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12.15 09:14
소감 |
2014.12.16 00:25
2014.12.16 04:15
이 얼마나 좋은 글입니까?
송대 주희의 좋은 시군요.
이런 글을 보면 선인의 가르침을 기리게 됩니다.
생각나는대로 애호하는 시를 올리고 있지요.
모두 다 좋은 시인데 본인의 해석이 따라가지 못한다고 믿습니다.
이런 기회를 갖게 된 데 감사할 뿐입니다.
2014.12.16 11:30
자당어른께서 한문에 능통하셔서 선생님 청소년시절부터 한문, 한시에 대한 시청각교육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신 것으로 생각됩니다. 귀한 책도 保全하고 계시어 공부를 계속하시니 참으로 좋은 일이십니다.
감사드립니다.
한문자에 지식없는 제가 낭만적 운치에 젖어 올리신 唐詩를 읽었습니다.
술을 절제있게 마시면 담겨있던 정취가 충분히 표출되어 사람들 사이에서 대화도 진솔히 이루어지리라고 생각합니다.
촉규화를 놓고 모래한 최치원의 시를 올립니다. (선생님 글을 읽고 벼락공부 하였습니다.)
蜀葵花 崔致遠
寂寞荒田側 적막황전측 적막하고 거친 밭가에
繁花壓柔枝 번화압유지 무성한 꽃이 부드러운 가질 눌렀네
香經梅雨歇 향경매우갈 장마비 그치자 향기 날리고
影帶麥風欹 영대백풍의 보릿바람에 꽃 그림자 길게 드리우네
車馬誰見賞 차마수견상 수레와 말탄자들 그 누가 와서 보리
蜂蝶徒相窺 봉첩도상규 벌나비만 부질없이 기웃거리네
自慙生地賤 자참생지천 부끄럽구나! 이 천한 땅에 태어나
堪恨人棄遺 감한인기유 사람들에게 버림받고도 참고 견딤이
신라시대 최치원이 훌륭한 인품과 능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세상에서 알아주지 않는 현실을 개탄하며 蜀葵花(접시꽃)에 자신의 처지를 비유한 한시
출생 857년
신라 금성 사량부사망 미상
신라 가야산 해인사국적 신라 별칭 자(字)는 고운(孤雲), 해운(海雲), 해부(海夫)
시호(諡號)는 문창(文昌)학력 874년 중국 당나라 빈공과에 급제
885년 신라 한림학사직업 문신, 유학자, 시인, 문장가 종교 유교 친척 최언위(사촌 아우)
최은함(손자)
최항(재종손)
최승로(증손)
최치원(崔致遠, 857년 ~ ?)은 신라 말기의 문신, 유학자, 문장가이다. 자는 고운(孤雲), 해운(海雲), 해부(海夫)이며 시호는 문창(文昌)이다.
6두품 출신으로서 12세의 나이로 당에 유학하여 6년만에 당의 빈공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였으며, 황소의 난이 일어나자 절도사 고병의 막하에서 《토황소격문》을 지어 당 전역에 문장으로 이름을 떨쳤고 승무랑 시어사로서 희종 황제로부터 자금어대를 하사받았다. 귀국하여 헌강왕으로부터 중용되어 왕실이 후원한 불교 사찰 및 선종 승려의 비문을 짓고 외교 문서의 작성도 맡았으며, 시무 10여 조를 올려 아찬 관등을 받았다. 그러나 진골 귀족들이 득세하며 지방에서 도적들이 발호하는 현실 앞에서 자신의 이상을 채 펼쳐보지도 못한 채 관직을 버리고 산으로 들어가 여생을 마쳤다.
귀국 직후 당에서 쓴 글을 모아 헌강왕에게 바쳤던 《계원필경》은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개인 문집으로 꼽히며, 《삼국사기》에 실려 있는 《난랑비서(鸞郎碑序)》는 신라 화랑도의 사상적 기반을 말해주는 자료로서 주목받는다.
경주 최씨(慶州 崔氏)의 시조로 모셔지고 있다.
http://cafe.daum.net/kdsccg12/Dk2w/165?q=%B4%E7%BD%C3%20%C3%CB%B1%D4%C8%AD
해운대 동백섬 최치원 유적지(해운정)
2014.12.16 12:44
황규정 선생님,
의예과때 한시를 배우셨군요.
저희때는 6.25 부산 피난시절 의예과에서 본과2년 중간까지 하고 환도하였습니다.
의예과시절, '문영현' 교수님께서 국어를 배운 기억밖에 한문을 배우지 않았습니다.
오랜 세월이 지났는데 한시를 잘도 기억하고 계십니다.
이제라도 한문 접할 때마다 알고 지내고 싶어 인터넷 자료 보았습니다.
정관호 선생님 커멘트도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http://cafe.daum.net/37meeting/K4Gi/120?q=%E1%B4%D2%B4%EC%AF%D6%D5%20%F9%CA%D1%F1%E0%F7
성리학을 집대성한 남송의 성리학의 창시자 주자(朱子)의 《주문공문집(朱文公文集)》권학문(勸學文)에 나오는 시의 첫 구절이다.
少年易老學難成 (소년이로학난성)
一寸光陰不可輕 (일촌광음불가경)
未覺池塘春草夢 (미각지당춘초몽)
階前梧葉已秋聲 (계전오엽이추성)
소년은 쉬이 늙어 버리고 학문은 이루기 어렵다.
짧은 시간이라고 가벼이 여기지 마라.
