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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철 (20기)과의 Interview

1. 스키부를 창단하시게 된 동기

의예과에 입학한것이 1959년 봄이였다. 원래 고등학교때 산악부에 있었기때문에, 곧장 문리대 산악회에 새 멤버로 자원 입단했다.
그해 겨울 (1960년 초) 문리대 산악회 대관령 스키 강습에 참가했던것이 그후에 일어난 스키에 관련된 모든 일의 시작이 되었다.

그당시 문리대에서 한 사람이 서울대학교를 대표해서 전국 스키대회에 출전했었고, 그 분이 졸업하자 서울대 팀의 전통이 당장 끊어지게 되었는데, 스키에 재미를 붙힌 본인이 처음으로 그 자리를 혼자 채워서 출전했다 (1961 초).

그때는 대개 각 단과 대학별로 또는 각자 구릅으로 대관령에 와서 스키를 타고 갔는데, 본인이 출전한후 부터, 전 단과대학을 통합해서 한 팀으로 단결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고, 결국은 몇 단과대학에서 하나 하나 선수들을 끌어드려 모으면서 스키대회에 공동 출전했었다. 그 당시의 제일 큰 과제는 단과대학의 각 개인들의 단결과 후배 양성으로 계속 스키부의 전통 유지에 있었기에, 하나의 범 서울대 스키부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게 되었다.

6 년제인 의과대학 멤버들이 학교에 제일 오래 남아있었고 실전 경험을 쌓을 시간도 많었기에 의대 멤버들이 단일 팀의 형성을 맏는 주동이 되었다. 1962년 가을에 정식으로 서울대 대학본부를 통해서 서울대 스키팀이 창설되었다.

2. 1962년 당시 한국 스키의 현황

한국의 스키계는 일제강점기의 잔해였던 원시적인 시대였고, 불과 겨우 몇년전에 처음으로 동국대 출신 한 사람이 올림픽에 출전 (출전이라기보다는 참가)했을때였다.
일반인들은 일본 점령하의 야마스키 (나무 스키로 edge가 없는 스키)로 주로 스키타던 시대였고, 미국 군수물자로 들어온 스키장비가 처
음 들어와 이것을 쓰기 시작했을때였다. 서너명의 부유한 사람들이 일제 현대 스키를 구입해서 처음으로 쓰기 시작했다.

그 당시 모든 스키 장비와 시설은 아주 원시적이였다.
평창군 횡계리의 초가집에 하숙을 정하고, 밤을 새우면서 손으로 단단한 Hickory 나무에 구멍을 뚤어 Binding을 부치고 다음 아침 일단 약 10명이 남쪽으로 한 10리쯤 걸어가서 (지금의 용평부근) 눈덮힌 조그만 슬로프에서 배우기 시작했다.
매일 좋은 눈을 찾아서 이곳 저곳 찾아 다니며 스키를 연습했다. 보통 겨울 길을 무거운 스키를 메고 다녔다.
물론 그때는 정식 스키장이나 스키 시설은 전혀 없었고 그냥 야산의 눈 덮힌 슬로프를 쓰는것이였다.

그해 (1960년 겨울) 대한체육회 산하의 대한스키협회 주최로 스키대회가 새봉 (횡계리 동북쪽의 산으로 대관령 임업시험장에서 북쪽으로 올라감))에서 열렸는데 그때 서울대는 한사람이 출전했었다 (문리대 이병주?). 그때 스키협회 임원들은 사실상 대한 산악회의 임원들과 거의 겹치는 상태였다.
즉 그당시에는 등산하는 사람들이 바로 스키타는 사람들이였다.
회장이였던 산악인 김정태씨와 운영위원으로 성악가인 양천종씨의 이름이 기억에 남아있다.
선수들은 강능고등학교에서 시작해서, 대학교로서는 경희대, 동국대의 스키부가 있었고 서울대는 문리대의 단 한사람이였고, 일반 팀으로는 육군스키부대와 해병대 스키부대가있었다.
그때 대관령에서 오래 머무렀던 (잠간 지나가는 사람들을 빼고는) 스키 인구는 아마 50명 남짓했을걸로 기억하며 대개 같은 슬로프를 쓰기에 우리는 서로 다 형제처럼 친한 사이였다.
그때는 정해진 스키장이 없었기때문에 눈이 좋은 산비탈이면 아무곳에서나 스키대회를 벌렸다.
가장 흔히 쓰던곳이 횡계리에서 빤히 동남쪽으로 보이는 지루메 슬로프였고, 아니면 횡계리 서쪽의 제 3 슬로프였고, 눈 사정이 나쁠때는 새봉 정상까지 올라가서 새봉정상 북면에서 했다.
어떤해는 진부리 북쪽까지 군용차에 실려간적도 있었다.

