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1.22 01:10
"백경"을 읽고 (Moby Dick 독후감) 김영준*72 사실 내가 이 소설을 처음 대한 것은 아마도 10대 초반이었든 것으로 생각된다. 소설을 읽은 것이 아니고 그레고리 팩이 주연한 영화“백경”을 본 것이었다. 아마도 형들을 따라 본 것이기는 했지만 흰고래와의 사투가 깊은 인상을 주었다. 그후 간간히 Moby Dick에 관한 이야기가 나올 때 마다 뭔가 미해결의 관심을 가지고 있음을 느끼고는 이 위대하다는 소설을(미국에서 정신과 레지던트를 할 때, 나의 슈퍼바이저를 하던 분이 학부에서 영문학을 한 분이었는데, 이 소설에 대해 정신분석학적으로도 심오한 소설이라고 꼭 읽어보라고 한 원인도 있지만) 이 소설은 대단히 지루하고 난해하다. 지루한 이유는 간단한 스토리 – 괴물스런 흰 고래를 악착 같이 추적하여 싸우다 배가 침몰하고 모두 죽는 이야기에 붙은 곁가지 때문이다. 이 곁가지들은 스토리가 아니다. 소위 고래학이라고 하는 것들인데, 더 세분하면, 일반 고래학, 잡은 고래학, 놓진 고래학, 포경의 역사, 법률적 고찰 등등이다. 멜빌은 소설이 시작하기 전에 고래의 어원, 신화적, 종교적, 문헌적, 역사적 고찰과 해설을 수 십 페이지가 넘게 쓰고 있다. 여기서 이 소설의 지루함과 난해성으로 독자들에게 좌절을 준다.이뿐 아니다. 전체 소설의 약 사분의 삼이 소설의 중간 중간에 이 고래학에 대한 것들이다. 아니 고래학 중간중간에 조금씩의 스토리가 나온다는 것이 더 정확하다. 큰 바닷고기를 잡는 노인의 이야기를 우리는 알고 있다 . 여기서도 고기 잡는 것과는 상관 없는 Brooklyn Dodgers의 야구 이야기가 나온다. 그러나 이것은 노인 산디아고가 죽음의 공포를 이기기 위해 내면의 자신과 대화하는 것으로 우리는 전혀 거부감 없이 받아 들인다. 멜빌의 소설 속의 고래학은 얼핏 추적대상을 연구하는 것이라 생각 해 줄 수도 있으리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스토리의 전개나 진행, 인물들의 내면 에서 일어나는 일들과는 전혀 관련 없는 일반적 서술이며, 이 고래학 전부 – 소설의 대부분이 되겠지만- 를 없앤다고 해도 아무 문제가 없을 뿐 아니라소설의 진행이나 긴장 등에 오히려 낳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바로 여기에 이 소설의 첫번째 난해성이 있다고 할 것이다. 이 소설의 난해성은 James Joyce 의 Ulyssise 에서의 난해성과 같은 류는 아니다. 어려움은 왜 이 고래학이 이 소설의 이 부분에 있는가 이다. 알다시피 고래학은 난데 없이 스토리의 중간에 나타나 여러 chapter가 계속 되다 얼마 후 또 나타난다. 차라리 모두 한군데 모아 두는 것이 훨씬 더 합리적인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 것들이 바로 나를 30년이나 걸리게 한 가장 큰 원인이다.그때마다 건너 뛸 것을 생각했지만, 이번에는 – 거미와 같은 인내심으로 글자 하나 빼지 않고 읽었다. 그러나 여기에는 죄와 벌, 까라마죠프의 형제들 에서 보는 인간성의 갈등을 읽으며 느끼는 긴장된 희열은 전혀 없다. 무미 건조한 멜빌의 박학다식함을 – 소설의 화자인 이스마엘의 종횡무진한 인맥(수학자, 고고학자, 성서학자, 박물학자, 역사학자, 문필가 등등 끝이 없다)과 인용을 통해 무미건조한 주입식 강의를 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그러던 어느 날 – 장소가 어디였는지는 묻지 말기 바란다- 소설을 반쯤 읽고 있을 때였다. 소설의 도입부에 이스마엘의 입을 통하여 기독교의 배타적 교리를 뒤집어 엎어 우상숭배야 말로 가장 기독교적이라는 논리를 전개하며, 이스마엘과 식인종 출신의 작살꾼 쿼퀘그 사이의 동성애적 관계 등을 통해 멜빌의 도전을 볼 수 있다. 백경에 대한 해석은 크게 두 가지인데, 이 고래를 악의 화신으로 보는 견해와, 그 정 반대 즉 에이허브(Ahab)선장이야 말로 그냥 내버려 두면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을 이 흰 고래와의 일방적 원한에 사로 잡힌 편집광이며 자신의 병적인 집착으로 인하여 자신과 그의 배(Pequod호) 그리고 모든 승무원을 파멸로 이끄는, 그리하여 인간의 파멸을 보여 주는 대표적인 인물이라는 것이다. 선장의 이름 에이허브 는 성서적 상징이다. 구약 열왕기 상 16장에 나오는 이스라엘의 왕의 이름이 바로 그것이다.(성경에는 “아합“으로 되어 있다). 이 아합이란 왕은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가장 사악한 임금으로 나온다. 우상숭배와 탐욕으로 인해 그는 결국 멸망당하여 그 주검을 들개 떼에게 먹히는 하나님의 응징을 받는다. 에이허브도 비슷하다. 자신의 백경에 대한 광적 복수에 집착한 나머지 이를 말리는 일등 항해사 스타박의 만류를 듣지 않는다. 결국 모두를 파멸로 몰아 넣고 마는데, 그들의 배는 Pequod호이다. 미국 원주민으로 지금의 Connecticut 에 살던 Pequot족 인디안의 이름을 딴 것으로, 또한 그들이 18세기에 피쿼트 전투에서 몰살당한 부족이었다는 역사를 안다면 멜빌의 의도도 알 수 있을 것 아닐까? 그 배는 다양한 인종으로 구성된 미합중국을 상징한다고도 보는 이도 있다. 멜빌은 미국의, 더 나아가서는 인간의 멸망을 이야기하고 있는가? 그래서 두 비극적 사건의 그러면 이 흰 괴물스런 고래, 모비딕은 무었인가? 이 소설의 난해함에는 우리말 해석의 문제가 있다. 