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8.06 05:22
장소; Williston Seminary, Easthampton, Massachusetts. 이 사진은 나의 선친께서 10년간의 미국 유학시기에 찍었던 학급사진이며 장소는 Boarding School, Williston Seminary의 건물정면이었다. 선친은 뒷줄 우측 끝으로부터 세 번째 학생이다. Exhibit 2 : 본인과 아들 Henry Chung의 사진 - 1985년 여름방학, Easthampton Town Library의 정문 > 이 사진과 Exhibit 1에 나오는 건물외곽은 완전히 동일하다. 옛 학교 건물은 없어지고 거기에 새 학교 건물로 대치되었다. 그리고 학교이름도 변경되어 Williston Academy였다. 그런데 이 부분은 보존되어 우리 부자가 촬영차 방문하였을 때에는 Town Library였다. Exhibit 3: Williston Seminary 본관 정문촬영 백주년 가족기념일 - 2013년 8월 31일 2013년이 선친의 학급사진 촬영이후 100년이 되었다. 선친께서는 1954년에 숙환으로 62세로 대구에서 돌아가셨다. 한국전쟁 휴전 다음 해였다. 나는 1967년에 미국으로 이주하여 두 아들을 가졌고, 그들이 각각 가정을 갖고 각 가정에 손자 하나 손녀 하나씩 되어 모두 모이면 우리까지 합쳐서 열 명의 대가족이 되었다. 이리하여 본인, 두 아들 그리고 손자 이렇게 넷이서 학교를 방문하여 Director of Alumni Relations, Mr. Jeffrey Pilgrim을 만났고 또 그가 우리를 위해 Campus Tour를 한 후 다시 우리를 데리고 학교 Campus에서 도서관입구까지 갔다. 이제는 학교이름은 남녀공학이 되어, Williston Northampton School이고, 도서관은 Emily Williston Memorial Library이다. 여기서 우리 네 명을 Mr. Pilgrim이 사진을 찍어주었다. 건물과 입구는 똑같은데 사진 좌측에 시설이 생긴 건 장애인을 위한 Handicapped Access이다. Exhibit 4: Full View of Emily Williston Memorial Library의 입구, 2013년 8월 31일 Exhibit 5: Our couple in front of this entrance - 2014년 6월 19일 설명 우리가 오래간만에 New England tour 한 후 귀가하는 길에 6월 18일에 Northampton에 위치한 Clarion Hotel에서 하룻밤 자고 19일 오전에 다시 들러서 학교동창회사무실과 도서관입구에서 사진을 찍었다. 내가 이곳 방문하기 네 번째이고 집사람은 두 번째로 왔지만 도서관입구에서의 사진은 처음이다. 100주년 기념일 August 31, 2013에 Campus Tour 할 때 찍은 사진 몇 장 아래에 싣는다. Exhibit 6: Zachs Admission Center - Williston Northampton School, 2013년 8월 31일 Exhibit 7: Entrance to an indoor Gym - Williston Northampton School, 2013년 8월 31일 Exhibit 8: With Mr. Jeffrey Pilgrim in front of an old building - Same School, 2013년 8월 31일 Exhibit 9: Memorial Hall - Williston Northampton School, 2013년 8월 31일 Exhibit 10: Old School House - Williston Northampton School, 2013년 8월 31일 Exhibit 11: 조부님 환갑사진, 연도 1935년 조부님 환갑사진인데 바로 그 뒤에 선 분이 아버님. 그 우측 분이 어머님이시고, 조부님 품에 있는 소년은 내가 아닌 막내 삼촌이었고, 내가 태어나기 2년 전이었다. Exhibit 12: Father’s picture of himself in front of a stone wall, 1925(교정 1923) Left 선친의 사진이 거의 없다. 원래 사진 찍기를 좋아하지 않으셨기 때문이겠지만, 그보다도 전쟁당시 1951년 1월 4일 서울시 철수 때 남쪽으로 걸어서 떠났고, 1953년 여름에 휴전된 후에도 귀가하지 못하다가 1954년 3월 초 아버님 장례 끝내고 귀가하니 집을 비우고 도적과 약탈자의 만행으로 집은 쑥밭이 되었고, 여기 저기 널렸던 것을 모았기에 쓸만한 건 다 없어졌기 때문이다. 우선 두 번째 미국에 오셔서 찍으신 사진 두 장이 있는데 아마 1925년(교정 1923년)으로 짐작하고 함께 찍으신 분은 아마 이희경 선생님으로 추측할 뿐이고 그 위치는 분명이 Manhattan의 Westside에서 Hudson River가 보이는 장소임이 틀림없는데 어떤 사람은 이 사진을 보고 대번에 Riverside Church라고 하였는데, 아마 New Yorker라면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아버지의 제2차 도미, 연도 1925(교정 1023)이었으니 그 해에 찍으셨던 사진임에는 틀림없다. 배경은 Manhattan에서 Hudson River를 등지고 찍은 사진이며 유명한 교회의 담이라고 하는데 혹시 Riverside Church의 담이 아닌지? New Yorker는 쉽게 알것이라고 하는데 혹시 아는 분도 있을 거라고 믿는다. Exhibit 13: Father and his friend at the same place. Exhibit 12와 같은 사진인데 친구같은 분과 함께 찍은 사진이다. Right 그 분이 혹시 독립유공자 이희경선생님이신지 궁금하다. 앞으로 더욱 찾아보려고 하며 발견하면 추가할 계획이다. … Exhibit 14: Father with Dr. Lee sitting at a bench, 1923 Exhibit 15: Father with another friend, 1923 결국 같은 해 2015년 1월 초에 이 넉장 사진의 위치를 발견하고 추후에 여러차례 방문하였고, 또 그 같은 자리를 찾아 나의 사진 몇 장을 추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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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8.06 08:43
2014.08.06 22:32
Thank you for sharing your late father's hidden story, sunbaenim.