1963년경부터 미8군이 가끔 방문하고 그때 Gasoline engine을 쓰는 조그만 Rope tow를 쓰기 시작했고, 다음해 Scandinavian들이 세워준 국립의료원 (National Medical Center)의 Scandinavia 사람들이 방문했고, 역시 같은 Rope tow를 쓸때가 있었다. 한걸음 한걸음 걸어 올라가서 다시 내려오는것이 보통이였다.

3. 스키부 활동을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

6년간의 대관령 생활은 지금 기준으로는 아주 원시적인것이였지만, 겨울마다 각 단과대학 멤버들이 모여서 한방에서 같이 하숙하면서 지내며,  배고프고 어려운 상황에서 노력하면서 서울대 팀을 무존재 상태에서 강력한 팀으로 이끌고 갔던 추억과 보람은 아무리 돈을 주어도 살수없는 아름다운 경험이였다. 지금 내자신 Colorado에서 호화 Condo에 살면서 스키를 즐기고 PSIA Ceritfied Instructor로 지내지만, 1960년도의 대관령에서의 배고팠던 스키팀 생활을 아직도 그리워 한다. 누구나 알겠지만 어려웠던 시절이 더 기억에 깊히 새겨진다.

4. 스키부를 통해 배운 인생의 교훈

어떠한 난경도 끈질긴 노력으로 극복할수있고, 그 난경속에서도 인생은 그런대로 아름답고 즐길수있다는 사실 배우고 믿게되었다. 단지 이런 신념은 나만이 아니고 모든 625 전 세대의 한국인들이 배웠던것으로, 우리세대에게는 하나의 당연한 생활 철학이였다. 그런 신념이 미국에서의 이민 생활 개척에도 두움이 되었다. 하나의 불패의 정신력이라 할가?

5. 서울대학교 스키부가 나아갈 길, 추구해야 할 가치

옛날 본인의 시절처럼 난경의 극복은 이제는 별 의미가 없겠지만, 대관령에서 서로 다른 분야의 사람들이 만나서 같이 지내며 한가지 목표를 위해서 하나의 공동체로 생활하면서 이루는 우정과 인간관계를 소중하게 애끼고 보존하면서 지내야한다. 이것이 사실 경기에서의 우승보다도 더 중요한것으로 생각된다. 또 스키부 또는 스키팀이라는 큰 우산 아래서의 선배 후배의 관계를 졸업후에도 유지하며, 후배 양성에 힘쓰면서 우리의 전통이 끊어지지 않도록 노력해야한다. 우리의 사회생활에서 하나의 특별한 인연으로 역어진 친밀한 인간구릅의 한 멤버가되는것이 얼마나 중요하고 귀중한것인가를 인식하고 살아야한다. 이 특정 구릅은 아무나 가입할수없는, 또, 무슨 돈으로도 살수없는 그런 드믈고 소중한 구릅이다. 우리처럼 도미로 인해서 조국을 멀리 떠난 사람들이 가장 아쉬워하고 그리워하는 것이 바로 그런 인간 관계이다.

6. 후배(현역 YB)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씀

바쁜 학창시절에서 스키부나 스키팀의 한사람으로서 지낸다는것은 먼훗날에 잊을수 없는 좋은 추억이 될것이다. 경기에서의 우승도 좋겠지만, 더 중요한것은 우정과 인간 관계의 형성이다. 그것을 이루기에 최선을 다하며 학창 시절의 과외 생활을 맘껏 즐기기를 바란다.

인생에서 한번 지나가면 다시 붙잡을수 없는 기회라는것을 지나가 버리기전에 알기를 바란다.

7. 스키부 신입부원 확보가 매우 어렵습니다.
이에 대한 선배님의 조언을 구합니다.

