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1.13 18:57
It happened in the year of 1950 during the summer, possibly in the late July. Fig 2 Boeing B-29 Superfortress (Same as B29 Bomber) Fig 3 Lockheed P-80 Shooting Star, which was the Saber Fighter used in the Korean War.[The above North America F-86 is the current version of the jet fighter.] Fig 4. Map of Hansung station to Chungyang ri station Fig 5. Map of Chungyang ri station to Yongmun City In the Road to Yongmun It was a clear and sunny July afternoon, Mother, sister and I were on the road to Yongmun. We kept treading the dirt road to the east, Then suddenly appeared two flying Saber Fighters. They were no concerns to us, Since their targets were North Korean enemies. Incredibly the first fighter started to descend at us like a shooting star, We rushed to the rice paddies and folded ourselves to the paddy ridges. The very next moment the fighter slowed down, And then flew away from us, followed by the second fighter. I reckon the fighter pilot immediately recognized us, Not to be North Korean soldiers, their target. It happened almost seventy years ago, But my memory of the swooping Saber has been as vivid as yesterday. Blessed is the benevolent soul of the pilot, Who must be very old now or already gone from here. Kwan Ho Chung – November 14, 2018 |
2018.11.13 19:08
2018.11.13 22:26
If we look back our lives,everyone would have
1,2,or few those crucial moments to be determined
fates of your lives in one way or other!
Obviously we are here at this time means we have
overcome over those adverse situations! Thank God
for that.
Thank God for you and your family as well,Sunbaenim!
Happy Thanksgiving to you all! KJ
2018.11.14 00:28
6.25 때, 사진이나 영화에서 보았던 치마 저고리 입은 부녀자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긴줄을
만들어 논두덕 길을 걸어 가는 모습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러다가 하늘에서 비행기가 나타나면
놀라서 급하게 주위로 숨으려고 뛰는 모습을 흔히 보았 습니다. 선배님 가족이 그중에 하나 였
다니, 놀랍 습니다.
2018.11.14 04:32
Speaking of Saber jet, I will share the dramatic event my family dealt with.
Our home in Pocheon, Kyunggi-do, is only some 16 km from 38 pararell.
Our village is a typical rural town, 4 km from 포천읍, where our family
have lived over 300 years. Our house was about 100 years old.
When the Chinese soldiers came down, per our grand father's order,
my father and older brother fled, and our grand parents, my brothers
and sisters, some 8 of us stayed home.
My older brother made a good size 장난감 구루마 for his younger brothers
to play with before he went away.
One day my two younger brothers were carrying their baby sister in it
and were running up and down on the road in front of the house when
two saber jets shot a missile to our house along with a round of machine gun.
The missile landed just about 20 feet from the room my grandfather was staying
in the middle of 안뜰. The missile created 깊은 웅덩이.
The machine gun bullets made multiple holes in the walls.
My mother, older sisters and I were away on the farm land.
Our 사랑채 was on fire. With the help of our neighbors we saved our 안채.
My little brothers and sister were OK.
Most luckily our grandpa was not hurt.
Also luckily those two saber jets flew away after just one round of attack.
It was my assumption that they mistook 구루마 as something for the Chinese soldiers can use.
However, if they saw the young children playing with 구루마, there is no excuse for what they did.
I suppose when they returned to their base and made a report, they probably said they destroyed
something of significance.
2018.11.14 06:11
정 선배님:
선배님의 글을 아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습니다.
그러나 F86 Sabre 는 1950년 겨울 처음으로 한국전에서 MIG와 공중전을 했습니다. 선배님이 말씀하신 전투기는 F86가 아닌 F80이 아닌가 합니다.
어떤 비행기였든 ,선배님의 경험을 이곳에서 읽고 어렸을 때의 그 무시무시한 625의 생각을 다시 하게 되어 감개무량합니다.
한중형, 중공군이 왔을 때에는 Sabre가 맹 활약을 할 때입니다.
신백효
2018.11.14 07:17
6.25 동난시 저는 충청남도 작은 도시에 살아서 서울에서 사셨던
분들같이 남쪽으로 피난가야 하는 곤욕을 치루지 않고 그저 사는곳에서
좀더 깊숙한 산골로 피난 했었는데 그런 우리 가족들에게도 우리 가족의
일생을 좌우할만한 일이 생겨 생전 덕으로 살으셨던 선친의 '은덕'으로
이렇게 오늘의 우리가 있음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선친께서는 예전 금융조합 전무이사(지금 은행의 지점장격)로 일을 하셨는데
하루는 산하에 있는 지소에서 젊은이가 수십리를 걸어서 message를 가지고
본서에 심부름 왔었는데 젊은이가 고생하는것이 안타까워 보였는지 선친께서
사택에 있는 어머님께 전화에서 오늘 점심은 손님이 있으니 점심을 차리라고
부탁했다 합니다. 선친께서 이 어린 소사를 데리고 집에가서 점심을 같이 하며
'젊은때의 고생은 사서도 하니 용기를 잃지 말고 정진하라'는 충고를 해주었다
합니다.
