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2.24 10:37
[한삼희의 환경칼럼]2003년 당시 과학기술부가 우리 역사상 가장 뛰어난 업적을 남긴 과학자 14명을 선정해 '과학기술인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렸다. 선정에 참여한 김근배 교수(전북대 과학학과)는 "최무선 장영실 허준 등 고려·조선시대 일곱 분과 우장춘 이원철 이호왕 등 근·현대 일곱 분을 선정했는데 전엔 몰랐던 이름이 있었다"고 했다. 현신규 박사였다. 그런데 뒤져보니 업적 자료가 제일 풍부하더라는 것이다. 지난 21일 그의 탄신 100주년을 기념한 국제 심포지엄이 열렸다.현 박사는 한국인 1호 임학 박사로 세계적 육종(育種) 연구 업적들을 남겼다. 더 중요한 것은 헐벗었던 국토를 울창하게 바꿔놓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는 사실이다. 그의 대표 업적 세 가지는 리기테다소나무 교배, 이태리포플러 보급, 은수원사시나무 개발이다. 식민 지배와 6·25전쟁으로 한국 산은 다 민둥산이 돼버렸다. 어떻게든 빨리 산에 나무를 채우는 게 급선무였다. 현 박사가 육종하고 보급한 나무는 20년을 키우면 20~30m 자라는 속성수(速成樹)들이다. 이런 나무 수억 그루가 1950~80년대에 심어졌다.리기테다소나무는 수원의 서울대 농대 임학과 교수로 있던 현 박사가 1951~53년 미국 연수 시절 리기다소나무 암꽃에 테다소 나무의 꽃가루를 교배해 수백개 종자를 만든 후 국내로 들여와 개량한 나무다. 리기다는 척박한 땅에서 잘 자라고 추위에 강하지만 생장 속도가 느리고 재질이 좋지 않다. 테다소나무는 정반대 성질을 가졌다. 리기테다소나무는 부모 나무에서 각각 좋은 점만 물려받았다.현 박사는 1954~62년 이탈리아에서 이태리포플러 330종을 들여와 우리 풍토에 맞는 것을 골라 보급했다. 장기영씨가 사장으로 있던 한국일보가 1964년부터 '포플러 1억그루 심기 운동'을 펴 뒷받침했다. 현 박사가 1986년 74세로 타계할 때까지 2억9000만그루가 심어졌다고 한다. 이태리포플러는 하천가에서 주로 자란다. 현 박사는 산에서도 자라는 포플러 수종(樹種) 개발에 애를 썼다. 그 결과가 은백양에 수원사시 나무를 교잡한 잡종 포플러인 은수원사시나무다. 은수원사시는 빨리 자라는 데다 짙은 그늘을 만들고 오염에 견디는 힘이 강해 가로수로 많이 보급됐다. 1973년 박정희 정부가 '치산(治山) 녹화 10개년 계획'을 세울 때 리기테다소나무·이태리포플러·은수원사시는 모두 10대 권장 수종에 들어갔다. 박 대통령은 지프차도 사줄 정도로 현 박사를 챙겼다. 박 대통령은 1978년 은수원사시나무 개발 공로로 현 박사에게 5·16민족상을 수여하면서 나무 이름을 현 박사 성(姓)을 따 부르도록 했다. 그 후로 은수원사시는 '현(玄)사시나무'가 됐다.산림청은 2001년 식목일에 현신규 박사, 박정희 대통령, 김이만 나무할아버지, 조림왕 임종국의 네 명을 광릉 국립수목원에 마련한 '숲의 명예전당'에 헌정했다. 서울대 산림과학부 이경준 명예교수는 "현 박사님은 세미나에선 항상 앞자리에 앉았고 외국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제자의 발표 때는 꼬박 꼬박 노트에 적으면서 질문했던 분"이라고 했다.우리에게 '과학자 영웅(英雄)'이 있었던가. 현 박사처럼 탁월한 학문 성과를 남겼고, 후학들 존경을 받고, 국가 발전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과학자라면 국가 영웅으로 기억돼야 한다. 현 박사는 평안도 태생이지만 거의 평생을 수원에서 활동하고 살았다. 지자체가 '나무 영웅'의 발자취를 어딘가에 절대 지워지지 않게 새겨넣는 작업을 해보는 것도 의미 있을 것이다. |
2012.02.24 10:56
2012.02.24 11:04
2012.02.24 11:45
김선생님 말씀에 동감합니다.
