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1.21 15:49
[남기고] 카메라로 바라본 세상 34.전쟁의 먹구름[중앙일보] 입력 2006.10.19
나중에 알았지만 그해 11월 유엔 총회에서는 남북한 분리 가입 안건에 대한 찬반 투표가 예정되어 있었다. 북한은 분리 가입이란 절대 있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민족이 영원히 갈라지고 분단이 고착화한다는 것이었다. 내가 북한을 방문했을 때는 이런 문제로 남북 간에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시점이었다. 북한에서 만난 사람들은 모두 '통일'을 입에 달고 있었다. 공장 근로자도, 들판의 농부도, 유치원생조차도 통일을 앵무새처럼 되뇌었다. 그들은 곧 통일이 된다고 확신했다. "'곧'이 언제냐, 10년이면 되느냐?"고 물어봤다. "그렇게 오래 기다리지 못 한다"고 했다. "그러면 5년?" "그것도 길다. 1년 안에 된다"고 말했다. "1년 안에 된다면 전쟁이라도 하자는 말이냐?"고 하면 그들은 한결같이 "전쟁이 아니라 남쪽에서 고통 받는 부모.형제를 해방시키러 내려가는 것"이라고 했다. 기차를 타고 금강산으로 가면서 가슴 철렁한 장면을 봤다. 한국전쟁 때 본 모습이었다. 완전 무장한 군인들이 객차에 가득하고, 화물차에는 위장망으로 가린 대포와 탱크가 칸마다 실려 있었다. 그런 기차가 한 둘이 아니었다. 모두 남으로 향하고 있었다. 박오태 조평통 부장은 "작전 중"이라고 간단히 말했지만 작전과 실전은 분위기가 다르다. 내 직감엔 전쟁 준비를 위한 이동이 분명했다. 금강산에서의 마지막 날 밤, 박오태가 말했다. "김 선생, 사흘 안으로 떠나셔야겠습니다." 어느 정도 취재는 됐지만 못 본 곳이 많았다. 특히 백두산은 꼭 가보고 싶었다. "아직 취재할 것이 많습니다. 사흘은 너무 짧아요." 평소 온화하던 박오태가 정색을 했다. "김 선생, 사흘 안에 떠나지 않으면 영원히 못 떠날 수도 있습니다." 놀라운 이야기였다. 남쪽으로 향하던 군인들, 몇 달 안에 통일이 된다는 이야기가 머리를 스쳤다. 더 묻지 못했다. 그렇게 해서 나의 북한 취재는 28일 만에 끝났다. 북한은 그때 전쟁 준비를 끝내고 기회만 엿보고 있었던 것 같다. 군사력이 남한보다 우월했고, 미국은 베트남전에서 패한 뒤 막 철수해 넋이 빠진 상태였다. 남한은 '10월 유신'으로 혼란스러웠던 반면 북한은 안정적 체제 아래 통일에의 열망으로 들끓고 있었다. 게다가 북한이 극력 반대하는 남북한 유엔 분리 가입이 논의되고 있었다. 나중에 드러났지만 북한은 휴전선 밑에 땅굴도 파고 있었다. 그해 11월 유엔 총회는 남북한 문제 논의를 일단 연기했다. 그뒤 흐지부지 됐지만 만약 분리 가입안이 통과됐다면 어떻게 됐을까? 나는 북한이 밀고내려왔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남한과 미국이 발등의 불을 끄느라 정신없던 73년, 한반도에는 전쟁의 먹구름이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김희중 (상명대 석좌교수) |
2015.01.21 17:18
2015.01.22 21:22
If we look at the date when Mr. Kim wrote this series, it was 2006.
And it was during the period of Rho Moo-hyun administration
(2003-2008). As we all know well, after retirement, Rho Moo-hyn
Committed Suicide because of the investigation of bribery scandal
- which could be a part of the cause why ROK became the Number
One Country for Suicide Rate in the world by "Werther Effect"
(http://en.wikipedia.org/wiki/Copycat_suicide)
He was not a man who could stand up against the allegation.
His Suicide news was world-wide news and one of my patients
declared "He is A Coward". And I googled then to see who Committed
Suicide in history of the world as the Head of Government, past & present,
I found 9 cases - 7 of them from South America and 1 by Greek ex-prime
minister, female. In a sense, Roh made history with other 9 cases.
(http://www.nytimes.com/2009/05/23/world/asia/23korea.html)
I want to look at the sequence of historical events in the world and in Korea
- for my better understanding those days in 1970s. You can follow me, if you
want and if you have time to read.
FYI;
1. Vietnam War;
http://en.wikipedia.org/wiki/Vietnam_War
2. October Yushin, 1972;
http://en.wikipedia.org/wiki/October_Yushin
As my conclusion, as far as I know, we had Nuke Power under the shield of
American umbrella in 1970s while N. Korea didn't have - which was Totally
Removed from the Korean Peninsula in 1992. They tested the first Nuke Bomb
experiment in 2006.
- (http://en.wikipedia.org/wiki/2006_North_Korean_nuclear_test)
It was Fatal Mistake - which I don't need to explain Why.
PS;
This is my Imagination - Korea has Ability to Make Nuke Bombs As A Means
of Deterrence, if allowed by the US govenment, defying NPT and IAEA.
We had Nuke Power Research Program from early on - where my late older
brother worked after he graduated from the Chemical Engineering, SNU.
FYI;
1. Korean Atomic Energy Research Institute (KAERI);
http://en.wikipedia.org/wiki/KAERI
2. Nuclear Power in Korea;
http://en.wikipedia.org/wiki/Nuclear_power_in_South_Korea
3. International Atomic Agency (IAEA) reported;
http://www.armscontrol.org/print/1714
(I am sorry to write long as my Comment, WM.
It should've been a Reply to your presentation?)
2015.01.23 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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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에 북한이 남침을 했다면....
바로 그때 김희중의 북한에서의 개인적 관찰이 정확했다면...
과연 어떻게 되었을가?
그때는 남한의 사정이 극히 어두울때가 아니였던가?
"북한은 그때 전쟁 준비를 끝내고 기회만 엿보고 있었던 것 같다. 군사력이 남한보다 우월했고,
미국은 베트남전에서 패한 뒤 막 철수해 넋이 빠진 상태였다.
남한은 '10월 유신'으로 혼란스러웠던 반면 북한은 안정적 체제 아래 통일에의 열망으로 들끓고 있었다."
"김 선생, 사흘 안에 떠나지 않으면 영원히 못 떠날 수도 있습니다." 놀라운 이야기였다.
남쪽으로 향하던 군인들, 몇 달 안에 통일이 된다는 이야기가 머리를 스쳤다."
무엇이 김일성(金日成, 1912년 4월 15일 ~ 1994년 7월 8일)의 재 남침을 막었을가?
김일성은 바로 그때 절호의 찬스를 영원히 놓지지않었을가?
박정희의 유신체재가 이런 낌새를 느끼며 급히 서둘러 실행돤것이 아닌가?
만일 민정이 들어섰다면, 민정의 혼란하에서 남한이 북한의 침입을 견뎌낼수있었을가?
등골이 써늘해지는 얘기다.
하여간 남한은 운이 좋은 나라가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