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2.06 18:08
2021.02.06 18:20
2021.02.07 09:08
미 해병 1사단 후퇴
미군과 중공군이 장진호에서 싸울 때 가장 강한군대는 동장군이었다.
영하 30-40도를 오르내리는 추위는 양군 병사들의 싸울 의지를 꺽어
놓았다. 거기다가 설사병까지 퍼져서 양군을 괴롭혔다. 중공군과 미군 모두
지형과 날씨 때문에 보급이 어려 웠다. 그러나 중공군의 보급 문제는 훨씬
더 심각 했다. 식량, 탄약, 무기등을 미군기지를 점령해서 충당할 요량으로
보급창고를 공격하지 않을 정도 였다.
미해병1사단이 큰 사상자 발생 없이 퇴각할 수 있었던 것도 동장군이 중공군
의 추격의지를 꺾어 놓았기 때문이었다.
당시의 중공군의 상황을 보면 만약 미군이 아니고 국군이 전쟁을 주도 했다면
충분히 이길 수 있는 전쟁이었다. 하기야 남의 나랏일을 자기나라 일처럼 봐줄리
가 없는 일이 아니겠는가?
2021.02.07 11:48
맥아더는 미 해병대 1사단과 미육군 10군단으로 인천상륙과 서울을 수복했다.
미 8군사령관 워커 중장은 당연히 자신이 유엔군을 지휘하여 북진하여 북한을
점령 할 줄 알았다. 그대로 밀고 올라가서 평양-원산 라인에서 방어선을 일단
구축할 작전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맥아더는 군을 둘로 나누고 자신이 총 지휘권을 차지 했다. 평양 진격은
워커의 8군이 해병대 1사단과 10군단은 알몬드 중장이 원산에 상륙하여 장진호
쪽으로 북진 하는 것이었다. 정말 어처구니 없는 전략이었다.
2021.02.07 12:03
McArthur might have been obsessed with his promise of "Home by Christmas."
Such a thing can not be guaranteed in a war. He had become too confident
and his soldiers had to pay the price. The wars are always stupid at best.
What a tragedy!
2021.02.07 22:18
국군 3사단은 10월1일, 제일 먼저 38선을 넘어 안양을 점령 했다.
인천상륙 작전이후 완전히 오합지졸이 된 인민군의 저항은 거의 없었다. 순식간에
원산을 점령 했다. 그러나 맥아더는 원산상륙 작전을 감행 했다. 아군이 이미 점령
했는 데도.
인천상륙에 주력 부대였던 해병 1사단과 10군단 병력은 인천항을 떠나 부산으로
가서 원산 앞바다에 도착 했다. 원산 앞바다에는 소련이 수뢰 3000개
를 깔아 놓았다. 일본 해군의 도움을 받아 모두 제거 해야 했다.
아무 저항 없이 원산에 내린 10여만명의 병력은 장진호를 향해서 북진 했다.
그냥 육로로 올라 가도 될일을 왜 바다를 빙빙 돌아서 하지 않아도 될 상륙 작전을
감행 했는 지 알 수가 없다. 그가 좋아하는 전시효과 외에는.
삼수갑산/김소월
삼수갑산 내 왜 왔노 삼수갑산이 어디뇨
오고가니 崎險(기험)타 아하 물도 많고 山疊疊(산첩첩)이라 아하하
내 고향을 도로 가자 내 고향을 못가네
三水甲山(삼수갑산) 멀더라 아하 蜀道之難(촉도지난)이 예로구나 아하하
삼수갑산이 어디뇨 내가 오고 내 못가네
不歸(불귀)로다 내 고향 아하 새가 되면 떠가리라 아하하
님 계신 곳 내 고향을 내 못가네 매 못가네
오다가다 야속타 아하 삼수갑산이 날 가두었네 아하하
내 고향을 가고지고 오호 삼수갑산 날 가두었네
불귀로다 내 몸이야 아하 삼수갑산 못벗어난다 아하하
*산수와 갑산은 개마고원에 있는 시골 마을이다.
개마고원은 백만년전 백두산 화산 폭파로 이루러 졌다고 한다.
그래서 개마고원 일대는 농작물이 잘 자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