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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남편 기다린 93세 노모와 사진작가가 된 딸

카메라 통한 60년 만의 화해

“아버지가 돌아가셨대.”
“…”

“아버지가 돌아가셨어.”
“……응.”

남편의 부음을 전해들은 엄마의 반응은 긴 침묵 끝 짧은 대답이 전부였다. 언제나 그렇듯 그날도 엄마는 오후 내내 창밖을 바라보았다. 엄마의 시선이 정확하게 어디를 향하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엄마는 그렇게 60여년 돌아오지 않는 아버지를 기다려왔다.

‘일부종사(一夫從事).’ ‘여자는 집안을 지켜야 한다.’

북녘 외딴섬 출신인 엄마는 과거의 규범 속에 자신을 가둔 채 신여성과 바람나 떠난 남편의 빈자리를 견디며 아흔 살의 고개를 넘었다. 그 시대엔 흔한 일이었다. 어쩌면 엄마는 ‘결국 남자는 조강지처에게 돌아온다’는 옛말을 희망 삼아 잔인한 세월을 버텨왔는지도 모른다.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 어쩜 저렇게 담담할 수가 있을까, 딸은 엄마의 침묵을 ‘담담함’으로 오해했다. 며칠 후 다시 찾은 엄마의 얼굴은 눈에 띄게 홀쭉해져 있었다. 엄마의 긴 기다림이 이제 끝났다. 앙상한 엄마의 몸은 마른 낙엽처럼 곧 바스라질 것 같았다. 딸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버지가 갑자기 떠난 것처럼 엄마도 갑자기 사라지지 않을까, 엄마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될까. 1년? 6개월? 마음이 조급해졌다. 더 늦기 전에 엄마의 모습을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는 예뻤다

2010년 10월 26일, 67세 아마추어 사진가 딸은 91세 엄마를 카메라에 담기 시작했다. “늙은 사람을 왜 찍느냐”며 손사래를 치는 엄마 뒤에서 살짝살짝 셔터를 눌렀다. 사진을 본 딸은 깜짝 놀랐다. 주름투성이 엄마 얼굴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 엄마는 동네에서 소문난 미모였지만 딸은 그동안 한 번도 엄마 얼굴을 예쁘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사진 속에는 평생 한 남자의 사랑을 그리워했던 여인이 있었다. 딸은 렌즈를 통해 처음으로 엄마의 얼굴을, 엄마의 삶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흐트러진 백발, 주름진 얼굴에 핀 검버섯, 수십 년 썼음직한 찌그러진 그릇, 해진 이불, 깨진 손거울…, 엄마와 평생을 함께 했을 물건들은 모두 늙고 낡아 엄마와 꼭 닮아 있었다.

딸은 노모의 사진으로 지난해 12월 제1회 온빛사진상을 수상했다. 온빛사진상은 사진가들이 투표를 통해 사진가에게 주는 상이다. 의미가 남다른 상이었다. 그날 사진가들은 모두 노모의 사진에 손을 들었다. 노모가 아마추어 주부사진가 딸을 ‘사진작가 한설희’로 서게 만들었다.

수상이 계기가 돼 올 3월 서울 종로구 통의동에 있는 갤러리 류가헌에서 전시회를 열었다. 한설희 작가의 노모 사진 30여점이 걸렸다. 무명작가의 사진전에 누가 올까 싶었는데 입소문을 타고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사람들은 백발 노모의 사진 앞에서 모두 말을 잃었다. 눈물을 꾹꾹 누르는 사람들의 등이 흔들렸고 한 중년 여성은 아예 한쪽에 주저앉아 엉엉 울었다. 대학교수라는 중년 남성은 들어오자마자 울기 시작하더니 사진을 보는 내내 눈물을 그치지 못했다. 이불을 덮고 눈을 감은 사진 속 노모의 모습이 요양원에 모셔놓은 자신의 어머니 같다고 했다. 사진 앞에서 눈시울을 붉힌 모두는 누군가의 아들이고 딸이었다. 그들은 노모의 사진에서 자신의 엄마를 보고 있었다.

전시를 보러 온 이들 중에 출판사 문학동네 기획실의 형소진(34) 팀장도 있었다. 그도 사진을 본 순간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형 팀장은 먹먹한 가슴을 어쩌지 못해 전시장을 나와 한참을 서성이다 다시 들어갔다. 사진을 멍하니 바라보다 또 나와 걷기를 몇 차례, 그 사진들을 책으로 엮어야겠다고 생각했다.

