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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em [古詩]易水歌: 협객의 노래

2015.06.01 03:29

정관호*63 Views:1180






易水



易水秋聲



易水送別



협객의 노래

“바람이 소소히 붊이여, 역수가 차도다.

장사가 한번 떠남이여, 다시 돌아오지 못하리.  “


    이는 俠客(협객) 荊軻(형가)가 秦(진)나라 왕 政(정)을 칼로 찌르려는 계획을 세워 燕(연)나라를
    떠나서 서쪽으로 갈 때, 연나라태자 丹(단), 그와 가까웠던 빈객이 易水(역수)까지 나와 전별하였다.
    시절은 戰國(전국)의 말기로, BC227년이었고, 장소는 현재 河北易縣(하북역현)경계였고,
    이들은 모두 白衣素冠(백의소관) 즉 흰옷을 입고 흰 관을 썼다. 역수에 이르러 술자리를 벌려,
    단은 형가에게 동석을 하고 술잔이 몇 차례 돌은 후, 형가의 가까운 친구 高漸離(고점리)는
    악기 筑(축)을 두드렸다. 형가는 이에 화답하여 노래를 부르니,
    風蕭蕭兮易水寒,壯士一去兮不復還!
    變徵之聲(변치지성)으로  제4음급으로 반음이 낮았다. 그 소리가 심히 哀慘(애참)하여 빈객과
    종자 모두 눈물을 흘리며 흐느꼈으니, 喪(상)에임한 듯했다. 형가는 하늘을 우러러 숨을 내뿜으니,
    그 기세는 곧장 공중으로 올라가, 흰 무지개가 생겨서 해의 중심을 꿰뚫었다. 보는 사람이 모두
    놀랐을 때다시 강개하게 羽聲(우성)으로 부르니 이는 비장하며 금옥성이 나며 격앙시킨다.
    探虎穴兮入蛟宮,仰天噓氣兮成白虹。
    이때 소리는 격렬웅장하니, 모든 사람이 눈을 부릅뜨고 분노를 참지 못하니, 마치 적과 대치한
    모습이었다. 태자는 술을 따라 무릎을 꿇고 형가에게 한잔을 올리니, 그는 한숨에 다 마시고
    그의 부관 秦舞陽(진무양)을 이끌고 수레에 뛰어올라 채찍으로 재촉하여 서쪽으로 질주하며
    뒤돌아보지 않았다. 태자는 높은 阜(부)에 올라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섰다가 처연히
    돌아오며 눈물을 흘렸다. 다음에 이 노래에 관한 설명이다.







易水歌 荊軻

風蕭蕭兮易水寒,

壯士一去兮不復還。

探虎穴兮入蛟宮,

仰天噓氣兮成白虹。


역수가 형가

풍소소혜여, 역수한하니;

장사일거혜여, 불부환이라.

탐호혈혜여, 입교궁하니;

앙천허기혜여, 성백홍을.


역수의 노래 형가

바람이 소소히 붊이여, 역수가 차도다.

장사가 한번 떠남이여, 다시 돌아오지 못하리.

호랑이 굴을 찾음이여, 이무기 궁전으로 들어가도다.

하늘을 우러러 내쉼이여, 흰 무지개를 이루도다.



    註釋

    蕭蕭(소소): 가을바람소리. 壯士(장사): 투사. 蛟(교): 이무기. 噓氣(허기): 숨을 내쉬다.

    鑒賞

    상구는 경관이 바람이 불고 물은 차가움을 그리었기에 쓸쓸하고 비장한 기분을 장식하였다. 하구는
    결사적 정감을 서사하니, 떠나지만 돌아올 수 없음을 분명히 알기에, 의연히 전진하고 결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소소히 부는 바람소리눈 청각에 따라 이별할 때 참혹함을 꾸미고, 다시
    형가의 “군자는 지기를 위하여 죽는다.”함에 대비하였으니, 이는 강개히 국난에 뛰어드는 늠연한
    정기로다. 비록 겨우 십육개의 글자이지만, “처완격렬, 풍골정경이 각양각색으로구비하였다.”

