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0.20 11:53
(MBC: 거문고와 백도)
(천사대교)
(신안군 비금도)
일본 나가사끼 여행을 계획했으나 한일갈등으로 그곳 여행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평상시에는 부산에서
40분, 인천공항에서 한시간반이면 갈수 있는 데 요지음에는 돌고돌아 6-7시간이 걸긴다고 한다. 일본여행
대신에 전남 신안군과 거문도-백도를 가보기로 했다.
KTX는 용산에서 SRT는 수서에서 출발한다. 전자는 강북에서 후자는 강남에서 출발하는 고속 열차이다.
숙소에서 가까운 SRT를 타고 목포로 향했다. 2시간 반만에 목포에 도착하니 오전 9시반이다. 목포에서
버스를 타고 천사교를 건너면 자은도이다. 1004개의 섬이 신안군이다. 다리의 이름이 1004를 “천사”로
읽어서 주어졌다고 한다. 유명한 홍도와 흑산도도 신안군에 속해 있다. 김대중 대통령, 바둑왕 이세돌이
이곳에서 출생했다. 자은도 종착역에 도착하니 12시 조금 전이다. 근처 음식점에 들어가 매운탕을 시켰다.
근처 바다에서 잡은 싱싱한 생선을 기대 했으나 크게 실망했다. 그저 반 마른 생선 몇 토막이 전부였다.
택시를 불러 타고 한 두 시간 둘러 본 다음 비금도로 이동하기 위해서 남강 부두에 도착하니 오후 3시 쯤도이었다.
배를 타고 약40분 정도 걸려 비금도에 도착했다. 택시를 전화로 불렀다. 섬 관광하는 데 5만원 이란다. 40대 중반
의 운전사는 주위 경치 그리고 곳곳에 담긴 이야기들을 좋은 언변으로 설명해 주었다, 약 3시간에 걸쳐서 관광을
마치니 벌써 해가 져서 어둑어둑한 저녁이다. 저녁 또한 그저 허기를 매꿀정도의 음식이었다. 운전사가 안내하는
여관에서 하룻밤을 자고 다음날 아침 배를 타고 남강으로 이동, 버스로 천사교를 건너 목포로 나왔다.
버스, 배에서 바라보는 경치, 섬 해안의 바다 풍경은 정말 기가 막할 정도로 좋았다. 그러나 외지인을 대하는 섬 사람
들의 표정과 반응은 요지음 도시사람들과 대조적이었다. 길을 물어 본다든가 무엇을 알아 보기위해서 말을 걸면
얼른 대답이 돌아 오지 않는다. 그리고 약간 퉁명스러운 어조로 짤막하게 답이 돌아 온다. 돌아 보는 도중 택시에 합승
한 어느 노인의 과거 이야기에서 그 이유를 찾아 볼 수 있었다. 사변 때 이곳 인구의 반을 양쪽에서(좌, 우) 죽였 다고
한다. 올봄 발칸 반도를 여행 할 때 현 주민들의 표정을 연상 했다. 섬인구의 대부분이 노인들이다. 이들에게 좋은
음식점과 관광사업은 꿈나라의 전설일 것이다.
목포에서 여수는 남해안 고속도로로 연결되어 있다. 20여개의 터널을 통과하여 거의 직선으로 달린다. 2시간 정도 걸려
서 여수에 도착했다. 여객선 터미널에 도착하니 배 떠나기 15분전이다. 불야불야 표를 끈고 줄을 서서 배를 바라 보니
“조국”이라는 배 이름이 눈에 들어 온다. 하필이면 조국이 여기까지 따라 오다니... 나중에 민박 아저씨가 알려 주었지만
세월호 주인이었던 유병헌이 이배의 주인이었다고 한다. 세월호 사건후 안전 수칙이 강화 되어 하루 4번 운항이 두번 으로
줄어 거문도 경제가 큰 타격을 받았다고 한다. 두시간정도 걸려 거문도에 도착했다. 터미날에 가까운 일본식 민박집에
들어가니, 곧 백도 관광선이 출발한다고 귀띰 해준다. 빠른 걸음으로 유람선 선착장에 도착 배에 타니 거의 배안이 만원이다.
경상도 사투리가 왁자지껄하다.
약2시간 걸려서 백도에 접근했다. 동쪽으로 가는 데 동풍이 불어 배가 많이 흔들렸다. 남한에도 저런 경관이 있었구나 할
정도로 아름다웠다. 뒤에서 바람을 받아 비교적 편하게 돌아오니 깜깜한 밤이다. 물어 물어 횟집에 들어 갔다. 가장 작은
희 한접시가 8만원이란다. 한참 걸려 가지고 온 회를 쌈에 싸서 입에 넣으니 도대체 씹어지지가 않는다. 대 실망이다.
2019.10.20 13:06
2019.10.20 20:56
예전에 나도 일제시절 젊은 이처럼 연락선을 타고 현해탄을 건너고 싶었다.
그래서 물어보니, 승객이 줄어들어 결국 없어졌다고 한다.
그래도 한번쯤 부산항에서 배를 타고 현해탄을 건너가고 싶다.
