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6.24 14:59
“이승만 정부, 일본 망명 요청설” 사실! 입력 2015.06.24 (20:00) Click below to see details: *전쟁 통에 지도자는 ‘망명 시도’…선조와 이승만 닮은꼴* 한국전쟁 당시 이승만 前 대통령의 행동에 대해 역사적 논란이 많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일본 망명 요청설'인데요, 한국전쟁 당시 이승만 정부는 실제로 일본에 망명 요청을 했을까? ■ 이승만 前 대통령 ‘일본 망명 요청설’ 한국전쟁 발생 직후 불과 사흘 만에 서울이 점령당하는 등 다급한 상황이라, 당시 한국 정부의 공식 기록은 전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사실 확인을 위해 `망명 지역'으로 거론됐던 일본 야마구치 현청의 도서관을 찾았습니다. 야마구치현의 역사를 기록한 `야마구치 현사'에서 1950년의 기록을 살펴봤습니다. ▲ 야마구치현사 당시 `다나카 타쓰오' 야마구치현 지사는 한국전쟁 발생 이틀 뒤인 6월 27일, 외무성을 통해 "한국 정부가 6만 명의 망명정권을 야마구치현에 세우고 싶어한다"는 전보를 받았다고 적혀있습니다. 이에 대해, `다나카' 지사는 현재 지역 주민들에게도 배급이 제대로 지급되지 않고 있는 등 식량 문제가 심각하다며, `한국인 망명' 수용에 반대 의사를 밝혔습니다. ■ 일 “한국인 5만 명 수용” 계획 `한국인 망명'에 대한 조금 더 정확한 공식 기록은 없을까? 여러 사람에게 확인하는 과정에서 교토의 한 대학에 있는 `재일교포 3세'인 교수님이 한국전쟁 당시 이 문제와 관련한 미국 공문서보관소의 `미 군정 문서' 마이크로 필름을 소장하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교토로 달려갔습니다. 이 문서는 한국전쟁 발생 열흘쯤 뒤인 1950년 7월7일의 기록이었습니다. 야마구치현의 `다나카' 지사는 일본 츄고쿠 지역 5개 현 지사 회의에 참석한 자리에서 `한국인 5만 명 수용 계획'을 발표합니다. `다나카' 지사는 영문으로 된 `비상 조치 계획'이란 제목의 이 보고서에서 야마구치현 아부 등 4개 자치단체에 20개의 피난 캠프와 마을을 만들고 임시 막사 1곳에 200명씩, 모두 250개 막사에 5만 명을 수용하겠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이 보고서에는 병실 등 의료시설과 위생시설, 식량지원 등의 내용도 포함돼 있습니다. 야마구치현은 이 영문 보고서를 당시 미 군정에 제출하고, 예산 지원을 요청했습니다. ■ 일본은 ‘조선정보실’…이승만 정부는 ‘깜깜이’ 당시 식량부족으로 배급을 받는 등 패전의 상처를 극복하지도 못한 일본의 한 지방정부인 야마구치현이 이렇게 한국 관련 문제에 정통하고 발빠르게 대처할 수 있었던 것은 `조선정보실'이라는 별도 기구를 운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조선정보실'에서는 일제 강점기때 조선총독부나 경찰로 한국에서 근무했던 한국말이 유창한 일본인을 특별 채용했는데, 한국의 라디오방송 등을 매일 청취하고, 야마구치 지역의 재일한국인들을 만나 한국 관련 정보를 수집했습니다. 이들은 이 정보를 모아 `조선정보'라는 문건을 만들어 일본 총리와 내각 각료들에게 수시로 보고를 했습니다. 한국전쟁 발생 이틀 전인 6월 23일에도 야마구치현 지사가 `북한이 남침할 위험성이 매우 높다며 대책이 필요하다'는 보고서를 일본 총리에게 전달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야마구치현의 `다나카' 지사는 한국이 북한과 중국,소련 등 공산주의 세력의 `1차 저지선'이고, 야마구치현은 일본 본토의 `방파제'와 같은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고 한반도 정세 변화를 꼼꼼하게 확인했습니다. 이 `한국인 피난 캠프' 계획이 어느 정도까지 진행됐는지 다른 문서를 더 찾아내지는 못했습니다. 그리고, 이승만 정부의 `일본 망명'도 인천상륙작전 등으로 전쟁의 양상이 완전히 바뀌면서 실행에 옮겨지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한국전쟁 발생 직전, 이승만 정부가 한반도와 주변 정세에 얼마나 어두웠는지, 한국전쟁 발생 직후 이승만 정부가 어떤 상황이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
2015.06.24 15:20
2015.06.24 19:37
2015.06.25 02:29
이글의 골자에서 "북한남침"이 (남한북침이 아니고 !) stress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일본인들이 예고했다는),
이글은 북한이나 좌파 관계의 조작이 아니라는 것 입니다.
