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6.25 11:21
http://news.tv.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6/25/2012062502474.html
이용각 가톨릭의대 명예교수님(서울대의대 1945년 졸업)의 장진호(長津湖) 戰鬪 參戰 얘기가 나옵니다.
TV조선 시사토크, 최 & 박 앵커의 기자와의 대담후에 이용각박사께서 나오십니다.
이 명예교수님의 말씀처럼,
전쟁은 어떤 이유로라도,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나라 없이 누가 시키는대로 사는, 자유없는 삶은 비록 살아 있을지라도, 수백명 무고하게 학살당하는 사실과도 같은 삶입니다.
6.25 전쟁이 아무리 오래전의 일이라도 韓半島의 현실은 분단국가로서 休戰상태에 있습니다.
시간과 공간이 아무리 현존의 나와 동떨어져 있더라도 나의 과거와 미래에 직결되어 있는 현실입니다.
우리는 꼭 대한민국을 수호해야 합니다.
2012.06.25 12:50
2012.06.25 13:45
2012.06.25 13:45
산전수전 다 겪은듯 하지만 얼마 안 남았을 저의 생애에서
앞으로 또 무슨 일이 벌어질까 예측하기 힘듭니다.
저보다 또 많이 年老하신 이용각 교수님의 말씀을
육이오 전쟁을 회상하며 귀하신 말씀 마디마디를 마음에 간직합니다.
누가 누구를 위한 어떤 이유에서의 전쟁이던, 당장 전쟁터에서 사라져가는 존엄한 인간 생명 하나하나를 생각하면
전쟁이란 수단은 인생의 목적에 반역되는 희생자를 내는 일뿐입니다. 결코 있으면 안되는 일이 전쟁입니다.
환규정 선생님,
감사드립니다.
김창현 선생님,
참으로 그렇습니다.
제 각기 삶의 철학이 확고하면.
최악의 선택에까지는 가지 않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감사합니다.
2012.06.25 14:42
우리 세대에게는 625는 우리 인생과 한국역사의 잊을수 없는 한 chapter 입니다.
그러나 요새 세대에게는 625는 의미없는 한때의 지나간 전쟁일뿐이지요.
남한에는 김대중과 김정일의 만남에 감격의 눈물을 흘리는 자들이 부지기수입니다.
결국 잘 생각해보면 마치 우리에게 세계 1차 대전이 무슨 큰 의미가 없는것 처럼 말입니다.
우리는 그냥 잊지못하고 잊지 않으며, 쓰라린 상처를 안은채 살다가 가는것으로 생각됩니다.
62년이라는 세월이 남겨준 치료약으로 생각하고 한 chapter를 닫는수밖에 없지요.
이제 남은것은 우리자신을 잘 돌보며, 그때의 상처를 낮게하도록 하는것이겠지요.
그러는중에 가끔 나타나는 아래와 같은 글에 추억과 보람을 더듬어 볼수있겠읍니다.
우리만이 진정으로 이해할수있는것이지요.