적지 않은 젊은이들이 허무주의에 빠져 그곳에서 몸을 던졌다고 들었기에
애수의 현해탄이 아닌가?
왜 연락선 유행가를 들으면 그때를 생각하게 되는가?
아마 내가 태어나기도 전이었겠는데...
2019.10.21 08:37
(한시성독 소동파 전적벽부)
여수에서 남원 동생 농장으로 가는 길에 구례에 사는 아는 분을 만났다.
그는 서울 대학 문리대 물리학과 출신으로 북가주에 반 구례에 반년을
산다. 62년 입학이란다. 향교에서 한문을 가르치고 중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친단다. 자신의 한문 실력을 보여 주는 데 잘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
정 선배님은 아마 이해 할 것 같아서 그의 유튜부 포스팅을 여기에 올려
본다.
2019.10.21 19:26
(중학교역사: 거문도사건과 방곡령)
1884년 갑신정변은 청이 진압. 조선은 청의 직접 지배에 들어 갔다.
고종은 국면 전환을 위해서 러시아에 접근......
조병식은 조병갑의 사촌, 조선제일의 탐관오리. 백성을 위해서 방곡령을
선포? 사실은 자기가 빼앗아갈 쌀이 부족해서...
2019.10.21 22:01
Dr. 온, 방금 이 Youtube를 잘 보았습니다. 소동파의 적벽부 전편을 중국인이 읊었고,
그 자막에 모두 나와있었지요.
본인이 최근에 실었던 적벽부 전편(前篇)을 실었으니, 아직 안 보셨으면 한번 보세요.
No 6580, dated Sept 16, 2019인데 그냥 적벽부라고 하였지만 실제는 전적벽부입니다.
여기서 그 분이 중국어로 낭독한 것이 어머니가 우리말로 내게 읊어주신 것을 연상합니다.
그런데 그 후 본인은 한시나 한문을 읊으는 걸 아직 못 들어보았습니다.
하지만 어머니께서 가르쳐 주실 때 목소리를높여 크고 길게 읊어주셨어요.
그러면 나는 그 당시의 상황이 눈에 떠 올랐지요. 여기 중국인은 모두 읊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그런 건 다 없어졌지요. 하지만 내가 이곳 시나 문장을 올릴 때에는
어머니 생각하고 한번씩 큰 소리로 읊어봅니다.
혹시 본인도 알려지지 않은 한시 읊기에 인간문화재가 아닐까요? 그러자면 누가 Recommend를 해 주어야 할텐데..
저녁을 반 억지로 먹고 숙소로 들어 왔다. 다다미 방도 있고 마루 바닥 방도 있었다. 우리는
마루 바닥 방에서 잠을 잤다. 다음 날 아침 일 찍 일어나 밖에 나가니 “Coffee and Bagel”
이라는 간판이 보인다. 베글 을 달라고 하니 없단다. 커피를 시키니 “투 고우” 야고 물었다.
여기서 먹겠다고 하니 별로 달갑지 않은 표정이다. 30대 중반 여성의 표정이나 말투는
신안군에서의 경험과 비슷했다. 영군 해군 묘지가 어디냐고 물으니 한참 침묵이 흐른 다음에
짤막하게 저쪽으로 가란다. 커피 마시고 해산물 죽을 먹고 영국군 묘지로 향했다. 좁은 골목 길을
지나 가파른 산길을 약 30분 올라가니 초등학교가 나온다. 영국군이 테니스장을 만들었던 자리
였다. 공사장 사진 전시판이 학교옆에 있었다. 한국 최초의 정구장이란다. 더 올라가니 영국군
묘지가 있었다. 근처에 박물관을 만들다 만 흔적들이 보기싫게 널려 있었다. 영국군이 찍은 당시
조선사람들, 마을 풍경 사진들은 면사무소 이층에 전시 되어 있다는 것을 택시 운전사에게 듣고
찾아가서 볼 수 있었다. 1885-1887 약 2년 동안 영국 해군은 거문도를 점령 했다. 영국군은 점령
사실을 청에게 알렸다.조선 조정은 약 한달 후에 청나라를 통해서 이사실을 알게 되었다. 러시아가
부동항을 확보하기 위해서 조선을 넘 보자 영국이 이를 막기 위해서 거문도를 점령 했다고 한다.
청은 영국의 거문도 점령을 마다 하지 않았다. 러시아가 조선을 침략할 의도가 없음을 약속 하자
영국군이 철수 했다.
5만원 짜리 택시 관광을 마치고 4시 배로 여수에 도착했다. 여수 해변가에 있는 배네지아 호텔에 묶었다.
15만원 이란다. 16층 방에 들어가서 창 밖을 내다 보니 마치 바다 한 가운 데 서있는 기분이다. 널직한 방
이 좀 더웠다. 에어 콘을 켤 재간이 없어서 호텔 데스크에 전화 했더니, TV remote에 다 있단다. 전등,
방온도 컨트롤이 모두 리모트에 다있었다.
https://youtu.be/dn9OgstRHMM
(Venezia hotel and resort)
남한은 옛과 지금이 같이 사는 나라였다.
*글이 길어지니 ipad가 말을 잘 안들에서 코멘트에 본문을 연장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