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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카메라로 바라본 세상 23.

대학원 진학

입력 2006.10.03

텍사스주 최대 신문사 기자 포기 -  조교·장학금 보장받고 미주리로

미국에서 유색인(有色人)이 번듯한 직업을 갖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인종차별이란 보이지 않는 벽이 있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직종이 기자다. 언론사에서 기자를 뽑을 때 다른 직종보다 까다롭게 구는 이유는 한 사람 한 사람이 회사를 대표하는 일의 성격 때문인 것같다. 외국인이나 유색인에게 그런 일을 맡기려고 하지 않는 것이 현실이었다.

대학에서 저널리즘을 공부하면서 깊게 고민했던 것도 바로 이 문제였다. 공부를 하긴 하지만 '과연 기자가 될 수 있을까' 하는 회의가 마음 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하지만 졸업은 다가왔고 취직을 해야 했다. 더 이상의 궁핍은 견디기 힘들었다. 마지막 학기에 텍사스주 신문사마다 일자리를 구하는 편지를 보냈다. 작은 시골 신문도 빠뜨리지 않았다.

대학생 때 학생회관에서 조그만 사진 전시회를 연 적이 있었다. 고교 시절 개인전에 출품했던 사진들이었다. 그런데 댈러스 현대미술관 큐레이터(전시기획자)가 우연히 그 사진들을 보고 전시회를 주선해 댈러스 현대미술관에서 다시 개인전을 열게 되었다. 그 전시회가 경력으로 인정되었는지 '댈러스 모닝 뉴스'로부터 졸업 후 사진기자로 일해달라는 연락이 왔다. 지방 신문이지만 텍사스주에서는 가장 큰 신문이었다. 뛸 듯이 기뻤다. 드디어 직장을 얻어 가난에서 벗어날 발판이 마련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펜서 교수는 나의 취직에 반대했다. 대학원에 진학하라고 했다. 대학원을 졸업하면 그보다 훨씬 좋은 직장을 구할 수 있다고 했다. 속이 탔다. 도박장에서 오물을 만지며 돈을 벌어 겨우 졸업하고, 마침내 취직을 하게 되었는데 대학원에 가라니….

당시 미국에서는 대학만 졸업해도 학력은 충분했다. 언론사 채용 기준에서도 학력은 중요한 요소가 아니었다. 경력과 실무능력이 더욱 중요했다. 그런데도 스펜서 교수는 대학원에서 공부를 더 하라고 한 것이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학위가 중요한 게 아니라, 자네 같은 사람은 미주리 대학원의 이덤 교수에게 가서 더 배우는 것이 좋겠어. 꾸준히 성장하자면 대학 졸업만으로는 부족해."

충고에 따르기로 했다. 재학 중 그는 나의 솔직함과 순수함.열정을 눈여겨보고 아껴주었다. 그가 가라는 길이라면 힘들어도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의 능력은 아직 미완성 상태였던 것이 사실이었다. 영어도 일상생활에는 불편이 없었지만 깊이 있는 글을 쓸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다. 영어로 글을 쓰자면 미국 역사와 문화에 대한 더 깊은 이해와 분석능력이 필요했다. 결국 시간이 흘러야 해결할 수 있는 문제였다. 스펜서 교수는 나의 주머니 사정을 듣고 미주리 언론대학원의 장학금과 조교 자리를 주선해 주었다.

미주리 대학원을 다니면서 경험한 세상에 비하면 '댈러스 모닝 뉴스'는 시골 신문에 불과했다. 돌이켜보면 내 인생의 고비마다 항상 은인들이 나타나 올바른 방향을 제시해 주었다. 부모님과 이명동.정도선 선생, 다우링 대사, 레스터 편집인, 스펜서.이덤 교수 그리고 도박장의 프랭크까지…. 나는 인복이 많은 사람이었다.

김희중 (상명대 석좌교수)



[남기고] 카메라로 바라본 세상 24.


