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3.05 16:53
김영랑은 언어의 마술사이고, 보석을 깎고 다듬는 세공사(細工師)처럼 언어를 조탁(彫琢)하는 시인이라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또한 그의 순수시가 음악성을 바탕으로 하고 있음도 정평(定評)이 나 있다. 따라서 그의 시를 분석할 때는 표준어로 바꾸지 말고 원문 그대로의 표기로 분석하는 것이 올바르다고 생각한다. 이 시를 원문 표기 그대로 제시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이 시는 두 개의 연으로 구성되어 밝고 맑은 봄 하늘을 바라보고 싶은 심정을 각각 노래하고 있다. 김영랑의 다른 시와는 달리 이 시에는 부정적인 이미지와 현실에 대한 어두운 인식이나 슬픔 등의 정서는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이 시는 의미 중심의 시가 아니라, 언어가 갖고 있는 음악성을 최대로 살려 ‘봄’이란 계절의 특성을 저절로 느끼게 한다. 우리말을 모르는 외국인에게 이 시를 원문대로 낭독해 주고 어느 계절을 노래했는가를 물어본다면, 해답이 저절로 나올 것이다. 또한 이 시는 ‘시(詩)’라는 한자어 하나와 ‘에메랄드’라는 외래어 하나를 제외하고 순우리말을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ㄴ, ㄹ, ㅁ, ㅇ’의 유성음과 양성모음의 활용, 두운(頭韻), 요운(腰韻), 각운(脚韻) 및 3음보의 율격 등 언어 본연의 미감(美感)을 사용하여 봄의 분위기와 속성을 기막히게 표현하고 있다. 시적 화자는 이와 같은 봄날에 하늘과 지상의 교감(交感)과 조응(照應)을 바탕으로, 봄길 위에 서서 아름다운 봄 하늘의 질서를 동경하고 있다. 아마도 한국어로 씌어진 시 가운데 음악성의 활용이 이 시를 능가하는 시는 없다고 보겠다. 따라서 김영랑의 ‘순수시’ 가운데 이 시야말로 ‘순수시’를 대표하는 시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기본 이해 항목 주제 : 봄날에 대한 느낌과 봄 하늘에 대한 동경. 단락 구성 : 참고 : 음악성의 언어를 조탁(彫琢)한 김영랑의 시는 원시(原詩) 그대로 분석하는 것이 중요하다. 따라서 이 시의 분석은 원문 그대로 분석하였음을 밝혀 둔다. 이 시의 원시는 위와 같다. 출전 : <시문학> 3호. (1931.) 시어 및 구절 풀이 돌담에 소색이는 햇발가치 / 풀아래 우슴짓는 샘물가치 ㅡ 봄날 천상과 지상의 모든 질서가 서로 교감(交感)하고 조응(照應)하여 조화의 세계를 이룬다. 따스한 봄 햇발은 돌담을 비추고 새로 돋은 풀 아래에는 샘물이 소리 내며 흘러간다. 소리없이 돌담을 비추는 햇발을 ‘소색이는’이란 표현을 통해 마치 천상이 지상에 이야기하는 것 같은 상태로 나타내고 있다. 이것을 표준어로 바꾸어 ‘속삭이는’으로 표기하는 것은 의미는 같을지 몰라도 ‘소리’가 개입하여 뉘앙스가 달라진다. ‘돌담’은 ‘흙’의 이미지, ‘햇발’은 ‘불’의 이미지, ‘샘물’은 ‘물’의 이미지를 나타낸다. 바슐라르의 4원소에 의한 이미지 분석 이론을 들먹이지 않아도 ‘흙’, ‘불’, ‘물’이 어울려 생명을 생성시키는 조건이 된다는 것은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이 세 가지 조건이 화합하여 ‘봄’이란 생명의 계절임을 조성하고 있다. 한편 제1행과 제2행은 형태상 대응 구조를 이루고 있다. ‘돌’과 ‘풀’은 두운으로, ‘소색이는’과 ‘우슴짓는’은 요운으로, ‘햇발가치’와 ‘샘물가치’는 각운으로 운율상 대응된다. 내마음 고요히 고흔봄 길우에 / 오날하로 하날을 우러르고십다 ㅡ ‘봄’이란 계절은 모든 것이 상승하고, 생동감 있게 움직인다. 들판에는 아지랑이가 아롱거리고, 겨우내 얼어 붙었던 얼음이 녹아 도랑물을 이루어 흘러간다. 새싹이 움트고 땅속에 숨어 있던 풀잎들이 고개를 내민다. 그리고 봄을 맞이한 사람들의 마음도 들뜨기 마련이다. 이와 같은 봄날의 생동하는 자연의 모습과 상황을 이 시는 음악성과 언어의 미감으로 표현하고 있다. 즉 ‘고요히’, ‘고흔’, 하로’, ‘하날’의 ‘ㅎ’음은 가벼운 느낌을, ‘고요히’, ‘고흔봄’, ‘오날’, ‘하로’, ‘하날’의 양성모음의 사용은 밝고 명랑한 느낌을 준다. 이와 같은 ‘ㅎ’음과 양성모음의 사용은 만물이 상승하는 효과를 나타내고 있다. 그리고 ‘오날하로 하날을 우러르고십다’에는 ‘ㄹ’음을 6번이나 연속적으로 사용하여 만물이 생동감 있게 움직이는 유동감(流動感)의 효과를 자아내고 있다. 시적 화자가 밝고 명랑한 봄의 분위기 속에 하늘을 우러르고 싶다는 것은 시적 화자가 놓인 현실이 어둡고 우울한 상황임을 역설적으로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새악시볼에 떠오는 붓그럼가치 / 시(詩)의가슴을 살프시 젓는 물결가치 ㅡ 김영랑이 지향하는 ‘순수시’의 성격이 이 구절을 통해 밝혀져 있다. 