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9.05 19:10
8-27-10 (SUNDAY)
Laurel Inn 호텔방 커텐 사이로 들어오는 눈부신 아침 햇볏에 잠이 깻다. 6 시가 조금 지났다.
같은 방에는 집사람과 아들 애가 곤하게 자고있다.
어저께 여행에 피로했든 모양이다.
Vancouver에서 연락선을 타고
이곳의 맞은 편에있는 British Columbia 란 주의 제일
큰섬 Vancouve Isalnd 에 있는 Victoria 란 항구도시 바다가에
애들이 마련해준 호텔에 찾아온 것이다.
여기서 이틀을 쉬게됏다.
갑자기 커텐을 열고 시원한 바다 바람을 쏘이고 싶은 충동이 오고,
옛날에 본 Hopper 가 자주 그리는 창문가의 그림들이 머리를 스쳐간다.
그러나 자는 사람들 않 깨우려면 누어서 공상이나 하는 수밖에 없다.
**
Edward Hopper is an American painter active during the period when Picasso was acitive in Paris.
Hopper went to Paris to study to paint, but he came back to US and continued to explore
his own world without being influenced much by European tradition. His painting is somber and l
onely reminding of Schubert in music.
To see more of his paintings, click the connection below.
http://www.google.com/images?rlz=1T4ADRA_enUS383US387&q=edward%20hopper&um=1&ie=UTF-8&source=og&sa=N&hl=en&tab=wi&biw=1579&bih=622
***
Vancouver
내가 42 년전 한국을 떠나 트렁크 하나 달랑 들고, 27 세란 나이로 처음 도착한 곳이
바로 여기Vancouver 라는 항구다.
한국으로 말하면 아시아 대륙과 연결하는 부산항 비슷한 곳이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이 넓은 대육, 미지의 나라에 대한 불안, 동경, 그런대로 허우적거리면서
여기 저기 떠돌아 다니다 보니 벌써 나이 70 을 바라 보게 된다.
Vancouver 해안선.
옛날에 읽는 글속에
원숭이가 대가족 속에 사는 어머니를 딸아 다니다가,
숫놈은 사춘기가되어 독립할때 쯤되면,
이웃 농네 집단에 흥미를 갖고, 가끔 다른 동네에 마실을 간다고 한다.
잘못하면 이방인이 침입햇다고 몰매를 맞을 위헙이 항상 있는것이다.
그러다간 이뿐 아가씨를 마나면, 장가도 들고..
생태학적으로 보면, 유전자 풀을 풍성하게 하는 만드는 계기가 되는지도 모르겟다.
우리 집 근처엔 야생 민들레가 많은데,
꽃이 피고 씨가 영글면, 가벼운 낙하산 같은 날개가 생기고 바람에 불려 머나먼 곳으로 여행을 떠나는데
재수없어, 습기가 없는 바위나 도로 상에 착육하면 흙 냄새도 못 맡아 보고, 말라 죽는다.
다행이 빗물에 씻겨 네려가 흙에 묻히면 이듬해 새 삶을 시작한다.
우리 집 마당이 한 천평이 되어 (1 에이커) 가끔 묘목 집에가서 과수를 사다 심는데
종류에 따라 번식 방법이 매우 다르다. 벗꽃이 피는 체리 나무는 반드시 종류가 다른 두개를 심어야지 (근친결혼을 못하게) 같은 종류만 심으면, 전혀 열매가 않 달린다.
은행나무는 사람같이 암놈 숫놈이 있고 숫 놈에서는 열매가 않 생긴다.
암놈 나무가 아무리 많아도 근처에 숫나무가 없으면 열매가 않생긴다.
산프란시스코 만에는 근년에 어덯게 된것인지 아시아에서 온 꽃계가 토종 스톤 계랩을 억제하고
번창일로에 있다고 한다. 구라파 사람이 美大陸에 와서 인디안 제압한 역사와 똑 같은 것이다.
사람이 나이가 들어 부모 곁을 떠날만 하면,
자의로 혹은 타의로, 고향을 등진 사람이 얼마나 많은 가 하는 질문을 해본다.
그것이 인간의 본성인지도 모른다.
백여년 전 가난한 한반도의 조상들이 보리고개 넘기 힘들어
어디가 붙어있는지도 모르는 하와이로 떠나는 신세.
