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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경"을 읽고 (Moby Dick 독후감)

                                                                      김영준*72

이 책은 1851년에 영국에서 출간되었다.(그때만 해도 영국이 출판, 출간의 중심이었다고 함)
출간 당시에는 별 주의를 받지 못하다가 1920년대 가 되어서야 서서히 인정 받다가 나중에는 영문학계의 가장 위대한 소설의 하나로 인정 받는다.
멜빌은 1819년에 뉴욕에서 태어나서 1891년 뉴욕에서 사망하였다. 젊어서 그는 포경선 선원 생활을 한 바 있다.

사실 내가 이 소설을 처음 대한 것은 아마도 10대 초반이었든 것으로 생각된다. 소설을 읽은 것이 아니고 그레고리 팩이 주연한 영화“백경”을 본 것이었다. 아마도 형들을 따라 본 것이기는 했지만 흰고래와의 사투가 깊은 인상을 주었다. 그후 간간히 Moby Dick에 관한 이야기가 나올 때 마다 뭔가 미해결의 관심을 가지고 있음을 느끼고는 이 위대하다는 소설을(미국에서 정신과 레지던트를 할 때, 나의 슈퍼바이저를 하던 분이 학부에서 영문학을 한 분이었는데, 이 소설에 대해 정신분석학적으로도 심오한 소설이라고 꼭 읽어보라고 한 원인도 있지만)
읽기로 하여 30 여년전 시작했는데--- 드디어 진갑이 지난 나이에 끝내게 되었다. 새로 시작한지 5개월 만에. 두권의 다른 번역판과 한편의 영문판이 필요 하였다.

이 소설은 대단히 지루하고 난해하다. 지루한 이유는 간단한 스토리 – 괴물스런 흰 고래를 악착 같이 추적하여 싸우다 배가 침몰하고 모두 죽는 이야기에 붙은 곁가지 때문이다.
스토리는 간단하다. 화자인 Ishmael은 Ahab 선장이 이끄는 포경선 Pequod호를 타고 거대한 흰 향유고래 Moby Dick을 잡으러 나갔다가 혼자 살아 돌아 오는 이야기이다.