    歷史的考察(역사적고찰)

    이번에 소개하는 시는 <역수가>로서, 전국 말기에 형가가 연태자와 역수에서 이별하며 부르고
    떠나간 시이다. 협객이란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知己)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며 일을 해나가는
    사람이다. 그럼 어떤 일을 수행한단 말인가? 주로  대의를 위하여, 때로는 개인적인 원한을
    갚기도 하였다. 그런데 그 중 가장 대표적인 협객은 지금 소개하려고 하는 형가였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의 거사는 실패로 돌아갔고, 일은 모두 그르쳐 버렸다. 그러나 그는 후세에 모든
    중국인의 우상의 대상이 되었다. 成敗(성패)를 가리지 않고 그의 義氣(의기)를 택하였기
    때문이다. 전국 말에 六國(육국), 즉 韓(한), 魏(위), 趙(조), 燕(연), 楚(초), 齊(제)는  
    점차 진격해 오는 秦(진)나라 앞에서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그때 연태자 단은 오랫동안
    진나라에서 볼모생활을 하였다가 본국으로 달아나 온 실정이었다. 그는 진에서 받았던
    혹독한 대우에 개인적인 원한도 있었고, 그보다는 대국적 입장에서 볼 때, 멀지 아니하여
    이 여섯 나라가 차례로 진나라에 정복될 것을 알고 이에 대처하려고 협객을 구하고 있었다.
    그 무렵 연나라에는 유명한 협객 田光(전광)선생이 있었다. 그를 초청하여 의논한바,
    전광선생은 이미 칠십 고령이었다. 그는 협객 형가를 천거하였다. 형가는 어떤 사람인가?
    그는 위나라에서 입국한 사람으로, 일찍이 검객 魯句踐(노구천)과 도박에 관한 논쟁을 할 때,
    노구천은 눈을 부릅뜨고 호통을 치고, 형가는 머리를 숙이고 아무 말도 못하고 물러섰다.
    그런 지 오랜 후 노구천이 형가의 의거가 실패했음을 듣고 대단히 애석히 여겼다. ‘내가 사람을
    잘못 보았도다. 그는 내가 두려워 피한 게 아니고 나를 그의 생명을 걸고 싸울 상대가 아니기에
    그냥 사라졌을 뿐이었는데…그럴 줄 미리 알았으면 내가 그에게 검술 몇 수 가르쳐 주었을 것을!’
    형가는 항상 자기의 목숨을 걸고 싸울 知己(지기)를 원했다. 그는 연나라에서 竺(축), 즉
    고대의 악기를 잘 쓰는 고점리와 친하였다. 대낮에 시정에서 술 마시고 방약무인하게 형가가
    비장한 노래를 부르고 고점리가 축을 치면 길 가던 사람이 모두 강개하여 듣고 눈물을 흘렸다.
    전광선생의 소개로 형가는 연 태자의 귀빈이 되어 진나라의 왕 秦王政(진왕정)을 칠 계획을
    하였다. 형가의 말은 옛날의 曺沫(조말)의 고사를 들어 진왕에게 접근한 후 “왼손으로 진왕의
    멱살을 잡고, 오른손으로 비수를 겨누고, 지금까지 진이 빼앗은 모든 나라의 땅을 돌려 달라”고
