 의학발전의 역사도 중요한데 우리들 의사들은 바쁜 생활에 골몰하느라고 미쳐 그 분야에 기여를 많이 못하고 있지 않나 하는 아쉬움도 있다. 2학년 되어 몇 사람이 함께 단안(單眼))현미경을 쓰게 된다. 또한 많이 암기해야 하는 과목이 약리학인데 게으름 피다가, 사실은 실제로 암기하는 것이 너무 안되고 싫어서 어느 때의 약리학 재시험 치른 일이 있다. 병리학은 이제구, 이제구교수님께서는 “지난 번에도 말씀드렸습니다만---, 앞으로도 말씀 드리겠습니다만---“ 듣기 좋은 tone으로 한 시간 강의를 원만히 마치시곤 하셨다. 미생물학은 시꺼먼 것 손에 뭍혀가며 수동으로 sticky한 ink로 찐득거리는 roller를 팔에 힘을 주어 밀면서 조교 선생님들이 오직 애쓰셨을까? 그 잉크도 알맞게 적당량 묻게 하는 그것도 기술이었겠지. 강의실 들어오셔서 드이어 알려주시는 정답도 학생들 아무도 정답으로 생각 안 되는 것, 그것이 참으로 정답이겠지만. 철저하게 모든 것을 해야 한다는 교육을 교수님께로부텨 철저히 받았고 Streptococcus, Staphylococcus 등 균도 심어 보고 배양해 보고 하여 한번 본 것이 백번 들은 것보다 낫다는 것을 실감한다. 한탄 Virus를 발견하신 이호왕교수께서 조교로 계셨는데 예방의학은 심상황교수, 김인달교수님께서 강의를 해주셨다. 심상황교수께로부터 실제로 유용한 질병방지 내지 사고방지에 대한 말씀을 많이 들었다. 내가 나이 들어 계단 내려가다가 끝나는 시점에서 계단과 평지의 구별의 색깔이 확실하면 몹시 고맙고 희미하여 나도 더듬거리다가 발길이 안정되면 그때 그래서 그 교수님이 그 강의를 하셨는데—하고 늘 생각난다. 김인달 교수께서는 강의실에 들어 오시면 약 5분간은 오-케스트라, 음악 얘기 등 꺼내신다. 영화구경에 대한 얘기도 “조조 활인되는데--- “ 하고 조조부터 강의 열심히 듣는 학생들 앞에서---. 좀 강의를 빼먹어도 취미생활도 중요하다는 말씀이신가 보다. 각박한 의대생에게 마음의 여유를 주시니 좋았다. 하루는 “ 점심 시간이라고 있기는 하였는데 그 시간이 짧았는지, 그 앞 동숭동 거리 어느 식당을 왔다 갔다 한 생각이 전혀 없다. 사실 식당이 많지 않은 중에 후에 산부인과 수련 때도 중국집 배달이 기억나는 ‘진아춘’ 이란 이름의 식당만을 알고 있다. 지금도 그와 똑 같은 중국집은 바로 그 자리가 아닌 곳에 있던데, 대대손손이 하는지 주인은 벌써 바뀌었는지 알 도리 없다. 그러나 어느 일부 학생을 제외하고는 지방에서 온 하숙생도 많았고 6,25 전쟁 停戰 후, 서울에 환도하고 미쳐 이것 저것 질서도 안 잡히고 일반적 우리들의 생활이 화려할 수가 없었던 시대이었던 것은 확실한 일이다. 그 때- 7 3, 4 학년, 임상 소감 (끝) 2학년까지는 고교 6년 동안과 다름 없이 하로 종일 똑 같은 장소에서 똑 같은 학생이 함께 강의를 들었다. 3한년과 4학년에는 하루에 반 정도는 강의실에서 강의 듣고 반은 임상실습으로 환자들을 대하였다. 흰 까운을 입고 청진기도 준비하고 학생신분이지만 사회에 나가 일하는 입장이다. 우선 환자에게 병에 대한 병력을 청취(history taking)한다. chart에 대략 하기 좋게 묻는 항목이 있지만 교수님들에게는 쓰는 것에 따라 만족 못하시는 일도 있을 것 같았다. 중요한 것을 놓치고 쓰지 않으면 환자 진료에 차질마저 생길 수도 있다. 내과의 경우 나는 청진기로 청진하는 것이 어려웠다. 폐에 이상이 있어 변화가 있을 때도 그렇지만 심장질환에서의 비정상적인 음은 더욱 그러하였다. 