photo 한준호 영상미디어 차장대우
엄마, 사라지지마

그 책이 지난주에 나왔다. 제목은 ‘엄마, 사라지지마’. 2010년부터 최근에 찍은 사진까지, 2년의 기록에 글을 붙인 포토에세이다. 책에는 ‘69세 사진작가 딸이 찍고 쓴 93세 엄마의 마지막 사진첩’이라는 설명이 쓰여 있다. 책이 나온 바로 다음 날인 11월 14일 ‘69세 딸’ 한설희 작가를 만났다. 그의 사진에는 쇠락해가는 엄마를 보는 딸의 안타까운 시선이 곳곳에 묻어 있다. 책의 맨 마지막 사진은 모녀가 함께 찍은 사진이다. 엄마의 등에 살며시 머리를 기대 눈을 감고 있는 딸의 모습은 더없이 고요해 보인다. 그러나 모녀 사이는 사진처럼 결코 평화롭지 못했다고 했다. 엄마의 사진을 찍기 전까지 손 한번 따뜻하게 잡아본 기억이 없을 만큼 불편한 모녀였다. 그는 자신을 두고 “못되고 제멋대로인 딸”이었다고 말했다. “엄마는 대가 센 이북여자였어요. 자신의 고집대로 살고 평생 농담이란 것을 몰랐어요. 자신을 표현할 줄도, 다른 사람과 소통하는 법도 몰랐어요. 엄마는 내게 벽 같은 존재였어요. 지독하게 미워했어요.”

학창 시절 친구집에 놀러 갔다 말이 잘 통하는 친구의 엄마를 보면서 “내 엄마였으면”하고 간절하게 바란 적도 있었다고 한다. 엄마와 딸은 평생 애증으로 묶여 있다고 한다. 그에게 어머니는 ‘증(憎)’에 훨씬 가까웠다. 엄마의 외로움은 고스란히 4남매에게 화살이 되어 날아왔다. 맏딸인 그가 감당해야 했던 일은 너무 많았고, 대책 없이 아버지를 기다리는 엄마를 보는 것은 더 화가 나고 참을 수 없었다. “엄마는 왜 이렇게 사나.” “나는 절대 엄마처럼 살지 않을 거야.” 돌이켜보면 엄마에 대한 안타까움과 엄마를 닮게 될까 두려웠던 것 같다. 엄마에 대한 ‘증’이 ‘애’의 또 다른 표현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엄마의 사진을 찍고 난 후였다. 그는 책에 이렇게 적고 있다.

‘카메라를 들고 누군가에게 가까이 가는 일은 서로의 상처와 결핍에 다가서는 일이다. 엄마의 몸 일부를 클로즈업할 때마다 아물지 않은 생채기가 클로즈업된다. 우리가 주고받은 가시 돋친 말들, 거래처럼 교환한 상처들…, 언젠가부터 나는 엄마를 미워할 수 없게 되었다. 그저 내 곁에 머물러주기를 바라는 것 말고는. 피붙이란 그런 것인지 모르겠다. 용서하지 않아도 용서가 되는 것. 화해하지 않아도 화해가 되는 것.’

카메라는 그에게 엄마의 마음으로 들어가는 길이었다. 그는 “카메라를 사이에 두고 엄마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엄마가 아닌 한 여인의 삶과 상처를 따라가다 보니 비로소 엄마가 이해되기 시작한 것이다. 사진 작업을 하는 2년 동안 그는 거의 매일 자신의 경기도 용인 집에서 엄마가 있는 서울 동대문구 이문동을 오고 갔다. 한 손엔 카메라를, 한 손엔 먹을거리를 싸들고. 그는 “덕분에 형편 없던 요리 실력이 많이 좋아졌다”고 말했다. “이런 건 뭐하러 들고 오느냐”며 퉁명스럽게 내뱉던 엄마는 “같이 밥 먹자”며 딸을 밥상 앞으로 끌어 당기고, 사진 찍는 것을 질색하던 엄마가 어느 순간 카메라를 들이대니 ‘예쁜 척’을 하더란다. 어느 날은 엄마의 오래된 경대 위에 화장품 세트가 놓여 있었다. “웬 화장품이냐”고 물었더니 며느리에게 사 달라고 부탁했단다. 또 어느 날은 얼굴에 뭔가를 바르고 열심히 문지르고 있기에 봤더니 세상에, 계란 마사지를 하고 있더란다. 아흔 살이 넘어도 엄마는 여자였다. 엄마의 피부가 원래 고운 줄로만 알았지 뒤에서 마사지로 가꿔온 걸 딸은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대문 밖에 나서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엄마가 자신의 얼굴을 누구에게 보여주려고 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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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북노마드

60년 만의 화해

엄마는 평생 집이 자신의 세계의 전부였다. 한번 외출을 할라치면 한바탕 큰소리가 오고 가도 쉽지 않을 만큼 폐쇄적이었다. 혈압이 갑자기 치솟아 병원을 가야 했을 때도 온갖 협박을 동원해 간신히 설득했다. 그런 탓에 사진 속 배경은 40여년 살아온 집 밖을 벗어나지 못한다. 살고 있는 집도 전셋집을 전전하는 게 지긋지긋했던 그가 엄마 손을 억지로 끌고 가서 마련한 집이었다. 엄마가 변두리에 집을 살 수 있는 돈으로 굳이 비싼 동네의 전셋집을 고집했던 이유가 있었다고 한다. 바로 아버지 직장 근처였기 때문이었다. 그 말을 전해듣는 순간 가슴이 울컥했다.