그일이 있은후 오랜뒤에 6.25가 발발해서 피난갔었는데 피난처에서 하루는
각집에서 한명씩 나와서 공지사항을 들으라 해서 아무래도 예감이 좋지 않아
아버지 대신 중학생이었던 셋째형을 보냈답니다.
저녁이 되어도 아들이 돌아 오지 않아 수소문 해보니 모였던 사람들중 형을
포함 몇몇은 군청이 있는 인민군 경찰소에 끌려 갔다합니다. 다음날 아버님은
걱정끝에 점심을 싸가지고 경찰서에 형을 면회 갔었는데 그 근처의 '유지들'을
잡을려고 혈안이된 상황에 호랑이 굴에 들어간 격이 된것입니다.
그런데 천우 일조로 경찰서 사찰주임이 그때 점심먹였던 그 소사여서 그가 아버님과
형을 몰래 빼주며 '그때 일개 소사였던 저를 전무님께서 점심까지 먹여가며 용기를
북돋아 주신 은덕을 잊을수가 없었습니다'라고 하더랍니다.
그다음 다음날 도망가는 인민군들이 마지막 발악으로 그때 잡아두었던 그곳의 소위
유지들(군수,경찰소장,국민학교 교장등)을 인쇄소에 가두어 불을 질러 죽이고 도망
갔다합니다.
그때 아버님이 돌아 가셨으면 우리 9남매의 운명은 어떻게 되었을까? 지금 생각해도
소름이 끼칠 일이 었습니다. 평생 덕인으로 사셨던 선친의 은덕이라 생각합니다. 규정
2018.11.14 07:50
Dr. 황규정: 좋은 말씀 잘 들었습니다.
이러한 절대절명의 순간에 무사히 살 수 있었다는 건 저 위에 계신 분의 가호가 있었다고 믿습니다.
감사합니다.
2018.11.14 07:58
Dr. 온기철: 우리는 그 상황을 빼고서는 직접 위험을 겪지는 않았습니다.
물론 9. 28 수복 때 미군의 공격과 북한 인민군의 방어사이에 서울 시민 모두 갇혀 있었지요.
그들은 민가속에 숨어서 광격을 하였기에 많은 시민이 볼모가 되다시피하여 살상을 당했습니다.
여기서 하고 싶은 말은 그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Pilot은 인도주의자라고 믿고
무고한 시민을 가급적으로 해치지 않음을 겪었고, 그 사실을 알리고 싶기 때문에 이 글을 썼습니다.
이것이 미국군인이었기에 우리가 살 수 있었지, 일본군이나, 중공군이나 인민군이라면
결과는 정 반대였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감사합니다.
2018.11.14 08:07
Dr. 이한중, 경기도 포천 본토인이시군요. 38선 근방이었으니 전쟁중에 얼마나 위험하였겠습니까?
본인은 지금까지도 그 Saber Fighter (그 당시 우리들은 쌕쌕이라고 불렀지요)안에
어떻게 전투요원이 있는지도 모릅니다. 물론 Pilot & Shooter(s)가 있었겠지요.
틀림없이 그 당시 아무리 발전한 미공군일지언정, 그들은 육안 혹은 Telescope정도를 사용하여 보았지 않은가 생각합니다.
그러니 현재 수준으로는 원시적인 장비었겠지요. 그래서 Human errors이 생기지 않을 수 없었지요.
하여간 집과 가산이 심하게 파손되었어도 가족이 모두 무고하시니, 참으로 저 하늘이 도우셨다고 믿습니다.
2018.11.14 08:25
정선배님:
저의 고향 경남, 거창은 1950년 9월에 미군이 인민군을 몰아냈습니다. 그러나 우리 식구가 피난해 있던 곳은 읍에서 20리나 떨어져 있는 곳이었습니다.추석날-아마 9월 28일인가 합니다- 아버님과 작은 외삼촌깨서는 이젠 살았다고 기분이 좋아 약주를 드시고 계시는데, 웬 젊은이가 지게에 장총을 지고 가는 것이 보였습니다. 아니 미군이 저기 와있는데 하며 젊은이를 야단치고 총을 빼앗아 피난해 있던 집마당으로 가지고 왔습니다.