어떤 이는 모든 번역가는 총살 되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하지만 번역판을 읽으면서 느끼는 것은 마치 한국말로 더빙된 외국영화를 보는 것 보다 더 어색할 때가 많았다. 그렇다고 짧은 영어 실력으로 600여 페이지에 달하는 소설전체를 원문으로 읽을 수는 없고, 에이허브가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소설의 마지막 부분 다섯章만 원문으로 읽었음을 고백한다. 물론 어렵기로 소문난 이 소설을 원문으로 읽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것은 소설의 마지막 부분, 고래를 추적하면서부터 에이허브의 말이 길어지면서 더욱 두드러진다. 에이허브의 열변은 보통 한 페이지쯤 되고, 한 문장은 보통 30-40단어쯤 된다. 이것들이 ; - ? ! 들로 연결이 되어 최악의 경우 한 페이지가 한 문장이다. 문장은 서술체가 아닌 시적 문장이다. 즉, 우리가 아는 영문법, 주어 동사 등등 의 순서와 위치가 뒤바뀌는 것은 예사고 생략되거나 중첩되기도 한다. 배에서 쓰는 어휘들은 사전만 찾으면 되지만, 古語, 詩語들로 된 문장의 맛을 알기는 마치 레스토랑의 메뉴판에 있는 설명으로 음식맛을 느끼는 것과 같이 어려웠다. 어쨌건, 문장들은 장중하고 거창하며, 고풍스러운 비유와 은유와 미사여구로 가득하다. “오등은 차에 조선의 독립국임과 조선인의 자주민임을 ---“ 독립선언문이나 구약 성서를 읽는 것 같다고 하는 것이 가장 가까운 표현이 될지 모른다. 하기사 에이허브도 자신을 노아와 비교하고 있으니까. 二음률, 五음률과 같은 음률로(Shakespeare가 이 방면의 대가라 함) 쓰였다고 하나 나는 이것들이 정확히 무엇인지 모른다. 그러나 스타박이 에이허브가 마지막 운명의 출격을 명할 때 “Aye, sir, thou wilt have it so.” “ Oh, my captain, my captain – noble heart—go not, go not—“ 하고 만류하는 장면의 영어 정도는 읽을 맛이 제법 있다. 소설의 문체도 일반적 서술도 있고 어떤 장들은 마치 연극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은, 예를 들면 “ ( 앞돛대의 망루, 에이허브가 등장하며 독백) “ 같은 구절이 괄호와 함께 대사 사이에 끼어 들기도 한다. 이때는 어쩔 수 없이 셰익스피어의 연극 장면이 연출 된 것 같은 느낌이다. 실제로 멜빌 자신도 그 선상에 에이허브를 두고 있었든 것으로 추축들 하고 있다. 비극적 결말로 갈 수 밖에는 없는 성격과 인품의 조합, 위대한 영혼과 비뚤어진 성품, 큰 야망과 부도덕 등등, 이런 것들은 전형적 셰익스피어적 비극의 주인공들이 아닌가. 에이허브는 이모든 것을 가지고 있다. “In his infallible wake, though; but follow that wake, that's all. Helm there; steady, as thou goest, and hast been going. What a lovely day again; were it a new-made world, and made for a summer-house to the angels, and this morning the first of its throwing open to them, a fairer day could not dawn upon that world. Here's food for thought, had Ahab time to think; but Ahab never thinks; he only feels, feels, feels; that's tingling enough for mortal man! to think's audacity. God only has that right and privilege. Thinking is, or ought to be, a coolness and a calmness; and our poor hearts throb, and our poor brains beat too much for that. And yet, I've sometimes thought my brain was very calm - frozen calm, this old skull cracks so, like a glass in which the contents turned to ice, and shiver it. And still this hair is growing now; this moment growing, and heat must breed it; but no, it's like that sort of common grass that will grow anywhere, between the earthy clefts of Out upon it! - it's tainted. Were I the wind, I'd blow no more on such a wicked, miserable world. I'd crawl somewhere to a cave, and slink there. And yet, 'tis a noble and heroic thing, the wind! who ever conquered it? In every fight it has the last and bitterest blow. Run tilting at it, and you but run through it. Ha! a coward wind that strikes stark naked men, but will not stand to receive a single blow. Even Ahab is a braver thing - a nobler thing that that. Would now the wind but had a body; but all the things that most