6.25 참전 미군들이 큰 소리 치는 세상 "The Coldest Winter, 가장 추운 겨울"은 한국전을 다룬 大作이다. 핼버스탐은 뉴욕타임스의 사이공 특파원 시절 월남전을 수행하는 미국과 월남정부의 자세를 비판적으로 보도하여 퓰리처상도 받고 유명해졌다. 그가 쓴 'The Best and Brightest'는 케네디, 존슨 행정부의 엘리트들이 왜 월남전을 이끌면서 바보도 하지 않을 오판을 했는가를 추적한 걸작이다. 그는 4년 전에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그 직전에 완성한 것이 'The Coldest Winter'였다. 미국의 월남전 개입을 비판적으로 다뤘던 그는 한국전에 대해선 미국과 한국의 역할을 호의적으로 평가했다. 그는 한국전에 참전했다가 돌아온 미군들이 좌절하고 실망하여 당당하게 자신의 과거를 밝히지 못했던 때가 있었다고 썼다. 전쟁이 미군의 승리가 아니라 무승부로 끝났기 때문이었다. 한국전 참전은 자랑스런 과거가 아니라 '부끄러운 과거'로 치부되기도 했었다. 그래서 한국전을 '잊혀진 전쟁'이라고 불렀다. 잊어버리고싶은 전쟁이란 뜻이다. 이런 평가가 서서히 바뀌기 시작했다. 한국전 참전용사들도 자랑스럽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가장 큰 원인은 한국의 발전이었다. 한국전에 참전했던 미국 병사들은 한국을 좋아하지 않았다. 분뇨 냄새 나고, 춥고 더웠던 전선의 기억에다가 절망적인 나라 꼴이 한국을 뒤돌아보기 싫은 나라로 만들었다. 그 한국이 경제적으로 발전하고 민주화까지 되더니 서울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렀다. 반면 북한은 전쟁 때보다 더 못 살게 되었다. 미국의 참전용사들은 '우리가 피를 흘려 자유를 지켜준 덕분이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한국의 발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게 된 것이다. 노년의 참전용사들은 한국으로 관광을 왔다. 낙동강 戰線, 휴전선, 판문점을 둘러 보곤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그들이 만난 한국인들은 미군에 감사했다. 그들은 미국에서 받아보지 못한 환영을 한국에서 받았다. 이런 소문이 미국에 전해지자 더 많은 참전용사들이 한국을 찾고 있다. 쓰레기더미 같았던 부산과 서울이 세계적 대도시로 바뀌고 거지 같았던 한국인들이 미국인들보다 더 오래 사는 신사 숙녀로 바뀌었다. 미국의 참전용사들은 이런 한국의 성공에 자신들의 기여가 있었다고 자부하기 시작했다. 미군은 한국전에서 5만명의 전사자, 10만 명의 부상자를 냈다. 그 희생으로도 승리를 쟁취하지 못했다고 얼굴을 들고 다닐 수가 없었는데, 한국에 와 보고는 희생의 결과가 번영하는 자유의 나라임을 알게 된 것이다. 핼버스탐은 '가장 추운 겨울'에서 한국의 성공은, 유럽을 살린 마셜플랜을 능가하는 트루먼의 업적이었다고 칭송했다. 한국인의 성공 덕분에 미국의 한국전 참전용사들이 얼굴을 들고 살 수 있었다는 이야기를 읽으면서 한국의 反美운동 때문에 갖지 않을 수 없었던 미안한 생각이 다소 누그러졌다. |
2012.06.25 16:41
운영자님, comment의 게시물 잘 보았습니다.
요즘, 反美, 소위 從美(한편 從北이란 용어에 대한 말)란 말들이 나도는데 어찌되었던 당시 전쟁 태세로 보면 우리나라가 없어질번도 하였을 때 미군 그리고 UN군의 힘으로 오늘날 대한민국이 살아있음을 생각하면 불행중 다행한 일입니다.
역사를 제대로 응시하며 파악하고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되는데 후세들에게 역사 특히 국사 교육을 왜 제대로 시키지 않는지,
일본 극우파들이 自國의 역사의 진실을 은폐하는 교육까지는 아니더라도 사실 그대로의 교육으로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할 것이지요.
그때 그 씩씩하던 군인들이 내국인 외국인 모두 할아버지가 되어 그래도 알려지지 않았던 역사의 증언으로 간혹 알려지는 것은 댜행합니다.
제가 피난 못가고 한강 바로 以南인 상도동에서 대포알 기총알 날아오는 일주일간의 격전 후, 인민군이 들어와 저희집 뒷산에 주민들이 동원되어 많은 국군 시체를 삽으로 흙으로 덮었습니다. 어느새 그곳에 모두 주택가가 들어섰습니다. 그 병사들의 시체를 일일이 확인하고 가족에게 알릴 형편에 있던 것도 아니었으니 내내 그 생각으로 찜찜합니다. 장진호에서 12구 유골이 62년만에 고국으로 돌아왔다고 할 때 제가 삽으로 흙덮은 국군 시체가 생각났습니다.
2012.06.25 20:46
At least, some part of the world - in NY,
they try to teach our Young Generation
What 6 25 Means to Korea and Koreans
Today.