그가 노래하는 것은 외부 세계가 아니라, 내면에 있는 ‘내 마음’이다. ‘새악시볼에 떠오는 붓그럼’을 통해, ‘순수’를, ‘시(詩)의가슴을 살프시 젓는 물결’을 통해 ‘서정의 물줄기’를 찾아볼 수 있다. 그의 시 <끝없이 강물이 흐르네>와 <내 마음을 아실 이> 등이 모두 ‘내 마음’을 노래하고 있다. 에메랄드(emerald) ㅡ 짙은 녹색을 띤 보석. 보드레한 에메랄드 얄게 흐르는 / 실비단 하날을 바라보고 십다 ㅡ ‘보드레한 에메랄드 얄게 흐르는’은 ‘ㄷ’과 ‘ㄹ’음을 중첩하여 맑고 깨끗한 시냇물이 흐르는 느낌을 자아내고 있다. 특히 ‘보드레한’, ‘흐르는’, ‘실비단’의 ‘ㄴ’음은 여운과 부드러운 느낌을 만들어 주고 있다. |
2010.03.05 16:54
2010.03.05 16:56
모란이 피기까지는
- 김영랑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 테요
오월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 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뻗쳐 오르던 내 보람 서운ㅎ게 무너졌느니,
㉠모란이 지고 말면 그 뿐, 내 한 해는 다 가고 말아,
삼백 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우옵내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문학} 3호, 1934.4)
* 모란[牡丹] : 미나리아재비과의 낙엽 활엽 관목.(본음은 '목단')
* 하냥 : 한결같이, 줄곧
2010.03.05 19:21
2010.03.05 19:45
2010.03.06 19:10
철자법을 따르지 않은채 "우리말 그대로" 쓰여진 이 詩가 얼마나 친밀 스럽고,
말의 표현에 나타나는 묘미가 얼마나 아름다운가요?
한국에서는 이 詩를 표준말과 철자법에 마추어 고쳐서 출판해서 쓰더라구요.
미친넘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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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겨울은 유난히 어려웠던 겨울이였읍니다.
봄을 간절히 기다리는 동문들이 많은 지금 마침 적절한 詩 한편에 감사합니다.
김원호 님은 詩人입니다.
자기 자신의 詩도 쓰지만 시해설도 가끔 올립니다.
여기의 것은 그중의 하나이지요.
김영랑 시인의 유명한 詩로 "모란이 피기까지는" 이 있지요.
김영랑의 생애 (From the Internet)
김영랑(金永郞1903-1950)의 본명은 김윤식으로 1903년 전라남도 강진에서 5남 3녀 중 장남으로 출생하였다. 아명을 채준이라 불리다가 윤식(允植)으로 개명하였다.
'영랑'은 필명으로 시문학 창간호에 처음 사용하였다. 그는 유복한 유년시절을 보냈으며 1909년에 강진보통학교에 입학하고 1915년에는 졸업을 하였으나 부친의 반대로 진학을 하지 못했다.
1916년 결혼을 하고 모친의 배려로 서울 기독교 청년회관에서 영어공부를 하게 되었으며 최초의 비운인 아내와의 사별을 하게 되었는데 이는 후에 그의 작품에 많은 영향을 끼치게 된다.
강진 보통 학교를 마치고 서울에 올라와 휘문 의숙을 다니다가 3.1운동으로 6개월간의 옥고를 치렀으며, 이 일로 휘문 의숙을 중퇴한 김영랑은 일본으로 건너가 학업을 계속하였다. 그러나 관동 대지진이 일어나 다시 학업을 중단하고 강진의 자택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강진에서 무료한 생활을 하고 있던 영랑에게 송정리의 벗 박용철이 찾아와 시 전문지를 같이 내자고 제안했다. 박용철은 오랜 숙의 끝에 사재를 털어 [시문학] 창간호를 1930년에 발간하게 된다. 1930년은 김영랑의 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그 해 3월에 간행된 [시문학] 창간호에 13편의 시를 한꺼번에 발표하며 시단에 화려하게 등장하였다. 그리고 같은 해 5월에 나온 [시문학] 2호에 9편의 시를 발표하였다. 말하자면 그는 20편이 넘는 작품을 1930년 두 달 동안에 한꺼번에 발표했던 것이다.
김영랑의 시는 당시 문단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1920년대 중반 이후 카프를 중심으로 쓰여 진 경향시는 생경한 사상성과 경직된 목적의식을 주로 드러냈기 때문에 당시의 시단은 서정시의 본령을 보여 주는 김영랑의 시에 깊은 인상을 받았던 것이다. 이로써 시에 대한 인식이 새롭게 변화하였고 시란 무엇인가에 대한 방법적 자각을 가지고 시를 쓰는 사람들이 늘어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