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1.16 02:41
정식으로 공개된 적이 없는 손보기(1922~2010) 전 연세대 박물관장의 소장본 삼국유사가 연세대에 기증되면서 처음으로 나왔다. 이는 조선 초기 판본으로 다른 판본에서 글자가 탈락하거나 잘못된 곳이 많았던 왕력편(王曆篇ㆍ역대 왕조별 왕의 족보)이 포함돼 있어 사료적 가치가 높다. 연세대는 고고학자 겸 서지학자로 이 대학 사학과에 오래 봉직 했고 대학박물관장을 지낸 손 교수가 소장했던 삼국유사 1책 목판인쇄본을 유족에게서 최근 기증받았다고 15일 밝혔다.이번에 기증받은 1책은 신라ㆍ고구려ㆍ백제ㆍ가야의 역대 왕의 족보를 간략하게 기술한 '왕력편'과 삼국시대 각종 기이한 이야기를 모은 '기이편(奇異篇)' 권1과 권2로 구성돼 있다. 연세대는 "손보기 교수 기증본을 검토한 결과, 삼국유사 1책이 낙장없이 완벽하게 보존돼 있으며, 조선 초기에 간행된 것이 확실하다"고 말했다.연세대는 "손보기 기증본을 다른 삼국유사의 초기 간행본 권2(보물 제419-2호ㆍ성암고서박물관 소장)와 대조한 결과 동일 판본임을 확인했다"며 "같이 1책으로 묶인 왕력편과 권1도 판면 상태로 봐도 동일 판본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삼국유사가 조선초기에도 간행된 것은 이 시기 고판본의 인본(印本)인 석남본(石南本)과 송은본(松隱本)이 현존하기 때문이다. 보물 제419호로 지정된 송은본은 현재 곽영대(郭永大)가 소장하고 있다. 고려 말인 1281년(충렬왕 7년)경에 일연 스님이 펴낸 삼국유사는 1512년(조선 중종 7년) 경주에서 발행한 목판본인 '중종 임신본(中宗 壬申本)' 혹은 '정덕본(正德本)이 완전한 형태로 전하는 가장 오래된 판본이다. 이르면 고려말, 늦어도 조선 초기 찍었을 판본이 최근 발견되고 있지만 이것도 전질이 아니라 일부만 남아 있었다.특히 삼국유사를 구성하는 여러 편 가운데 '왕력편'만 글자 탈락이나 오류가 심한 데다, '중종 임신본' 이전의 판본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번 손보기 소장본은 가치가 높다는 평가다. 예컨대 '중종 임신본'에서는 신라 태종무열왕 김춘추의 어머니 천명부인(天明夫人)이 죽은 뒤 받은 이름인 시호가 '문정(文貞)'이라고 했지만 이번 손보기 소장본에서는 '문진(文眞)'으로 기록됐다.신라 진덕여왕 아버지가 '국기안(國其安)'으로 알려졌지만 이번 자료에서는 '국진안(國眞安)'으로 표기됐다. 또 진덕여왕 어머니 아니부인(阿尼夫人)은 아버지가 기존 자료에는 이름이 '노(奴)'이며 사후에 '○○갈문왕(葛文王)으로 추봉됐다'고 했지만 이번 자료에서는 기존에 탈락한 갈문왕 이름이 '만천(滿天)'으로 밝혀졌다. 신승운 성균관대 문헌정보학과 교수는 "귀중한 왕력편 판본을 손보기 선생이 소장하고 계셨다는 사실은 이 분야 전문가들은 다 알고 있었지만, 이를 생전에 공개하지 않아 그 전모를 알 수 없었다"며 "이번에 공개한 자료는 중종 임신본 이전에 나온 유일한 왕력편이라 그 가치는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고 말했다. 박상국 한국문화유산연구원장은 "조선조 초기본이 흔치 않은 가운데 나온 판본이고 왕력편이 상세하고 깔끔하게 정리돼 있어서 면밀한 검토를 거치면 새로운 역사적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편, 손 교수의 생전에는 물론, 사후에도 2년 넘게 이 판본이 공개되지 않았던 이유에 대해서는 궁금증을 자아내고 있다. 손 교수는 단 한차례도 이 판본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고 이를 봤다는 전문가도 없다. 다만 책을 수리하는 과정에서 그 존재가 알려져 지대한 관심을 모았다. 공식적인 검증이 이뤄지지 않아 아직까지도 정식으로 손보기 판본이라는 기록도 올라 있지 않은 상태이다. |
2013.01.16 02:53
2013.01.16 02:55
부끄럽게도 우리 역사를 들쳐보면 삼국시대(사국시대?)와 그 이전에
대한 기록을 찾아보기 어렵다고들 한다.
세종대왕께서 '고려사'를 정비해 만들어낸일은 고려 역사를 안다는
의미에서 세종대왕의 많은 업적중의 하나로 다행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삼국시대에 대한 기록으로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들을수 있는데
삼국사기는 저자 김부식의 고구려,백제를 폄하하고 신라 일변도의
책이라서 그만큼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평을한다.
거기에 비해 많은 설화들을 모아 노았다는 삼국유사가 오히려 더
신빙성이 있다고들 한다.
그런면에서 이번 삼국유사 조선초기 판본의 발견은 그만큼 역사적으로
값어치가 있다고 본다. 규정
2013.01.16 11:21
2013.01.16 15:40
수양제를 무참히 무찔은 고구려의 을지문덕 장군은 물론이며
당나라 역사에서 명군 현군으로 뽑힌다는 태종 이세민도 고구려
연개소문과 양만춘 장군에 의해 안시성 전투에서 패퇴한것을 보면
고구려는 대단하였다고 생각됩니다.
양만춘의 화살에의해 이세민이 외눈이 되었다는것은 역사적으로
사실이었는지? 알수없지만서도요. 규정
이런 책을 쓴사람이 역사에 보면
신라때에도 있엇다든데, 책들이 다 전해지지 않아 안타까웁고,
사람이 일생이런 책 한나 쓴다는것 지금생각하면 노벨상 업적에 비길 만한 업적?
삼국유사 번역본을 40 여년간 책꽃이에 넣놓고 못 (않) 읽고 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