아버님이 모르셨던 사실은 인민군 낙동강전투 지휘사령부가(합천읍에 있었다고 한국전사에 기록되어 있음) 가야산을 넘어 저의 외가집쪽으로 오고 있었던 것입니다. 다음날 아침 온 동네에 인민군들이 가득 차고 (저의 외갓집이 부대 사령부가 되었음) 조금있다 한 인민군이 집 마당으로 들어 오며 당신들이 우리 총을 누구에게 서 빼앗았다니 당장 내 놓으라고 야단을 하는 겁니다. 외삼촌은 뒤꼍으로 숨어버리고 아버님은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합니다.(어머님 말씀에 의하면) 이 때 어머님이 앞으로 나서서 “않되오, 이 총들은 어제 지나던 인민군이 잠시 보관하라 하여 우리가 가지고 있으니 못 주겠어” 하고 버티니 그 인민군이 압수증서를 써 주고 총을 가져 갔습니다.
그 후로는 추석날이면 어머니께서 이 일을 크게 이야기하시고 아버님은 묵묵히 약주만 드셨지요. 아버님께서 그 때 무슨 생각을 하셨는지 짐작은 갑니다만.
2018.11.14 10:17
여러분들의 story 고맙습니다.
유년시절 3년동안을 war zone에서 보낸 저는
작은 책한권을 쓸만한 일들을 경험했지요.
그리하여 쌕쌕이 saber jet에 관한 이야기 하나만 하겠습니다.
저의 유년시절 똘래 다섯명과 나까지 여섯은 항상 같이이행동을 하였습니다.
항상 흰 손수건을 호주머니에 넣고 뜰을 헤맸는데,
쌕쌕이가 별안간 나타나면 무조건 흰 손수건을 흔들고 환영을 했지요.
조금도 쌕쌕이를 무서워 하지 않았지요.
여러번 쌕쌕이가 바로 머리위로 날라갔지요.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었는지 지금 생각하면 았질 합니다.
24시간 미군 비행기들이 항상 머리위에 있었지요.
밤에는 조명탄을 미폭격기들이 계속 터트려 대낯같았습니다.
그당시 제일 무섭게 느낀것은 밤에 잠들기전에 그 폭탄중의 하나가 우리집
지붕에 떨어지면 이쩔까 하는 것이 었습니다.
2018.11.14 13:59
Dr. 신백효 말씀이 옳습니다. 다시 찾아보니 처음 제작되었던 Jet Fighter가 Lockheed P-80 Shooting Star라고 하는데, 1943년에 나왔고, 2차대전 말에 Italy에서 제한적으로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한국전에서 많이 사용되었고 그냥 F-80라고만 불렀다고 Wikipedia에 나왔군요.
그러니 여기 나온 Fig 1 사진은 현재 운용중인 Jet Fighter이지, 우리 세 식구를 쫓았던 장본인은 그냥 F-80가 맞습니다.
공군 군의관이셨다구요? 역시 박식하십니다. 나는 사창리 산골에서 복무했던 육군이었기에 좀 전투기에 관한 학식이 부족합니다.
이 F-80사진도 아래에 올리겠습니다.
그런데 아래 그림을 다시 보니 좀 더 낯익은 듯합니다. 그 때 무서웠던 놈이 바로 아래에 있습니다.
2018.11.14 14:26
2018.11.14 14:34
감동적인 이야기입니다. Dr. 황.
옛말에도 좋은 일을 하면 어느 때엔가 보답이 오고, 나쁜 짓을 하면 역시 그 업을 받는다고 하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 모두 힘이 닿는대로 좋은 일을 하여야지요.
2018.11.14 18:22
어렸을 때에는 무섭기도 했지만, 재미있게 놀기도 했군요, Dr. 이한중.
그 때 Pilot이 잘못 인식했으면 위험한 지경에도 이를 수 있었겠는데, 누구말에 의하면,
"Guardian Angel"의 보살핌으로 무사했다고 합니다.
하긴 우리 모두 자라는 동안에 위험도 적지 않았지요.
이 나이까지 이렇게 살아온 것에 대하여 감사할 뿐입니다.
2018.11.14 18:50
고맙습니다, 정선배님.
모두 맞는 말씀드립니다.
위의 쌔쌕이가 어렷을때 본 그 산뜻한 그 jet기들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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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cently I have read a number of writings on Korean War in this site, which made me write my personal episode
during the period of Seoul Occupation by North Korea.
Soon I plan to visit the Korean War Veterans Plaza near the Brooklyn entrance of Brooklyn Bridge
around this Thanksgiving time.
Happy Thanksgiving to all members of SNUM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