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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neral 그립다 말을 할까

2005.04.17 12:29

오세윤 Views:6881

일수거사께서 올린 법정 스님의 글을 읽고 규정의 답글,
물안개의 시를 보다가 글 하나 올립니다. 이번 '책과 인생'
6월호에 게재될 글입니다.
'혜명'이란 법명은 법정스님에게서 받은 법명이랍니다.





    그립다 말을 할까

                                                            오 세 윤

정초를 집에서 지내고 어머니를 다시 양로원에 모셔다 드렸다. 양로원 생활 두해, 염려했던 것과는 달리 어머니는 빠르게 익숙해갔다. 양로원생활을 무척이나 만족해하셨다. 원장스님을 뵈러 다녀오는 사이 당신은 벌써 마실을 가셨는지 방은 텅 비어 있었다.
빠금히 열린 문 사이로 텔레비전이 저 혼자 ‘자연 다큐’를 방영하고 있었다. 햇살이 적당하게 퍼져든 수면 바로 아래의 물빛이 화면 가득 그대로 푸른 하늘이었다. 한 마리의 하얀 해파리 그 진한 코발트색 속을, 마치 바다의 맥박처럼 일정한 움직임으로 수면의 밝은 쪽을 향해 유유히 헤엄쳐 오르고 있었다.

이태 전이었다. 봉수리의 실버타운에 입주한 친구 분을 뵙고 온 뒤로 어머니는 집에 계신 걸 부쩍 더 불편해 하셨다. 전화도 따로 놓아드려 수시로 아래 동생들, 친구 분들과의 통화에 불편이 없도록 해 드린 데다 집사람도 극진히 모시는 모양새였지만 전과 달리 흡족해 하는 눈치가 아니셨다. 자주 외로움을 타셨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 때 서두로 꺼내는 말씀도 전과는 완연 달라져 있었다.

“그 양반은 왜 일찍 가 가지구선.......”
“쓸쓸하셨어요, 어머니?” 짐짓 엉너리를 쳐보지만 어머니는 속을 빤히 안다는 듯 준비해둔 말씀만을 유성기 돌리듯 되풀이 하시고는 했다.
“애비야, 나 양로원에 갈란다. 돈도 비싸지 않고 시설도 잘됐다더라.”
어미 속을 그리도 몰라 주냐는, 세상에 없는 불효자 보듯 한껏 야속한 표정을 지으시면서 눈에 물기마저 가득 내 비치시고는 했다.
“왜 그렇게 가고 싶어 하셔요, 어머니. 저희들이 뭘 잘못해 드려서 그래요?”
“너도 어멈도 다 잘해주기야 하지, 하지만 나이가 들어봐라, 세상엔 부부 말고는 친구밖에 더 없어. 돈도 친구가 있어야 빛이 나는 법이느니. 늙어선 마음 편한게 제일이지.” 고까운 듯 말을 마치고는 야멸차게 등을 돌리시고 만다.

두 달여의 실랑이 끝에 그예 어머니를 실버타운에 입주시켜드릴 수밖에 없었다. 사회에 대한 맏이의 체면보다, 곁에 계신 것에서 내가 받는 안심과 위안보다, 어머니의 외로움은 상상이상으로 더 컸기 때문이라는 변명으로 불효의 변명을 삼았다.
한달이면 두어 번씩 짬이 나는대로 뵈러 갔다. 갈 때마다 어머니의 몸피는 한층 더 조그맣게 잦아들어 코끝을 시큰거리게 했다. 키가 한 치씩은 줄어드는 듯 했다. 좁은 어깨에 비해 턱없이 커보이던 숱 많던 머리도 한 옴큼씩 뭉텅뭉텅 빠져나가 볼품없게 작아진 두상이 하얗게 센 머리카락사이로 훤하게 들여다보였다. 시골장터 낯선 노파 보듯 송구스럽게 옹색했다. 나의 어머니일까 싶을 정도로 노친네는 점점 더 세상으로부터 무관심하게 멀어져가고 있었다.

TV를 끄고 어머니를 찾아 나섰다. 황토 찜질 방에 친구 몇 분과 누운 채 두런두런 한창 이야기꽃을 피우고 계셨다. 가겠다는 인사를 눈으로 받으시며 금세 끊겼던 대화를 다시 이어가시고 만다. 꾸민데 없이 만족한, 근심을 덜어낸 평화로운 모습이었다. 소리 나지 않게 문을 닫고 뒷걸음으로 나왔다.

