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4.19 05:08
- 김수영 - 푸른 하늘을 제압하는 노고지리가 자유로왔다고 부러워하던 어느 시인의 말은 수정되어야 한다. 자유를 위해서 비상하여 본 일이 있는 사람이면 알지 노고지리가 무엇을 보고 노래하는가를 어째서 자유에는 피의 냄새가 섞여 있는가를 혁명(革命)은 왜 고독한 것인가를 혁명은 왜 고독해야 하는 것인가를 - <거대한 뿌리>(1974) -
1960년에 일어난 ‘4·19혁명’은 정부의 부패와 부정 선거에 항거하여 학생을 중심으로 민의가 결집하여 일어난 혁명이다. 조직이나 주도 세력도 없었으나 유일하게 독재자를 몰아내고 성공한 혁명이었다. 186명의 고귀한 생명이 희생됐으나, 이 땅에 ‘자유’와 ‘민주주의’의 가치를 확립한 고귀한 정신적 가치의 승리였다. 그러나 다음 해인 1961년에 일어난 박정희 등 군부 세력의 ‘5·16 군사 쿠데타’에 의해 그 고귀한 정신은 계승되지 못한 미완의 혁명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독재 정치는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 없다는 것과 국민의 자유를 보호하고 존중해야 한다는 교훈을 남겨 놓았다. 시 <푸른 하늘을>은 1960년 6월 25일에 씌어져 그 해 <조선일보>지상에 발표되었다. 이 시를 김수영이 쓴 의도는 ‘4·19혁명’의 본질적 의도를 환기시키며,그 혁명의 진행 과정에서 변질하고 있는 상황에 대해 냉정한 경고를 하기 위해서이다. 무임 승차한 정치가들은 ‘4·19혁명’을 이용할 대로 이용하였고, 혁명에 참가하지도 않은 인사들이 자기 변혁의 고통도 없이 혁명 정신을 들먹이며, 거리에는 자기 요구를 달성하려는 사람들의 데모로 사회는 일대 혼란의 상태로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나중에는 사회 보장을 요구하는 상이군인들이 국회의사당까지 점거하는 초유의 사태를 불러오기도 했다. ‘자유’란 무엇인가? ‘진리’의 가치관을 보유할 때 ‘자유’의 개념이 성립하는 것이다. ‘자유’는 적극적으로 투쟁하여 성취해야 할 실천적 개념이다. ‘자유’와 ‘방종’은 구분되어야 한다. 올바른 혁명을 이루어내기 위하여는 자기 희생을 통한 자기 변혁과 그 과정에서 겪어야 하는 고통을 스스로 감내해야 한다. 그러므로 이 시의 시적 화자는 참된 혁명과 자유 정신을 지켜 나가기 위하여 고독할 수밖에 없게 된다. “푸른 하늘을 제압(制壓)하는”에서 ‘푸른 하늘’은 예로부터 이상과 동경의 시적 공간으로 쓰이고 있다. 따라서 ‘푸른 하늘’은 인간이 지향하고자 하는 동경과 순수 세계의 공간을 의미한다. 그런데 위엄이나 위력으로 남을 누른다는 뜻인 ‘제압(制壓)’이란 표현을 통해, 시적 화자는 노고지리가 자유를 만끽하며 푸른 하늘을 날고 있는 모습을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있다. ‘노고지리’는 ‘종달새’의 옛말이다. 밝고 명랑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노고지리가 하늘 높이 비상(飛翔)하여 자유를 즐기는 모습에 담긴 시적 의미의 문제점을 “노고지리는 자유(自由)로웠다”라고 제시하고 있다. “부러워하던 / 어느 시인(詩人)의 말은 수정되어야 한다”에서 영국 낭만주의 시에 나오는 자유의 상징으로 종달새의 의미를 인식하는 것도, 댓가나 희생을 치루지 않고 자유를 즐기는 상징으로 ‘노고지리’를 보는 것도 잘못이라고 시적 화자는 생각한다. 노고지리가 지상을 박차고 하늘을 향해 비상하여야 하는 근본적 이유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맹목적인 자유를 누리는 노고지리와는 달리, ‘자유를 위해서 비상(飛翔)하여 본 일이 있는 사람’은 희생과 투쟁을 위해 진정한 의미의 자유를 쟁취하고자 하는 존재를 뜻한다. ‘자유’는 자기 주장이 옳다는 ‘진리’를 인식할 수 있을 때 부르짖을 수 있다. 노고지리가 노래하는 것은 지상과 같은 장애물도 없고 생명의 위험도 없는 무한한 공간에 대한 맹목적인 자유이다. 