고국을 방문해보면 무수한 고층건물,온갖 볼거리 먹거리로
풍요로움을 즐기지만 산속을 들여다 볼수 없을정도로 빽빽한
산들을 보면 먹지않아도 배가불러 가슴이 뿌듯함을 느낍니다. 규정
2012.02.24 11:53
2012.02.24 18:38
1. I hope they, so-called Leftists in Korea,know what President Park did
For Our Motherland, instead of criticizing him all the time.
If I take one example, arn't they enjoying driving on Gyeongbu Expressway
which transformed Old Korea to Korea Today?
2. To Dr. Yu Suk-hee(72); Where are you these days? You're hiding almost
one year now from our Web. Would you please, go to Kwangneung or Korea
mountains and take some pictures, and put them on our Web? It'll enhance
Hwang sun-bae-nim's article. Seeing is Believing, as you know.
3. When my brother-in-law was in business, his ultimate goal was Forestration
of Korea Mountains with "Jangbaik" Pine Trees from N. Korea. He got land of
200,000 pyeong from SNU Agricultral College for experiment with help of the
college.
He admired forestration of mountains in the State of Washington where he
visited often for his business. I think he got the idea over there and wanted
to apply to our motherland as his so-called "100 Year Project".
Alas! He had to fold his business, because of inteference by so-called PK
(political) group(bastards to my eyes) under YS Administration. And his plan
died as his business.
He graduated from College of Commerce, SNU, but devoted himself building
Heavy Machinery like Industrial Cranes( not for construction), Fire Engines,
and Sanitation Trucks _ First in Korean business world in those regards, and
exported to Taiwan and Phillipine with thorough after service.
He was the first Korean businessman who had tie with China for business
project before Nomalization between two countries which was 1992.
2012.02.24 20:45
현신규 박사님의 두째따님이 저의 아주 친한 친구입니다.
부고때부터 함께공부하고 서울약대도 함깨들어 갔습니다.
그때 우리는 현신규 박사님을 포풀러 박사님이라고 불렀습니다.
프른 포풀러 가로수를 볼적마다
친구아버님께 감사한 마음을 가졌습니다.
민둥산이였던 한국의 산들을 아름다운 강산으로
바꾸어 놓으시려고 노력하신 그분들 덕분에
후손들이 자연의 아름다움을 즐기게 되였지요.
저희는 지금 Kauai, Hawaii 에 있는데,
자연만큼 완벽한 예술품이 없다고 새삼 느껴집니다.
2012.02.25 00:21
한국을 떠난지 거의 30년만에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하였을때,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산에 빽빽이 들어선 나무와 울창한 숲이었읍니다.
한국이 선진대열에 들어섰구나 하고 느끼게 한것은 도시에 빽빽이 들어선 고층건물도 아니요
풍요로운 삶도 아니요 바로 이 나무들이었읍니다.
몇십년후를 내다보는 선구자적 혜안이 이루어낸것이지요.
성질급한 우리민족은 즉석 불고기보다 이제는 몇백년 후를 내다보는 혜안을 가져야 할것 같습니다.
육군 후송병원에 근무할때 전방사단에서 후송되는 EH fever 환자를 매일 몇명씩 보곤했지요.
이호왕교수님이 그 원인을 밝혀내기 전까지는 정체불명의 병으로 많은 젊은이들이 치료도 못받고 죽어갔읍니다.
정말로 자랑스러운 세계적인 학자시지요.
2012.02.25 00:45
여러분들의 마음들이 저와같아서 기쁘고 또 감사드립니다.
방선생! 사실은 위의 나무숲 사진도 광릉 국립수목원에서
가져온 사진이구요 back ground color도 광릉 수목원의
울창한 나무잎의 진초록에서 채취한것입니다.
초미님! 칼리포니아의 좋은날씨를 비켜 하와이 까지 가신것을
뵈니 엄동설한?에 봄을 기다리는 이곳에 비하니 '富益富 貧益貧'
인듯합니다,ㅎ,ㅎ.
노선생! 저도 동감입니다. 국가 지도자들이 근시안적인 현사태에
급급하지말고 먼 훗날을 바라볼수있는 그런 안목과혜안이 필요한
때입니다. 한국도 그렇고 미국도 그렇구요. 규정
2012.02.25 15:15
여기 얼굴과 조각 흉상을 보고
얼른 고등학교때 옆에 앉어 공부한 현정향 동문 생각 나서 전화 한 20 분 햇는데..