2012.06.25 23:48
방준재 선생님,
오히려 국내에서는 이제 모든 것에 차츰 무덤덤해진듯하여 아쉽습니다.
민생고에 시달린다고들 하는데서 꼭 생각해야할 것도 못하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삶의 고달픔을 흔히 경제적 문제에 기준을 두고 목소리 높이는 부류의 사람들이 많아진듯 합니다만,
언제나 조용한 대다수가 잠잠히 인내하며 좋은 일을 실천하고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어느날 정치인이 TV토크 쇼에 나와서 어느 정치인이 말한 '국가관'이란 용어를 꼬리잡고, 소위 '국가관' 이 무엇인지? 자신도 정답을 모르겠다고 합니다.
모르면 최소한도 우리나라 헌법에 적혀진 것을 따라 지키면 될 것인데 어거지로 떼를 쓰는듯 하는 것은 어린아이 투정도 아닐텐데 한심합니다.
해외동포, 홰외국민께서 멀리서 우리 대한민국에 대한 올바른 의식을 지키며 노력하고 계시니 위로가 됩니다.
모두 건강하시고 기쁜 날들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2012.06.26 03:50
작가 David Halberstam은 아시다 싶히 이책을 쓰는데 10년걸려서
2007년 봄에 출간했는데 출간후 5일후에 애석하게도 교통사고로
유명을 달리했습니다.
이책내용은 수많은 전쟁에 참가했던 군인들 그리고 종군 기자들과
인터뷰해서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쓴 책이라서 상당히 신빙성이 있는
책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6.25를 지난오늘 아직 않보신분들은
필독하시기를 권해드립니다. 규정
2012.06.26 09:13
운영자님, 그리고 황규정 선생님께서 위에 말씀하신 David Halberstam 작, 『The Coldest War』를 꼭 읽겠습니다.
저의 처지에서 겪고 느낀, 당시 의예과 입학 전 해의 연령의 自國民 여성으로서 느낀 것은 극히 일부의 경험을 토대로 한 것이겠고,
戰爭터에서 숨가쁘게 뛰었던 외국인 종군기자, 그리고 참전했던 군인 등, 여러 사람의 인터뷰의 종합으로의 大作을 읽으며 냉정히 객관적으로 생각해보고 싶습니다.
제가 이곳에 글을 올릴 때 국내에서 여고 홈피에 올림과 동시에 올리는 일이 많은데 comment를 읽으면서 차이를 느낍니다.
비록 연령이 많아져도 여고시절의 동문으로서, 어느 면 그 시절에 공감하던 정서가 은연중에 표출되며 여성끼리 얘기하게 되는 점과
대학동문, 특히 환자와 평생을 함께한 남녀공학의 의대동문인 홈피, 그리고 이곳은 해외에서 이미 오랜 세월 생활하신 분들이 생각하시는 점들도
공감대에 차이가 있게 될 것이어서, 저의 생각의 폭도 넓어집니다.
뒤늦게나마 오래도록 살아온 삶의 이모저모, 그리고 내가 살아온 사회, 국가를 냉정히 스스로 평가도 해보고 자성도 해야하는 길목이라 생각됩니다.
대화로 혹은 묵묵히 만나뵙는 여러 동문 선생님들께 감사드립니다.
2012.06.26 20:06
I wrote my memory of 6 25 under the title,
"6 25 - My Memory" and contributed to one
of NY Korean newspaper and blasted Leftists
- North Korea Followers away among Koreans.
If you are interested, sun-bae-nim, please,
visit www.newyorkilbo.com and click Electronic
Catalog at the top of the page to proceed to
Page 6 for June 26th edition.
Thank you, sun-bae-nim.
2012.06.27 03:13
방준재 선생님,
뉴욕일보 전자신문에서 제한된 지면에 올리신 6.25에 대하여 충분히 요약되어 있는 우리 말 글을 감명깊게 읽었습니다.
절에까지 가서 3부로 나뉘어 초등학교 수업을 받으셨다는 것, 제대로 된 교사가 파괴되어 절로 향한
책가방을 멘 초등학교 입학하는 어린이들의 설렘의 발걸음을 생각해 봅니다.
