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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neral [re] 부부의 미학(美學).....오 세 윤

2005.04.26 01:41

물안개 Views:6997






황규정 동문의 부부학을 잘 견학 하였습니다.
요번엔 이런 부부는 어떠할지-



부부의 미학(美學).....오 세 윤


“찬은 냉장고 둘째 칸에 있으니깐 국만 데워 드시면 돼요. 오늘 점심은 혼자 드셔야 되겠네.”
화장을 고친 아내는 커다란 연두색 쇼핑백을 어깨에 걸쳐 메고 미안한 기색이면서도 들뜬 속을 미처 다 감추지 못한 얼굴로 문이 갑자기 두 배쯤 무거워 진 양 오른쪽 어깨로 지긋이 밀면서 딸려나듯 현관을 나선다.

수요일 10시면 아내는 외출을 한다. 벌써 석 달여 째 예외가 없다. 물어도 빙긋 웃기만 할 뿐 단 한번도 시원하게 답을 들려준 적이 없다. 나에 관해선 꼬치꼬치 별걸 다 물어대면서도 자기 일에만은 숨김이 많다. 외출에서 돌아와 옷을 갈아입고 나오기가 무섭게 어디서 누구와 만났느냐, 점심은 무얼 먹었느냐, 무얼 타고 갔었냐, 거기라면 전철 몇 호선을 타고 가서 몇 호선으로 갈아타면 쉽게 갈 수 있었을 걸 그랬다는 둥, 시시콜콜 별걸 다 묻는 통에 골치가 다 지끈거릴 지경으로 몰아대면서도 정작 자기 행적과 주변에 관해서만은 세세하게 밝힌 적이 없다.
처제에 대한 동서의 불평 또한 똑같은 걸 안 뒤로는 이런 말 아낌 버릇은 그녀 집안의 내력이겠거니 가볍게 치부해 두는 걸로, 남들 말대로 그게 다 남편 사랑에서 오는 관심이리라 좋게 생각하면서 그대로 넘어가기가 다반사였다.
“오늘 어디 안 갔어?”
“아니, 나갔다 왔어요.”
“어디?”
“홍대 앞에요...” 언제나처럼 대답이 건성이다.
“누구 만났는데?”
“그냥 고등학교 동창들이죠 뭐.”
여자들 만나는 게 뭐 그리 궁금하냐는 심드렁한 말투다. 결혼 후 이제껏 외출에 관한한 둘의 대화는 이런 식으로 엇나가면서 때죽나무 으름덩굴 감기듯 이층장 먹감나무 무늬들 듯 어슷어슷 이어져 왔다. 요즘 들어서는 어찌 보면 안방에 드는 것조차 그리 달가워하는 기색이 아니다. 다 늦게 권태기라도 온 걸까?

현관을 나섰던 아내가 금방 되돌아 들어온다. 백에서 우산을 꺼내 우산 통에 도로 넣는다.
“테레비에서 비가 올 거라기에 우산을 넣었더니 하늘이 맑네, 차려 먹기 귀찮으면 점심은 식성대로 나가서 사 자셔요.”
듣다보니 슬그머니 부아가 난다. 불쑥 생각지도 않던 말을 뒤뚱 맞게 내뱉는다.
“싫어, 나 오늘 나가서 안 들어올 거요.”
“ ?, 어디 가시려 구?”
“아무데나”
“왜 또 갑자기?”
놀란 목소리로 아내가 묻는다. 무슨 송신(送神) 굿 할일이라도 났느냐는 홍두깨 맞은 얼굴이다.
“당신은 말도 없이 여기 저기 잘만 다니는데 나도 좀 그래 볼 참이요.”
행동거지가 예측불허로 돌출적이긴 하지만 그래도 배웠다는 사람이 불뚱 밸로 화내는 게 어처구니없다는 듯 아내는 눈을 아래로 깔며 음성을 낮춘다.
“그럼 좋으실 대로 하시구려, 내일은 오시는 거죠? 저 나갔다 올게요.”
현관문 닫는 소리가 평소보다 크다. 뭔가 마뜩치가 않는가보다.

속으로야 부아가 그리 심하게 난 건 아니었지만 내뱉은 말도 있고 해서 그 길로 대충 짐을 싸들고 집을 나섰다. 태안에 들러 단골인 토담집에서 게장백반으로 점심을 먹고 섬의 콘도에 짐을 푼 시각은 3시, 늦은 오후의 너른 바다가 눈앞에 그림처럼 펼쳐져 있었다.
안면도 꽃지 해수욕장, 푸르게 펼쳐진 바다와 맑은 하늘은 울적하게 떠나온 마음을 달래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었다. 눈 아래로는 갈매기 몇 마리가 풍경처럼 무심하게 날고 있었다.
입은 채 잠시 누웠다 눈을 떠 보니 해는 수평선위 두어 길쯤의 높이에 그린 듯 멈춰 서서 바다와 하늘을 한빛으로 만들고 있었다. 엷게 피어오른 해무 속에 섬들이 멀다. 모래톱을 남실대는 파도가 조는 듯 꿈꾸는 듯 조근 조근 물 자락 끄는 소리를 여리게 낸다. 갓 태어난 새끼고래의 첫 숨소리가 저렇듯 잔잔할까? 버들강아지 솜털만큼이나 발등에 부드럽다. 물결 따라 홀로 물가를 걸었다. 첫 입맞춤 뒤에 오는 나른한 감미로움, 바다는 꿈을 꾸고 있었다.

