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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em 시가 있는 풍경-피천득의 "이 순간"

2012.09.20 18:25

Chomee#65 Views:5608

 
시가 있는 풍경-피천득의 "이 순간"


          이 순간 / 피천득

          이 순간 내가
          별을 쳐다본다는 것은
          그 얼마나 화려한 사실인가

          오래지 않아
          내 귀가 훍이 된다 하더라도
          이 순간 내가
          제 9교향곡을 듣는다는 것은
          그 얼마나 찬란한 사실인가

          그들이 나를 잊고
          내 기억 속에서 그들이 없어 진다해도
          이 순간 내가
          친구들과 웃고 이야기한다는 것은
          그 얼마나 즐거운 사실인가

          두뇌가 기능을 멈추고
          내 손이 썩어가는 때가 오더라도
          이 순간 내가
          마음 내키는 글을 쓰고 있다는 것은
          허무도 어찌하지 못할 사실이다




금아 피천득 선생님은 만년소년, 행복바이러스의 시혜자 (施惠者), 5월의 시인, 산자들의스승, 그리고 무엇보다 시원(始原)의 맑은 윗물로서 만인이 흠모하는 연인이었고 지금도 연인이며 후대에도 글을 통하여 영원한 연인일 것입니다. 대책없는 우울, 불편한 진실, 부당한 현실, 뜻대로 되는 것 없어 가슴이 답답할 때, 나는 무시로 선생님을 찿아뵈었고 그때마다 "웃고 이야기" 하는 동안 시나부로 정화돼가슴이 뚫리고, 돌아오는 발거름이 가벼워지곤 했습니다. 나에게 있어서 선생님과 "웃고 이야기 한다는 것은" 그리고 언제 어디서나 선생님의 글을 다시 읽은다는 것은 일종의 정화의식 같아서, 가슴이 서늘해지고 마음의 "초조와 번잡" 이 고요해지면서 평안이 회복되는 카타르스의 순간, 그래서 진실로 행복할 수 밖에 없었던 순간순간이였습니다.

이것은 아마도 선생님이 몸과 마음을 활짝 열어놓고 혼탁을 가리지 않은 채 창호지에 물기가 스며들듯 우주자연과 인간사를 공감각으로 수렴하는 감수성과 촘촘하고도 정결한 영혼이 포착한 사물의 본질을 산뜻하고도 아름다운 수채화로 그려내면서, 이 땅을 천국으로 바꾸는 마력 때문일 것입니다. 소라껍질 하나 선물 받는 순간, 시인은 바다와 일체가 된다. 심안은 쪽빛바다를 보고 마음의 귀는 철썩이는 소리를 듣고 스치는 바람에 풍기는 짭조름한 맛의 내음을 후각뿐 아니라 온피부로 맡은 순간, 피가 끓어 마음은 '바다'로 바다로 달음질합니다. 그래서 영원한 오월 청년시인은 "이렇게 행복해도 되느냐"고 느닷없이 묻곤 하셨습니다.

본시 "이 순간"은 시인이 몸의 5감각 즉,시각, 청각, 미각, 후각, 촉각을 몽땅 활짝 열어놓고 공감각을 통해 자연과 인간사와 소통하는 순간 이 땅이 더할 나위없는 천국으로 변하는 못 말리는 순간을 그려 내고 있는 서정시입니다. 하늘의 별을 볼때, 베토벤의 제 9교향곡을 들을때, 친구들과 무릎을 맞대고 친구들의 냄새 가운데서 웃고 이야기할때, 또는 마음 내킬 때 쓰고싶은 글을 쓰는 그 순간, 시인의 시적 상상력은 주위를 하얗게 비우고, 오직 "화려하고, 찬란하고,즐거운' 그야말로 천상으로 바꿔버리는 것입니다,

시인은 하늘의 별로 표상되는 우주만물을 바라보고, 제 9교향곡이 환유하는 음악을 듣고, 친구들과 웃고 이야기하고, 글을쓰고 읽는 '화려하고, 찬란하고, 즐거운' 삶을 살았으니, 생전에 이미 지상낙원에서 살았다는 것은 엄연한 사실입니다. 스스로도 이런 기막힌 사실이 놀라워, 각 연의 끝 행을 감탄문으로 맺고 있습니다. 특히 제 4연의 종지행은 이러한 순간들을 그 누구도, 사탄이라 할지라도 빼앗지 못할 그야말로 "허무도 어찌하지 못할 사실" 이라고 단언합니다

자연과 사람과 소통하던 그 순간들은 시공을 초월해 선생님의 문학 속에서 영원히 꽃피워나 갈 것입니다. 오늘 선생님의 5주기를 추모하는 이 순간도 영롱한 산호와 진주로 저희들 가슴속에 자리하고 있다가 우리가 외롭고 고단하고 지쳐서 절망할 때, 화려하고 찬란하고 즐거운 치유의 빛을 발사하며 위로해줄 것입니다. 선생님의 삶은 워즈워드가 지표로 삼았던 '삶은 소박하게, 생각은 드높게' 였고, 선생님의 시는 고전시대부터 예술이 지향해온 '고결한 단순성, 고요한 장엄함' 그 자체였습니다.

이 글은 5월19일 한국비교문학회가 주최한 금아 피천득 추모 5주기 기념학술대회 '한국문학과 피천득' 에서 이희숙, 서울교대명예교수 (영어학)가 낭독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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