그러나 이러한 자유는 인간이 지향하는 가치가 아닌, 생래적(生來的)이고 본능적인 행동일 뿐이다. ‘자유’는 외부로부터 피동적으로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투쟁을 통해 피를 흘려 쟁취하는 것이 진정한 ‘자유’이다. 자유를 얻기 위해서는 고통과 아픔과 함께 희생을 치루는 과정을 겪어야 한다. ‘프랑스 혁명’에서도 볼 수 있듯이 혁명에 이기적 욕망이나 정권욕이 개입하지 않고 순수성과 고귀한 자유 정신을 지킬 때 성공할 수 있다. 그러므로 혁명을 한 개인이나 단체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여길 때 혁명 정신은 훼손되고 혁명의 모습은 부정적인 결과로 변질된다. 그러므로 혁명 정신을 올곧게 지켜가고 혁명이 성공하기 위해서도 ‘혁명’은 고독한 것이며 고독해야만 한다. 이 시의 제2연은 ‘노고지리’의 자유를 변용시켜 혁명의 참된 의미로까지 시적 변용을 이루어내고 있다. “혁명은 / 왜 고독해야 하는 것인가를”은 ‘4·19혁명’이 성공하자 이 나라는 일대 사회적 혼란에 휩싸이게 된다. 정치가들은 정권 탈취에 ‘4·19 혁명’ 정신을 수단으로 삼고, 개인적인 요구 사항과 이권을 달성하기 위하여 툭하면 ‘데모 바람’이 불게 된다. 혁명이란 대중 심리와 영합하거나 원칙을 저버릴 때 혁명 정신은 훼손되고 실패하게 된다. 혁명이 성공하기 위해서도 혁명 정신의 본질과 순수성은 지켜져야 하는데, 사람들은 자기 변혁도 이루지 못한 채 ‘자유’와 ‘방종’을 구분할 능력도 없었다. 이와 같은 무질서와 혼란이 결국 다음 해에 ‘5·16 군사 쿠데타’를 불러오게 되고 말았다. 시적 화자는 ‘4·19혁명’의 진행 과정에서 일체의 감정을 배제하고 자기 변혁의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는 혁명의 있어 ‘고독’의 당위성을 제시하여 혼란된 사회에 대해 냉철한 경고를 하고 있다. - 김원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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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1921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병약했으며, 선린상고시절에는 오스카 와일드의 원문들을 외워 읽을 만큼 영어 성적이 우수했다.
이후 일본의 도쿄상대에 입학하였다. 이후 학병 징집을 피해 만주로 이주했다가 광복과 함께 귀국하여 시 창작을 시작하였다. 또 연희전문에서 잠시 수학했으나, 졸업하지 않았으며, 1947년 예술부락에 〈묘정(廟庭)의 노래〉를 발표하면서 등단한 후 김경린, 박인환과 함께 시집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을 발표하여 주목을 끌었다.
한국전쟁 때 서울을 점령한 북한군에 징집되어 참전했다가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 석방되었다. 이후 통역 일과 잡지사, 신문사를 전전하며 시작과 번역에 전념하였다.
1959년 첫 단독 시집 《달나라의 장난》을 간행하여 제1회 시인협회상을 수상했다. 이후 번역과 작품 활동을 계속하다가 1968년 술을 먹고 귀가 길에 버스에 치여 사망하였다.
[편집] 문학 세계
한국의 대표적 참여 시인으로 평가받는 김수영은 초기에는 현대문명과 도시생활을 비판하는 시를 주로 쓰다가 4.19 혁명을 기점으로 정권의 탄압과 압제에 맞서 적극적으로 부정과 타협하지 않는 정신을 강조하는 시를 썼다. 그는 이렇게 썼다. "4.19때 나는 하늘과 땅 사이에서 통일을 느꼈소.... 헐벗소 굶주린 사람들이 그처럼 아름다워 보일 수가 있습디까!"[1]
평론가 김현은 그를 "1930년대 이후 서정주·박목월 등에서 볼 수 있었던 재래적 서정의 틀과 김춘수 등에서 보이던 내면의식 추구의 경향에서 벗어나 시의 난삽성을 깊이 있게 극복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던 공로자"라고 평가한다.
그의 사후 민음사에서는 그를 기념하는 김수영 문학상을 제정하여 1981년 이후 매년 수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