두 시간 거리의 귀가길이 전에 없이 가벼웠다. 하지만 돌아와 집 앞에 서자 무언가를 잃어버리고 온 듯한, 설명하기 힘든 미진한 감정이 완강하게 문을 막아서 선뜻 집안으로 들어설 수가 없었다. 아내는 출타하고 집은 비어 있었다. 연말을 고단하게 지낸 탓에 생긴 입속 염증이 따끔따끔 쓰렸다. 차려놓고 간 저녁을 먹으며 반주로 정종 한잔을 마셨다.

9시가 조금 넘었을까, 갑자기 가슴이 조이듯 답답하고 불쾌하게 아팠다. 토할 것 같이 메슥거리기도 했다. 서둘러 가까운 한일병원으로 달려갔다. 운전 중에도 안정이 되지 않았다. 어지러운 듯도 했다. 겁이 났다. 나이로 보아 협심증이 의심되는 불유쾌한 증세였다.
응급실은 도떼기시장이었다. 다행히 이동침대에 뉘어져 바로 진찰을 받았다. 밀려드는 환자로 바쁘기만 한 의사는 건성 부르게 증상을 듣더니 입을 벌려 혀를 들어올리게 했다. 캡슐하나를 혀 밑에 넣어준다. 심 외막의 관상동맥을 확장시켜 피가 잘 흐르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빠르게 설명을 한다. 흡수되면서 혀 아래가 뜨겁더니 이어 머리가 아팠다. 간호사가 아스피린 하나를 주었다. 혈액응고를 막아 혈전형성을 예방하는 한편 두통도 가라앉혀줄 거라며 상냥하게 설명한다. 혈전이 생겨 관상동맥을 막으면 바로 심장마비가 온다고 겁나는 소리를 한다. 아스피린을 먹으면 속이 쓰리다 말했더니 겔포스 한 봉을 주며 함께 먹으라 한다. 가슴 X-선 사진을 찍었다. 심전도 검사도 했다.

의사의 지시를 받은 간호사가 혈관에 연결된 수액 병에 Heparin을 주입했다. 혈전에 의한 급성 관상동맥 폐쇄를 치료하고 심부정맥 혈전을 예방하기 위해서라고 어려운 말을 했다. 두식경이 더 지나서야 겨우 병실로 올라갔다. 6인용 병실이었다. 밤 1시가 넘었는데도 잠을 청하는 환자들 곁에 보호자란 사람들이 텔레비전을 켜놓은 채 넋을 놓고 있었다. 시끄럽고 불안해 견디기 힘들었다. 간호사에 부탁해 바로 1인용 병실로 옮겼다. 연락을 받은 아내가 놀라 달려왔다. 딸네 집에 있었다고 했다. 그나마 조금 마음이 놓였다.
담당의사가 올라왔다. 사진 상에도 심전도에도 별다른 이상은 없다고 했다. 날이 밝아 정상업무가 시작되면 ‘심 혈관 조영술’을 시행하겠다고 결정된 듯 말한다. 이곳은 아직 시설이 미비해 삼성의료원까지 가야 한다며 바쁜 듯 바로 병실을 나갔다. 겉보기와 달리 의사란 직업은 잠도 제대로 못자는 중노동의 하나였다. 두통은 계속되고 가슴통증도 별다른 차도 없이 뻐근하게 아팠다.

금식 지시에 따라 아침을 굶고 물만 한 컵 마신채로 앰뷸런스에 누워 북쪽에서 남쪽으로 서울 시내를 관통했다. 의료원의 방사선 검사실에서는 이미 모든 준비를 끝내고 내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도착하자 바로 검진을 시작했다. 편안한 얼굴의 담당 김 교수는 가져온 심전도와 가슴사진을 보더니 크게 걱정할일은 아니라는 듯 부드러운 말로 나를 안심시켰다.
왼쪽 팔목 혈관을 통해 바로 조영제가 주입됐다. 모니터 화면에 심장이 나타났다. 나의 심장이라 했다. 실체인 나는 침대에 누운 채인데 내 것인 심장은 머리맡 화면에 따로 떨어져 주인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독단적으로 뛰고 있었다. 저만의 생명체로 혼자 신기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바다 속 물빛처럼 푸른 화면 속, 조영제로 하얗게 빛나는 심장이 혈관들을 거느려 늘어트리고 유유자적 규칙적으로 헤엄치고 있었다. 아름다웠다. 건강했다. 눈물이 핑 돌았다. 조물주에게보다 먼저 어머니에게, 저렇듯 신비하고 예쁜 심장을 지니고 태어나게 해준 어머니에게 고맙다는, 뿌듯하게 가슴을 채우는 감사하는 마음이 물밀 듯 밀려들었다.
아득히 먼 옛날, 내 태어남의 기원이었을 그 먼 어머니에 대한 원초적인 그리움, 끈끈한 그리움의 끈은 길게 길 게 태초로 이어져 있었다.