일제때 한반도의 젊은이들이 만주로 보따리 싸들고 떠낫든 신세.
이차 대전때 징용을 당해 동남아세아로 떠 났든 젊은이들..
이런 얘기는 어렷을 때 시골 살면서 어른들 한테 가끔 들엇다.
나이가 들면서 기억하는 일로는
대학을 졸업하고 일자리 찾아 부흥하는 서부독일에 독일에 광부로 나간 우리세대들
몰래 일본으로 밀항햇다가 잡히면 "오무라 수용소" 라는 곳에서 감옥살이를 햇다고 읽엇다.
언제는 "황국시민"으로 일본 군대가라고 야단치든니, 굶어죽지 못해 기어들어온 사람들 난민취급하기 보단
소용소에 잡어 넣든 시절이다.
일본이 항복하는 바람에 국토가 양분되고
냉전에 희생이어 전쟁을 치룬후 황폐한 1960-1970 대의 우리는
적대시하는 나라들에 둘려싸인 섬나라 사람같이 살아가야햇다.
그래서 남미든 북미든 구라파든, 민들레 씨같이
어디로 날아가고 싶엇든 것이 그 당시 꿈이엇든 시대가
바로 나의 젊은 시절이 아니엇든가?
눈을 돌려 이곳을 쳐다보면
근세에 들어와 가난과 부패와 정치적 불안에서 도망나온 중국 사람들..
혹은 노동자로 북미에 도착한 중국인들,
월남이 망할때 배타고 도망나온 사람들,
홍콩이 공산화 되기전에 빠져나온 중국인들,
그래서 Vancouver에는 중국인 1-2 세들이 인구의 30% 나 된다고 한다.
이곳에 온 중국 사람들은 시내 한복판에 "Chinese Garden" 만들어 놓고
입구에는 신해형명을 주도해 청나라를 종결 시킨 孫文의 흉상을 세워 놧다.
동계 오림픽때 논 고가전철 시내 중심가 정거장 이름은 당인가(唐人街) 라고 한문으로 써 놨다.
여기 중국 이민사를 보면, 이곳 건설에 필요한 중국인을 데려와서는
일만 시켜 먹고 가족도 데려오지 못하게 법을 만들지 않았나,
중국인에게만 부과하는 특별 세금을 만들어 놓칠 않엇나,
지금으로선 상상할수 없는 차별로 그들을 괴롭혀왓다.
일본이 진주만을 기습한후 ?瞿� 사람들을 칼리포니아에 수용소 만들어
감금 생활을 시킨 역사는 모두 잘 알고잇다.
중국과 일본이 세계 경제를 좌우하는 요새 세상엔 상상도 못할 일이다.
당인가 (唐人街) 고가철 정거장.
중국 정원 입구 손문의 동상
Los Angeles 한국공원이 생기면, 이순신 장군이나 세종대왕 동상 세우는 것과 다름이 없다.
조금 부러운 마음이 생긴다
중국 정원은 시내 한복판에 잡고있어 관광객은 다 들려간다.
그들 문화선전에 좋은 장소이다.
중국 정원의 전시실.
Chinese Garden 속에 전시실에는 중국사람이 줄겨 그리는 동물 세계를 그린
"파초옆에 오리 두마리" 가 당낭거철을 조준한는 그림도 본다.
썪 좋은 그림은 비싸서 이런곳에 걸어두지는 못할것이다.
다행이 여기 커다란 중국 서점에서
청말, 민국 초기에 활동한 齊百石은 화집을 몇권사서,
그들의 도특한 그림 스타일 선보일겸 볼겸 여기 그림 몇장 더 두장 더 소개한다.
하나는 여기 바다위에 서있는 Victoria 섬 같은 산수화고,
다른 한점은 그의 장기인 새우 그림.
** 제백석은 호남성(湖南省) 상담현(湘潭懸)에서 태어난 평범한 농가의 자손이며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했습니다.
가난한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나 병치레로 4살까지 고생을 한 뒤 농사일을 거들다가,
생계형 대목이 되고자 대목 일을 배웠으나 우연히 소목장이 앞에서 고개도 못 드는 스승을 보자
약한 체력과 손재주를 고려하여 소목장이의 길로 접어들었다.