    위협하여 그가 들으면 일이 성사되고, 안 들으면 그를 찔러 죽이고 자기도 그 자리에서 죽겠다는
    계획이었다. 그런데 너무 힘든 계획이라 자기 친구 한 사람과 함께 가면 가능한데 혼자서는
    성공률이 높지 못하다는 것이었다. 그 친구를 기다리다 지친 연 태자는 형가에게 재촉하여 결국
    진무양이란 다른 협객으로 대치하고  진나라로 떠나는데 이 점에 형가는 만족하지는 못했으나
    거절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형가가 연 태자궁에서 귀빈으로 대우를 받았을 때 몇 가지 일이
    기재되어 있다. 첫째 전광 선생보고 이 거사를 비밀로 해달라는 연 태자의 말을 들은 후 그는
    형가를 추천하며, 자기는 칼을 빼어 목을 찌르고 죽었다. 즉, 이 일이 새어 나갈까 두려워했던
    연태자의 우려를 없애겠다는 일념으로 한 일이었다. 어느 날 연회석상에서 술을 따르던 궁녀의
    백옥 같던 손이 너무 아름다워 그 손을 형가가 만진 것을 보고 즉시 연 태자가 명하여 그 궁녀의
    손을 잘라 쟁반에 바쳐 형가에게 선물하였다 한다. 그러나 이는 너무 참혹하다!  진나라의 맹장
    번오기(樊於期)가 죄를 짓고 연나라로 달아나 와 있었고 同病相憐(동병상린)으로 연 태자의
    후대를 받고 있었다. 그런데 형가는 번오기의 목을 잘라서 진왕에게 바쳐야 그가 완전히 믿고
    형가를 만날 것이 아닌가 하며, 그의 목을 원했다. 이에 연 태자는 자기는 차마 그렇게는 못
    하겠다 하니, 형가가 스스로 번오기를 찾아가서 묻기를 “내가 그대를 위해서 또 연 태자를 위해서
    목숨을 내 놓고 진왕을 치려고 하는데 그대는 무엇으로 내게 보답하겠소?” 하였다.  이에 번오기는
    울며 답했다. “나는 아무 것도 가진 게 없소이다. 그저 이 목숨으로 보답하겠소.” 그러자 형가가
    말하기를, “내가 장군에게서 필요한 물건이 하나 있는데 그게 무엇인지 아시오?” 번오기가
    대답하기를, “내가 비록 어리석어도 어찌 그것을 모르겠소? 또 그렇게 쉬운 일이 어디 있겠소?”
    그러고는 칼을 빼어 자기 목을 찔러 죽었다. 죽은 번오기의 머리를 갖고 연 태자에게로 와서 보니,
    연 태자는 너무 불쌍한 번오기의 머리를 보고 크게 통곡한 후 후장을 해주었다. 이리하여 형가는
    督亢(독항) 땅을 받히는 족자로 된 지도를 갖고, 번오기의 목을 상자에 보관하고 진나라로 가기
    위해 출발 준비를 하였다. 그런 후 형가는 다른 협객 진무양과 함께 진나라로 향하니 태자의
    일행을 멀리 역수까지 전송하였다. 이 두 사람은 진나라 서울에 이르러 진왕의 총신인
    中庶子(중서자) 夢嘉(몽가)에게 천금의 예물을 바치고 진왕의 알현이 주선되어 진왕궁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진왕은 높은 왕좌에 앉아 있었고, 칼을 찬 무사는 까마득한 아래에 서서
    지키고 있었다. 진왕 주위에는 궁녀, 환관 등 비무장한 시종만 있었다. 형가는 독항 땅