Here are few facts about your late father's hometown, Jinju, Korea
- which is mine too. If you didn't have chance to visit there after
you left Korea, I wish my presentations help you ease your nostalgia.
1. Tour around Jinju City, Korea;
http://www.youtube.com/watch?v=7ZoAD3d5D8s
( in full screen mode )
2. Jinju City Now;
http://en.wikipedia.org/wiki/Jinju
3. More of Jinju City and My Friend, Essayist Jeong Mok-il;
http://jinjuhighschool.com/mukpil/34514
PS;
I am very sorry I couldn't clean garbages scattered around
my presentations due to my poor computer technic. Thanks.
2014.08.07 08:50
정관호 선생님,
선친의 옛 발자취를 찾어서 란 제목으로 논문 정리하듯 올리신 글을 잘 읽었습니다.
저와 6년 차이이시만 저희 시대의 여러가지 것을 떠올리게 됩니다.
저의 아버지도 선친 어른과 비슷하게 1892년 생입니다. 조부님 회갑사진 1935년 사진을 뵈오니
저희 가족사진 그 해에 찍은 것과 같은 분위기이지요.
어리실 때 "춘호"라고 불리우셨나봐요.
저희 아버지는 일본 유학시
선친께서는 장장 30일 동안을 배로 미국으로 유학길에 오르신 일 등,
참으로 그 시대에 우리나라의 향학의 열을 가지신 개척자이셨습니다.
어리실 때부터 가족을 떠나서 어렵사리 도미하시어 노력하신 고뇌를 가히 짐작할 것 같습니다.
요즘 대한민국에서 날이 갈쑤록 윤리도덕이 땅에 떨어져가는 이 때,
팔십점을 더 선호하신 것으로 말씀하신 일화가 매우 마음에 와닿습니다.
인성교육을 받는데 있어, 성적 올리며 공부하는 과정에서 둥글둥글하게 충실함이
오로지 공부벌레에 앞서야 하므로 입니다.
선생님 다음 대, 그리고 손자 손녀님께도 가족력으로서 좋은 교훈이 되리라고 믿습니다.
정관호 선생님 또한 도미하시어 오늘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애쓰셨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온 가족 모두 함께 행복한 앞날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귀하고 귀한 글과 사진, 감사드립니다.
***63년 졸업에 동명이인 金聖心 선생이 계셨지요. 저와 고등학교도 동문이고
졸업후 서울대 산부인과 수련도 연배 차이를 두고 동일합니다.
인제대 산부인과 교수, 이홍균교수도 동기이시리라고 생각합니다.
2014.08.08 08:54
2014.08.08 16:47
오랜 옛 이야기가 펼쳐진 김에 아래 댓글을 올립니다.
우리 선조들의 미국 출입의 발자취.
http://blog.naver.com/lala0724/150012987274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129&contents_id=4615&category_type=series
春谷 林蚩正은 저의 외할아버지 입니다.
좀 젊었을 때 모습:
어릴 때 외할아버지가 미국에서 쓰다가 가져오셨다는 (짐들이 선편으로 왔겠지요.) '미국뒤지' 라고 우리가 불렀던 반다지 같은 것이 저희 집에
있던 기억이 있습니다.
제가 태어나기 1년 1개월 전, 제가 어머니 뱃속에 생겨나기도 전에 52세 연세에 뇌출혈로 사망하시어 집안식구로부터 말씀만 많이 듣고
노년이 되어 新民會사건, 105인 사건 등에 대하여 책자 들을 구입하여 보았지요.
일화입니다:
저의 아버지를 남강 이승훈 선생께서 부르시어 갔더니, 임치정 선생에게 가보라고 하시어 찾아뵈었답니다.
임치정 씨 왈, "내 큰 딸이 자네를 수발할 걸세!" 하시더랍니다.
아무소리 못하고 얼마 있다가 저의 어머니가 될 분 댁에 놀러갔더니 색시가 될 사람은 절대로 안 보여주고 밥만 맛있게 먹이고 돌려보냈다고 합니다.
결혼날 저희 아버지는 '고물 두루마기'를 1월 50전이라고 하시던가 사 입고 장가 가던 날, 처음으로 아내 될 사람, 저희 어머니를 보셨답니다.
"그래 어떠셨어요?" 하였더니 "입술이 두툼하더라"고 하십니다. 다른 것은 마음에 드셨다는 말씀인지.
요즘 같으면 있을 수 없는 일.
2014.08.08 20:15
Who are we as Korean-Americans?;
http://en.wikipedia.org/wiki/Korean_American
Images of Korean-Americans;
http://search.aol.com/aol/image?q=korean+american&v_t=client97_searchbox
2014.08.08 23:02
Dr. Bang,
They look nice.
Korean are doing everywhere abroad.
I believe our country, Korea will become stronger by all of the people's efforts.
2014.08.11 12:08
우연히 찾게된 부친님의 발자욱을 더듬으며, 무척 감격하셨으리라는 것을 우리 모두 같이 느낌니다.
정 선배님의 부친께서는 One of the very few Korean American으로
미국유학의 선구자가 되시는군요.
지금은 하나의 전설이되는 이야기입니다.
그때의 어린 연세에 미국유학의 꿈응 실천하셨다는 용기가 경이롭습니다.
그때의 모든 기록과 사진이 남아있었다면 얼마나 좋을가 합니다.
그러나, 그 아들되시는분이 애써서 건진 자료와 부친님에 대한 멀고 먼 추억를
우리와 함께 나누어 보며 같이 느낄수있는 기회를 주심에 심심히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