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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카메라로 바라본 세상 62.

이명동 사진상

[중앙일보]입력 2006.11.28

중3 때 우리 집으로 여자 데려와, "누드 찍고 싶으면 부탁해 보거라"


교복 차림의 남녀 고교생들이 나룻배를 타고 도담삼봉이 떠있는 남한강 상류를 건너고 있다. 1983년 초겨울의 어느 날이다.
[김희중 갤러리]
스승 이명동 선생을 생각하면 지금도 미소를 짓게 되는 어린 시절의 하루가 생각난다. 중학교 3학년이던 어느 날, 선생은 젊은 여자를 데리고 우리 집으로 왔다. 그리고는 대뜸 "누드를 찍어보고 싶은 생각이 없느냐?"고 했다. 마음은 굴뚝 같았지만 냉큼 나서지 못하고 쭈뼛거리자 "네가 원하면 이 분께 부탁해 보거라"고 했다. 선생을 따라온 여자는 키가 작고 통통한 편이었는데 별로 망설이지 않고 병풍 뒤에서 옷을 벗었다.

조명을 설치하고 여자 앞에 발을 친 다음 포커스를 맞추자 알몸이 선명히 보였다. 처음 보는 성숙한 여자의 몸이었다. 긴장하면서 몇 커트 셔터를 눌렀다. 그렇게 해서 스승은 소년 제자에게 누드까지 가르친 셈이다. 선생은 누드가 모든 예술 장르에서 중요한 소재니까 사진가도 필수적으로 거쳐야 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 듯하다. 하지만 소년이 스승과 아버지까지 계신 곳에서 여자의 벗은 몸을 자세히 살펴볼 수는 없었다. 성인이 되고 사진가로 살아오면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 여자의 몸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신비한 곡선에 생명까지 있기 때문이다.

이명동 선생은 어린 시절 부친이 송아지를 사려고 할머니에게 맡겨둔 15원 중 12원을 훔쳐 카메라를 사면서 사진에 입문했다. 사진가의 열정을 타고났다고 볼 수 밖에 없다. 성균관대 정치학과를 졸업한 뒤 보도 사진가로 입문했는데 내가 선생을 만난 것은 그 무렵이었다. 어린 나에게 준 가르침은 간단하지만 중요했다.

"작은 것도 크게 보고, 큰 것도 작게 봐라." 데모 현장에 사람이 많이 모였다고 해서 전경(全景)만 찍지 말고 한 사람의 눈초리 만으로 현장 분위기를 표현해 보라는 것이었다. 내가 요즘 학생들에게 강조하는 내용이다.

선생은 4.19 전후의 격동기에 보도 사진으로 이름을 떨쳤다. 3.15 선거 당시 개표장에 불이 꺼져 혼란스러운 가운데 표를 바꿔치기하는 소동이 벌어졌는데 그는 이 장면을 찍어 부정선거를 고발했다. 미국 생활을 하며 '라이프'지 기자들을 볼 때마다 선생이 이런 곳에서 활동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그는 불의를 보면 참지 못했고, "사진은 진실한 것 만이 생명력을 갖는다"고 믿는 분이었다.

선생은 1960년대 초부터 국전(國展)에 사진 분야를 두어야 한다고 주장, 마침내 64년 그 뜻을 이뤘다. 동아사진콘테스트와 동아국제사진살롱의 산파역을 맡기도 했다. 여러 대학 사진학과.신문방송학과에서 30여 년간 강의도 했다.

이런 업적을 기려 99년 후학들이 '이명동 사진상'을 제정했다. 해마다 우리나라 사진문화 발전에 공헌한 인사에게 주는 상이다. 전에도 사진상은 있었지만 이 상은 우리나라 사진계에서 가장 영광스러운 상으로 자리매김했다.

1회 수상자로 내가 뽑혔다. 사진 인생이 시작되도록 가르쳐 주신 분의 상을 받는 소감은 특별했다. 어린 시절 산과 들을 같이 누비던 스승 이름으로 상이 생길 줄 어떻게 알 수 있었겠으며, 내가 첫 수상자가 될 줄 어떻게 알았겠는가? 이명동 선생은 미주리대의 이덤 교수와 함께 나의 오늘이 있게 한 스승으로 마음 깊이 감사하고 있다.

김희중 (상명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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