이 곁가지들은 스토리가 아니다. 소위 고래학이라고 하는 것들인데, 더 세분하면, 일반 고래학, 잡은 고래학, 놓진 고래학, 포경의 역사, 법률적 고찰 등등이다. 멜빌은 소설이 시작하기 전에 고래의 어원, 신화적, 종교적, 문헌적, 역사적 고찰과 해설을 수 십 페이지가 넘게 쓰고 있다. 여기서 이 소설의 지루함과 난해성으로 독자들에게 좌절을 준다.이뿐 아니다. 전체 소설의 약 사분의 삼이 소설의 중간 중간에 이 고래학에 대한 것들이다. 아니 고래학 중간중간에 조금씩의 스토리가 나온다는 것이 더 정확하다. 큰 바닷고기를 잡는 노인의 이야기를 우리는 알고 있다 . 여기서도 고기 잡는 것과는 상관 없는 Brooklyn Dodgers의 야구 이야기가 나온다. 그러나 이것은 노인 산디아고가 죽음의 공포를 이기기 위해 내면의 자신과 대화하는 것으로 우리는 전혀 거부감 없이 받아 들인다. 멜빌의 소설 속의 고래학은 얼핏 추적대상을 연구하는 것이라 생각 해 줄 수도 있으리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스토리의 전개나 진행, 인물들의 내면 에서 일어나는 일들과는 전혀 관련 없는 일반적 서술이며, 이 고래학 전부 – 소설의 대부분이 되겠지만- 를 없앤다고 해도 아무 문제가 없을 뿐 아니라소설의 진행이나 긴장 등에 오히려 낳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바로 여기에 이 소설의 첫번째 난해성이 있다고 할 것이다. 이 소설의 난해성은 James Joyce 의 Ulyssise 에서의 난해성과 같은 류는 아니다. 어려움은 왜 이 고래학이 이 소설의 이 부분에 있는가 이다. 알다시피 고래학은 난데 없이 스토리의 중간에 나타나 여러 chapter가 계속 되다 얼마 후 또 나타난다. 차라리 모두 한군데 모아 두는 것이 훨씬 더 합리적인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 것들이 바로 나를 30년이나 걸리게 한 가장 큰 원인이다.그때마다 건너 뛸 것을 생각했지만, 이번에는 – 거미와 같은 인내심으로 글자 하나 빼지 않고 읽었다. 그러나 여기에는 죄와 벌, 까라마죠프의 형제들 에서 보는 인간성의 갈등을 읽으며 느끼는 긴장된 희열은 전혀 없다. 무미 건조한 멜빌의 박학다식함을 – 소설의 화자인 이스마엘의 종횡무진한 인맥(수학자, 고고학자, 성서학자, 박물학자, 역사학자, 문필가 등등 끝이 없다)과 인용을 통해 무미건조한 주입식 강의를 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그러던 어느 날 – 장소가 어디였는지는 묻지 말기 바란다- 소설을 반쯤 읽고 있을 때였다.
아직 고래를 잡는 시늉도 하고 있지 않은데—나는 책을 덮고서 생각에 빠져 들었다.작자가 의도하는 바가 뭔가? 멜빌은 고래학강론이 소설속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도록 의도 했을까? 여러 가지 정황으로 미루어 그는 그 나이에 걸릴 수 있는 정신병에 걸려 연결 고리가 느슨한 장광설을 쏟아 내고 있는 것이 아닌 것이 확실해 보이는데, 왜 소설의 중간 중간에 고래에 관한 학문적 해설을 이렇게도 길게 쓰고 있을까? 이 소설을 위대하다고 하는 위대한 평론가들은 또 뭔가? 모두 나보다 소설 보는 눈이 못하단 말인가? 이 고래의 정체는 무엇인가? 고래를 쫓는 에이하브 선장은? 문학 아니 더 나아가 예술이란 무엇인가? 나는 점점 더 본질적인 이쓔에 빠지고 있었다. 위대한 예술이란 우리 속에 있는 어떤 공통분모를 구체적으로 형상화 – 그 것이 음악이든 미술이든 문학이든 간에- 하여 그 구체적 형상을 통하여 공통분모를 재생해 내는 작업이 아닐까. 이 경우, 멜빌의 의식 또는 무의식속에 있던 그 무엇이 이 소설로 구체화되어 있으며 독자인 나를 통하여 나 속의 그 무엇들과 공명하고 있다면 멜빌의 그것과 나의 그것이 완전 일치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많은 사람들의 그 무엇과 계속 공감을 불어 일으킨 그 것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고래학의 의미는 책 속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나 자신 속에서 찾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아무 스토리가 없는 소설을 상상해보자, 내 스스로 메꿔 나가야 하는 것이라면? 다시 말해서, 이것이 나 자신의 Rorschach Test 가 된 것이다. 나는 내 인생의 바다에서 무수한 유령과 악령과 그리고 고래들을 - Moby Dick을 – 보게 된 것이다. 그렇다! 멜빌은 우리에게 백경을 써 준 것이 아니라 백지 검사지를 준 것이었다.

이 소설은 이스마엘이 하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영문학에서 가장 유명하고 강력한 첫 문장으로 이 소설이 시작된다.
“날 이스마엘이라 불러다오. 몇 해 전—정확히 언제인가는 묻지 말아 주기 바란다—주머니에 돈도 없고------” 로 시작한다. (Call me Ishmael. Some years ago- never mind how long
precisely- ) 이것은 명백한 하나의 선언이다. My name is Ishmael.이 아니다. 날 이스마엘이라 불러 달라고 하는 것은 문맥상, “본명이 무엇이든 간에 나는 이 이름을 택한다”는 선언적 의미를 가진다. 이스마엘이란 이름은 무언가? 방랑자, 추방자를 뜻하는 이유는 구약성서에 있지 아니한가? (창세기 26장) 유대교에서 신앙의 조상으로 알려진 인물 아브라함의 서자로, 결국 아버지로부터 추방되어 나중에 지금의 팔레스타인민족의 조상이 되었다고 하는 인물이다. 19세기의 만하탄, 당시에는 유태계 이름 만으로도 싸구려 여관에서 조차도 쫓겨날 때였다면, 아랍계통의 이름으로는? 멜빌은 세상에 도전장을 던진 것이다. 이스마엘이 하는 말에서 그는 전직 교사였고, 역사가, 수학자, 박물학자, 문학가, 고고학자, 문헌학자, 신학자, 종교학자 등등 많은 지식인들과 깊은 교류를 자진 인물로 보인다. (물론 멜빌 자신을 말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이런 인물이 어느날 스스로 이스마엘로 불러달라고 한다면? 충격이며, 도발이며, 도전이다.