현박사의 장남으로 집안에 5 남매중 유일한 "非博士" 라 는군요. 로스안제리스서 우리 고교 동기회장으로
서울 공대기계과 나왓는데, 저하고 고교 3 학년 중간에 (의대-공대)로 전공진학을 바꾸어 버려서, 저는 기계과 출신이 못되고, 이 친구는 의사가 않된 기구한 인연이 있지요.
몇가지 정향 동문이 애기 해주어서 여기 씀니다.
현 동문 얘기에 아버님이 여기 Berkeley 에 * research fellowship 하러 오셧을때, Lake Taho 가다가 있는 Placerville 근처 UC 임업시험장에 그 당시 실험으로 심어논 나무가 아직도 있다는 군요.
어릴때 기억으로 외국 특히 구라파 학자들과 씨 교환하시는 아버지를 기억하든군요.
그당시는 산에 나무가 없어 여름에 홍수가 나고 급해서 농님부 사람과 협조해 산에 빨리 자라는 나무 찾기에 정신 없었다는군요.
그래서 빨리 자라는 포푸라 , 아카시아 도 막심고 요새는 처치 곤란인 모양.
소나무로는 재래종 일본 사람이 들여온 리기다 소나무 개량해 널리 보급. 그래서 빨리 크고 똑 바로 크는 목재용 소나무가 한국에 많이 보급된 모양.
미국 와서 1978 년에 애들 하고 길가에 심어논 우리 집 길가의 소나무, 미국 적송등이 지금 재보니 모두 지름이 80- 40 cm
그러니 일년에 2-3 cm 이 직경이 굵어졋단 얘기,..
제가 심은 이 나무는 너무 굵어 쪼개지 않고는 쓸수가 없을 지경이 됏군요.
앞으로 20-30 년을 내다보는 사업은 역시 국가가 해야지,.
단기적 이해를 바라보는 기업으로 부정당한가 함
환상 도로에 구멍을 20 개 파서, 꽃피는 견과를 심으려는데, pecan and Almond
2012.02.26 01:06
민선생!
초미님의 현박사님 따님과 친구이시라고 하시더니 민선생은 그아드님과
친구가 되시는군요. 세상이 넓고도 좁아서 생면부지인 사람도 한두다리
건느면 다 알만한 우리들의 인간관계가 흥미롭습니다.
아드님을 통한 그분에대한 anecdote를 말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진 네장다 제 콤에는 뜨지가 않네요. 규정
2012.02.26 06:08
comments copied
현정향(0)
(12.02.26 17:22) 아버지께서는 유학 오신것이 아니고 Research Fellowship 으로 University of California at Berkely에서
1951~1953 동안 연구셨읍니다. 아버님은 1946년에 일본 큐슈제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으셨읍니다.
갑자기 저의 아버님의 Story 가 Webpage에 여러번 올라 몸둘바를 모르겠오.
어디까지나 아버님의 업적인데 저의 이름이 함께 올라 송구 하기만합니다.
아버지께서는 유학 오신것이 아니고 * Research Fellowship 으로 University of California at Berkely에서
*" Research Fellowship" was inserted in my prior comment
장문영(0)
(12.02.26 23:06) 민박사 의견에 참고로....
남미 조림 사업은 대단한 규모이고 장기 비젼으로 임하고 있지요.
이미 pulp사업은 남미로 그 축이 이동중이고 그중에는 미국, EU기업도 있지만 토종들도
막강해 대단합니다.
Chile, Brazil, 알젠틴에 이어 Uruguay도 시작했고 근년 Columbia 정치가 안정되면서
여러나라가 탐색하고 있습니다. 미국을 비롯 이미 조림사업은 진정 100년 사업이 되었습니다.
* 장문영 동문은 한국 이건사업에서 second man ? 으로 세계 여러곳에 목재수입해서 한국에 큰 사업을 하시는데, 내용은 모르고, 세계시장에서 목재사시는데는 권위자같이 알고있음.
2012.02.26 07:32
2012.02.26 07:59
I could'nt see, either, sun-bae-nim.
Now, it's OK.
Whenever somebody put on pictures with X at the corner of box,
some reason I can't see. Still, I don't know what Dr. Cho Man-chul
wrote in the past. I talked to him over the phone, but I forgot to ask
him.
Looks you are in the process of making dream land of your own.
2012.02.26 08:59
2012.02.26 10:20
나무를 심는 이유:
요새는 대기중에 탄산까스가 많아져 기온이 올라가 야단이라는데, 탄산까스흡수용.