exasperate and outrage mortal man, all these things are bodiless, but only bodiless as objects, not as agents. There's a most special, a most cunning, oh, a most malicious difference! And yet, I say again, and swear it now, that there's something all glorious and gracious in the wind. These warm Trade Winds, at least, that in the clear heavens blow straight on, in strong and steadfast, vigorous mildness; and veer not from their mark, however the baser currents of the sea may turn and tack, and mightiest Mississippies of the land swift and swerve about, uncertain where to go at last. And by the eternal Poles! these same Trades that so directly blow my good ship on; these Trades, or something like them - something so unchangeable, and full as strong, blow my keeled soul along! To it! Aloft there! What d'ye see?" 책을 끝내자 나는 뭔가에 압도당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시작 할 때의 그 맥 빠지는 느낌은 “와! “ 같은 감탄사로 바뀌었다. 과장된 표현이 아니라 내 영혼이 엎 그레이드 된 것 같다고나 할까, 뭔가 그 감동이 나 자신의 어떤 본질을 흔들어 놓은 것은 틀림이 없는 것 같다. 그래서 다음 목표는 역시 해양 소설인 Josheph Conrad의 “Lord Jim”이 될 것이다. 독후감도 쓸 것이다.—언제가 될 것인지는 묻지 말아 주기 바란다. |
2010.01.22 01:12
2010.01.22 09:41
지금부터 20여년전 일이지만 그당시 産科를 할때 병원에있는
시간이 많아져서 자연히 책을 많이 읽게되는데 한때 세계명작
을 영문판으로 섭렵하겠다고 작심하고 족히 100여권을 읽은
적이 있었는데 그때 유독 끝맺치지 못한책이 이 'Moby Dick'
이었읍니다.
온갖 사전으로 reference를 찾아가며 노력 했었지만 너무 난해
지루해서 포기 한것이었읍니다.
이제 이독후감을 읽어 내려가니 20여년전의 체증이 뚫려
큰트림을 한기분입니다,ㅎ,ㅎ.. 감사합니다. 규정
2010.01.22 15:51
2010.01.22 16:26
선배님 감사합니다.
근사하게 정리 해주셔서.
백경으로 부친 사람은 이 글의 저자는 아닙니다. 그럴만한 인물도 더욱 아니고요.
이 친구는 작년인가 골프에서 하기 어렵다는 에이지 슈터를 했지요.
물론 한참 언더를 쳐서요.
2010.01.23 08:14
"My name is Jimmy Carter". This is the way President Carter introduced himself
to the audience when he ran for 39th President(1977-1981) of US in 1976.
Because not many knew who he was, but not the way Ismael introduced himself.
From now on I'll introduce myself saying "Call me Joon/or John/or June as month
of June", adding "Did you read Moby Dick?".
They might give me a little more respect.
2010.01.23 20:29
방선배님.
제기 읽다가 중단한 책 중의 하나입니다.
제임스 죠이스의 율리시즈, 단테의 신곡,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하였다 등.
그래도 고등학교시절 을유문화사와 정음사의 세계문학전집을 다 읽으려고 결심을 하고
대부분은 실천을 했습니다.
2010.01.24 05:11
I have vivid memory of Nietzsche's Also Sprach Zarathustra(Thus Spoke Zarathustra
1883-1885).
I did not read, nor attempted to read but I saw my older brother by 2 years
was reading when we were in high school.
(He graduated from Chemical Engineering,SNU).
But believe or not, when I took entrance exam for pre-med course, one of the questions
was " Who wrote Also Sprach Zarathustra?". I circled Nietzche without any hesitation.
I really don't know whether that answer helped me to be Me Today.
When you think of it, our life is Full of By-Chances
이 글을 쓴 친구는 제 의과대학 동기로 미국에서 정신과 트레이닝을 끝내고
귀국하여 대학에 있다 지금은 개업하였습니다.
우리 동기 홈 페이지의 것을 갖고 왔습니다.
옯기다 보니 글이 들쭉 날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