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초의 왕오천축국전 혜초 지음, 정수일 역 |
2010.12.10 06:49
1908년 프랑스의 동양학자 펠리오(P. Pelliot, 1878-1945)가 중국 돈황 석굴에서 책명도 저자명도 없는 잔간殘簡 사본을 발견했다. 이것이 신라의 승僧 혜초가 쓴 인도기행문, 왕오천축국전이었다.
이 시는 혜초가 남천축국(서찰루키아 왕조, 543-757) 방문 때 쓴 것이다. 이 시에 나오는 "일남"은 남천축국의 지명이 아니라 지금의 베트남 중부 지방을 가리키는 지명으로, 당시 인도로 오는 중요 항구였다. 이것은 혜초가 바닷길로 인도로 왔다는 증거일 수도 있다. 이것을 그저 "남쪽"이라는 뜻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저 시의 "계림"은 원문에는 "림林"으로만 나와있다. 오언절구의 시이므로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혜초가 신라인이 분명하므로 林이란 계림을 의미하는 것일 수밖에 없다. (누가 소식 전하러 숲으로 날아가리...는 말이 안 된다.) 왕오천축국전의 번역서로는 위 글의 대부분을 참조한 바로 이 책을 추천한다. 원문을 수록함은 물론이거니와 그 상세한 주석에는 감탄을 금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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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10 07:01
2010.12.10 08:03
2010.12.10 15:16
우연히 옛날에 이 짧은 여행기 한국어 번역 본을 구해서 읽엇는데,
요새 신문 사설 정도의 짧은 여행기이고 그것도 짤려나가서, 내용이 빈약합디다.
광동에서 배타고 지금의 월남 지방지나서 걸어서 인도대육횡탄,
아프기니스탄거처 당나라수도 장안거쳐
북경 서부 태원 오대산절에 와서 일생을 마쳣다고 돼있읍디다.
지금도 오대산 근처에는 절이 100 여개있고 옛날에는 신라 중들이 여기 불교대학에
미국 유학가는 심으로 거쳐 온후 한국에 와서 절을 짓고 한모양.
신라중들이 유학하면 다여기 갔을거요!
여행기 얘기는 어디 어디 지나가고 있고
풍습이 형이 죽으면 그 부인을 물려 받고 나체로 살고있고, ...
이러한 여행기..
오래됏다는 기록이란 이외에 큰 소식은 없엇든걸로 기억. .
헤초 여행의 종착역. 태원 근처 오대산 입구. 몇년전 찍은 사진.
오대산의 크고 작은 수 많은 절들.
또 다른 설명:
http://www.seelotus.com/gojeon/gojeon/su-pil-bi-pyeong/wang-5-cheon-chuk.htm
지나친 애국심?
정교수 얘기에 이 중이 16 세에 중국들어가 77 에 입적햇다면 61 년을 중국에서 살엇고 중국에 귀화한 사람으로 칠수 밖에 없는 사람인데, 이사람이 중국에 돌어오다가 쓴 글을
누구가 베겨 놓앗는지도 모르는 글을 한국의 문화재니 돌려달라고 하면
중국사람이 웃을 것이 아닌지?
문화재 보존으로 치면 한반도는 위험한 지역이 아니요?
삼국시대 책 하나도 없이 다 타버렷든지 전쟁에 다 없어졋고,
지금은 북한사람이 원자탄으로 불바다를 만들겟다는곳 남한에
모두들여와라?
차라리 서울에 있는 문화재 모두 미국 콜로라도
어디 굴속에다 다가 보관하는데 더 안전하다고 생각하는데!
2010.12.10 18:37
2010.12.11 10:08
불경을 한문으로 번역하는일에 매엿든 모양인데
그런일은 중국에서 전문가가 많엇을테니,
일하기쉬워 신라에 않돌와 왓을것이 안닌가함.
