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노래를 수년전에 무심히 배워서, 가끔 Karaoke에서 써먹었는데, 지금 알고보니 한때 한국에서 대 유행했었고 일본에까지 퍼진 노래라고 한다. 아마 그때 광화문 연가의 가사가 무척 맘에 들었고, 거기에다가 이문세 가수의 특이한 창법에 얼른 배웠던 모양이다.
광화문, 중앙청, 정동의 돌담길, 광화문 네거리 들은 내가 국민학교부터 중학교 시절까지 늘상 다니며 살다싶이 한 곳이다.
1955년 어느 봄날 광화문 거리의 판자집 교실을 떠나, 거기에서 멀리 떨어진 원래의 중학교 신축교사로 이사간 그날로, 광화문 거리와의 인연은 끝이 났다. 가끔 찾아갈 일은 있었지만... 한국을 떠나기 전까지는 그런대로 옛모습이 남아 있었지만, 지금은 이제 모두 세월따라 흔적도 없이 변하였지만....
한국을 방분할때마다 광화문을 지나노라면 어릴때의 생각이 간절하건만, 옛날의 모습은 상상 할수도 없이 완전히 사라진지 오래다.
언젠가는 우리 모두 세월을 따라 떠나가지만.... 노래의 가사가 1988년에 쓰여졌다니, 그건 내가 떠난지 30년 지난후이다. 한국을 떠나자 그 언젠가의 세월이 이미 나에게는 온 모양이라.
작년 11월에 우연히 한국방문때 들렸었다. 그때는 내가 떠난지 이미 거의 60년의 세월이 흘러갔을 때였다. 옛모습을 기대하지도 않었지만, 옛 모습은 자취도 없었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덕수궁 돌담과 그 담을 타고 가는 조그만 길, 그리고 그 눈 덮혔던 조그만 정동교회는 아직도 있다고 한다. 광화문 거리는 한때 내가 살았던 안방처럼 정들었던 곳이였건만, 이제, 이미 멀리 떠나간 사람에게는, 먼 외국의 어느 거리인양 느껴진다.
1910년 일본이 우리나라를 통치하기 시작한 다음 한 일 가운데 하나가 광화문헐기다.
지금 내가 자료와 떨어져 있어서 년도는 모르겠다.
1950년대 중학교 국어 교과서에 "헐려 짓는 광화문"이란 글이 있었다.
첫 구절 "헐린다 헐린다 하더니 기어히-----"는 기억이 난다.
일본의 조선총독부가 지금 광화문이 있는 곳에 있던 것을 헐어버리려 했는데
국민들의 반대와 일부 일본 지식인(특히 미술품 보존 주창자들)의 반대로 없애는 대신
지금 경복궁의 동쪽으로 옮겨 지었다.
그 때의 울분을 글로 쓴 것이 앞의 "헐려 짓는 광화문"이다.
한번 찾아서 다시 읽어봐야겠다.
그렇게 옮겼던 것이 육이오 전쟁 때 절반이 없어지고 말았다.
내가 처음 본 광화문은 밑의 돌벽만 있고 위의 누각은 없는 것이었다.
그러던 것을 제3공화국 때 복윈하기로 했다.
그 때 이왕 복원할 것이면 원래 자리에 짓자고 해서 지금 자리로 옮겼다.
그런데 그 때는 위의 누각도 씨멘트로 만들었다.
그러다가 씨멘트 광화문은 안 된다고 원래대로 나무로 만들자고 했고
자리도 고증을 통해 약간 옮기기로 했다.
그 결과 광화문 일대의 길의 모양까지 바꾸는 큰 일이 되었다.
지금 지어진 광화문은 그러니까 14세기에 지어진 광화문에 가장 가까운 모습이고, 자리인 셈이다.
[회상] 광화문 거리와의 인연
이 노래를 수년전에 무심히 배워서, 가끔 Karaoke에서 써먹었는데,
지금 알고보니 한때 한국에서 대 유행했었고 일본에까지 퍼진 노래라고 한다.
아마 그때 광화문 연가의 가사가 무척 맘에 들었고,
거기에다가 이문세 가수의 특이한 창법에 얼른 배웠던 모양이다.
광화문, 중앙청, 정동의 돌담길, 광화문 네거리 들은 내가
국민학교부터 중학교 시절까지 늘상 다니며 살다싶이 한 곳이다.
1955년 어느 봄날 광화문 거리의 판자집 교실을 떠나, 거기에서
멀리 떨어진 원래의 중학교 신축교사로 이사간 그날로,
광화문 거리와의 인연은 끝이 났다. 가끔 찾아갈 일은 있었지만...
한국을 떠나기 전까지는 그런대로 옛모습이 남아 있었지만, 지금은
이제 모두 세월따라 흔적도 없이 변하였지만....
한국을 방분할때마다 광화문을 지나노라면 어릴때의 생각이 간절하건만,
옛날의 모습은 상상 할수도 없이 완전히 사라진지 오래다.
언젠가는 우리 모두 세월을 따라 떠나가지만....
노래의 가사가 1988년에 쓰여졌다니, 그건 내가 떠난지 30년 지난후이다.
한국을 떠나자 그 언젠가의 세월이 이미 나에게는 온 모양이라.
작년 11월에 우연히 한국방문때 들렸었다.
그때는 내가 떠난지 이미 거의 60년의 세월이 흘러갔을 때였다.
옛모습을 기대하지도 않었지만, 옛 모습은 자취도 없었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덕수궁 돌담과 그 담을 타고 가는 조그만 길,
그리고 그 눈 덮혔던 조그만 정동교회는 아직도 있다고 한다.
광화문 거리는 한때 내가 살았던 안방처럼 정들었던 곳이였건만,
이제, 이미 멀리 떠나간 사람에게는, 먼 외국의 어느 거리인양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