또 홍수나는데는 사태 방지용. 아이티 (Haitii) 란 나라가 가 연료부족으로, 열대지방이지만, 나무가 자라기 가 무섭게, 다 베어 버려서 산 사태로 톱쏘일이 다 비에 쓸려 네려가 농업도 황폐해서 큰 문제라고 합디다. 우리 집 아들이 거기가서 실습을 해서 잘압니다
또 중요한 목적이 건축자재 생산인데, 한국에서 국내수요와 수출에 필요한 목재가 부족해서, 다른 나라 땅을 빌려 나무를 심어 키워서 들여온다고 합디다. 어디 소로몬 군도라는데도 한국 조림업자가 나가서 그런 사업한다고 합디다. 이건 산업이 주로 종이 펄프, 합판을 만드는 한국 회사라니, 한국에 없는 나무, 세계각지애서 직접사오든지, 가서 나무심어 들여오는가 봅니다,
본인, 민가도 제가 배설한 탄산까스를 다거두어 들이기위해 (??), 불철주야, 나무심으니 알아주시길.
저도 본의아닌 육종사업에( ?) 뛰어들엇다가, 주츰하고있는데..
연유는 다음과 같읍니다.
1.
나파에 1978 년에 1 에커 땅 집읃 샇는데, 봄 여름에는 열무같은 장다리 꽃이 지천으로 자라는데, 동네 한국 아주머니들이 오셔서, 이게 "갓" 이란 채소라고 하시면서, 따다가 데쳐서 먹는 다고 합디다. 저는 베어다, 열무김치를 담앗는데, 달지가 않고 조금 쓴맛이 납디다.
한번은 한국 종묘집에서 열무씨를 사다심엇는데, 모양이 미국 종자와 똑 같은데, 줄기가 연하고 달고, 꽃도 비슷한데, 조끔 보라색이 띠는 꽃이 나옵디다.
그래서 생각이 한국 열무씨를 여기 저기 뿌리면 두 종류가 교배가 돼서 칼이포니아에서 수백만년 살아온 원주민 열무과 교접하면, 여기 종자를 바꾼다는 생각으로 실험을 햇는대, 과연 이듬해는 열무 꽃 잡종이 나오고 잡종 열무 줄기를 씹어 보아서 질긴 놈은 다뽑고 조금 도 단맛이 없는 놈도 다 없애고 남은 종자만 씨를 맷게 햇는데, 금년에 그 교배 종 열무가 먹을 만한 놈이 나올찌 기다리는데, 이런 문제를 몇년을 계속 증식해 우리가 좋어허는 종류만 선택적으로 증식시키는지, 궁금합니다.
2.
우립 집에 묘목집에서 사온 포도나무를 여러개 심없는데, 넝쿵이 다른 놈보다 최소 3-4 배로 울창하게 뻣어나는 포도나무가 한개 생겻는데, 문제는 그 큰 나무에 포도가 한두 송이 밖에 열리지 않으니, 그것 뽑아 버려야하겟는데, 우연히 우리 집에 일하러오는 젊은 포도농장 사람이, 포도 나무 증식법을 가르쳐 줍디다.
포도나무도 버드나무 같이 줄기에서 뿌리내서 중식 시키든지, 마디에서 나오는 싹을 나른 포도 나무에 접목을 시키는 겁니다.
그래서 생각한것이 금년 봄에 한국 농장하시는 분이 가져다 준 좋은 포도 나무 종자 가지를 이렇게 뿌리를 내고 도 싹이 나오면,
열매없는 포도나무에 접목시킬검니다. 또 muscat인가 하는 향이 좋고 달은 포도나무가 우리집에 생겻는데, 그것도 이렇게 증식합니다.
이건산업이 바로 이런 회사이군요.
친환경 건축자재 전문기업 이건산업은 세계적 권위의 산림인증 기관인 ‘국제산림관리협의회(FSC Forest Stewardship Council)로부터
FSC CoC인증을 획득했다고 18일 밝혔다.
FSC CoC(Chain of Custody) 인증이란 합법적인 조림과정과 벌목을 통해 확보한 목재를 사용해 제조, 가공한 자연친화적인
제품임을 국제산림관리협의회(FSC)에서 인정해주는 제도이다.
이번 인증획득으로 이건산업은 합판마루와 합판 그리고 유통제품인 원목에 대해 FSC CoC 인증마크를 부착할 수 있게 돼
국내는 물론 환경에 대한 까다로운 규제를 요구하는 유럽과 미국 등 선진국 시장으로의 제품 수출 기회도 확대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편 FSC제도는 무분별한 개발로 인한 산림훼손 및 지구 환경 파괴를 예방해 지속적인 산림경영을 실천할 목적으로 1993년 설립된 국제 비정부단체(NGO)인 산림관리협회가 구축한 산림경영 인증시스템으로 산림경영인증(Forest Management/FM)과 생산·유통인증(Chain Of Custody/CoC)로 구분되어 있다.