    降書(항서)인 족자로 된 지도를 열어서 그에게 설명하고자 신체 수색을 수십 번 한 후 진왕
    앞까지 와서 그와 맞대면하고, 돌돌 말은 족자 지도를 차차 펴면서 지리를 설명하고 있다가,
    거의 끝나 갈 즈음 족자 끝에 숨겨놓은 비수를 꺼냈다. 계획대로 오른손으로 그 비수를
    움켜쥐고, 왼손으로 진왕의 멱살을 쥐던 순간에 이에 놀란 진왕이 펄쩍 뛰어 뒷걸음질을 치니
    형가가 왼손으로 쥔 용포자락이 떨어져나갔고, 형가의 왼쪽 손에는 찢어진 진왕의 웃옷자락만
    잡혀 있을 뿐이었다. 유명한 그림이 이 장면을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놀란 진이 뒷걸음질 치며,
    왼손에 진왕의 옷자락을 잡은 형가는 오른손에는 비수를 움켜쥔 채 진왕을 향하여 돌진하며,
    마루에 놓인 상자는 열려 있고, 그 안에 번오기의 머리가 있고, 궁전의 내시가 약탕관으로
    형가를 때리는 장면이 나온다. 아래에서 무사들이 급히 올라오는데 시간이 한참 걸리는 중,
    진왕은 달아나고 형가는 그 뒤를 바짝 쫓고 있었다. 진왕만이 큰칼을 찼는데 이를 뽑으려면
    잠깐 서서 왼팔로 칼 고리를 잡고 오른팔로 칼자루를 빼어야 할 텐데 형가에게 쫓기느라고
    진왕이 자기의 大刀(대도)를 뽑지 못하고 애를 쓰는 중, 환관 趙高(조고)란 자가
    진왕을 향하여 “대왕은 부검(負劍), 부검 하소서” 하니 이 말을 알아듣고 큰칼을 자기의
    왼쪽 어깨에 걸치니 두 손을 안 쓰고서도 칼을 뺄 수 있었다. 그때 그가 거의 형가에게
    붙들리기 일보 직전 달려드는 형가를 향하여 대도를 내려치니 형가의 왼쪽다리가 끊기고
    쓰러지면서 형가가 비수를 던졌으나 재빠르게 진왕은 큰 기둥을 돌아 몸을 피하고 비수는
    기둥에 박혔다. 그때 올라 온 무사에게 맞아 죽으며 형가가 말하기를 “내가 원래 너를
    죽이려 한 건 아니고 빼앗긴 땅을 도로 찾으려 했을 뿐이다.” 이리하여 그의 壯擧(장거)는
    비극적인 실패로 끝났다. 너무 놀란 진왕은 반나절동안 제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한다.
    그 후 정신을 차린 후 그는 형가, 진무양의 시체와 번오기의 수급을 시중에서 태우도록
    명하였고, 다음에 연나라를 공격하여 멸망시키고 결국 연나라왕, 연태자, 그리고 형가와
    관련된 사람들 모두 죽었다. 역사적 사실을 요약해보면, 형가의 거사는 B.C. 227년이었고,
    B.C. 221년에 진왕은 천하통일을 이룩하고, B.C. 220년에 진왕이 죽고 B.C., 202년에는
    무도한 진나라가 멸망했다. 어부사의 작자 굴원의 사망연도는 B.C. 289년으로 알려졌으니,
    형가의 거사는 그때보다 62년 후에 생긴 일이었다. 또한 묵과할 수 없는 사실은 형가가
    진왕궁에서 비통하게 죽은지 겨우 25년만에 통일의 대업을 이룬 진나라가 초패왕 항우에게
    멸망되었다는 사실이다. 다음에 형가를 읊은 시 두 수를 싣는다.






