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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산 대선사의 가르침

『부처를 쏴라』

현각 엮음(양언서 옮김)


김영사/ 2009. 2/ 290면/ 15,000원


이 책은 한국 선불교를 세계에 알리며 ‘한국의 달마’라 불린 숭산 행원 대선사의 법문을 그의 제자인 현각이 정리한 것이다.

숭산 스님은 1927년 평안남도 순천에서 태어났다. 1944년 일제의 압제 아래 독립운동 단체에서 활동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동국대학교에서 철학을 전공했으나, 불안한 사회를 보며 자신의 정치적 운동이나 학문으로는 세상에 도움을 줄 수 없음을 깨달았다. 참된 진리를 구하기 위해 1947년, 충남 마곡사로 출가하여 행원(行願)이라는 법명을 받았다. 1949년 예산 수덕사에서 당시 한국불교의 대표적 선지식이었던 고봉 대선사로부터 전법게와 숭산(崇山)이라는 당호를 받아 이 법맥의 78대 조사가 되었다. 당시 고봉 스님은 ‘너의 법이 크게 퍼질 것’이라고 예견했다. 1966년 일본으로 건너가 해외 포교에 앞장서 1972년 미국에 홍법원 개설을 시작으로, 32개국에 120여개 선원을 설립·운영하였으며 수많은 외국인 제자를 길러냈다. 달라이 라마, 틱낫한, 마하 거사난다와 함께 세계 4대 생불로 추앙받았던 숭산 스님은 만년까지 세계를 누비다 2004년 서울 수유리 화계사에서 입적했다.


현각은 1964년 미국 뉴저지주 라웨이에서 태어났다. 예일대와 하버드대에서 공부했다. 1990년 숭산 스님의 설법을 듣고 1992년 출가했다. 1992년부터 송광사, 정혜사, 각화사, 봉암사 등 전국의 선방에서 용맹정진을 해왔으며 불교 경전의 영역 및 다수의 법문을 통해 선맥이 잘 이어지고 있는 한국 불교를 세계에 알리는 데 힘쓰고 있다. 현정사 주지로 활동했으며, 화계사 국제선원 선원장을 맡았다.


스님의 법문을 놓고 이러쿵저러쿵 토를 다는 것은 좋은 태도가 아니라고 생각되어 이 책에 있는 숭산 스님의 법문 한 토막을 그대로 소개함으로서 여러 친구들과 불법을 나누고자 한다.

혹시 저작권법에 걸릴지도 모르겠지만(그래서 중요한 말만 따왔다), 이 사이트가 돈 받고 파는 것이 아니니 숭산 스님이나 현각 스님도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 믿는다.



욕망곱하기 제로는 제로

(69면~80면)


  뉴헤이번 선원에서 수행 중인 한 수학자가 영성(靈性)과 지식의 관계를 숭산 큰스님께 물었다.

  “큰스님께서는 아이와 같은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말씀하셨는데 예수님도 그렇게 이야기했습니다. 그렇다면 영성에서 지식은 어떤 역할을 합니까? 선을 이해하는데 있어 올바른 지식이란 무엇입니까?”

  (중략)

  계산기를 사용할 때 계산기 판에 숫자가 이미 찍혀 있으면 다른 계산을 할 수가 없지요. 제대로 답이 나오지 않을 거예요. 이 때문에 아래 부분에 C 라고 쓰여진 단추가 있는 겁니다. 이 단추를 누르면 있던 숫자가 지워져서 0이 돼요. 그러면 계산을 할 수 있게 됩니다.

  마음을 맑게 하면 행복은 도처에 널려 있어요. 아이의 마음처럼 아무것도 가지지 않는 완전한 평화다 이 말입니다. 그러니 늘 C 단추를 누르세요. 화가 나면 C 단추를 누르십시오. 그러면 마음이 맑아져요. ‘모른다’는 마음이 C 단추를 누르는 그 마음입니다. 생각이 많으면 ‘모른다’하는 마음으로 오직 곧장 나아가세요. 그러면 생각이 없어집니다.

  그러나 찰나 찰나 이 0의 마음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면 우주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없습니다. 생각하는 동안은 산이 눈앞에 나타나도 볼 수 없어요. 고통스러운 생각만을 볼 뿐이에요. 슬픔 마음에 집착하면 아무리 아름다운 광경이 펼쳐져도 인식할 수 없어요. 생각만을 좇아가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순간의 세계를 놓치게 돼요. 나는 언제나 ‘생각을 하는 동안 눈을 잃어버린다.’고 말해요. 눈은 있지만 머리가 생각으로 가득 차 있으면 눈앞에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없어요. 제대로 들을 수도 없고, 제대로 맡을 수도 없고, 제대로 맛 볼 수도 없고 느낄 수도 없어요. 계산기에 숫자가 떡하니 찍혀 있으면 계산을 못하는 것처럼 말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선에서는 찰나 찰나 본래 마음으로 돌아가라고 가르칩니다. C 단추를 누른다는 말이지요. 이걸 ‘오직 모를 뿐’이라고 말해요.