저녁 끼니때가 되어서인지 썰물 나간 모래사장에는 게들을 사냥하느라 바쁜 갈매기들이 날개를 퍼덕이며 이리저리 어지럽게 몰려다니고 있었다.
벌어진 가슴이 탐스러운 수놈이 발랑 게 한 마리를 잡아 부리에 물고는 목을 길게 곧추 세우더니 으스대며 짝에게 슬쩍 건네준다. 몇 발짝 떨어져 깃을 고르는 척 딴청을 한다. 매섭던 눈에는 사랑이 넘친다. 모지락스럽게 보이던 갈퀴발이 힘차고도 아름답다. 갑자기 허공을 날아오르며 “끼룩”하고 제 짝을 불러 함께 숲 너머 벼랑 쪽으로 날아간다. 배가 찼는가? 이른 대로 그만 보금자리를 찾아 깃을 다시 다듬으려는 길들여진 저들만의 정다운 몸짓인가 보다.

모래 위엔 여인들 몇이 바쁠 것 없는 발길을 물빛 따라 옮긴다. 헐렁한 옷자락이 유혹적으로 펄럭인다. 갑자기 가슴이 허전해 진다.
눈에 보이는 모든 현상은 그 순간이 지나고 나면 흔적 없이 사라지고 마는 환영이요 허상일 뿐인가? 모래 위에 찍히는 가슴 저린 사랑은 파도가 한번 밀려나가고 나면 지워져 없어지고 마는 한갓 허구일 뿐일까? 도탑게 맺어진 인연과 아릿하게 스쳐간 모든 추억은 모두 어딘가에 모여 저들 나름으로 스러지지 않는 생명으로 다시 태어나 영원히 살아 숨쉬는 소중한 어떤 무엇이 되는 건 아닐까?
우연으로 다가온 인연이 운명처럼 되는 건 무엇인가? 기왕에 그러하도록 정해져 있었던 필연이었노라 이야기하는 건 숙명론자들의 변설인가?
작은 사랑도 결코 작은 것이 아니요, 스치는 눈빛도 결코 우연이 아니라고, 모두가 몇 겁에 이어지는 소중한 인과라는 나의 생각은 불교 쪽에 치우친 한갓 편견일 뿐인가? 아마도 희로애락(喜怒哀樂), 미추호오(美醜好惡), 시비(是非)그 모두를 거부함 없이 받아들이는 어머니의 바다에 나와선 때문 엔지도 모르겠다.

멀리 여인 하나가 걸어온다. 원피스 옷자락이 바람을 탄다. 머리칼에 떨어지는 석양이 오렌지색으로 빛나며 부드럽게 둥근 광배를 만든다. 어깨에 멘 커다란 쇼핑백이 밝게 햇살을 튕긴다. 모래 위를 걷는 걸음이 바쁘고 힘겹다. 아내다. 어찌 알았을까?
“어떻게 알고 왔어?”
대답대신 싱긋 멋쩍게 웃으며 그 자리에 선다. 잠시 가쁜 숨을 고르더니 가방을 연다. 불쑥 내놓는 자수 한 폭, 20호 정도 크기의 문방기명도(文房器皿圖), 조심스럽게 펼쳐들어 자랑스레 내 보인다. 오른쪽 위, 금빛 비단실로 시(詩)한수가 수 놓였다. 김 춘수의 < 꽃 >.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오늘 완성시켜서 가지고 왔어요. 이걸 하느라고...”
“이 걸 하느라고 몇 달 동안 수요일마다 나다닌 거요?”
“그래요, 잘됐죠?”
“그런데 내가 여기 올 줄 어떻게 알고?”
“수위양반이 그러데요, 바다에 가신다더라고. 바다라면 여기밖에 더 있겠어요? 강릉 쪽 보다는 당신은 잔잔한 이 곳을 항상 더 좋아하지 않았어요? 숙소도 그렇고........”
한참을 말없이 서서 수를 들여다보는 내 표정에만 열중하던 시선을 겨우 비끼며 멀리 수평선을 바라보는 아내, 그제서야 바다가 있고 하늘을 본 듯 화들짝 표정이 바뀐다. 놀란 눈동자에 장미 빛 노을이 탄다.
바다와 하늘이 맞닿은 곳, 해무 엷게 피어오른 수평선이 그림처럼 아련하다. 불일이 불이(不一而 不二), 하늘과 바다는 하나인가 둘인가? 부부란 둘인가 하나인가? 사랑은 눈도 귀도 깜깜 절벽으로 어둡게만 만드는가? 아니면 밝게 틔우는가? 넓게 펼쳐진 바다가 빙그레 웃는다. 서해바다에 해가 진다.

2004. 9 11. 湛 如 쓰다



♬ Blue Waters.....Ernesto Cortazar * Webpage : jins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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