소설의 도입부에 이스마엘의 입을 통하여 기독교의 배타적 교리를 뒤집어 엎어 우상숭배야 말로 가장 기독교적이라는 논리를 전개하며, 이스마엘과 식인종 출신의 작살꾼 쿼퀘그 사이의 동성애적 관계 등을 통해 멜빌의 도전을 볼 수 있다.
이 책의 제 일장에서
 “이의가 재기된 미국의 대통령 선거전”
 “이슈마엘의 포경선 항해”
 “피 비린내 나는 아프가니스탄 전쟁”
이 세가지를 모든 사람들에게 공고 되어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가운데 것만 빼면 1850년의 미국과 2006년의 미국이 이렇게 같을 수가! 1840년 말의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민주당의 Martin van Buren 당시 현직 대통령은 더 많은 표를 얻고도 선거인단 수에서의 열세로 Walliam Henry Harrison에게 패한다. 선거전에서 기력이 쇠진한 헤리슨은 1841년 1월 취임식에서 폐렴에 걸려 한달 뒤 사망하였다. 우리는 조지 부쉬와 알 고어 사이의 너무나 비슷한 대통령 선거전을 기억하고 있다. 또한 5년여의 피비린내 나는 전투 끝에 1842년 영국이 아프카니스탄에서 철수한 것을 멜빌이 말하고 있다. 멜빌의 두 사건은 부쉬가 대통령이 되어 아프간 전쟁을 시작한 것과 나란히 진행되고 있다.

백경에 대한 해석은 크게 두 가지인데, 이 고래를 악의 화신으로 보는 견해와, 그 정 반대 즉 에이허브(Ahab)선장이야 말로 그냥 내버려 두면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을 이 흰 고래와의 일방적 원한에 사로 잡힌 편집광이며 자신의 병적인 집착으로 인하여 자신과 그의 배(Pequod호) 그리고 모든 승무원을 파멸로 이끄는, 그리하여 인간의 파멸을 보여 주는 대표적인 인물이라는 것이다.
이스마엘의 이름이 주는 의미는 말한 바 있지만 이 소설의 주요 인물들과 배의 이름은 멜빌이 뜻하는 바에 의해 상징적으로 이름 지워졌다. 여기에 나오는 이름들 : Ishmael, Ahab, Elijah는 성서에 나오는 영어식 이름이고, Starbuck, Stubb, Flask 는 흔하지는 않으나 비교적 영미식 이름, Queequeg, Tashtego, Dagoo, Fedallah 등은 각각 다소 괴상한 식인종, 미국 인디안, 아프리카인, 배화교도의 이름이다. 이스마엘이 묵는 여인숙의 이름은 Spouter Inn , (즉 고래가 뿜는 물보라 여인숙) 이며, 주인의 이름은 Coffin 이다.

선장의 이름 에이허브 는 성서적 상징이다. 구약 열왕기 상 16장에 나오는 이스라엘의 왕의 이름이 바로 그것이다.(성경에는 “아합“으로 되어 있다). 이 아합이란 왕은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가장 사악한 임금으로 나온다. 우상숭배와 탐욕으로 인해 그는 결국 멸망당하여 그 주검을 들개 떼에게 먹히는 하나님의 응징을 받는다. 에이허브도 비슷하다. 자신의 백경에 대한 광적 복수에 집착한 나머지 이를 말리는 일등 항해사 스타박의 만류를 듣지 않는다. 결국 모두를 파멸로 몰아 넣고 마는데, 그들의 배는 Pequod호이다. 미국 원주민으로 지금의 Connecticut 에 살던 Pequot족 인디안의 이름을 딴 것으로, 또한 그들이 18세기에 피쿼트 전투에서 몰살당한 부족이었다는 역사를 안다면 멜빌의 의도도 알 수 있을 것 아닐까? 그 배는 다양한 인종으로 구성된 미합중국을 상징한다고도 보는 이도 있다.