于易水送人 駱賓王

此地別燕丹,

壯士髮衝冠.

昔時人已沒,

今日水猶寒.


우역수송인 낙빈왕

차지별연단하니,

장사발충관을.

석시인이몰이나,

금일수유한을.


역수에서 송별

이 땅에서 연태자 단을 이별했으니,

장사의 머리터럭은 관을 찌르도다.

옛사람은 이미 살아졌으나,

오늘날 물은 오히려 차도다.



    주해

    형가가 역수에서 연 태자와 이별할 때의 정경을 다시 그려본다. 그때 형가의 강개했던 기세는 마치
    머리터럭이 일어나 머리에 썼던 관을 찌르는 듯한 기세였다. 천 년이 지나서 당시의 모든 사람은
    사라졌지만, 형가가 불렀던 역수가에서 ‘역수의 물이 차도다’함은 지금도 마찬가지로 역수 물은
    아직도 차가웠다.

    작가에 관하여

    낙빈왕은 王勃(왕발), 楊炯(양회), 그리고 盧照隣(노조린)과 더불어 初唐四傑(초당사걸)로 추모받는다.
    생몰연대는 기록이 되어 있지 않다. 그는 현재 浙江城義烏縣(절강성의오현) 사람이고, 長安注簿
    (장안주부), 施御史(시어사) 등을 하였다. 고종 당시에 무후가 정치를 전횡하자 그를 간하였고,
    그 후 옥에 갇히기까지 하였다가 후에 석방되고 서경업이 측천무후를 토벌하는 군사를 일으키자
    거기에 가담하여 유명한 토무씨격문을 지었다가 서경업이 패망하자 낙빈왕은 종적을 감추었다.
    문장에 공을 들여 초당사걸의 일인이다. 오언율시 건립에 공이 크다.  上官儀流的(상관의류적)
    綺錯婉媚(기착완미) 文風(문풍)에 반대하였다. 오로지 年少而才高(연소이재고),
    官小而名大(관소이명대)라 하였으니, 즉 나이는 어려도 재주가 높고, 직위는 낮아도 이름이 컸다는
    뜻으로 말미암아 중하게 여김을 받지 못했다.
    역수는 河北易縣西(하북역현서)에서 동으로
    흘러 定興縣西南(정흥현서남)에 이르러 拒馬河(거마하)로 합하여 옛날에는 武水(무수)라고 불렀다.
    다음에는 晉代(진대)의 시인으로서 전 중국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田園詩人(전원시인)인
    陶潛[도잠, 淵明(연명)]의 ‘詠荊軻(영형가)’를 싣는다.







詠荊軻 陶潛

燕丹善養士,

志在報强瀛.

招集百夫良,

歲暮得荊卿.

君子死知己,

提劍出燕京.

素驥鳴廣陌,

慷慨送我行.

雄髮指危冠,

猛氣充長纓.

飮餞易水上,

四座列群英.

漸離擊悲筑,

宋意唱高聲.

蕭蕭哀風逝,

淡淡寒波生

商音更流涕,

羽奏壯士驚.

心知去不歸,

且有後世名.

登車何時顧,

飛蓋入秦庭.

凌厲越萬里,

逶迤過千城.

圖窮事自至,

豪主正怔營.

惜哉劍術疎,

奇功遂不成.

其人遂已沒,

千載有餘情.


영형가 도잠

연단선양사하니,

지재보강영을.

초집백부량하니,

세모득형경을.

군자사지기하니,

제검출연경을.

소기명광맥하니,

강개송아행을.

웅발지위관이요,

맹기충장영을.

음전역수상하니,

사좌열군영을.

점리격비축이요,

송의창고성을.

소소애풍서요,

담담한파생을.

상음갱유체요,

우주장사경을.

심지거불귀하니,

차유후세명을.

등거하시고오?

비개입진장을.

능려월만리요,

위이과천성을.

도궁사자지하니,

호주정정영을.

석재검술소하니,

기공수불성을.

기인수이몰이나,

천재유여정을.


형가를 읊음 도잠

연나라 단태자는 선비를 잘 대접하였으니,

그 뜻은 강포한 영씨를 보복함에 있었도다.

백부량을 초빙하여 모으고,

연 말에 형경을 얻었도다.

군자는 지기를 위하여 목숨을 바치니,

칼을 끌고 연나라 서울을 떠났도다.

백마는 큰길에서 우는데,

강개히 나의 떠남을 송별했도다

웅장한 터럭은 관이 위태로움을 보이고,

맹렬한 기세는 갓끈 속에 가득하네.

역수 위에서 송별주를 마시니,

사방에 많은 호걸들이 열 지어 있네.

고점리는 슬픈 축을 치고,

송의는 높은 소리로 노래를 불렀네.

소소히 슬픈 바람은 지나고,

담담히 차가운 물결이 일어나네.

상음에 다시 눈물을 흘리고,

우음이 연주됨에 장사도 놀라네.

이미 다 알았노라: 한번 떠남에 돌아오지 못함을,

그리고 또한 후세에 이름이 남을 것을.

수레를 올라 탐에 언제 돌아 볼 새가 있는가?

수레 덮개는 나는 듯 진나라로 달렸네.

직행으로 만리를 건넜고,

구불구불한 길로 천성을 통과하였네.

도모를 다하야 일이 여기에 이르렀으니,

호방한 주인은 정히 두려워하였네.

아깝도다! 그의 검술이 성기었음이여!

기이한 공은 마침내 이루지 못하였으니!