KBS는 이미 잘알려진 "좌파" 단체로서, 사실이 아니라면 왜 북한남침을 "예고-우려"한 일본인들의 이야기를 썼을가요?
이글 자체가 남한북침을 부정하는데 KBS가 실수한것일가요?
오래된 이승만의 "일본망명설"은 사실이건 아니건간에,
더구나 현 한국정치상황에서 좌파, 우파 정치경쟁에 상관없는 일이지요.
"친일파가 보수파"라는 개념은 있지만 (이승만도 개념적으로 친일파에 속하지요),
조갑제 ("보수-우파") 가 왜 이승만을 옹호하는지 알수없읍니다. 아마 KBS의 Media integrity를 까는것인지?
현재의 한국보수(박근혜)파는 이승만과는 전혀 상관이 없지요.
박근혜는 이승만의 계승자가 아니며, 친일파도 아니지요.
이승만은 이제는 (제6공화국체재에서) 전혀 정치적 의미없는 과거일 뿐입니다.
어느 미개국(한국초기- 419가 무너뜨린 제1공화국)의 부패했고 무능했던 대통령이였다는것 뿐이지요.
만일 그렇지 않었다면, 왜 419, 516 이 일어났나요?
우리의 419는 학생들의 장난이였나요? No !! 우리는 부패했고 무능한 정부에 반기를 들었던것입니다.
2015.06.25 02:35
요새 이승만의 "위대"설이 자꾸 고개를 들고일어나는것 같은데, 나는 동의 하지 않는다.
Any idiots could have done the same or better in the beginning of Republic of Korea.
What had he done for Korea for over 10 years until 4.19 event? Nothing, nothing...
이기붕에게 만사를 빼끼고, 나라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몰랐던 무능함은 절대로 칭찬의 대상이 못된다.
이런 사실들은 조선말기의 역사적 Fiasco를 못지않게 능가하고 남음이 있다.
6.25 사변이 나자말자 이승만은 6월 28일에 일본도피를 계획하고있었다.
수많은 국군이 북쪽에서 피를 흘리며 죽을때, 이승만은 남쪽을 바라보며 일본으로 도망칠 준비하고있었다 !!
그뿐만 아니라 미군이 그의 도망을 도와주고있았다.
여기에 나오는 "야마구치현"이 혹시 "독도"가 자기네 관활이라고 주장한 놈들이 아닌가??
이 문서를 보면 과연 그들이 그럴만도 하지않은가 ?? ㅎ, ㅎ, ㅎ.
만일 6.25 진전이 여의치 않었다면 "독도" 뿐 아니라 "전 한국"이 야마구치현의 소속이 될뻔한것이 아닌가?
더욱 아찔한것은, 본인 부친이 공무원이였고 탈북자였기에 이승만따라 야마구치현에가서
"와다시와"는 "야마구치현 피난국민학교"에 다녔을거고... 그 다음엔 무엇이 되었을가? 우동장사? 스시 요리사? Wow...
요새 오래 비밀로 되었던 문서가 개방되면서 많은 모르던 사실들이 공개됩니다.
6.25전쟁은 스탈린이 직접 Moscow에서 작전지휘를 했다는 사실도 나오지요.
다음 댓들을 참고하십시요. (국군 6사단의 춘천 방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