현지에서 陸地戰은 안 겪으셨더라도 하늘 가득 새까만 B-29를 보신 것이 5세 나이에라도 충분히 6.25를 눈앞에 목격하고 체험하신 것이지요.
오늘, 우리 민족이 냉철히 직시하는 역사관은 이 지구상에서 동일할 것입니다.
요사이 대선을 앞두고인지 김현희 KAL機 폭파범에 대한 토크 쇼가 조선TV에서 자주 대두됩니다. 조갑제씨가 함께 나오기도 하고요.
이동복씨(前 한국일보 기자)의 말이 또 토크 쇼에서 나오는데 'KAL기 사건자체가 무고한 많은 생명을 앗아간 테러인데 노무현대통령정권하에 김현희에게, 그 사건의 진실을 왜곡시켜 KAL기 사건이 진실이 아니고 조작해서 만들어낸 얘기이라고 기존의 증언을 걷우기'를 종용하였다고 하며 '그것도 국정원에서 그렇게 하였다니 당시 정부의 수뇌부에서 KAL기 폭파사건 못지 않은 또 하나의 큰 사건을 저지른 것 아니냐'고 합니다.
現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以來 그러한 거짓조작을 국정원에서 하였었다는 일에 대해 책임을 묻고 바로 잡았어야 했을텐데, 그 일에 대해 公的으로 언급되지 않았습니다.
어느 정권에서라도, 남북관계가 좋아질 것이 그 목적이라고 한들, '진실'을 왜곡하는 것은 있을 수 없으며, 당시 KAl기폭파로 탑승객이 몰살했는데 테러 이외에 비행기 폭파의 다른 원인이 보도된 적이 없었고, 당시 국외에서도 전혀 異見이 없었습니다.
북쪽하고 타협하려면 진실을 왜곡해야만 하는지, 그렇게 해서라도 통일이 된다면 그 통일의 결과가 어떤 비극을 초래할지, 우리나라의 운명이 암울합니다.
그러나, 잘 되기를 바라며 그날이 올 것이라는 것을 믿습니다.
國外에서도 후손들도 우리 민족의 바른 역사관을 가지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2012.06.30 19:51
우연히 한 친구가, 그리스 북쪽 옛날 유고스라비아 땅을 여행하고 쓴글을 읽으면서,
한국이 어덯게 보면, 구라파의 현재의 코소보/ 마케도니아에 살아 네려온 사람들의 신세와 비슷하지 않은가 생각해봣지요.
좁은 땅에서 여러 민족이 수천년간 썪여져 싸웟지만
종교가 달라
한국에서 있엇던 사상간의 대립보다 서 심한 살육을 저질은 모양.
아직도 이곳에서 한국에서 남북한 대치하고있는것 같은 팽팽한 반목감으로
언제 한번 화산이 다시 불을 뿜을지 모르는 상태인듯..
http://www.kgh55.org/ssiy_dir/NewMenu_sub.php?iIdx=008151&iBBSIdx=354132
2012.06.30 20:19
민경탁 선생님,
link해주신 글, 잘 읽었습니다.
전쟁이란 모두 그러하지만,
종교전쟁이 가장 무서운 것 같습니다.
글 중에서 "그러나 이스람 정권의 천 년이 넘는 통치 시절, 이스람 교도가 아닌 사람은 죽여도 살인죄가 아니라는 등 극심한 탄압으로 ----"의
부분은 아주 무섭습니다.
저희나라 주변 국가에 비슷비슷한 얼굴을 한 사람들이 오랜 역사에서 참으로 서로서로 피가 섞어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감사합니다.
이용각 선배님과의 인터뷰 감명깊게 보았습니다.
88세이신데도 또렷하신 기억력과 건강하게 보이셔 인상적이었습니다.
장진호 전투는 맥아더 장군의 '옥의티'격인 오판 아니면 오만의 결과로
수많은 아군의 사상자를 낸것은 않타까운 일입니다.
이용각 박사님의 말씀대로 전쟁은 어떻한 이유이건 일어나서는 않된다는
말씀에 동감입니다. 이 인터뷰를 이곳에 내놓으신 선배님께 감사드립니다. 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