연못가의 봄풀의 꿈을 채 알기도 전에
계단 앞 오동나무 잎은 이미 가을의 소리를 낸다
2014.12.16 22:55
선배님
좋은 글월 잘 읽었습니다. 제가 국내에서 몇 년간 살았을 때 저의 처와 함께 천년 고찰 순례를 많이 하였지요.
거리관계로 경상남북도와 전라남북도에 있는 천년고찰이었습니다. 저의 부부는 불자이면서, 이곳에서 살 때
항상 사찰을 그리워하였습니다. 그리고 얘기하여보니, 둘이 똑같이 미국에 오기 전에 국내의 유명한 사찰을
가지 못햐였지요. 그런데 경북에 있는 사찰에 갔을 때 최치원 선생의 유품이랄까 또는 그 사찰과 관련된
이야기를 몇 번 읽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 옛날 당나라 유학을 가시고 그곳에서 문명을 날리시고, 아마 큰
포부를 가지고 귀국하셨더니, 파벌관계로 뜻을 펴지 못하셨습니다.
하긴 선친께서 미국에 계실 때 독립유공자였던 이희경 선생과 의형제를 하시고 두 분이 3개월인지 6개월간
같은 곳에서 기거하셨는데, 두 분이 한인회에 가시면 그 때에도 남조선파와 북조선파로 갈라져서, 진주 출신인
선친과 평안도 순천 출신인 이희경 선생의 두 분 팀은 아무 곳에서도 받지를 아니하였다고 들었습니다.
파벌과 족벌주의로 이조가 쇠퇴하고 끝났겠지요. 지금도 한국사회의 병폐가 아닙니까?
이런 악습이 없어지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정관호
2014.12.17 01:47
같은 민족이 분단되어 어언 70년이 가까워져서 다른 나라보다 우리 민족간에 더 생소해진 오늘의 현실이 쓸쓸합니다.
중국 衛나라 조조의 아들 조비가 그의 동생, 조식에게 급하게 주문하여 지은 七步詩를 떠올리게 됩니다.
어느 선생님께서 이 詩를 알려주시어 외우게 되었습니다.
분단의 서러움으로 살면서 통일을 고대하는 바람입니다.
[2013/05/15 이건일*68 선생님께서 두보시 2수를 올리신 글에 제가 댓글로서 이 칠보시에 대한 얘기를 쓴적이 있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 자두연두기 [煮豆燃豆萁] (두산백과)
형제간에 서로 다투고 서로 죽이려 하는 것을 비유할 때 쓰는 말이다. 이 말은 다음의 조식(曹植)이 지은 〈칠보지시(七步之詩)〉에서 유래한다. 《세설신어(世說新語)》 〈문학편(文學篇)〉에 전한다.
콩을 삶는데 콩깍지로 불을 때니[煮豆燃豆萁],
콩이 솥 안에서 우는구나[豆在釜中泣].
본래 같은 뿌리에서 나왔거늘[本是同根生],
어찌 이리도 급히 삶아대는가[相煎何太急]?
중국 삼국시대 위(衛)나라의 시조인 조조(曹操)는 두 아들 조비(曹丕)·조식과 함께 이른바 삼조(三曹)라 불리며 건안문학(建安文學)을 꽃피운 문인이기도 하였다. 조식은 문재(文才)가 특출하여 조조가 맏아들 조비 대신 그를 후계자로 정할 생각까지 할 정도로 총애를 받았다. 이로 인하여 조비는 항상 동생인 조식을 경계하는 마음을 품었다. 조조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조비는 어느 날 조식에게 일곱 걸음을 걷는 동안 시를 한 수 지어보라고 하면서 짓지 못할 경우에는 국법으로 처리하겠다고 하였다.
조식은 즉시 발걸음을 옮기면서 이 시를 지었는데, 한 뿌리에서 자란 콩깍지를 태워 콩을 삶는 상황에 빗대어 한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형에게 핍박받는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였다. 조비도 이 시를 듣고 부끄러워하며 동생을 놓아주었다고 한다. 이로부터 '자두연두기'는 형제간에 서로 다투는 것을 비유하는 고사성어로 사용되고 있다. 그리고 아주 뛰어난 문학적 재능이 있는 사람은 칠보지재(七步之才)라 불렀으며, 뛰어난 문학 작품을 칠보시라 하였다. '자두연두기'와 유사한 말로 골육상쟁(骨肉相爭)이 있다.
2014.12.17 02:20
한시를 내놓고 한글번역을 내놓지 못한것은 저의 불찰이었습니다.
이것을 메꾸어 주신 선배님께 감사드립니다.
해운대 동백섬에 있는 최치원선생님의 유적지는 수년전에 가보았습니다.
해운대에 머물르면서 산책로로도 그만인 동백섬을 자주 찾았었습니다. 규정
2014.12.17 02:49
황규정 선생님,
아닙니다.
댓글에 아득한 의예과시절 배우신 한시를 올리신 것으로 감회가 깊었습니다.
漢詩를 붓으로 쓸 때마다 너무 한문지식이 없는 터이라 제가 이 웹에서라도 벼락공부라도 하고 싶어서 한 것입니다.
부산에도 1-2년 산 적도 있고 하여 기회가 있었을텐데도 저는 그 유적지를 가본 적이 없습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2014.12.17 04:35
이시를 읽고 있노라니 문득 옛적 의예과때 한문시간에 배운 시한편이 생각나네요.
이글은 송나라 주자의 '勸學文'에 나오는 글이라 배웠는데 이글빼놓고는 기억나는
것이 별로 없으니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규정
少年易老 學難成
一寸光陰 不可輕
未覺池塘 春草夢
階前梧葉 已秋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