검사를 끝낸 김 교수가 설명을 했다.
“검사소견에는 이상이 없네요, 심장도 관상동맥도 모두가 정상입니다.”
마음이 놓였다. 궁금했다. 왜 가슴이 아팠을까?
“그럼 왜 그런 증상이 왔을까요?”
한일병원의 담당 의사를 의식하면서 조심스럽게 의견을 피력한다.
“많은 환자들이 역류성 식도염으로 비슷한 증상을 보이고는 해요, 제가 보기에 선생도 그런 경우가 아닌가 짐작은 됩니다만.......”
“소화에는 별 이상이 없었는데요?”
나의 이의에 김 교수는 설명을 덧대었다.
“간혹 고단할 때 자주 발생하는 헤르페스감염으로 입이 헐었을 때, 그 바이러스가 식도염을 일으키기도 하지요.”
비로소 납득이 갔다. 아직도 입안은 헐어있어 음식 먹기 거북했다. 돌아오는 차에 올라 눕자 곧바로 잠이 들었다. 꿈을 꾸었다.

고향집 사립문밖 바닷가 작은 공터, 해가 지고 있었다. 둥근 원을 그리고 땅따먹기를 하던 아이들, 줄넘기를 하던 아이들, 사방치기를 하던 아이들이 모두 저녁을 먹으러 제각기의 집으로 돌아가고 공터에는 떨어지는 해의 힘없는 햇살만이 시들시들 기운을 잃어가고 있었다. 놀이의 흔적들만 남아 쓸쓸하게 해거름을 하고 있었다. 갑자기 친구들을 잃어버린 여섯 살의 내가 을씨년스럽게 혼자 공터에 쪼그리고 앉아 희미한 그림자를 돌담위로 길게 늘어 올리고 있었다. 나의 그림자를 밟고 어머니가 슬며시 다가왔다. 옆에 쭈그리고 앉으셨다.
“사방치기 할까?"
“아니”
“땅따먹기 할까?"
“싫어”
“줄넘기 할까?”
“그래”
둥근 줄 속으로 얼른 뛰어 들어갔다. 엄마의 둥근 파마머리가 둥글게 출렁거렸다. 바다에서는 모든 게 출렁거렸다. 해도 달도 엄마도, 하늘도 구름도 바람도 모두 둥글둥글 출렁거렸다. 엄마의 짧은 저고리 도련이 어두워지는 수평선위를 아슴아슴 오르내렸다.

누군가 어깨를 흔드는 바람에 잠이 깼다. 젊은 앰뷸런스 운전기사의 착한 얼굴이 머리맡에 웃고 있었다. 반쯤 열려진 차의 뒷문 틈새 사이로 하늘이 푸르게 펼쳐져 있었다.
“기사양반, 어머니가 계십니까?”
“네? 아- 네, 그럼요 함께 살고 계십니다요.” 흐뭇하게 웃는다.
어머니가 화제가 된 게 신이 나서였을까, 내려줄 것도 잊은 채 묻지도 않는 말을 덧두리로 달아맨다.
“아들 두 놈이 죄다 자기 할머니만 따라요, 잠도 할머니하고만 자고 학교 다녀와서도 할머니부터 찾으며 들어오는걸요 뭐.”
누군가가 날리는 가오리연 하나가 멀리 시야에 들어왔다. 모난 머리를 날렵하게 세운 채 긴 꼬리를 뽐내듯 흔들어 대며 바람을 타고 기세 좋게 하늘을 헤엄치고 있었다. 정월대보름이었다. 도시에서도 아직 어느 누군가는 그리움을 펄펄 하늘로 높이 날려 올리고 있었다.

2005. 1. 6. 湛 如






2004. 6월 계간 「시와 산문」에 수필 ‘가야금 산조’로 등단
에세이포럼 회원
경기 용인시 성복동 LG 1차아파트 112동 304호
031)-272-1600
011-9086-0536
e-mail :damyee53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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