엄마는 좀체 손때 묻은 물건을 버리지 못한다. 새 옷, 새 그릇, 새 이불은 오래된 장롱 속에 모셔져 있다. 엄마 곁을 지키는 것은 하나같이 바래고 낡은 것들이다. 아무리 화를 내고 새 머그컵을 사다 놓아도 다음에 가보면 오래된 스테인리스 그릇이 놓여 있다. 아버지에 대한 마음을 놓지 못하고 한곳에 박혀 해바라기한 것처럼 아버지와 함께 한 물건을 버리지 못한 것일까. 그래서 엄마의 낡은 물건들은 가슴이 아프다. “제발 버리라”며 지겨워하던 물건들에서 이제 딸은 엄마의 인생을 읽는다. 서로의 상처만을 끌어안고 다가가지 못했던 모녀는 카메라를 통해 60년 만의 화해를 했다. 사진을 핑계 삼아 자신을 보러 오는 딸을 위해 엄마는 고개를 한껏 치켜들고 카메라를 바라본다. “엄마를 닮았다”는 말을 가장 싫어했던 그는 이제 엄마와 닮았다는 것을 인정한다. 닮은 모녀는 이제 농담을 주고받을 만큼 편해졌다. 엄마가 좋아하는 함흥냉면을 사러 을지로까지 오가는 살뜰한 딸이 됐다. 할머니의 손맛을 잊지 못하는 엄마는 지금도 함흥냉면만 갖다 놓으면 아픈 몸을 벌떡 일으킬 만큼 좋아한다. 엄마도 역시 엄마의 엄마를 그리워하는 딸이었다는 것을 이제야 알았다. 그는 “사진이 정말 고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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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북노마드

이 시대 마지막 조선 여인

그가 처음 사진기를 든 것은 40여년 전이다. 이화여대 불문과를 졸업하고 결혼해 큰아이가 유치원에 다닐 때였다. 집에 굴러다니던 사진기가 눈에 띄었다. 취미로 시작한 사진은 의외로 매력적이었다. 잘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본격적으로 배우고 싶어 개인 사사를 하기도 했다. 그러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졌다. 사진 찍을 여유가 없었다. 꿈을 버려야 했다. 10여년 전 친구가 사진을 배우러 다닌다면서 만날 때마다 사진 이야기를 꺼냈다. 가슴 한편에 감춰져 있던 열정이 고개를 들었다. 사진을 배울 때 얼마나 행복했는지 기억해냈다. 중앙대 평생교육원의 아카데미 과정에 들어가 손주 같은 아이들 틈에서 다시 사진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 사이 필름 카메라는 사라지고 디지털이 대신하고 있었다. 처음부터 다시 배워야 했다. 풍경을 담다 엄마를 찍기 시작하면서 그의 관심은 이제 사람을 향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책을 앞에 두고 “엄마에게 이 책을 보여드릴 일이 걱정이다”라고 말했다. 그동안 그의 주변에서도 내밀한 가족사를 알지 못했다. 엄마 또한 자식들에게조차 외로움을 들키고 싶지 않아 더 날카로운 껍데기로 자신을 무장했는지도 모른다. 아직도 여자이기를 포기하지 않은 엄마에게 여자로서 외면당했던 세월을 남에게 드러내는 것은 잔인한 일이 아닐까, 그의 마음은 복잡해 보였다. 인터뷰 자리에 함께 나온 형 팀장도 책을 만드는 과정 내내 사적인 내용을 담고 싶어 하지 않는 작가와의 줄다리기가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가 책에 써놓은 것처럼 사진 속 엄마는 ‘이 시대 마지막 조선 여인’이었다. 그의 사진이 사람들의 마음을 울린 것은 엄마의 모습이 다름 아닌 자신을 죽이고 살아야 했던 한 시대 어머니들의 기록이기 때문이다. 흐트러진 백발로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어딘가를 응시하는 듯한 흑백사진 속 엄마는 그래서 우리 모두의 엄마이다.

사진을 찍어 온 2년 새 엄마의 몸은 소멸되어가고 있다. 세 평 자신의 섬에 평생 기다림에 지친 몸을 눕히고 눈을 감고 있는 시간이 점점 길어지고 있다.

93세 엄마는 죽음에 가까이 다가가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온몸으로 가르쳐주고 있지만, 69세의 딸은 여전히 그 배움이 낯설고 서투르다. 책의 마지막 장에는 눈부신 미모를 자랑했던 엄마의 오래전 모습이 실려 있다. 사진 속에서 꽃다운 청춘이 수줍게 웃고 있다. 그 시절 딸은 알지 못했다. 엄마가 그토록 아름다웠다는 것을.

by 황은순, 주간조선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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