그는 스승을 만나는 족족 그가 지닌 재주를 모두 전수받는, 타고난 '섬김'과 '성실'한 성품이 재산이 되어
최초엔 소목장이(小木匠)로 입신했으나 곧이어 전각과 그림, 글씨 등을 두루 섭렵했습니다. (이상 인용글)
출신 성분 때문인지 공산 중국의 영웅화가가 되나
그런거 구애않고 그림만 하시다 95 세도 화력을 중단한분.
알고보니 한국에서 이분 그림이와 잇단걸 알게됏다
이그림인데 연유는 이러하다
◦ 한국 소장동기
1995년 한ㆍ중 미술교류전(대만, 대북)에 참가하여 고궁박물관 견학당시
대만 측 회원의 소개로 화랑에서 매입하게 되었다
이곳엔 중국 정원이나 일본 정원은 있어도 한국 정원은 없다.
1950-53 년에 전쟁으로 인연을 맺고 한국에서 500 여명의 젊은 군이니 전사햇다고 한다.
1968 년에는 서울서 카나다 이민의 문이 열리고 설명회에 군복을 입고 찾아간 기억이있다.
그게 40 년전이니 아직은 한국 교민 사회가 이런 곳에 신경을 쓸 많한 여유가 아직은 없는가 보다.
그러나 로스안젤리스에는 우리 고교 후배이고 서울대학나와 옥스포드가서 공부하신 김봉렬교수가
설계한 한국 정원을 만든 다고, 얘기는 들엇는데, 건설 기금 모집에 어려움이있다고 얘기들엇다.
우리들에게는 우선 골프장을 만들어 돈을 벌어야하지 문화같은데는 아직 신경이 쓸단게가 아닌가 싶다.
지금은 방쿠버 항구 부두에 떠있는 제일 큰 배 두척은 한국 배다.
하나가 현대 상선이고 수출품으로 보이는 산더미같은 콘테이너가 싸여져있다.
다른 한배는 한진 (HANJIN)이란 글자가 크게 써있다.
또 이동네 VANCOUVER 에는 비자 면제 협정이 매져있는
한국에서 영어 배우러 온 젊은 학생이 꽤 많다고 얘기들엇다.
North Vancouver 공원에있는 참전 용사비에
한국 전에 희생된 군인들의 얘기도 이렇게 세워져있다..
참전 용사비, North Vancouver 공원.
North Vancouver 에서 보이는 한국 "현대" 수출 선박
물론 초기에 이곳에 정착한 사람들은 대영제국이 세상을 누비든 19 세기이니,
새로 삶의 터전을 개척한다고 나온 젊은 영국사람들,
그 후엔 감자 흉년이 들어, 먹고 살기 힘들어
영국 식민지인 아일랜드라는 섬나라에서 고향을 등지고 몰려온 사람들.
그들 후손인 케네디 집안이 미국 정계에 두각을 나타낸 일은 우리 모두 잘아는 사실.
영국사람이 오기 훨씬전에 고기가 무진장 잡힌다고 얘기듯고
미주 대육 카나다 동부에 불란서 사람들도 몰려 왔다.
사냥을 해서 가죽장사를 하면 부자가 된다고,
알라스카에서 건너와 북미대육 서부에 정착한 쏘련 사람들의 후손도 많다.
싼프란 시스코 북쪽에 Russian River라는 강까지 있다.
이곳에는 별로 없지만, 더 옛날로 올라가면 미국 대육에 금이 많이 나다고
일확 천금을 바라고 바다를 너너온 스폐인 군대의 홀 애비들이 원주민과 결혼해서 생긴
나라들이 중남미 대부분의 인구 들이다.
몇 백년전 더 거슬러 올라가선
멀리 인도란 나라에 가면 신기한 향료가 많이 나니
그걸 수입하려고 고향을 등진 폴트갈,홀랜드의 젊은 이들,
홀랜드 젊은 이들은 일본으로 가다가 우리나라 제주도에 까지와서 불시착 수용소 생활하다가
하멜과 그들 몇몇친구들이 일본을 거쳐 도망가서 본국에 도착한다.
조선에서 역류생활햇으니, 그들을 고용한 동인도회사에 밀린월급달라고 법원에
제출한 증거물이 하멜 표류기라고 책에서 읽엇다.