더구나 울음을 그치지 않는 소아환자들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소아과의사들에게 더욱 존경심이 갔다. 각과 병실을 도는 중에 산부인과 병동에서 산과에서 아기가 탄생하는 일은 너무도 즐겁고 신기하였다. 빨간 아기가 나와서 아-ㅇ 아- 하며 바르르, 때로 혀도 떨리듯 움직이며 입 버리고 우는 모양은 웃는 것보다 더 예쁘다. 재빠르게 양수를 빨아내고 탯줄 양쪽을 단단히 차단하고 제대를 실로 묶어서 양수, 피 등을 닦고 방포에 쌓여 신생아실로 갈 무렵에는 아기는 눈을 감고 조용해진다. 내과병동에서 복수가 찬 간경변 환자들, 복수를 빼도 또 차고 원인을 알고도 잘 치료가 안 되는 장기 입원환자는 안타깝다. 소아에서 삶에 희망이 없는 희귀한 질병에 시한부로 모자가 얼싸 앉고 정겹게 병실 생활을 하고 있는 정경은 더욱 마음이 아프다.. 응급실에 급하게 도착하여 여러 의료진에 둘러 쌓여 응급처치 받고 병실에 올라가는 경우에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데 보람도 없이 흰 홑 이불을 덮어 영안실로 가는 장면은 유가족과 함께 눈물 흐른다.. 외면하고 싶었지만 의사가 되려고 한 것이니 더 눈 여겨 볼 수밖에 없었다. 몸과 함께 마음과 정신도 무력해져 병원을 의지하고 오는 환자들, 온갖 지식과 정성으로 최선을 다하여 그 생명의 연장까지라도 해야 한다. 동숭동 문리과대학 교정에서 서울대 전체의 졸업식. 6.25동란 후 안정되지 않아 졸업 까운은 입지 않았다. 맹시선(장기간 보건소장으로 근무)의 남편이 되신 나는 졸업식 가던 날 아침, 첫 태동으로 뱃속의 아기가 엄마 아빠에게 졸업축하를 하였다. 이 아이의 임신의 입덧으로 두부장수의 외침만 들어도(개와 같이 conditional reflex: Pavlov의 종을 연상하면서) 먹은 것도 없는 쓴 구토, 공책들은 머리맡에 놓고 벼개에 침을 질질 흘리며 잠을 자면 남편은 공부 안 한다고 야단친다. 졸업 시험을 엉망진창으로 보았다. 그러나 이날 이때까지 의학에 대한 일들을 남편과 더불어 미약하지만 손 놓은 적이 없다. 신세대의 의사들을 비록 따라가지 못하더라도 ---. 결혼식은 |
2011.08.20 20:49
2011.08.20 22:27
Thank you for bringing me back a few names I am familiar with,
especially Prof. Sung Ki-joon. The rest?
I hope I see you Kim sun-saeng-nm( with respect ) time to time
with other stories of your life.
2011.08.20 23:18
2011.08.21 05:45
김 선배님의 기억은 정말 "기막히게 훌륭하십니다".
본인도 물론 거의 똑같은 과정을 거쳐서 살고 교육받었지만 그당시를 이렇게는 기억 못하지요.
이렇게 옛날 기억을 다듬어 어딘가에 "써놓았다"는것에 보람을 느끼시겠지요.
정말 좋은 글들입니다. 우리 홈피가 존재하는 이유에 보람이 되는 자료들이지요.
본인도 옛날 기억을 되씹으며 재밋게 읽었군요.
글도 잘 쓰셨지만, 여기는 우리의 "사랑방"이니만큼 문학적 으로 잘쓴글도 좋지만
허심탄회하게 자기의 맘속과 추억을 털어놓는게 더 중요하지요.
선배님의 글이 우리 홈피에 남게된것을 감사드립니다.
혹시 연속편이 더있으시면... ㅎ, ㅎ, ㅎ.... 본인 욕심에 더 계속해주시면 어떨가 기대해봅니다.
“사노라면 흐린 날도 있으리라."
만일 누군가가 흐린날이 없었던 인생을 살었다면, 그것을 산 보람이 있을가요?
그 많은 흐린날들이 오늘의 우리를 만들어 낸것이지요.
