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6.15 07:08
http://www.weeklyhk.com/news/view.php?idx=3554
제172호, 5월4일] 중국 공작원 5000명 이상이 현재 대만에 잠복해 암약하고 있다고 미국 군사전문지 디펜스 뉴스 인터넷판이 28..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169989
한·중 관계가 심상찮다. 싱하이밍(邢海明) 주한 중국대사가 지난 8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대사관으로 초청한 자리에서 “중국의 패배에 베팅하는 이들은 나중에 반드시 후회한다” 등 거친 발언을 쏟아냈다. 한국과 중국 정부는 상대 대사를 초치했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169982
위안스카이가 거친 성격으로 조선 왕실을 휘어잡자 그를 기특하게 여긴 이홍장(李鴻章)이 25세이던 그를 조선 공사로 발탁했다. 말이 공사였지 ‘총독’과 같았다. 하마비(下馬碑) 앞에서도 가마에서 내리지 않고 대전까지 들어갔다.
*타이완 내의 중국 간첩 사건은 연례 행사 처럼 자주 일어난다. 손자병법은 "전쟁을 하지
않고 상대를 제압 하는 것이 상수"라고 가르치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상대 보다 월등
한 국방력과 경제력이 있어야 한다. 중국은 조선을 전쟁을 하지 않고 거의 500년 동안 제압
했지 않은 가? 일본도 그랬고 미국도 그렇게 하고 있다. 그리고 중국은 다시 그러려고 하고
있다.
민주주의는 결코 완벽한 통치제도가 아니다. 중국의 통치제도 보다 좋은 제도라고 단정 하
기도 어렵다. 아마 이 두제도의 승부는 타이완과 중국의 대결에서 판결 날지 모른다. 중국
스파이의 간계로 타이완을 중국 영토로 귀속시키자는 정치인이 선거로 타이완 대통령에
당선 될 가능성은 얼마든 지 있다. 아마 시진핑도 전쟁을 하지 않고 타이완을 정복하려고
할 것이다. 만약 그가 타이완을 무력으로 침공 하면 손자가 웃을 것이다.
이토 히로부미를 1대 조선 총독이라고 한다. 그러나 조선 최초의 외국인 총독은 위안스카이
였다. 청 나라 외무를 총괄 했던 사람은 이홍장이었다. 요지음 미국의 국무장관 격이다.
이홍장은 조공국이었던 베트남을 프랑스에게 념겨준 다음 부터 "조공-책봉"의 관계로 주위
약소국(오랑캐)을 관리 하던 전통적인 중국 중심의 세계 질서를 서구식 식민지 정책으로
전환 했다. 그래서 1882년 임오군란과 1884년 갑신정변에 청국이 직접 개입하고 위안스카이
를 "감국" 즉 총독으로 임명하고 마건충과 뮐렌드로프를 왕의 고문격으로 조선 내각에
참여 하게 하여 조선 내정을 직접 좌지 우지 하게 했다. 따라서 조선은 청의 관점에서는 식민지
였다. 을사보호 조약이 조선의 외교권을 박탈 했다고 울분을 토 하지 만 조선은 원래 완전한
외교권이 없었다. 모든 외교적인 결정권은 청이 가지고 있었다. 쇄국으로 유명한 대원군이
물러나고 고종이 일본, 미국을 비롯한 열강들과 통상조약을 맺을 때도 청국의 허락을 맡아서
진행 되었다. 1883-1894년 까지 청은 조선을 직접 지배 했다. 1894년 청일전쟁이 일어나자
위안스카이는 청나라로 도망 갔다. 1895-1905년 까지는 일본과 러시아가 조선을 놓고 경쟁하던
시기이다. 민비를 잃고 홀애비가 된 고종은 청이 라는 대국이 일본 덕분에 조선에서 없어지고
러시아가 일본을 견제해 주어서 좀 숨을 쉴 수 있었다. 그래서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제국 황제
에 등극 했다. 독립문도 이 시기(1896-1898)에 청나라 사신을 영접하던 영은문 자리에 세워 졌
다. 1904년 일본이 러시아를 제압하자 대한제국의 운명도 끝이 났다. 청나라로 도망간 위안스
카이는 1911년에 제국청나라를 접수 했다. 진시황이 시작한 중국 제국은 2000년만에 그 막을
내렸다.
빌 게이츠와 엘논 마스크가 중국을 방문 했다. 빌 게이트는 시진핑을
만났다. 미국무 장관 브링킨이 중국을 공식 방문중 이다. 바이든은 심
심 치 않게 중국을 비난 한다. 틱탁의 개인정보 수집을 위법이라고 비
난하고 국회 청문회 까지 했다. 반도체를 비롯한 최첨단 기술이 중국
으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여러가지 규제를 하고 있다.
그리고 중국이 타이완을 무력으로 점령 하려고 한다고 가끔 씩 떠
벌린다. 국회의원들이 타이완을 방문 한다. 그리고 첨단 무기를 타
이완에 판다. 대립구도를 자극하여방산업체의 판매를 늘려 준다.
미국 국민의 대다수는 중국에 적대감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일자
리를 중국이 가져 갔고 중국은 공산주의 국가라고 믿기 때문이다. 미
국의 양당 정치인들은 이 반중국 감정에편승하여 대중정책을 시행
한다. 중국의 인권문제를 가끔식 비난 한다.
방산업체는 기업이익을 위해서 정부로 하여금 세계 방방곡곡에서
대립구도를 만들도록압박 한다. 때로는 전쟁도 일으키게 한다. 한
반도의 남북한 관계도 이 범주에 속한다고 생각 한다.
미국의 기업인들은 10억 인구의 중국 시장을 무시 할 수가 없다. 이
들은 미국 정부의 반중국정서에 관계 없이 중국 내 기업 활동을 계
속 하고 있다. 중국 시장과 단절된 세계 경제는 아마 공황에 가까운
침체일 것이다.
반면에 미국정부는 중국 포위 정책으로 중국 주위의 나라를 동맹국
으로 만들려고 노력 한다. 그러나 이들도 미국의 기업인들 처럼 중
국 시장을 무시 할 수 없다. 따라서 이들 나라들은 미국이 원하는
만큼 중국에 적대적이지도 않고 자국의 국익을 희생 하면서 까지
친미적이지도 않다.
미국 정부는 좀더 실리적인 경쟁적 협조 관계의 대중 정책으로 전환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미국이 중국의
제도를 인정하고 내정에 대한 비판을 삼가해야 한다고 생각 한다.
만약 중국이 미국의제도나 국내 사정에 대해서 비판하기 시작 하면
아마 미국정부도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다. 마약문제, 호음리스, 총기
사고, 빈부차이, 트럼프와 공화당의 추태 등등 한이 없다.
결국 모든 국가의 문제는 경제에 귀착 한다. 먹고살기 즉 민생이 최고
의 문제이다. 중국 시장이 방대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