이건산업은 지난 1995년 남태평양 솔로몬 군도에 진출해 대규모 조림사업을 추진해 왔으며,
지난해 12월 솔로몬군도 조림사업으로 FSC FM 인증을 획득한 바 있다.
2012.02.26 19:16
When I go to Korea, I decided to go to Kwang-reung
and newly opened President Park's Library, but I can't
share pictures with you, because I don't have technic.
PS; Dr. Shim Young-soo(69)'s father-in-law,
past Prime Minister, Mr. Shin Hyun-hwak was
in charge of building President Park's Library
in the beginning.
2012.02.27 15:43
Dr. Bang,
ref: Sharing digital pictures.
It is simple.
Buy a CAMERA, which is all digital these days. Take pictures of 2-4 meg size.
Your pictures are stored in a small card. Transfer those images into your computer,
using a card reader or s slot in your computer.
Then reduce the size of pictures to 600 pixel (long side).
There is a software/program to reduce the picture size in our Data_Info section.
Store them in public storage site, photobucket etc.
When you write in this web page, copy the picture from the storage site (making a link.)
It sounds very complicated.
Pay any high school kid 10-15$/hour and ask him demonstrate it for you.
You take notes while he/she explains.
You do it once with the instructor and it is done.
It is like learning how to ride a bicycle. One has to overcome a psychological block.
I took an evening semester of HTML course (web page language) long ago.
2012.02.27 19:09
Thank you, Sir.
I'll give it try.
I hope I visit your future Dreamland
someday in the near future.
2012.02.28 07:53
Dr. Bang,
Life in a country home is a total retreat as your neighbor is far away.
One gets bored after a while in the "dream land".
These days they see and talk free over Skype program.
My wife uses it daily with Canadian home town friends.
Internet or TV ( if you have satellite dish) is the only connection with the world.
One gets used to it quickly and do not feel much difference after a while.
2012.02.28 21:03
I'm a country bumpkin after all, living in modern world of NY.
Your Land, full of dream, will bring me back to the old world of my
Hometowm, Jinju, when I was a young boy who was picking
Clover leaves for my Rabbits, or to the memories of the mountains,
the rivers I was roaming around.
The day will come to see you there, Minn sun-bae-nim.
박정희 대통령의 치적을 보면 경부고속도로 개통,포항제철,
현대조선소등 중공업 육성으로 보리고개 굶주림에서 오늘의
풍요로움을 이룬것이라 하겠지만 한국을 방문해보면 우선
피부로 느낄수 있는것이 治山錄化 사업이다.
75%가 산으로 되어있는 우리국토에 벌겋게 헐벘었던 민둥산
들이 울창한 나무들로 덮힌 산들로 변했으니 말이다.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박대통령을 도와 이사업을 이룩해낸 일등공신이 현신규 박사라한다.
금년이 그분 탄생 100년이 되었다하는데 후학들이 그분의 업적을
기리며 탄신기념 사업의 일환으로 심포지움등을 개최했다한다.
고인은 이제 우리곁에 없지만 그가 이룩해낸 푸르른 강산은 그분의
이름과 함께 영원히 빛날것이다.
현신규 박사의 약력을 아래에 옮겨옵니다. 규정
1911년 평안남도 안주 출생.
1933년 수원 고등농림학교 졸업
1936년 일본 규슈[九州]대학 임학과 졸업
1936~1945년 조선총독부 임업시험장 근무
1945년 수원농업전문학교 조교수
1946~1963년 서울대학교 농과대학 교수
1949년 농학박사학위 취득(구주대학)
1951년 캘리포니아 대학 파견(산림유전학 연구)
1954년 학술원 회원
1963년 농촌진흥청장
1965~1976년 서울대학교 농과대학 교수
1986년 별세
그 외에 육종학회장 ·농업과학협회장(1972), ·산림청 임목육종연구소
연구고문(1972∼1986), 서울대학교 명예교수(1976∼1986),
한국포플러위원회 부회장, 학술원 원로회원(임학 분야)을 역임.
문화훈장, 학술원 공로상, 3 ·1 문화상, 수당과학상(秀堂科學賞),
국민훈장 무궁화장 등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