그당시 우리 중국이나 조선사람들은 세상이 어덯게 돌아가는지 눈치도 못챗을 시대다
최근에는 이차대전 후 황폐한 구라파에서 북미로 건넝온 사람들,
공산정권이 무너진 쏘련련방에서 빠져 나온 유태인들..
각양 각색의 옛날에 온 이주민이든지 그들의 자손이든지,
역사란 물결 속에 뒤범벅이돼서 이곳에 살고있다.
동부에 불어쓰는 지역에 언어가 비슷해서 이주한 아이티계통 아프리카 후손은 더러있지만
서부안 별로 않보인다.
이 사진은 Victoria 로가는 연락선 대기소에 어린이 공원인데,
어린애들 머리칼 색이 이곳의 사정을 요약해주고있다. 금발, 갈색, 흑색..
작은 머심애 녀석이 내 외손자다.
내가 카나다에 정착후에, 어덯게 하다본니
동생 둘이 모두 카다다에 이주하게되고
어머님까지 방쿠버에 오셔서 노년을 사시다가 82 세에 나이로 이곳에서 일생을 마치게 된것이다.
아들이 잠에서 깨어나니
제일 먼저하는 일이 휴대용 컴퓨터로 이 메일을 첵크하고있다.
인터텟, 이메일등이 출현하면서 세상이 좁아지니
어떤 때는 내 정신적 주소가내생의 성장기 3 분지 1 을 보낸 한국인지 아니면 북미인지
자문을 해보기도 한다.
그러나, 나도 별수없이 지구상의 잠시 떠돌아 다니다가 지나가는
원숭이나 민들레와 큰 차이가 없다는 생각이 스쳐간다.
창밖에서
갑자기 요란한 소리가 나서 밖을 내다본니
물위에 떠있든 조그만 수상비행기가 하늘로 올라가는 소리다.
Victoria 에서 듣고 본 얘기는 다음으로 미루겟다.
***
2010.09.05 21:06
2010.09.05 21:34
2010.09.06 00:06
I got E-mail from my friend in NY as a response to mine.
Because I sent your travelogue to many of my friends.
He wished to go there (Vancouver) as you did.
But so far, no E-mail from 'Ran".
(A-i-go, Cham, Bo-go Sip-eun-de...)
2010.09.06 03:20
2010.09.06 03:25
민성생의 例의 '大道無門'같은 꺼리낌 없는 필체를보니
옛생각도 나고 무어랄까 향수같은 느낌이 듭니다.
밴쿠버는 옛날에 Canadian Rocky여행시 들른 적이 있는데
이번 6월에도 알라스카 가기전에 2박3일 일정을 비어 두었었는데
갑작스런 어머님의 소식때문에 무산되었었습니다. 지금생각하면
세상만사가 다 그렇지만 자식사랑하는 어머님의 대붕같은 큰뜻이
있었는지 어떻게 미미한 이사람이 알겟소!
형과같이할 돌아오는 터키여행에 기대가 많소. 그동안 건강하시고
Patricia 에게도 안부부탁합니다. 여행기 중도 하차마시고 계속하시기를. 규정
2010.09.06 06:20
Buchard Garden 을 25 년 만에 다시 가보는데
그동안 눈을 버려 (다른데 많이 봐서) 조경으로는 그렇게 큰 감명을 못 받고 돌아왓네요.
다음 글에 사진 보이겟읍니다.
제가 알고있는분들은
대학교 고교동창생들인데 고교 동문들한테 답한 글도
여러분에게 하고 싶은 얘기와 같어 전재;
Vancouver 3 days, Vicoria island 3 days, I spent.
The rest of the story, I wrote, but did not have time to edit with picures.
I will do it later. 빅토리아가서 산딸기(복분자 많이 따서 먹엇지요.)
Hopper 그림 큰거 쉬카고서 본 기억이 있고 작년엔 그분 그림 달력을 사서
일년 썻고 화집 두권이나 집에 사다놨지요.
인용 답글:
이형, 곽형
1.
좋은 말씀에 감사합니다.
현대 사람은 사진기가 나와서 쉽게 기억을 남길수가 있어서 좋으나,
시간적으로 순간적 기록 밖에 못남기니, 체험 경험담은 글로 쓰지를 않는한 ,
죽을때까지 후대한테, 우리가 무엇을 생각하고 경험하고 일생을 마쳣는지 남겨 놓고 갈 기회를 잃어버리는 듯 합니다.
