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4.04 02:46
https://youtu.be/WktYRl9WpSY
최희준 - 하숙생 (1988)
https://youtu.be/q6crzH4GH74 최희준 - 진고개 신사(1988)
https://youtu.be/NDR6MaORE7U 최희준-맨발의 청춘 [1964]
최희준 (1936년)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출생 1936년 5월 30일 (81세), 일제 강점기 경성부 직업 가수, 기업가, 前 정치가 활동 시기 1957년 ~ 현재 종교 유교(성리학) → 천주교(세례명: 디모테오) 최희준(崔喜準, 1936년 5월 30일 ~ )은 대한민국의 가수이자 제15대 국회의원이다. 본관은 삭녕. 개명 前 이름은 최성준(崔省準)이며, 아호(雅號)는 소헌(小軒)이다.
생애 서울대학교에서 법학을 전공했다.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3학년 때였던 1957년에 황병기와 함께 참가한 학교 축제에서 샹송 《고엽》을 불러 입상한 뒤, 1959년 졸업과 함께 파피 김(본명 김안영)을 통해 미8군 무대에서 가수 생활을 시작했다.
1960년 첫 작품인 《우리 애인은 올드미스》가 인기를 누리면서 스타덤에 오른다. 《엄처시하》(1961년, 문화방송 드라마 주제가) 발표 후 1961년 9월 해병 연예대에 입대한다. 1964년 2월 제대 후 《맨발의 청춘》(1964년, 영화 "맨발의 청춘" 주제가) 《하숙생》(1965년, 작사가 김석야 원작의 한국방송공사 라디오 드라마 주제곡. 1966년 신성일, 김지미 주연으로 영화화.) 등을 발표해 변함없는 인기를 누리고, 1964년에는 3대 명문 대학교 출신 가수들의 밴드인 "포 클로버즈"의 보컬로 활동한다.
1974년 앨범 《길》을 발표한 뒤 사업가로 변신했다가 1995년 정계에 컴백한 김대중의 신당 새정치국민회의의 발기인으로 참여했고, 이듬해 총선에 안양시 동안구 갑선거구에 출마해 당선되어 15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이 후 한국문예진흥원 상임감사(2001년~2003년), 한국대중음악연구소 소장(2003년~2006년)을 지낸 뒤 가수 활동을 재개했다.
연예 분야 경력 1957년 서울대학교 축제에서 프랑스 어 샹송 곡을 불러 가수 첫 데뷔. 1958년 가수로써 미8군 무대에 첫 발을 딛음. 1960년 《우리 애인은 올드 미스》라는 곡으로 본격 가수 데뷔. 1982년 영화 《겨울여자 2부》의 단역으로 영화배우 데뷔.
소속 前 한국대중음악연구소 소장 1983년 대웅제약 (우루사, 지미콜) 1989년 팔도 팔도 설렁탕면
학력 경복고등학교 졸업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행정학과(부전공: 법학) 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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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04 03:01
2018.04.04 06:06
1965년은 제가 입학 하던 해입니다. 하숙생이 한참 불리워 졌습니다. 불교, 도교적인 가사에
독특 한 창법으로 심오 한 진리를 전달 하는 듯한 느낌 입니다.
가요 무대를 즐겨 보는 데 최희준 노래를 요즈음 다른 가수가 부르는 것을 거의 본적이
없 습니다. 그 노래의 분위기를 표현 하기가 힘들어서 일 까요?
2018.04.04 14:50
세월의 흐름에 사람들과 문화가 달러진것이죠.
옛날 그때의 철학적 우울한 인생관이 사라지고 자유분방한 태도로 바뀐것 같습니다.
The modern kids do not know the life of those old days.
Now, who cares such sad and philosophical lifestyle?
What else do they know except playing with cell phones?
Fun, Joy, Rhythm, and Sarcasm is the mainstay of modern life.
A person like me from the older generation still likes to go back to old songs.
I am still comfortable and find my mental home in them.
Some of us love to visit the nostalgic past and there, we get positive strength and happiness.
우리가 no longer in those 맨발 or 하숙생 and we feel our "인생의 보람".
By having suffered harder time in our younger days, we now know better what the happiness is.
It was a blessing after all.
안개낀 아침에 일어나 Dr. Ohn의 comment에 있는 "진고개 신사, 최희준"을 보다가
옛날 생각이 간절히 나길래 이 webpage를 올립니다.
그때... 의과대학 졸업할 즈음이였지요.
"맨발의 청춘"을 부르다가 학교를 졸업하고 먼 방랑의 길을 떠난지 53년이
되어가는군요.
그 "맨발의 청춘"이였던 본인이 오늘 screen 앞에 앉어보니, 아마 영원한 "하숙생" 신세에
먼 추억을 돌려보는 "진고개 신사"의 여운을 느끼게합니다.
PS: 최희준씨의 노래를 다시 들어보니, 그는 옛날에 흔했던 뽕짝가수라기보다는
그 발성이 아주 오늘날의 현대 가수처럼 노래하는군요. He was way ahead the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