그 사람은 이미 쓰러졌지만,

천 년 후에도 남은 정이 있도다



    주해

    여기서 ‘상음(商音)으로 부를 때에는 눈물을 흘리고 다시 우음(羽音)에 이르러 장사도 놀라네’는 형가가
    ‘풍소소혜역수한 장사일거불부환’은 상음으로 불렀으니 음이 너무 처량하여 모든 사람이 눈물을 흘렸고
    다음에 ‘호랑이 굴을 찾음에 이무기 궁으로 들어가니 하늘을 우러러 외침이여 흰 무지개를 이루네’에서
    기세가 너무 강개하여 모든 사람이 눈을 부릅뜨고 머리터럭이 썼던 관을,찔렀다 한다. 그때의 정경을
    정묘(精妙)하게 서술하였다. 너무도 생생히 서술하여 설명이 필요없다. 여기에서 오음(五音)이란,
    중국 음악 또는 국악에서, 한 옥타브 안에서 쓰이는 다섯 상 음률로 궁(宮)․상(商)․각(角)․치(徵)․
    우(羽), 즉 오성(五聲)을 뜻한다.

    註釋

    百夫良(백부량) : 혼자서 백명을 대적하는 용사  詠(영) : 읊다        招(초) : 부르다      
    宋意(송의) ; 형가의 친구  暮(모) : 저물다      卿(경) : 벼슬   提(제) : 끌다 驥(기) : 천리마      
    陌(맥) : 길   雄(웅) : 수컷    猛(맹) : 사납다     纓(영) : 갓끈        逝(서) : 가다  
    淡(담) : 맑다    奏(주) : 연주 혹은 취주하다    驚(경) : 놀라다  蓋(개) : 덮다  庭(정) : 뜰    
    凌厲(능려) : 힘차게 앞으로 나아감. 越(월) : 넘다       逶迤(위이) : 구불구불한,      
    豪(호) : 호걸        怔營(정영) : 두렵고 불안하다   疎(소) : 성기다     載(재) : 싣다
    四座(사좌): 指四周在座的人, 사방에 앉아있는 사람들.

    작가 도연명에

    陶潛(도잠)의 연대는 A.D. 365~427이고 자는 淵明(연명)으로 東晋(동진)  潯陽(심양) 柴桑
    (시상)인이다. 젊어서부터 가난하지만 책을 좋아하고 詩文(시문)을 잘했다. 유명한 고사에 그는
    彭澤縣令(팽택현령)으로 갔었는데, 정부에서 사찰을 나온 郡督郵(군독우)에게 관복을 입고
    맞이하라고 하자 五斗米(오두미) 봉급 때문에 허리를 굽힐 수 없다고 하며 그날로 사표를 내고
    歸去來辭(귀거래사)를 읊으려 전원으로 와서 농사를 짓고 술을 벗하며 일생을 지냈으니,
    자연과 융화하여 그것을 시로 썼다. 諡(시)를靖節(정절)이라고 하여서 정절 선생이라고도 한다.
    이시는 도연명 노년에 작성하였다고 믿는다.




荊軻



荊軻刺秦



Kwan Ho Chung – June 1,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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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古詩]易水歌: 협객의 노래 [4] 2015.06.01 정관호*63 2015.06.01 1180
249 [李朝詩]責索頭: 내 머리를 돌려주오, 김삿갓 [5] 2015.06.18 정관호*63 2015.06.18 1096
248 [唐詩] 秋思: 가을생각 [6] 2015.06.22 정관호*63 2015.06.22 794
247 [Poem]I Don't Know Anything .... [4] 2015.06.25 이한중*65 2015.06.25 3176
246 [Poem]Free Flow [1] 2015.07.14 이한중*65 2015.07.14 567
245 [唐詩] 竹里館 王維 (죽리관 왕유): 대 숲속에서 [3] 2015.08.08 정관호*63 2015.08.08 1243
244 [唐詩] 鹿柴(녹채): 노루 동산에서 2015.08.11 정관호*63 2015.08.11 1118
243 [Poem]Ella:Of Infinite Possibilities/Jacqueline Seewald [4] 2015.08.12 이한중*65 2015.08.12 1077
242 [自作詩] 讚柳寬順烈士(찬유관순열사): 유관순열사 추모시 [4] 2015.08.15 정관호*63 2015.08.15 983
241 西洲曲(서주곡): 다시 불러보는 서주의 노래 [1] 2015.08.17 정관호*63 2015.08.17 8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