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o

English
                 

[남기고] 카메라로 바라본 세상 20.


텍사스 카우보이


[중앙일보]
입력 2006.09.28

주말엔 식당 문 닫아 끼니 걸러, 허리 둘레 24인치 … 아동복 입어


웨스턴 위크 축제 기간 중 카우보이
복장으로 말을 타고 있는 필자.
레스터가 텍사스주립대(ETSU) 편입을 추천했을 때 흔쾌히 그렇게 하겠다고 말했다. 뉴욕을 벗어나야겠다고 결심했기 때문이었다. 나의 방황은 환경이 바뀌지 않는 한 끝날 것 같지 않았다. 공부도 할 수 없었고, 의욕도 잃었다. 마리화나를 입에 대 볼 정도였으니까….

자살 기도 사건 이후엔 부모님을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었다.

텍사스에 대한 동경도 있었다. 서울에 있을 때 본 영화 '자이언트'는 사막에 대해 막연한 기대를 갖게 했다. 록 허드슨과 엘리자베스 테일러, 제임스 딘이 주연한 그 영화는 텍사스 유전지대를 배경으로 한 것이었다.

하지만 영화는 영화일 뿐이었다. 허허벌판에 서 있는 몇 채의 건물이 내가 생활해야 할 대학이었다. '자이언트의 환상'은 여지없이 깨졌다. 인구도 수천 명에 불과했다. 당연히 퇴폐나 타락과는 거리가 멀었다. 마약은커녕 술도 팔지 않았다. 술을 사려면 댈러스까지 나가야 했다.

편입 절차를 마친 것은 1963년 초여름이었다. 뉴욕대의 학점을 그대로 인정받았다. 저널리즘 강의를 들으며 영어 공부도 병행했다. 미국 생활 3년째였지만 영어가 아직 완전하지 않았다. 스피치 교정과 영문법 강의는 졸업할 때까지 꾸준히 들었다. 저널리즘은 재미있었다. '알 권리'같은 주제를 두고 학생들은 치열한 토론을 벌였다. 나도 영어로 의견을 발표했다. "'알 권리'는 보장되는 것이 원칙이지만 개인 사생활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의 발언을 강조했던 기억이 난다.

레스터가 소개해 준 교수는 오사 스펜서였다. 그는 사진저널리즘 분야에서 세계 최초로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인데 연구주제가 바로 '라이프'지 였다. 그는 논문 작성 과정에서 레스터의 도움을 받았다. 그런 인연으로 나는 장학금을 받았고 무료로 기숙사 생활까지 할 수 있었다. 덕분에 도서관 아르바이트로 용돈을 벌면서 대학 생활을 할 수 있게 됐다.

방황에서는 벗어났지만 텍사스는 외로웠다. 주말이면 교수.학생들은 대부분 집으로 돌아가 교정은 텅 비었다. 차가 없으니 어디를 가 볼 수도 없고, 식당이 문을 닫으니 끼니도 걸러야 했다. 많은 사람과 몸을 비비던 뉴욕에서는 혼자 떠돌아도 외로움을 느끼지 않았는데, 텍사스에서는 뉴욕과는 또 다른 지독한 고독감에 몸을 떨어야했다.

먹는 게 부실하니 체중도 줄었다. 허리 사이즈가 24인치를 밑돌았다. 어른 옷은 맞는 것이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아동복을 사 입었다. 미국에는 나보다 덩치 큰 10대 아이들이 수두룩했다. 같은 옷인데도 아동용은 훨씬 쌌다.

텍사스는 서부의 전통을 간직하고 있었다. 학교는 매년 웨스턴 위크(Western Week)라는 전통축제를 열었다. 그 주간이 되면 전교생이 카우보이 차림으로 등교했다. 말을 타고 오는 학생도 있었다. 밤이 되면 댄스파티가 열렸고, 야외에서 카우보이들이 먹던 음식도 먹었다. 황폐했던 뉴욕생활보다 몸과 마음이 건강해졌다.

김희중 (상명대 석좌교수)
No. Subject Date Author Last Update Views
Notice How to write your comments onto a webpage [2] 2016.07.06 운영자 2016.11.20 18193
Notice How to Upload Pictures in webpages 2016.07.06 운영자 2018.10.19 32345
Notice How to use Rich Text Editor [3] 2016.06.28 운영자 2018.10.19 5922
Notice How to Write a Webpage 2016.06.28 운영자 2020.12.23 43838
300 이티오피아 선교사 [6] 2015.01.25 노영일*68 2015.01.25 1605
299 [김희중 Essay] 이북 취재 - "같이 혁명합시다" 2015.01.21 운영자 2015.01.21 972
298 [김희중 Essay] 이북 취재 - 푸에블로 호 2015.01.21 운영자 2015.01.21 974
297 [김희중 Essay] 이북 취재 - 전쟁의 먹구름 [3] 2015.01.21 운영자 2015.01.21 1236
296 Our small reunion [2] 2015.01.18 정관호*63 2015.01.18 1892
295 [김희중 Essay] 이북 취재 - 호텔 '연금' 2015.01.16 운영자 2015.01.16 940
294 [김희중 Essay] 이북 취재 - '수령님'의 나라 [1] 2015.01.16 운영자 2015.01.16 990
293 [김희중 Essay] 이북 취재 - 뒤로 가는 트랙터 2015.01.16 운영자 2015.01.16 881
292 어린 양 2015 [12] 2015.01.15 김성심*57 2015.01.15 1371
291 어머니 [4] 2015.01.12 김성심*57 2015.01.12 1170
290 중학교 때 [11] 2015.01.02 김성심*57 2015.01.02 1606
289 [김희중 Essay] 첫 취재 2014.12.31 운영자 2014.12.31 1013
288 [re] [김희중 Essay] 사진편집인상 [3] 2014.12.31 운영자 2014.12.31 1018
287 [김희중 Essay] 대학원 진학 2014.12.25 운영자 2014.12.25 1178
286 [김희중 Essay] 포토저널리즘 2014.12.25 운영자 2014.12.25 1228
285 [김희중 Essay] 내셔널 지오그래픽 [1] 2014.12.25 운영자 2014.12.25 1175
» [김희중 Essay] 텍사스 카우보이 [1] 2014.12.18 운영자 2014.12.18 1227
283 [김희중 Essay] 도박장 청소부 <상> 2014.12.18 운영자 2014.12.18 1014
282 [김희중 Essay] 도박장 청소부 <하> [2] 2014.12.18 운영자 2014.12.18 1113
281 [김희중 Essay] 뉴욕의 노숙자 [2] 2014.12.06 운영자 2014.12.06 1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