"
그가 구법여행을 떠난 연대는 확실하지 않으나 723년경으로 추정하고 있다. 인도로 가는 여행도 해로였는지 육로였는지 불분명하다. 그는 만 4년 동안 인도를 여행하였고, 카슈미르(Kashmir)·아프가니스탄·중앙아시아 일대까지 답사하였다. 다시 장안으로 돌아온 것은 30세 전후였다.
733년 장안의 천복사(薦福寺)에서 도량을 열고 스승 금강지와 함께 ≪대승유가금강성해만수실리천비천발대교왕경 大乘瑜伽金剛性海曼殊室利千臂千鉢大敎王經≫이라는 밀교경전을 연구하였다.
이 때 금강지는 이 경전의 한역(漢譯)을 시작하였는데, 혜초는 필수(筆受)를 맡았다. 그러나 그 이듬해 가을에 금강지가 죽었으므로 이 사업은 중단되었고, 금강지의 유언에 따라 이 경의 산스크리트 원문은 다시 인도로 보내지게 되었다.
금강지가 죽은 이후 혜초는 금강지의 제자였던 불공삼장으로부터 다시 이 경전의 강의를 받고, 774년 가을 대흥선사(大興善寺)에서 다시 역경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불공은 이보다 수개월 전인 6월에 죽었기 때문에 이 연대에는 다소간의 문제가 있다.
오늘날 불교학계에서는 혜초와 불공의 경전번역을 1년 앞당겨서 단정하고 있다. 이 때 그는 불공의 6대제자 가운데 제2인자로 유촉(遺囑)을 받았다. 또, 그에 관해서는 ‘신라인’이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따라서, 중국 밀교의 법맥을 금강지―불공―혜초로 손꼽을 수 있다. 불공이 죽은 직후 동문·제자들과 함께 황제에게 표문을 올렸다. 그 내용은 스승의 장례에 대하여 황제가 베풀어준 하사(下賜)에 깊은 감사의 뜻을 표하고, 또 스승이 세웠던 이 사찰을 존속시켜 달라는 청원이었다. 그 뒤 수년 동안 장안에 머물러 있다가 780년 불경을 번역하기 위하여 오대산으로 들어갔다.
오대산은 불공이 오래 머무르던 곳이며, 첫번째 제자인 함광(含光)도 여기에 머무르고 있었다. 노년을 오대산의 건원보리사(乾元菩提寺)에서 보내면서, 전에 필수를 맡았던 ≪천비천발대교왕경≫의 한역과 한자음사(漢字音寫)를 시도하여 약 20일 동안 이 한역본을 다시 채록하였다. 그 이후의 기록은 전하지 않으며, 787년에 입적하였다.
그가 살아 있을 때 신라로 귀국한 흔적은 없다. 이미 신라에는 명랑(明朗)을 중심으로 하는 신인종(神印宗)이 성립되어 있었기 때문에 혜초가 공부한 것은 그와는 별도의 밀교였던 것으로 보이며, 불공과의 관련으로 미루어보아 그는 정통밀교를 표방한 인물이라고 볼 수 있다.
당시의 중국 유학승들이 인도에 간 중요한 목적 가운데 하나는 나란다(N─ landa)라는 불교대학에서 수학하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의 경우, 나란다에서 공부한 흔적도 없다.
따라서, 단순히 불적지(佛蹟地)를 참배하고 밀교를 공부하려는 목적으로 인도에 갔음을 알 수 있다. 그의 밀교와 신라의 밀교가 어떠한 관련이 있는가는 검토해 보아야 할 문제이며, 그에 관한 기록이나 저술에서 언제나 ‘신라인’임이 강조되고 있는 점으로 보아 그가 어떠한 형태로든지 고국과 관련을 맺었으리라고 추론해 볼 수 있다.
≪참고문헌≫ 혜초(高柄翊, 삼국의 고승, 신구문화사, 1976), 慧超傳考(高楠順次郎, 大日本佛敎全書遊方傳叢書 1, 1915).(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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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의 계림은 경주의 계림(鷄林)을 의미하겠지요 (즉 그의 고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