선배되는 사람들의 따듯한 인간성과 후배를 아끼면서 끌어줌이 필요하다. 요새는 본인이 잘 모르지만, 우리 시대에 특징이였던 고리타분한 권위주의를 버리고 형재자매의 우정관계를 유지하도록 해야한다. 승리라는 결과 보다는 같이 노력하며 즐긴다는 의식이 더 중요하다. 현역 멤버들이 멀리 앞을 바라보면서 후배 양성에 적극적으로 힘쓰도록 해야한다.

우리 때에는 서울대학생 (특히 신입생) 중에서 서울대 스키부 주최로 매년 무료 스키강습을 열고, 거기에서 열성적인 사람을 뽑아서 스키팀으로 흡수하는 방식을 썼다. 그때만해도 스키가 유행할때가 아니였지만 그런대로 매년 두 세 사람씩 채울수 있었다.
한국 사정을 잘 모르지만, 요새 같이 스키가 널리 보급된 때라면 더 쉽지 안을가한다.

8. 기타: 추억에 남는 일, 뒷 이야기

대관령에서 일어났던 모든 토막 토막의 추억을 다 쓸수는 없지만,
젊은이들은 잘 모르겠지만 이제 늙은 나이의 본인에게는 그 모든것이 아름다웠고 지금도 그립다.
뼈를 깍는듯한 추위에서 기진맥진한채 대관령 골짜기를 홀로 달리던 Cross Country 경기 조차 아름다웠던 것으로 생각된다.
내가 "아름답다"는 형용사를 쓴것에 나자신 스스로 웃지만 (듯는 사람들은 물론이겠고), 사실 인생의 먼길을 돌아다 보면 모든 고난을 불구하고 이루어 놓은 일은 그것이 성공이였건 실패였었건 하나의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게되는것 같다. 비록 어려움이 심했고 극복해야될 과제가 많었지만 나로서는 어떤 호화스럽고 풍족한 경험과 바꾸라해도 전혀 바꾸고 싶지않을 정도로 소중한것으로 본다.
지금도 돌이켜 보면 그때 거기에서 일어났던 일들이 아직 그리웁고 보람있게 생각된다. 그리움과 보람스러운 과거를 맘속에 두고  살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행복한 인생이 아닐가?

인생의 모든 과제를 성공적으로 끝내고 조용히 은퇴해서 사는 본인에게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것은 부귀도 아니고 영화도 아님을 느낀다. 사실, 돈으로 얼마던지 살수있는 그런것들은 아무 소용없는것으로 보일뿐이다. 오랜 세월과 성숙한 나이가 가져다 주는 지혜의 하나다. 정말 소중한것은 젊은 시절에 깊히 맘속에 새겨진 추억들이다. 학창 시절에 일어났던 대관령에서의 스키부 생활은 그중의 가장 중요한 하나가 된다. 그때 거기에서 그런일들이 없었다면, 그런 추억을 어디에서 구할수있을 것인가? 아무나 가질수 없는 무한한 특권임을 다시 인식한다.

더구나 오늘날, 본인이 전혀 만나보지도 못한 후배들의 계속적인 노력으로, 서울대 스키팀의 50주년 기념을 맞이하니, 나로서는 더 이상 행복할수가 없다. 그동안 꾸준히 전통을 지켜준 후배들에게 감사한 마음 금할수 없으며 고마움과 그들의 대견함에 나의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불행히도 먼저 저 세상으로 떠난 조광호 동문과 함께 전하고 싶은 메쎄지... "후배님들, 고맙소."

9. 초창기의 연혁

설문에는 없는것이지만, 아래에 간단히 우리가 50년전에 시작한 스키팀의 역사를 남긴다. 무려 반세기가 지난 오늘날 기억은 많이 희미해졌지만 그런대로 기억해 본다.

1961년 겨울, 의예과 2학년때, 문리대 산악회에서 졸업해버린 선배가 떠나자, 대관령 여행은 무산되었고, 나는 고교 동문친구 몇명과 같이 갔었다.
그때쯤에는 스키에 꽤 익숙하게 된때였고 마침 전국스키대회가 열렸을때 서울대에서는 아무도 출전하는 사람이 없게 되자, 나는 처음으로 혼자 나가기로했다. 그런대로 등수에는 들지 못했지만, 경기후 어느 정도의 자신을 얻었다.
한 겨울에 두번의 스키대회가있었는데, 첫번은 한국학생스키연맹주최의 학생스키대회가있었고, 조금 늦게 대한체육회 주최의 전국체육대화 동기 스키대회가있었다.
이러는중에 나와 같은 학년의 조광호 동문이 그의 등산 친구들과 같이오자, 우리는 두 의예과 선수로 서울대를 대표로 뛰게 되었다.