멜빌은 미국의, 더 나아가서는 인간의 멸망을 이야기하고 있는가? 그래서 두 비극적 사건의
사이에 자신의 항해를 끼워 넣은 것은 이스마엘로 하여금 예언자적 위치를 가지게 하려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 것은 멜빌이 에필로그의 첫 문장을 구약성경의 욥기를 인용하는 데서 보인다.
 “나만 홀로 피한고로 주께 고하러 왔나이다.” – 욥기 1장

그러면 이 흰 괴물스런 고래, 모비딕은 무었인가?
인간들을 파멸 시키므로 악의 화신으로 생각 할 수 있다. 위에서 인용된 욥기구절은 사탄이
욥의 신앙을 시험하기 위해 욥의 자식과 재물을 빼앗아 갈 때, 혼자 살아 남은 욥의 신하가 욥
에게 그가 본 것을 고하는 말이다. 이스마엘은 혼자 살아 남아 자신이 본 파멸의 과정을 술회한다. 물론 이때의 약탈자는 고래가 된다. 그러면 에이허브 선장은 역경을 무릅쓰고 악을 파괴하기 위해 싸우는 정의의 사도라 할 것인가? 에이허브의 일등항해사스타박은 에이허브에게 고래는 그냥 고래일 뿐 복수의 대상도 파괴의 대상도 아니라고 여러 번 말한다.
그러나 에이허브에게 이 고래는 그에게서 한쪽 다리만 아니라 모든 것을 가져간 약탈자이고,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철저히 정복하고 사라지게 해야 할 그 무엇이 되어 있다. 그 것은 악일 수도 있고, 우리가 바라지만 결코 이룰 수 없는 것들일 수도 있다.
그리고 파괴 하지 말아야 할 것들 일 수도 있다.
바다란 이 소설에서 무엇인가?
해석은 누구에게나 있기 마련이지만 나는 무의식의 세계라고 생각한다. 이 무의식의 바다에 떠다니는 괴물 : 욕망, 수치, 갈등, 나의 모든 정신적complex, 그리고 내가 집착하고 추구하는 모든 것의 화신이 모비딕이다.
소설 자체가 하나의 비유(allegory)가 아닌 여러가지의 비유로 쓰여진 만큼 해석도 다양해야 할 것이다.

이 소설의 난해함에는 우리말 해석의 문제가 있다. 어떤 이는 모든 번역가는 총살 되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하지만 번역판을 읽으면서 느끼는 것은 마치 한국말로 더빙된 외국영화를 보는 것 보다 더 어색할 때가 많았다. 그렇다고 짧은 영어 실력으로 600여 페이지에 달하는 소설전체를 원문으로 읽을 수는 없고, 에이허브가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소설의 마지막 부분 다섯章만 원문으로 읽었음을 고백한다. 물론 어렵기로 소문난 이 소설을 원문으로 읽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것은 소설의 마지막 부분, 고래를 추적하면서부터 에이허브의 말이 길어지면서 더욱 두드러진다. 에이허브의 열변은 보통 한 페이지쯤 되고, 한 문장은 보통 30-40단어쯤 된다. 이것들이 ; - ? ! 들로 연결이 되어 최악의 경우 한 페이지가 한 문장이다. 문장은 서술체가 아닌 시적 문장이다. 즉, 우리가 아는 영문법, 주어 동사 등등 의 순서와 위치가 뒤바뀌는 것은 예사고 생략되거나 중첩되기도 한다.

배에서 쓰는 어휘들은 사전만 찾으면 되지만, 古語, 詩語들로 된 문장의 맛을 알기는 마치 레스토랑의 메뉴판에 있는 설명으로 음식맛을 느끼는 것과 같이 어려웠다. 어쨌건, 문장들은 장중하고 거창하며, 고풍스러운 비유와 은유와 미사여구로 가득하다. “오등은 차에 조선의 독립국임과 조선인의 자주민임을 ---“ 독립선언문이나 구약 성서를 읽는 것 같다고 하는 것이 가장 가까운 표현이 될지 모른다. 하기사 에이허브도 자신을 노아와 비교하고 있으니까. 二음률, 五음률과 같은 음률로(Shakespeare가 이 방면의 대가라 함) 쓰였다고 하나 나는 이것들이 정확히 무엇인지 모른다. 그러나 스타박이 에이허브가 마지막 운명의 출격을 명할 때 “Aye, sir, thou wilt have it so.” “ Oh, my captain, my captain – noble heart—go not, go not—“ 하고 만류하는 장면의 영어 정도는 읽을 맛이 제법 있다.