  달마대사가 처음 중국으로 갔을 때 양나라 무제를 알현하게 되었어요. 양 무제는 불교 전파에 많은 공로를 세웠습니다. 큰 사찰과 탑을 건립하고, 스님들에게 옷과 음식을 공양하며, 인도에서 가져온 경전을 널리 알렸지요. 양 무제가 자신의 공덕이 어느 정도인지 궁금해 하는 것은 당연지사에요. 그래서 달마 대사에게 물었어요.

  ‘짐의 공덕이 얼마나 큽니까?’

  그랬더니 달마 대사가 ‘아무런 공덕이 없습니다.’ 이렇게 대답을 했어요.

  양 무제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불교에서는 선행을 통해 공덕을 쌓는다고 가르치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달마 대사의 답은 이에 맞지 않으니까요.

  ‘짐이 아무런 공덕이 없다면 불법의 가장 성스러운 진리는 무엇이오?’ 무제가 다시 물었어요. 달마가 대답했습니다.

  ‘만법은 텅 빈 것. 성스럽다고 할 것이 없습니다.’

  당황한 양 무제가 또 물었어요.

  ‘짐을 대하고 있는 당신은 누구시오?’

  ‘모르오.’ 달마 대사는 짧게 대답했어요.

  달마 대사는 양 무제에게 높은 가르침을 설하였습니다. ‘모른다’하는 마음, 이 완전히 ‘모르는 마음’은 일체 생각을 끊어냄을 뜻해요. 나의 ‘모르는 마음’과 당신의 ‘모르는 마음’, 양 무제의 ‘모르는 마음’, 달마 대사의 ‘모르는 마음’, 이 사람의 ‘모르는 마음’, 저 사람의 ‘모르는 마음’은 다 같은 ‘모르는 마음’입니다.

  ‘모르는 마음’은 모든 생각이 일체 끊어진 마음입니다. 모든 생각이 끊어질 때 마음은 텅 비게 돼요. 텅 빈 마음은 생각 이전의 마음입니다. 생각 이전의 마음은 본래 마음입니다. 계산기를 사용하려면 C 단추를 먼저 눌러야 해요. 그러면 화면에 0이라는 숫자가 뜹니다. 텅 빈 마음 상태에서는 모든 게 가능합니다. 0 곱하기 0은 0이고, 2곱하기 0은 0입니다. 1,000곱하기 0도 0이지요. 산 곱하기 0은 0입니다. 분노 곱하기 0은 0입니다. 욕망 곱하기 0은 0입니다. 마음이 0의 상태로 돌아가면 모든 게 0이 됩니다. 모든 게 텅 비게 돼요. 완전한 무애의 경지예요. 그렇게 되면 텅 빈 거울과 같은 마음이 이 우주를 있는 그대로 비추게 됩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천국에 들어가고자 하는 자는 어린이 같이 되어야 한다.’ 하는 가르침과 같아요. 아이의 마음은 텅 비어 있어서 세상은 있는 그대로, 즉 여여하게 볼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집착하면 이 세상을 있는 그대로 비출 수 없고, 중생을 위해 살 수 없어요. 고통만 생겨나요.


(중략)


  태어나기 전에 당신은 0이었습니다. 이제는 1이지요. 이후에 죽게 되면 다시 0이 돼요. 그렇기 때문에 0이 1이기도 하고, 1은 0이기도 해요. 그렇기 때문에 1 더하기 2는 0입니다. 선학교에서는 이걸 가르칩니다. 이제 아시겠지요? 자, 묻겠습니다. 1 더하기 2는 3이에요. 1 더하기 2는 0이에요. 어떤 게 옳습니까? 둘 다 옳아요. 알겠습니까?


(중략)


  0을 깨닫게 되면 마음이 텅 비게 됩니다. 텅 비어 있는 마음은 허공과 같이 맑아요. 허공과 같이 맑다는 것은 거울과 같다는 말입니다. 거울은 앞에 오는 모든 것을 비춥니다. 빨간 공이 오면 빨간 공을 비추고, 하얀 공이 오면 하얀 공을 비춰요. 슬픈 사람을 보면 나도 슬프고, 기쁜 사람을 보면 나도 기쁩니다. 이게 보살입니다. 보살은 나 자신을 위한 욕망은 없고 오직 다른 중생을 위해 행할 뿐이에요. 이것이 대자대비의 보살도입니다. 이것이 세계의 평화이고 당신의 평화입니다.


(이하생략)


나는 언제쯤이면 욕망으로 가득찬 부질없는 마음을 비울 수 있으려나?

마음의 계산기 속에있는 C 단추를 누르자!

C를 누르자!  C를! 

나무대자대비관세음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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