2011.08.21 07:14
방준재 선생님,
비록 연대의 차이는 있으셔도 저와 공감대를 가질 수 있는 후배선생님들이 계셔서 행복합니다.
선생님께서 올리신 글에 글을 잘 읽고도 comment를 못 하고 있습니다.
영어가 부족하여 대략 알 것도 같은데 행여 내용의 핵심을 잘못 catch하고
엉뚱한 댓글이 될까봐 그렇습니다.
올려주신 글들을 감사히 읽고 있습니다.
김창현선생님,
읽어주시고 comment하여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글을 일사천리 생각대로 쓰면서 이런 글도 글인가, 때로 저 자신 회의를 느낍니다.
살아 가며 느끼며, 생각하며 또 그에 따른 행동, 때로는 엇가는 몸가짐등---,
세상 돌아가는 것, 다양한 사람의 삶도 큰 테두리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그런대로 수긍이 가며 재미있습니다.
늘 긍정적으로 즐거운 날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글을 빨리 읽지를 못하는 습성으로 선생님 올리신 글들을 천천히 읽고 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운영자님,
격려의 말씀, 늘 감사합니다.
네, 그렇습니다. 저의 잊지 못할 중요한 학창시절의 일들을 간략하게나마 어디엔가 써놓았다는 것에 의의를 느낍니다.
그러나 독자들 앞에 깨끗하면서도 재미있고 부드러운 글이 못되는 것이 아쉽습니다.
2년 반전에 의학분야가 아닌 분들의 홈피에 올리면서 써내려가다가 자신도 그렇고 상대방에게 의대 얘기가 지루하게 과히 흥미롭지 못할 것 같아 용두사미 격으로 임상과목, 3,4학년 시절, 교수님들 여러분의 얘기이며 쓰고 싶은 일들을 일일이 올리지 않고 황급히 매듭을 지었습니다.
그런대로 제 마음과 머리 속에 생생하고 의대 연혁과 역사에 모두 기록되어 있을 것이니 ----.
그렇습니다. 살면서 흐린 날이 없으면 사람이 살아가는 보람도 없어질 것입니다.
어디 흐린 날 뿐이겠습니까, 천둥 번개, 폭풍우 몰아치고--.
날이 갈수록 천재지변, 게다가 인재도 합친 재앙들을 이 땅, 저 땅에서 받고 있습니다.
72시간 이상도 파묻혀 있다가 구조되는 사람들의 소식도 듣습니다.
그 때의 그 사람들의 육신과 정신 고통은 어떠하였겠습니까. 오로지 그 장면을 잘 모면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살아가면서 각 사람이 나름대로 겪는 크고 작은 육체적, 때로는 육체적 고통보다 훨씬 견디기 어려운 정신적 고통을
포기하지 말고 한 고비씩 잘 넘어가면 세상 마치는 날은 영광의 날일 것이지요.
감사드립니다.
.
2011.08.21 09:18
2011.08.21 13:44
김창현 선생님,
글을 많이 쓰시고 읽고 계실 선생님께서 과분한 comment를 하여주시어 송그스럽지만 기쁩니다.
의과 교육 받으면서 그리고 환자들을 일생 대하면서 마음을 그때 그때 활짝 비워버리고
골몰히 인생살이를 되돌아보기도 하며 앞으로의 삶에 나름대로 확실히 지향해야만 하는 기회가 많았지요.
글을 어디에 많이 내놓을 입장에 있지는 않지만 어쩌다가 어디에서라도 글을 쓸 기회가 없지 않은데,
인터넷에서 어느 웹에서 댓글 한 마디라도 쓰려고 할 때라도, 글의 내용을 잘 읽고 글의 핵심을 놓치지 말아야 할텐데
때로 혼돈도 일으킬 것 같습니다.
대화에서 말 하는 것보다 글로 남기는 것은 생각하게 되고 어렵습니다마는 노력하겠습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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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영자님,
이 웹에서 허심탄회하게 마음 편하게 가지라고 하신 것 같아 졸필을 솔직하게 올려서 좀 민구스럽습니다.
이런 글 올려도 되는 것인지, 그리고 동문이시지만 미국에 몇 십년 살고 계신 선후배님들의 정서에 차이가
없지도 않을 것 같아 조심스럽기도 합니다.
저의 글 올리면 배경을 정리해주시는 것 같습니다.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