포토저널리즘


[중앙일보]
입력 2006.10.04


대학서 공부한 과목 수강신청 안하자 - 담당 교수 "나한테 안 배우면 무효야"


미주리대는 언론학 분야에선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학교였다. 그 중에서도 이덤 교수의 포토저널리즘 강의는 세계적으로 권위를 인정받고 있었다. 그는 유명한 책을 저술하지도 않았고 두드러지는 업적을 남기지도 없었다. 하지만 제자들은 '뉴욕 타임스''라이프''내셔널 지오그래픽'같은 세계적 언론사에서 맹활약하고 있었다. 텍사스주립대의 스펜서 교수도 그의 제자였다.

1965년 미주리대 언론대학원에 입학했다. 이덤 교수가 강의하는 포토저널리즘이 전공이었다. 그는 작은 체구에 짧은 백발이었다. 스펜서 교수의 추천으로 왔다고 인사했지만 말없이 고개만 가볍게 끄덕였다. 까다롭고 고집 센 인상이었다.

수강 신청을 할 때 그의 면모가 확인되었다. 대학원 필수과목을 신청하면서 대학에서 배운 과목들을 제외했더니 이렇게 말했다. "내 밑에서 사진을 배우려면 기초부터 다시 배우게." 그는 텍사스에서 배운 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자신의 제자 스펜서에게 배웠는데도 그랬다. "과목 명칭이 같아도 나한테 배우지 않은 것은 무효야."

강의를 들어보니 과연 달랐다. 텍사스에서는 교수가 학생들에게 이론을 가르치는 걸로 끝났다. 그런데 이덤은 문제를 제시하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기다렸다. 학생들이 문제를 해결하고 각자의 답을 발표해야 강의는 끝났다. 비로소 진정한 공부를 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덤 교수는 '포토저널리즘'이라는 분야를 학문적으로, 또 실질적으로 개척하고 이끌었다. 그의 견해는 참신한 것이었다. 지금도 포토저널리즘 강의는 이덤의 이론이 근간을 이루고 있다.

"사진은 글과 마찬가지로 커뮤니케이션 수단이다. 사진과 글이 결합해 하나의 매체를 완성하는 것이 포토저널리즘이다. 사진만으로도 안 되고, 글만 가지고도 부족하다. 사진이 아무리 좋아도 글이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있고, 글을 아무리 잘 써도 모호한 부분이 있다. 둘이 결합해야 완벽한 매체가 된다."

"독자가 '생각할 시간'을 갖게 되는 포토저널리즘은 일방적.동시적으로 시청자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동영상과는 큰 차이가 있다. 독자는 사진을 본 뒤 글을 읽거나 글을 읽고나서 사진을 본다. 그 과정에서 독자는 생각을 한다. 이것은 아주 중요한 요소다."

미주리대에서는 매년 4월 '저널리즘 위크'축제를 열었다. 전국신문협회.전국방송협회 후원으로 '올해의 사진기자''올해의 편집인''올해의 앵커맨'을 뽑는 행사였다. 텔레비전으로만 보던 유명 인사들이 행사장에 나타났다. 그들은 세련된 신사였으며 부와 명성까지 얻은 미국 최고의 명사들이었다. 시상식 날 좌석이 모자라 복도 바닥에 앉아 식을 지켜보며 막연한 꿈을 꾸었다. '나도 저렇게 될 수 있을까? 저 자리에 올라가 상을 받아보았으면 좋겠다'.

이덤 교수를 만난 것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일요일에는 부인과 단둘이 살고 있는 그의 집에 가 잔디를 깎았다. 일이 끝나면 세상 이야기와 포토저널리즘에 대해 대화했다. 그 시간은 나에게 귀중한 특별과외가 되었다.

김희중 (상명대 석좌교수)


김희중 갤러리



밤새 눈이 내린 뒤 맑게 갠 겨울 아침, 뚝섬에서 조심조심 한강을 건넜다. 외딴집과 나룻배, 눈꽃 핀 수양버들이 한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지금 뚝섬 맞은편 한강변에는 무엇이 있을까? 거대한 올림픽 주경기장이 있다. 1950년대 중반 서울 잠실은 이런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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