소설의 문체도 일반적 서술도 있고 어떤 장들은 마치 연극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은, 예를 들면 “ ( 앞돛대의 망루, 에이허브가 등장하며 독백) “ 같은 구절이 괄호와 함께 대사 사이에 끼어 들기도 한다. 이때는 어쩔 수 없이 셰익스피어의 연극 장면이 연출 된 것 같은 느낌이다. 실제로 멜빌 자신도 그 선상에 에이허브를 두고 있었든 것으로 추축들 하고 있다. 비극적 결말로 갈 수 밖에는 없는 성격과 인품의 조합, 위대한 영혼과 비뚤어진 성품, 큰 야망과 부도덕 등등, 이런 것들은 전형적 셰익스피어적 비극의 주인공들이 아닌가. 에이허브는 이모든 것을 가지고 있다.
자, 이쯤에서 에이허브의 독백을 한번 들어 보는 것도 좋을 듯 하다.

“In his infallible wake, though; but follow that wake, that's all. Helm there; steady, as thou goest, and hast been going. What a lovely day again; were it a new-made world, and made for a summer-house to the angels, and this morning the first of its throwing open to them, a fairer day could not dawn upon that world. Here's food for thought, had Ahab time to think; but Ahab never thinks; he only feels, feels, feels; that's tingling enough for mortal man! to think's audacity. God only has that right and privilege. Thinking is, or ought to be, a coolness and a calmness; and our poor hearts throb, and our poor brains beat too much for that. And yet, I've sometimes thought my brain was very calm - frozen calm, this old skull cracks so, like a glass in which the contents turned to ice, and shiver it. And still this hair is growing now; this moment growing, and heat must breed it; but no, it's like that sort of common grass that will grow anywhere, between the earthy clefts of Greenland ice or in Vesuvius lava. How the wild winds blow it; they whip it about me as the torn shreds of split sails lash the tossed ship they cling to. A vile wind that has no doubt blown ere this through prison corridors and cells, and wards of hospitals, and ventilated them, and now comes blowing hither as innocent as fleeces.

Out upon it! - it's tainted. Were I the wind, I'd blow no more on such a wicked, miserable world. I'd crawl somewhere to a cave, and slink there. And yet, 'tis a noble and heroic thing, the wind! who ever conquered it? In every fight it has the last and bitterest blow. Run tilting at it, and you but run through it. Ha! a coward wind that strikes stark naked men, but will not stand to receive a single blow. Even Ahab is a braver thing - a nobler thing that that. Would now the wind but had a body; but all the things that most exasperate and outrage mortal man, all these things are bodiless, but only bodiless as objects, not as agents. There's a most special, a most cunning, oh, a most malicious difference! And yet, I say again, and swear it now, that there's something all glorious and gracious in the wind. These warm Trade Winds, at least, that in the clear heavens blow straight on, in strong and steadfast, vigorous mildness; and veer not from their mark, however the baser currents of the sea may turn and tack, and mightiest Mississippies of the land swift and swerve about, uncertain where to go at last. And by the eternal Poles! these same Trades that so directly blow my good ship on; these Trades, or something like them - something so unchangeable, and full as strong, blow my keeled soul along! To it! Aloft there! What d'ye see?"

책을 끝내자 나는 뭔가에 압도당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시작 할 때의 그 맥 빠지는 느낌은 “와! “ 같은 감탄사로 바뀌었다. 과장된 표현이 아니라 내 영혼이 엎 그레이드 된 것 같다고나 할까, 뭔가 그 감동이 나 자신의 어떤 본질을 흔들어 놓은 것은 틀림이 없는 것 같다.

그래서 다음 목표는 역시 해양 소설인 Josheph Conrad의 “Lord Jim”이 될 것이다.
죄와 속죄에 관한 소설이다.

독후감도 쓸 것이다.—언제가 될 것인지는 묻지 말아 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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