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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포로 수용소에서 만난 친구

 

민 공 기

 

LA 를 출발한지 열두 시간 후 나의 비행기는 인천국제공항 착륙태세에 들어 갔다. 창문 밖으로 흘러가는 흰 구름 사이로 푸른 바다가 보이고 저 멀리 인천 시가 보이기 시작했다. 한국에 올 때 마다 이 시점에서 나는 언제나 60여 년 전 이곳 월미도에 있었던 인천 포로수용소 생각이 난다. 그곳에서 있었던 나의 중학교 때 한 친구와의 만남을.

 

1950 년 9월 28일, 서울을 탈환한 UN군은 그야말로 파죽지세로 압록강을 향하여 북진 중이었다. UN 군 총사령관이었던 Douglas MacArthur가 “Home by Christmas “ 라고 장담했고 중공군은 아직 참전하기 전 그 때였다.

 

3 개월간 공산치하 서울에서 해방된 나는 10 월초에 통역장교 모집에 응시 합격해서 명동성당에 설치된 “UN 군 연락 장교 교육대”에 입대하였다. 동기 생은 태반이 서울 시내 각 대학생들이었고 중고등학교 선생님들도 있었다. 11 월초 임관하기도 전에 나는 한 30 명의 동기생들과 같이 월미도에 있는 인천 포로수용소로 파견되었다. 서부전선을 북진했던 UN군의 포로가 된 많은 인민군을 진남포에서 배로 인천 포로 수용소를 거처서 더 큰 거제도 수용소로 이동했는데 이곳 인천에서 우선 성명, 계급, 소속부대, 투항 장소 등에 관한 신문을 받게 되었다. 이 일을 담당할 미군 M.P. 부대를 통역 지원하는 것이 우리들의 임무였다.

 

어느 날 일과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국군부대의 경비망속에 새로 도착한 수백명의 포로 대열이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11 월인데도 벌써 영하 가 되는 추위인데 포로들은 아직도 인민군 여름 군복을 입고 있었다. 추위에 대한 방한 책으로 얇은 여름군복에 짚이나 거적을 넣었기 때문에 포로의 등 이 꼽추모양으로 돌출되어있었다. 포로들의 대열은 누런 흙탕 물에 물 드린 “꼽추” 군단의 행진이었다. 그 대열이 내 옆을 지나 갈 때 갑자기 “공기 야 !"  하고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수백명 사이에서 또 다시 내 이름을 부르고 손을 흔드는 포로를 발견했을 때 나는 믿을 수가 없었다. 나하고 소학 교, 중학교 (6 년제 ) 동기생이었던 김종식이 아닌가 !

 

김종식은 소학교 때부터 나하고 각별한 친구였다. 평안북도 신안주가 고향인 김군은 해방 전 1943 년에 내가 다니던 서울 교동국민하교 졸업반에 전학 왔 고, 다음 해 같이 경기중학에 입학했다. 중학 2 학년 때 해방되자 남북한에 미 군. 소련군이 진주 하고 분단된 후에 종식은 서울에 혼자 남게 되었다. 가족 의 재정원조가 끊어진 종식은 가정교사를 하면서 중학을 졸업하고 서울대상 과 대학에 입학했었다. 우리 집에도 자주 놀러 왔었고 나의 어머니를 친 어머 니 같이 가까이 모시든 종식은 인민군이 서울을 점령한 후 소식이 끊어졌는 데 지금 반년 만에 이곳 포로 수용소에서 만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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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열이 내 옆을 지나갈 때 종식이가 소리쳤다. “ 나 3 대대 2 중대야 ! “

 

곧 달려가서 이야기를 하고 싶었지만 포로 수용소 안에서는 오로지 경비 부 대 소속원만이 출입이 가능했다.

 

‘어떻게 그를 도와 줄 수 있을까 ?’ 생각하던 중에 갑자기 몇 일전에 경비소 대장을 하고 있는 또 한 명의 교동국민학교 동창생을 만났던 것이 생각났다. 남정국이란 이름의 이 친구는 중학에 진학을 하지 않고 해방 후 국방경비대 에 입대를 해서 하사관으로 이곳 경비소대장을 하고 있었다. 남정국은 다행 이 김종식을 잘 기억하고 있었고 곧 종식이를 도와주기 시작했다. 수용소 안 에서 돈으로 사용되는 담배를 계속 차입해 주었다.

 

포로 심사가 끝난 얼마 후 남정국이 종식의 편지를 전해 주었다. 얼마 후 거제도로 이동할 것 같은데 언젠가 다시 만나자는 기약 없는 희망이 적혀 있었다. 이것이 인천에서 받은 종식의 마지막 소식이었다.

 

그 후 2 년 반의 시간이 지나갔다.

 

그 동안 나는 지리산, 동해안에 주둔한 국군 11 사단, 육군본부를 거쳐서 1953 년 초에는 진해에서 육군 사관학교 교관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그 해 이승만 대통령의 명령으로 2만 7천 명의 반공 포로가 석방되었는데 이 중의 나의 친구 김종식이 포함되어 있었다. 석방된 종식이가 동래온천에 있 는 중학 때 선배 집에 와 있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곧 진해에서 달려갔다. 석 방은 되었어도 신원증명서가 없었다. 당시 신원증명서가 없는 20 대는 부산 거리에서 신병훈련소로 직행하기 마련이었다. 나는 종식에게 통역장교 로 입 대 할 것을 권유하고 국방부에 있는 친구의 도움으로 신원증명서와 통역장교 지원서를 준비해 주었다.

 

1953 년 7 월 드디어 휴전협정이 체결되고 3 년 만에 한국전쟁은 끝났다.

 

이 무렵에 종식이는 통역장교 시험에 합격 입대했다.

 

나는 7 월에 제대하고 8 월 말에 부산항을 떠나 미국유학 길에 떠났다.

 

휴전 후 육군대위로 제대하고 상과 대학에 복학 졸업한 종식이는 충주비료를 시작으로 실업계에 투신 후 재벌기업계열의 사장으로 활약했다.

 

나는 미국에서 대학교수로 있으면서 자주 일본, 한국에 갈 기회가 있었는데 그 때마다 우리 둘은 자주 만났다. 중학때 친구들과 식사를 같이하고, golf 를 즐기고 학창시절 이야기로 옛날을 회상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암암리에 약속이나 한 듯 인천 포로 수용소에서의 만남 은 이야기 하지 않았다. 나는 종식에게 그의 생애에서 가장 고통스러웠을 체 험의 한 토막을 상기 시켜주고 싶지 않았다.

 

그가 어떻게 해서 인민군이 되었을까 ? 강제로 인민의용군에 징용되었나 ? 홀 어머니가 계신 이북 고향에 대한 망향 심인가 ?

 

순간적인 판단 하나가 남.북으로 영원히 분단시키는 그런 시대였다.

 

이북 태생, 서울에서의 학창시절, 인민군 포로, 한국군 장교, 친구들과 golf 를 즐기던 businessman. 파란 많던 김종식의 생애는 어쩌면 우리 세대가 겪었던 50 년대 한국의 가혹한 정치현실의 상징인지도 모른다.

 

종식이는 1997 년 심장 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우리 비행기는 지금 인천 공항에 착륙했습니다.” Touch down 의 가벼운 충격에 나는 멀고 먼 옛날 60 여년 전 추억의 세계에서 깨어난다.

 

2014년10월

(이 글에 나오는 사람이름은 가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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