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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카메라로 바라본 세상 33.

푸에블로 호

[중앙일보]입력 2006.10.18

나포된 배 촬영 거듭해 요청하자 "공화국은 그리 만만치 않습니다"


푸에블로 호는 현재 평양 대동강 변에 전시돼 ‘북한 안보교육용’으로 활용되고 있다. 김태성 기자
 
 
1968년 1월 23일 낮, 미 해군의 최신예 첩보함 푸에블로(USS Pueblo) 호는 북한 원산 앞바다에서 정보수집 활동을 하고 있었다. 바람이 점점 거세지고 하늘엔 먹구름이 덮이기 시작했다.

병사들이 식사를 하고 있을 때 함장이 비상벨을 눌렀다. 정체불명의 함정이 고속으로 접근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가까이 다가온 배는 북한 해군의 반 잠수정이었다. 그들은 푸에블로 호의 국적을 물었고 함장은 성조기를 게양하는 걸로 대답했다.

곧이어 세척의 북한 어뢰정이 도착해 나포를 시도했다. 미그기 두 대도 굉음을 내며 푸에블로 호를 스칠 듯 비행했다. 상황을 파악한 일본 도쿄의 미 5공군 사령부는 한국 공군의 즉각 출격을 요청했다. 이에 3개 전투기 편대가 출격했다. 불과 40시간 전 북한 특수부대인 124군부대가 청와대를 습격한 '1.21사태'가 발생했기 때문에 한국 전투기는 미사일과 실탄을 가득 실고 있었다. 하지만 푸에블로 호는 이미 북한의 방공망 안으로 들어간 뒤였다.

미국은 충격에 빠졌다. 미 해군 역사상 자국 함정이 외국군에 의해 나포된 것은 처음이었다. 더구나 푸에블로 호는 첩보함이었다. 핵 항모 엔터프라이즈 호가 원산 앞바다로 급파되었고 동북아의 미군 기지들은 전시상황에 돌입했다. 그러나 승무원들의 목숨이 북한 손아귀에 있었다. 미국은 북한의 요구대로 영해 침범 사실을 시인하고 공식 사과할 수 밖에 없었다. 승무원 82명은 그해 크리스마스 직전 판문점을 통해 귀환했다.

이 사건으로 미국인의 대북 감정은 크게 악화되었다. 하지만 기자인 나한테는 기회이기도 했다. 취재할 수만 있다면 세계적 특종이 되기 때문이다.

금강산 가는 길에 원산을 들렀을 때 박오태에게 슬쩍 물었다. "원산에 아직 푸에블로 호가 있습니까?" 그는 "…있습니다. 아니, 없을 수도 있습니다"하고 얼버무렸다.

있는 게 분명했다. 사진을 찍을 수 있게 도와 달라고 했다. 박오태는 내 부탁을 못들은 체 하다 줄기차게 요구하자 결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미국 놈들은 치사하게 간첩 활동을 벌였습니다. 우리를 얕잡아 본 것 아닙니까? 공화국은 그렇게 만만치 않습니다." 그리고는 "정부 방침 상 불가능 합니다"하고 잘라 말했다. 특종 거리가 눈앞에 있지만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허탈한 마음으로 송도원해수욕장 백사장을 걸었다. 유명한 곳이라고 박오태가 자랑했지만 푸에블로 호에 미련이 남은 내 눈에는 그저 그랬다. 한참 걷다보니 '남자'라고 쓴 커다란 팻말이 보였다. 다시 몇 백 미터 가니 이번에는 '여자'라고 쓴 팻말이 서 있었다. 저것들이 뭐냐고 물었다.

"남자는 남자들끼리, 여자는 여자들끼리 수영합니다. 당연한 것 아닙니까?" 박오태는 별걸 다 묻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해수욕장을 남녀가 따로 사용하다니…. 세상 어디서도 듣지도 보지도 못한 일이었다. "가족끼리 오면 어떻게 하느냐?"고 물었다. 박오태는 잠시 생각하더니 "중간에서 놀지요" 했다. 그는 그렇게 말해놓고 자기가 생각해도 황당했는지 픽 웃었다.

김희중 (상명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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