우리 조상을 봐도 16 대 (제가 34 대인데) 조상이 문집을 남겻다는 기록은 있어도
무엇이 전해 네려오는게 없어요. 어디서 어덯게 살다 돌아가셧는지 묘지 주소만 전해네려옴니다.
2.
글만 쓰면 눈이 심심해서 그림까지 넣어 쓴것이지요. 눈도 쉬어갈겸
.
Paris 근교에 Monet가 살든 집과 정원을 큰 공원으로 만들어 놨는데,
Hopper 란 사람 회고전을 거기에 미국 문화원 (공보원)이 있고 ,
바로 그곳에서 미국을 대표하는 작라라서 그런지 이 사람 회고전을 합디다.
아래 그림이 Hopper 가 미국 도시를 그린 것인데, 처음 뉴욕 같은 도시에 지하철 기차가 굴로 들어갈때
보통 사람이 느끼는 심경을 100% 표현햇다고 생각않하세요!
집을 떠난 외로운 사람이 잠시들렷다가 가버리는 큰도시 정경,
이런 감정은 사진이나 그림이 더 적적하게 묘사할수도..
얼김에 미국 화가 소개 잘 햇나 봄니다.
Hopper City Landscape
2010.09.06 12:48
민 선생님, 올리시는 글을 읽을 때마다 항상 마음속에서
무엇인가 부딪쳐 일어 나는 것같은 느낌 일지 감동같은 걸
느꼈습니다 만은 이번 글은 정말 제 마음에 와 닿는 군요.
E.Hopper 와 함께 하는 여행. 이 보다 더 좋을 순 없겠지요.
저의 집 사람이 동양화 전공 이라 齊百石의 화집은 가끔 어께 너머로
보았지요.
말씀 하신 Monet 의 Giverny 집 근처에 the museum of American Impressionists 가
있는데 아마 그 곳에서 Hopper 전시회를 하는것 아닌가 합니다.
Mary Cassatt 등 화가 작품들이 전시 되어 있었습니다.
좋은 그림 감동적인 글 아주 잘 감상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2010.09.06 20:30
이건일 동문 님:
사모님이 동양화사신다니 물어볼게있어 나중연락 드리개습니다.
표구배접 용구에대한 질문이지요.
다음글이 사모님께 도움이되리라 생각.
이런 글쓰다가 배우는것도 많은데 그 한예:
서양 사람은 이런 그림 보면 침을 흘릴겁니다.
눈에 익숙치 않아서..
인터넷 뒤지다가,
제백석이 그린 새우 그림이 한국에도있다는 사실을 알아 여기 보고.
" 인용문
◦ 작품소개
제백석은 세필화에서 출발한 기본이 충분하여 그가 그린 ‘초충도’는 역대 그 누구 작품보다도 뛰어났으며
단순하면서도 소박하고 함축적인 표현이 독보적이다.
특히 ‘군하도’는 7마리의 새우무리들이 어딘가 한 방향으로 이동하는 구도로 뛰어난 농담채와 세밀하고
생동감 넘치는 완벽한 작품이라 하겠다.
◦ 소장동기
1995년 한ㆍ중 미술교류전(대만, 대북)에 참가하여 고궁박물관 견학당시
대만 측 회원의 소개로 화랑에서 매입하게 되었다.
◦ 소장품 기준과 원칙
향암미술관에서는 사적인 흥미나 관광객의 기호에 영합하는 작품은 배제하고 관람객의 미적체험과
안목을 높여주기 위해서 우리미술의 과거와 현재까지 한국미술사를 관통하는 개성있고 수준 높은 작품들을
선택하여 수집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한시대의 미술흐름을 전해줄 수 있는
개성이 뚜렷한 작품을 소장하는데 기준을 둔다.''
이상은 인용문
It's not a simple, usual travelogue, I notice, sun-bae-nim.
It's a mixture of painting, history and human nature with
reflection of vast sea of your knowkedge, hidden deep
down, melted in your blood stream. And "Jae-Mi-Ga..".
When I went to Vancouver about 10 years ago,
'Ran' told me about 15,000 Koreans living there.
Maybe now there might be more but it was a land of Chinese.
I hope you continue your travelogue and I wish 'Ran' read th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