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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카메라로 바라본 세상 31.

뒤로 가는 트랙터

[중앙일보]입력 2006.10.16

외제 트랙터 한 대 들여와 분해 - 모든 부품 복제해 북한산 만들어 
 
1970년대 북한산 트랙터. 외국 제품을 분해한 뒤 모든 부품을 복제해 만든 것이었다.

초등학교를 방문하니 교문에서 운동장을 거쳐 현관에 이르기까지 학생들이 두 줄로 도열해 있었다. 밴드가 쿵작거리고, 학생이 꽃다발을 선사했다. 학생들 사이를 교장과 나란히 걷는데 너무 부담스러웠다. 기자에 불과한 나한테 왜 이렇게 하는 걸까. 불편한 기색을 눈치 챈 교장이 말했다.

"김 선생은 우리에게 아주 중요한 손님입니다." 그래도 공부하는 학생들을 동원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했더니 그는 "공화국이니까 이런 일도 가능하다"며 껄껄 웃었다. 공부 내용은 실용적이었다. 아이들이 재봉틀을 직접 돌리며 바느질을 배웠다. 문제는 이념교육이었다. 코가 뾰족한 서양사람에다 '미국 놈'이라고 써 놓고 어린이가 총을 겨누고 있는 그림이 복도에 걸려 있었다. 교장은 미국 국적을 가진 나에게 학생들이 미국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보여주는 그림이라고 설명했다. 오후에 김일성대학을 방문했다. 환영행사는 없었다. 학생들을 동원하면 안 된다는 내 뜻이 즉각 반영됐다는 느낌이 들었다. 총장의 인상은 학자와는 거리가 멀었다. 검게 탄 얼굴에 고생을 많이 한 흔적이 역력했다. 노동자나 농민 출신을 김일성대학 총장이라는 상징적인 자리에 앉혀놨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에서 가장 큰 방으로 갔다. 세계 각국 신문들이 벽면을 가득 메우고 있는데 내용이 전부 '위대한 수령 김일성'을 찬양하는 것이었다. 모두 '전면광고'였다. 영자(英字)지 상단에 'ADVERTISEMENT'라는 글자가 선명했다. 흰 저고리에 검정 치마를 입은 여성 안내원이 "외국 귀빈이 오면 이 방으로 안내해 세계 만방이 김일성 수령을 얼마나 존경하는지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내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것들은 기사가 아니라 광고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총장은 확신에 찬 어조로 "그럴 리가 없다"고 했다. 내 곁에 있던 조평통의 박오태 부장은 광고가 뭔지는 아는 것 같았으나 입을 다물고 있었다.

내용은 실용적이지만, 이념은 '미제(美帝)에 대한 증오' '김일성 우상화'에 매몰돼 있는 게 북한 교육의 실상이었다. 그것 들은 북한 사회를 떠받치는 기둥처럼 보였다.

그러나 북한 당국은 경제적으로는 '사회주의 지상낙원'을 만들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다. 트랙터 공장을 방문했을 때 공장장이 열띤 목소리로 말했다. "1958년에 김일성 수령께서는 농업을 기계화 해야 농촌이 잘 산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트랙터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으나 실패해 외국에서 설계 도면을 구입하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완성품은 팔아도 설계도를 파는 나라는 없었습니다. 트랙터 한 대를 사서 분해한 다음, 모든 부품을 복제해 드디어 완성품을 조립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런데 이 트랙터가 시동을 걸자 뒤로 가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하마터면 폭소를 터뜨릴 뻔했다. 하지만 공장장의 비장한 표정을 보고는 웃음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는 가슴이 아팠다. 공장장의 설명이 계속됐다. "그런 시행착오를 거친 지 2년 만에 이 공장에서는 연간 3000대의 트랙터를 생산했습니다."

지금의 북한 경제는 비참한 지경이지만 7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그들은 자신감에 충만해 있었다.

김희중 (상명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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