1962년, 의과대학 일학년때, 우리는 의대 내부에서 대관령 스키 강습회를 모집해서 주로 산악반 대원들이 대관령으로 향했다.
인원수가 많아지니 자연히 Cross Country 스키팀이 구성되었고, 서울대 이름으로 경기에 참가했다.
당시에 동국대, 한양대, 육군, 해병대 팀은 그래도 현대식 스키장비를 갖추고있었지만,
우리는 대관령 현지에서 농부들이 참나무 깍아서 가마솟에 구어서 만든 원시적 국산품 스키로 도전했다. 
물론 결과는 우리가 제일 마즈막으로 들어 오는 팀이였다.

1962년 가을에 문리대 문영현 체육교수를 통해서 처음으로 새 스키부의 창설을 의뢰했고, 서울대 본부로부터 인정이되면서, 문영현 교수를 책임교수로 모시고 서울대 팀이 정식으로 탄생했다. 이것이 SNU Varsity Ski Team의 시작이 된다.
각 단과대학에서 따로 오던 대관령 합숙을 의대 중심으로 하나로 단합하게 되었다.
그때 대학본부로부터 조그만 경제지원을 받게되었고, 그때 받은 돈으로 서울대 스키부용의 유니폼을 만들었다.

또 같은해 가을에 의대 학생회 선거에서 새학생회장단이 선출되었는데 다행히도 잘 아는 고교 선배들이여서, 그당시 여름철에 활동이 많었던 의대 산악부를 정식으로 등록하고 학생회의 경제적 지원을 받기 시작했다.
1960년대 초와 그 이전에는, 스키는 동기 등반때 쓰는 기구였기때문에 스키타는 사람은 대부분 등반하는 사람이였다.
서울대 안에서도 마찬가지로 스키부와 산악부는 사실상 같은 멤버로 구성되었었다.
거의 동시에 생긴 일로서 조광호 동문이 서울대 스키부 Captain을 맏고 나는 의대 산악반 Captain 직을 맏게 되었다.
두단체는 여름에는 산악부, 겨울에는 스키부로 둔갑되었다.

스키부에서는 다른 단과대학의 산악부팀을 주축으로 스키부원을 끌어드리고,
의대 안에서도 적극적인 산악부 스키부 후배 양성에 노력을 기우렸다.

1963년 겨울에 들어서자, 한 사람으로 시작된 스키팀이 장족의 발전을 이루고 우리의 스키대회 활동도 커지기 시작했다.
그해 처음으로 노르딬 경기에서 서울대 팀은 동국대를 물리치게되어 꼴찌의 누명을 처음으로 벋게되고, 알파인 경기에서도 처음으로 등수안에 들어가게된다.
영하 30도의 추위에서 10 - 20 km을 뛰던 의대의 노장들의 힘이 소진되자,
그해 겨울에 대관령을 방문해온 공대 산악부원들을 흡수해서 Cross Country Team을 구성했다.

1964년 겨울에는 처음으로 서울대 스키부의 교내 스키대회를 횡계리 제 3 스키장에서 열렸는데 서울대가 교내스키대회를 가지는 유일한 대학교가 되었다.

1965년 겨울은 나와 조광호에게는 마지막 대관령 여행이였다.
이해에 공대학생으로 구성된 Cross Country Team이 Nordic Relay 한 종묵에서 금메달을 따는 영광을 누렸다.
서울대는 드디어 스키대회에서도 무시 못할 대학팀이 되었고 Alpine 종목에서도 몇명이 등수에 들었다.

졸업후 스키부 OB로서 더 활발한 스키팀을 구성하는것이 우리의 큰 꿈이였으나, 그해 나와 조광호는 국방부의 Kim's Plan에 따라 얼떨결에 미국으로 건너오게 되었고, 바쁘고 어려웠던 미국에서의 Medical Training과 전문의 자격 획득에, 운명의 장난이라 할가, 수년간 대관령에는 전혀 다시 돌아 올수없는 신세가 되었다. 1970 년대에 처음 고국에 돌아왔을때에는 옛날의 횡계리는 자취도 남지 않었고, 스키부 멤버들도 알던 사람들은 찾기 어렵게 헤어진 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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